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중동 외교는 있는가 ?
중동은 바로 우리의 안방 문제 - 석유 등 에너지 확보는 국익의 사활 걸려
'한 손엔 칼, 한 손엔 꾸란(이슬람의 성서, 코란은 영어식 표현)' 이슬람의 '폭력성'을 말할 때 흔히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이슬람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13세기 기독교의 십자군이 중동 원정에서 이슬람군에 패배하자 당시 서양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에 대한 공포증을 심어주기 위해 처음 한 말이다. '이슬람'이란 말도 원래 '순종'과 '평화'를 의미하는 아랍어다. 유일신 알라에게 순종함으로써 진정한 평화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잘 모르거나 왜곡된 개념으로 알고 있는 것이 많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소주도 아랍에서 유래했다. 아랍에서는 야자 등을 발효시켜 만든 증류주를 '아라크'라고 부른다. 고려 때 소주를 '아라크'라고 부른 적도 있다. 현재 지구상 무슬림(이슬람 신자)은 세계 인구의 20%인 13억 명이나 된다. 국민의 과반수가 무슬림인 국가도 50여 개국(팔억명)에 이른다. 이슬람권의 인구 증가가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어 앞으로 그 비중은 점점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
걸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동에는 20세기 문명의 핵심인 석유가 뜨거운 사막의 모래 밑에 묻혀 있다. 20세기 산업화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석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21세기도 새로운 대체 에너지 자원이 나타나지 않는 한 석유가 핵심 동력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화석 연료인 석유라는 자원이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니다. 쓰면 쓸수록 없어지는 석유는 이 때문에 모든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비근한 예로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2차 대전에서 연합군에 패배한 것도 석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히틀러는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군대를 보냈으나 패퇴하고 말았다. 또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유전을 차지하기 위해 소련을 공격했으나 스탈린은 이 유전을 폭파시켰다. 결국 탱크와 전투기에 풍부한 연료를 공급할 수 있었던 미국 등 연합군이 독일군을 패배시킨 것이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것도 동남아 일대의 유전과 석유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21세기에 들어 석유는 그 전략적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현재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바로 석유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란과의 전쟁으로 국력이 피폐해진 이라크는 국경을 마주한 쿠웨이트를 점령, 석유를 차지하려고 했다. 미국 등은 이를 결코 좌시할 수 없었고,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 아라비아도 자신들의 석유까지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미국에게 공격기지를 내주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한 바 있다.
하지만 이교도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성지인 아라비아 반도에 발을 내딛자 오사마 빈 라덴 등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고 알 카에다라는 테러조직을 만들어 대항했다. 미국을 내쫓고 미국에 협력한 부패한 사우디 왕정도 전복하고 진정한 이슬람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이슬람의 민중들은 알 카에다의 반미주의에 갈수록 동조하게 됐고, 사우디가 배신할 수도 있다고 의심한 미국은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으로 이라크를 지목, 침공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를 51번째 주(州)로 만들겠다는 전략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 축출이후 이라크 점령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총을 들고 저항 세력의 소탕에만 주력했던 미군은 이라크 국민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종교와 문화는 물론 심지어 어떤 음식을 먹지 않는지도 몰랐다. 만약 미국이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면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학대 사건 같은 것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부 그라이브 포로학대 사건은 몇 세대가 지나가다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가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이슬람에 무지나 무시, 편견이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고(故) 김선일씨 참수 사건은 우리에게 미국이 지금까지 저지른 '시행착오'를 곰곰이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때마침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4일 '한국, 피살로 국제적 목표를 재검토한다(Killing makes Korea review international aims)'라는 제목의 논평을 게재하고 역사적으로 '편협한 세계관(insular worldview)'을 가지고 있어 '은둔의 나라'(Hermit Kingdom)라고 불렸던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주둔 연합군에 가담하는 데 따른 국제 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이 이처럼 꼬집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통해 한미동맹의 기초를 든든히 하고 대북 정책에서 보다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아가 이라크 재건 사업에서 경제적 이익까지 얻자는 실리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 정부의 전략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상대방이란 바로 미국과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다.
북한에 대한 독자적 영향력을 보다 행사하려는 야심에 집착, 파병을 선택했으나 지지층의 여론이 등을 돌리자 차일피일 파병을 미루다 오히려 미국이 주한 미군 일부를 이라크로 차출하는 등 역풍을 만났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신뢰만 잃은 것이다. 또 별로 실익도 없고 자칫 이라크의 종족 분쟁의 갈등이 증폭될 수 있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지역으로 파병키로 한 것도 실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이번 미국의 침공에서 전혀 피해조차 입지 않았으며 주변국들인 터키, 이란, 시리아 등이 쿠르드족 문제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이다. 이라크내의 대다수 종족인 시아파와 수니파도 쿠르드족 문제라면 신경질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왕 파병키로 했다면 아예 테러가 극성을 부리지 않았던 시기에 서희 제마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에 보다 많은 병력을 추가 파견했다면 소득이 더 있었을 것이다. 이 지역은 이라크 최대 종족인 시아파가 장악하고 있으며 앞으로 시아파는 이라크의 정치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 분명하다. 새롭게 탄생하는 이라크 정부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석유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은 국제 유가가 오르기만 하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상투어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석유의 거의 대부분을 중동에서 수입하는데도 불구, 그동안 대 중동 외교는 외면했다. 1970년대 한때 활발했던 중동 진출이후 지난 30년 간 중동은 우리 외교의 사각지대나 마찬가지였다.
반기문 외교통산부 장관이 지난 2월 18일부터 23일까지 대통령 중동특사 자격으로 요르단, 사우디, 이집트를 순방한 바 있다. 요르단의 경우 지난 1962년 양국 수교이래 우리 외교 장관으로서는 처음 방문이다. 온건 아랍국가인 요르단은 중동평화 정착의 핵심인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이라크와 긴밀한 정치,경제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사실상 이라크 진출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외교의 수장이 수교이래 첫 방문이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1970년대 중반까지 국제무대에서 친북 일변도였던 이집트는 1995년 우리나라와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아무리 북한과 가깝더라도 이집트는 사우디와 함께 중동의 맹주이다. 반 장관은 지난 1979년 박동진 외무부 장관 이래 25년 만에 이집트를 방문한 것이다. 우리 외교의 행동 반경이 이 정도이니까 편협한 세계적 안목과 은둔의 나라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그래도 민간 기업들이 정부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요르단 암만에서 이라크 바그다드에 이르는 1,000km 길이의 고속도로는 현대와 삼성이 건설한 것이다. 중동의 석유는 우리 민간 기업들이 열심히 발로 뛰어 들여오는 것이고 건설 수주도 역시 민간 들의 프론티어 정신 덕분이다.
정부가 김선일씨 석방 교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석방교섭의 핵심무대인 이라크 바그다드 대사관에서는 아랍어 전문 외교관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외교관들이 가장 부임하기 싫어하는 곳이 중동지역이다. 이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외교관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가장 늦게 철수하는 최후의 병사이다. 테러의 위험이나 주거 환경의 어려움 등을 감안하더라도 보다 많은 외교관들을 중동 지역에 적극적으로 투입시켜야 한다.
또 외교는 이들 외교관들만의 몫은 아니다. 국가안보회의(NSC) 등 정책을 조율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브레인들도 국제적 마인드를 가져야한다. 그런데 우리 NSC는 대부분 북한만을 생각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 알-자리라 방송에 호소만 하면 된다는 허술한 방법만을 생각한 것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외교기관이 아니라 언론사이다. 언론이 인질을 석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제대로 된 전략을 세웠다면 아예 추가 파병 이전부터 알-자지라 등 중동지역 언론들에 서희 제마 부대의 인도적 지원 상황을 홍보하면서 이라크에 추가 파병한다면 재건 임무를 맡을 것이라고 홍보했다면 그나마 피해를 입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파병 결정으로 중동의 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또 앞으로 21세기 중반까지 부족한 에너지를 확보하려면 중동에 더욱 활발한 진출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 중동문제가 이제는 우리의 '안방 문제'가 된 것이다.
비록 사후 약방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대 중동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외교는 국가 정상이 직접 상대국을 방문하는 등 인적 교류가 상책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1970~80년대 오일쇼크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동은 한국에서 생존의 조건이며, 소중한 이웃이라는 절실한 인식을 갖게 됐고 중동의 건설업과 건설노동자 진출은 우리 경제성장의 두 번째 도약의 계기가 됐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이 결코 립 서비스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올 초 인구 120만의 아프리카 소국 가봉을 방문한 바 있다. 하루 20만 배럴의 석유 수입이라는 목적을 위해 체면도 마다 않고 먼길을 찾아 간 것이다. 청와대에서 측근들만 데리고 식사하면서 안방 정치를 하는 국가 정상보다 국익을 위해 외국에서 발로 뛰는 국가 정상을 보고 싶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약력 > : 한국일보 모스크바 주재 초대 특파원, 사회부 차장, 국제부 수석 차장, 주간한국 부장을 역임하고 현재 국제문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음. 저서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