여성환경연대에서는 행복하게 일하며 살아가기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한 ‘2017 에코페미니즘 학교’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6월 1일 마지막 미니 컨퍼런스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행복하게 일하고 살아갈까”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안은 있다. 행복하게 일하고 살아가기”가 진행되었는데요. 에코페미니즘 학교가 진행되는 동안 서포터즈 기획단으로 활동하며, 돌봄, 감정 노동의 이중고를 겪는 여성의 삶을 조명하고자 미디어 사례를 찾고, 청소노동자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돌봄과 감정노동에 대한 주제발표를 한 4명의 서포터즈를 만났습니다.
여성환경연대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살아갈까? : 생존,자급.연대를 꿈꾸는 2030 에코페미니즘 학교 & 세대별 에코페미니즘 포럼’ 프로젝트를 통해 에코페미니즘 학교, 에코페미니즘 포럼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에코페미니즘을 확산함과 동시에 세대 간을 연결해 대안적인 앎과 삶을 만나고 에코페미니스트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개인과 사회의 유쾌한 변화와 전환을 찾아 나가려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행복하게 일하고 살아갈까” 2017 에코페미니즘 학교 현장 스케치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미운 오리 새끼’는 마흔을 훌쩍 넘긴 네 명의 남자 연예인이다. 혼자 사는 아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여성 출연자들은 걱정과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들에게 결혼 ‘못한’ 아들은 여전히 철부지 아이다. 카메라는 이들의 ‘기행’에 초점을 맞춘다. 토니안은 그의 더러운 방이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저러니 여자가 필요하지”, “빨리 결혼을 해야 해” 영상을 본 출연자들의 ‘대책’이 쏟아졌다. 방이 더러우니까 여자가 필요하다? 방이 더러우면 청소를 하면 되지, 왜 여자가 필요할까.
에코페미니즘 학교의 참여자 ‘강물’은 이렇게 말한다. “청소는 여자가 하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미우새’는 돌봄 노동이 여성만의 일인 것처럼 말해요. 아내가 없으면 어머니라도 끝까지 남자를 돌봐야 한다는 거죠. 게다가 오십 살이 넘은 사람을 ‘600개월’이라고 표현하는 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이성애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만이 정상적이라는 거죠.” 그녀는 다른 세 명의 참여자와 팀을 이뤄 미디어에서 돌봄 노동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조사했다.
같은 팀인 ‘토마토’는 “조사하면 할수록 돌봄 노동은 다 사회적 약자가 하고 있다는 게 분명해졌어요. 가난한 여성, 늙은 여성, 이주 여성들 말이에요.” 그녀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일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이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저는 레즈비언 커플을 만나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이성애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만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 친구들도 너무 자연스럽게 사랑을 하는 거예요. 기존에 내가 알던 것들이 전복되는 느낌이었어요. 전 그런 생각의 전복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알고 싶어졌죠.”
에코페미니즘학교 서포터즈로 참여한 토마토, 산초, 강물, 기쁨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이들은 서둘러 ‘미니 컨퍼런스’를 준비하러 떠났다. 그날은 6주간 이어온 ‘2017 에코페미니즘 학교’의 마지막 수업이 열리는 날이었다. 강사가 따로 있는 수업이 아닌, 참여자가 직접 만드는 ‘미니 컨퍼런스’가 진행됐다. 세 팀이 돌봄 노동, 좋은 노동, 기본 소득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발표 1. 왜 ‘돌봄 노동’은 여성의 일로만 여겨질까?
‘돌봄 노동 조’는 여성 청소 노동자를 직접 만났다. “4시 퇴근하면 이제 식구들 오니까 밥 차려야죠.” 그들이 만난 여성들은 집으로 ‘퇴근’이 아니라 ‘출근’을 했다. 집에 밥을 차려줘야 할 남편과 돌봐야 할 손자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터에서도 그들이 쉴 공간은 마땅치 않았다. 대학생인 ‘기쁨’은 이번에 처음 학교의 청소 노동자가 사용하는 휴게실을 가봤다. “1년 6개월이나 학교에 다녔는데, 그분들이 계시는 휴게실에 처음 들어가 봤어요. 학교 교학 팀은 엄청 넓은데, 그분들 휴게실은 1평도 안 되더라고요. 여성 청소 노동자들이 제대로 쉴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돌봄 노동을 저평가하고, 여성에게 강요하는 현상은 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모성’을 미화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모성 미화’가 어떻게 돌봄 노동의 강요로 이어지는가를 짚고, 일터와 가정 양쪽에서 비난을 받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했다.
돌봄과 감정노동에 대한 미디어 및 인터뷰 내용을 발표하는 모습
발표 2. ‘좋은 노동’은 무엇일까?
‘좋은 노동 조’는 “좋은 노동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시작했다. 정규직이라고 모두 행복할까? 회사의 복지가 좋으면 ‘좋은 노동’일까? 발표자 ‘인디’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좋은 노동’의 환경을 가진 회사 사례를 소개했다. 모든 직원을 정규직화한 ‘오뚜기’, 그리고 복지가 좋아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제니퍼 소프트’. ‘인다’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좋은 노동의 조건을 획일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이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맞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좋은 노동을 가능하게 하려면 탄력적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걸 발견했어요.”
발표 3. 당신에게 ‘기본 소득’이 주어진다면?
마지막 조의 발표는 워크숍으로 진행됐다. 135만 원의 기본 소득을 받는다는 전제로 각자 지출 계획을 세웠다. 한 참여자는 “기본소득이 생기면 계획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언제 일하고, 언제 쉴지 내가 정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내 삶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 고민할 여백이 생길 거 같아요” 기본 소득을 실제 삶에 적용해 보며 참여자들이 떠올린 건 ‘여유’와 ‘가능성’이었다. 그 ‘여유’가 태만으로 이어질 거라는 항간의 우려와 달리, 개인을 넘어 사회를 고민하는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에코페미니즘학교 미니컨퍼런스 참가자들
페미니즘 역시 삶을 위한 공부
그렇게 6주 동안의 에코페미니즘 공부가 끝났다. ‘돌봄 노동 조’로 활동했던 ‘산초’는 이제야 비로소 어머니가 해온 ‘그림자 노동’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으로서 자신이 알게 모르게 해왔던 행동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에코페미니즘 학교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20대는 대부분 취업이나 먹고 살기 위한 공부만 찾을 거로 생각하잖아요. 근데 저는 에코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해요.” 컨퍼런스가 끝나자 수료식이 이어졌다. 그러나 공부에 마침표를 찍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는 끝났지만, 공부는 이제 시작이었다.
글 우민정 | 사진 조재무
여성환경연대는 1999년에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여성환경운동 단체로 여성의 관점에서 생태적 대안을 찾고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녹색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녹색사회를 지향하며, 작고 소박한 일상으로부터 녹색의 대안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http://ecofe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