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머니 속의 세종대왕
권도운
지난해 초여름의 일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서두르며 무언가 잊은 듯한 허전함을 의식하면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정작 그 허전함을 직접 느낀 것은 버스에 올라 토큰을 꺼내기 위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이다.
용돈을 넣고 나오지 않았다.
아내가 출근복에 용돈과 손수건 등을 챙겨 넣어주었건만, 그날따라 날씨가 무덥다는 이유로 거추장스러운 정장 차림보다는 간편한 평상복을 택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잔돈이 조금 남아있었기에 버스요금은 해결됐지만, 퇴근 후 생신을 맞은 은사 댁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
교통비와 찻값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었겠지만, 생일선물을 마련하려면 약소해도 만 원권 몇 장 정도는 있어야 했고, 또 평상시에 돈을 빌려주기는 잘하였으나 빌리는 데는 익숙지 못한 성격이었고 보면 더욱 그러했다.
버스에서 내려 미술관까지 걸으면서, 그리고 근무하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얼마 전 동료에게 빌려주었던 것을 회수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날따라 토요일인 데다가 업무에 쫓긴 사이 돈을 빌려 갔던 동료가 퇴근해 버렸으니 그나마 한 가닥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에서 그래도 무의식중에 버릇처럼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데, 그때 손끝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었다.
주머니 속엔 분명 지폐라곤 없었건만, 지폐가 닿는 느낌이었으니 더욱 이상할밖에…….
다시 한번 확인해 봤지만,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도 그 느낌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자꾸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 느낌이란 예감과 촉감을 동반한 지폐와 인간과의 일종의 텔레파시와도 같은 것이었으니 급기야는 시각을 통해 확인하기에 이르렀고, 그 시선에, 바지 주머니에 겹으로 달린 작은 주머니가 그야말로 번개와도 같이 영상처럼 클로즈업되었다.
그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빠르게 손이 움직였고 집게 같은 손가락 사이에 접혀 나오는 것은 녹색의 세종대왕이셨다.
세종대왕께선 시녀도 백관도 거느리지 않고 혈혈단신으로 용안에 가득한 미소까지 지으시며 납시고 계시었다.
그때의 그 기쁨대로라면 당장에라도 「황공하옵니다.」하고 국궁이라도 할 듯한 심정이었다.
꼬깃꼬깃하게 접힌 구김살이 송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잠시 뒤로 접어 두고, 그나마 몇 장 정도라도 넣어 두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던가.
그것은 언젠가 술값을 계산하고 남은 것을 만일을 위해 비상금으로 접어서 넣어 두었던 것인데, 그것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
옷을 세탁할 때가 지났건만 무슨 생각으로 그 옷을 다시 입었는지, 그것은 분명 불행 중 다행이었다.
비상금의 필요성을 처음 느낀 건 아니지만, 그날의 비상금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고,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꼬깃꼬깃한 세종대왕의 용안이 안쓰럽기만 하다는 듯 지폐의 주름살을 펴 보면서 가능하다면 드라이클리닝이라도 해 드리고 싶은 양심을 느꼈다.
돈이란 한낱 쇠붙이나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폐기되고 있을 돈의 물량과 경제적 가치도 중요하겠거니와 더욱 중요한 것은 나 혼자만의 소유물이 아님을 반성하고 비상금의 경우 더더욱 소중하게 다루고, 타인에게 넘겨줄 때 향기를 건네줘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 다져 본다.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근무할 때, 모 일간신문에 기고했었던, 기억도 가물가물한 글 한편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