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어페어 / 진은영]
그런 남자랑 사귀고 싶다
아메리카 국경을 넘다
사막에 쓰러진 흰 셔츠 멕시코 청년
너와
결혼하고 싶다.
바그다드로 가서
푸른 장미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폭탄처럼 크게 들리는 고요한 시간에
당신과 입맞춤하고 싶다.
학살당한 손들이 치는
다정한 박수를 받으면서,
크고 투명한 물방울 속에
우리는 함께 누워
물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은빛 물고기에게,
학살자의 나라에서
도시가 씌어지는 아름답고도 이상한 이유를.
네루다는 민중 시인이었습니다. 1971년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도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 라는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891)의 예언적 경구를 인용한 그는 혁명의 승리를 바라고 믿었으며 '잉크보다는 피에 가까운 시인'이었지요. 네루다는 민중이 군사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혁명과 반혁명이 대립하던 시대에 기꺼이, 그리고 과감히 '거리의 피'를 노래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밤같이 캄캄한 현실의 장과 이윽고 새벽으로 다가올 '다른 현실의 장'을 열어 밝혔지요.
메시지가 강한 민중시들은 통상 세계에 은폐되어 있는 부정, 부패, 폭력, 착취, 탄압과 같은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 됩니다. 또한 다가올 참세상을 여는 새벽 닭 울음소리 역할을 하지요. 그럼으로써 밤새 뒤척이며 잠 못 이루게 하는 사유뿐만 아니라 문을 박차고 거리로 뛰어나가는 행동도 부추깁니다. 혁명의 불씨가 된다는 말이지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네루다가 쓴 민중시 안에서 훨훨 타오르는 횃불은 마리오의 컴컴한 의식에 불을 지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기껏해야 자전거를 몰아 시내로 나가 버트 랭커스터와 도리스 데이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그를 송두리째 바꿔놓았지요. 예전에는 꿔다놓은 촌닭같이 남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던 그가 부정한 상원의원에게 자기 소신을 떳떳이 밝히기도 하고, 농민·노동자 집회에서 시를 낭송하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역할을 떠맡기도 합니다. 이것이 한적한 어촌에서 하루하루를 권태롭고 무의미하게 살아가던 청년에게 시가 행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일이지요.
스카르메타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하려고 했던 말도 바로 이것입니다. 시에는 사람과 세상을 바꿔놓는 놀라운 힘이 존재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 힘의 실체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시는 사랑을 사랑하는 노래입니다. 시는 사랑 때문에 놀라고, 사랑 때문에 기뻐하고, 사랑 때문에 슬퍼하고, 또 사랑 때문에 분노하지요.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기 때문에 일부 민중시는 때로 미움을 미워하는 노래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시의 본질은 사랑이고 그것이 시가 가진 힘입니다.
우리 시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도도하게 맥을 이어 내려온 우리 민중시는 그때마다 뜨거운 사랑으로 삶과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어둠을 열어 밝혔습니다. 이윽고 와야 할 참세상의 모습 역시 드러내 보였지요. 그럼으로써 젊은이들을 거리와 광장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혁명으로 이끌었습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네루다는 피노체트 군사정부의 탄압으로 자택에 감금되어 있다가 신병 탓에 산티아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세상을 떠나지요. 그 후 마리오도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에게 연행되면서 소설이 끝납니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마리오는 행복했을 거예요. 권태롭고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 시와 사랑과 혁명을 꿈꾸게 되었으니까요. 다음 시를 보니 진은영 (199) 시인도 같은 꿈을 꾸고 있네요!
네루다가 그랬듯이, 마리오는 여인을 노래하는 시를 통해 사랑을 얻었고, 일상과 자연을 노래한 시를 통해 삶과 세계와 아름다움을 알았으며,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시, ”내 자식이 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참세상 함께 만들어가는“ 시를 통해 제 운명을 개척하고, 참세상 만들어가는 꿈을 갖게 되었지요. 한마디로 그는 삶의 소중한 것들을 모두 시를 통해 얻은 것입니다.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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