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국선변호사
- 은유시인 -
지난 9월 초, 우편배달부에 의해 등기로 배달되어 온 ‘9월24일 오전11시, 부산지방법원 제301호 법정에 출두하라’는 법원의 피고인소환장이 있었는데, 검찰 공소사실에 대한 답변서 작성방법 외에도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있었다.
이른바 형사사건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어도 영세민이거나 형편이 어려운 경우 국가가 부담하고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첫 재판이 있기 열흘쯤 전에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라는 답변서와 국선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별도의 양식을 첨부하여 법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9월24일 오전11시, 부산지방법원 제301호 법정에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는데, 합의부라 재판장을 비롯하여 세 명의 배석판사가 자리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먼저 재판장은 내게 ‘피고가 원한다면,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라고 통보했다. 물론 내게 영세민인지 또는 수입이 전혀 없는지 따위는 묻지 않고 다만 ‘국선변호사를 선임하겠는가?’라고만 묻기에 ‘국선변호사를 선임해서 재판에 득이 된다면 선임하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쯤 법원으로부터 ‘변호사 배종근을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한다.’란 국선변호인선정결정문이 배달되어 왔다.
지금까지 국선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수임한 사건을 다루면서 부수적으로 국선변호사건을 맡아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선변론에 소홀했다. 따라서 형식적 변론에 그쳐 붙박이 국선변호사니 판박이 변론이니 하며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9월부터 서울중앙지법에 4명, 부산지법 등 6개 지법에 각 2명 씩 총 16명의 국선변호 전담변호사를 선정, 국선전담변호사제가 시범적으로 실시되면서 국선전담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하여 국선변론활동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부산지방법원에는 현재 2명의 국선변호 전담변호사가 있다. 그들 국선전담 변호사는 매달 25건 안팎의 국선변호사건만 전담하게 되며, 보수는 재판부가 건당 15~75만원 범위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한 달에 25건의 사건을 맡을 경우 최저 375만원에서 최대 1천875만원의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어제 밤늦게 국선변호인인 배 변호사가 내 휴대폰으로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두 번째 재판을 하루 앞둔 오늘 오후3시경, 배 변호사를 법원 앞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첫인상이 무척 좋았고 꽤나 서글서글하였다. 나를 소파에 앉게 하더니 멀찍이 떨어진 컴퓨터에 다가앉아 보충 질의를 하며 열심히 진술한 내용들을 입력하는 것이다. 얘기 도중 녹차를 내왔고 꽤나 정중하게 대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30여 분이 지나 면담이 끝났다. 그는 문밖까지 배웅하면서 ‘무죄로 판결날 것’이란 말을 들려주었다. 국선변호사라지만 친근함과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200자 원고지 9매 분량)
2004/10/12/21:22
※ 나중엔 사건이 대법원까지 진행되었지만,
배 변호사의 장담대로 무혐의처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