兎(토끼토). 死(죽을사). 狗(개구). 烹(삶을팽).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뜻으로 쓸모가 있을 때는 긴요하게 쓰이다게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려 진다는 말이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의심이 많고, 편협된 인물이였지 만은 의협심(義俠心)이 강하고, 천하장사인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를 이길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신(韓信)이라는 명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방과 술자리에서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자신의 재능을 설파했고, 배수진(背水陣)의 전술(戰術)로 그 능력을 확인 시켰던 한신은 난세의 영웅이 항우의 초군(楚軍)에게 연패했던 유방으로 하여금 패권을 찾이하게 만든 1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한신은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단명한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도 자신의 주인인 유방으로부터 제거되는 운명을 겪는 한신의 심정은 정말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를 멸하고 한나라의 고조(高祖)가 된 유방은 소하(蕭何). 장량(張良)과 더불어 한나라의 창업 3걸중 한사람인 한신을 초왕(楚王)에 책봉 했다. 그런데 이듬해 항우의 맹장(猛將)이었떤 종리매(鍾離昧)가 한신에게 몸을 의탁(依託)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고조는 지난날 종리매에게 고전했던 악몽이 되살아나 크게 노했다.
그래서 한신에게 당장 압송하라고 명했으나 종리매와 오랜 친구인 한신은 고조의 명을 어기고 오히려 그를 숨겨주었다.
그러자 고조에게 한신이 반심을 품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그래서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게됐다.
역적으로 포박당하자 한신은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果若人言(과약인언) / 과연 사람의 말과 같구나.
狡兎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쌀마 먹히고,
飛鳥盡良弓藏(비조진양궁장) / 하늘을 나는 새를 다 잡고 나니 좋은 활도 구석에 처박혀,
適國破謀臣亡(적국파모신망) /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다고 하더니,
天下已定(천하이정) /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我固當烹(아고당팽) / 나도 마땅히 삶아지는구나.
그러나 고조는 한신을 죽이질 않고 장안(長安)으로 주거를 제한 하였으나 그후 유방의 아내 여후(呂侯)로부터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무참히 칼을 맞고 죽었다. 우리 역사도 조선조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이와 같은 예이고 김영삼(金泳三,1929~2015) 전 대통령 취임직후 김재순(金在淳,1923~2016) 전 국회의장이 부정축제 파문속에 "토끼를 다 잡아먹은 사냔꾼은 마지막에는 사냥개 까지 잡아먹는 다는" 유명한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던져 당시 김영삼 정권초에 일파 만파를 일어키며 정계를 은퇴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