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83)>
위편삼절(韋編三絶)
가죽 위(韋), 엮을 편(編), ‘위편’이라함은 ‘가죽끈으로 엮다’라는 뜻이고, 석 삼(三), 끊을 절(絶), ‘삼절’이라함은 ‘세 번 끊어지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위편삼절‘이라함은 “책을 맨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독서했다”라는 의미이다.
공자께서 주역(周易)을 읽고 또 읽어서 책을 엮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데서 유래되는 말이다.
후한시대 채륜(蔡倫)에 의하여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를 쪼개 엮어서 책으로 만들었다. 대를 길쭉하게 쪼개고 불에 쪼여서 기름을 뺀 것에 모필로 글을 써서 가쭉끈을 엮어 매어 책을 만들었다. 그것을 죽간(竹簡)이라고 부른다.
공자는 만년(晩年)에 역(易)을 좋아했다. 그래서 주역 책의 가죽끈이 세번이나 닳아 끊어질 정도로 읽었다고 한다.(讀易韋編三絶:독역위편삼절)
여기서 삼(三)이란 숫자는 ‘자주 또는 빈번하게’ 등의 뜻으로 쓰이므로, 문자 그대로 세 번에 한하지 아니한다. 가죽끈이 몇번 끊어질 정도로 수 없이 반복해서 주역을 읽었다는 의미이다.
위편삼절은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같은 성인(聖人}도 학문연구를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는 말로, 후세사람들에게 학문에 대한 정진을 권장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공자의 위대한 업적도 위편삼절과 같은 노력이 뒷받침 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공자는 자신을 평하기를 “ 나는 발분(發憤)하여 밥먹는 것도 잊고, 세월이 흘러 몸이 늙어가는 것 조차 모른다”고 했다. 공자는 또 음악을 좋아했었는데, 제나라로 가서 소(韶)라는 음악을 들었을 때는, 석달 동안 고기 맛을 모를 정도로 심취한 끝애 “내가 음악을 이렇게 까지 좋아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고 술회(述懷)했다.
발명왕 에디슨이 말했듯이 천재의 99%가 땀으로 이루어진다. 무슨 일이건 끊임없는 반복적이 노력이 경이로움을 창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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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아주 흉측하게 생긴 발 사진을 본적이 있다. 바짝 마른 발등은 휘어져 있었고, 발가락은 울퉁불퉁 구부러져 있어서 도저히 정상적인 사람의 발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모양의 발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발의 주인공은 발레리나 강수진 씨였다. 독일 슈트드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로 입단한 그녀는 발레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우는 ‘브느아 드 라당스 ’최고여성무용상을 수상한 세계적이 무용수로 성장했다. 백조의 호수를 춤추는 아름답고 신비한 무용수의 발은 예쁘고 우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혹독한 발레 연습을 많이 하였으면 발등과 발가락이 저렇게 피멍울이 들고 변형되었을가!
옛날 활을 잘 쏘는 재상이 있었다. 소년 시절부터 활 쏘기를 좋아해서 재상이 되어서는 활을 들면 백발백중(百發百中)했다. 사람들은 재상의 활솜씨가 신궁(神弓)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흡사 이성계가 천정의 쥐가 시끄럽게 굴자, 활을 들어 천정의 쥐를 맞추는 것과 같은 솜씨었다. 어느날 재상이 활을 쏘고 있는 것을 지나가던 기름장수가 보았다.
기름장수가 말했다. “오랜 세월 연습을 많이 한 솜씨입니다.”
재상은 일개 하찮은 기름장수가 감히 자기의 활 솜씨를 평가하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다. “네가 무얼 안다고 함부로 나의 활 솜씨를 평하는가!‘
그 말에 기름장수는 메고 있던 기름짐을 벗어 놓았다. 그리고 작은 병을 세우고 병 위에 구멍 뚫린 엽전 한 개를 올려 놓았다. 작은 병에 기름을 붓기 시작했다. 병을 다 채우고나서 엽전을 들어보았더. 신기하게도 엽전에는 기름한 방울 묻지않았다.
기름 장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 같은 무식한 사람도 수십년간 기름을 따르다보니 지금은 기름을 묻힘이 없이 엽전 구멍으로 기름을 부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감님의 활 솜씨도 수없는 반복 연습이 지금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말에 재상은 화를 풀고 고개를 끄덕이며, 기름장수를 오히려 칭찬했다고 한다.
세상의 명인이나 달인들은 수없는 반복적인 자기 연마가 그를 그 경지로 끌어 올린 것이다. 얼마전 시장 길목에서 시원한 수박냉수를 파는 것이 TV에 방영된 적이 있다. 날씨가 더워서 수박냉수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는데, 신기하게도 큰 컵에 국자로 채워주는 주인의 얼음냉수의 무게가 누구에게나 똑 같았다. 저울에 달아보니 불과 1g차이에 불과했다. 오랜 세월 냉차를 뜨다보니 저울에 달지않아도 그냥 척척 같아지는 무게였다. 흡사 한석봉의 어머니가 불을 끄어놓고 떡을 썰어도 같은 크기로 가지런한 것과 같았다.
무릇 사람의 성공은 토끼같은 재능이 아니라, 거북이 같은 꾸준한 근면함에 있다. 그래서 한결같이 근면하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한문으로 표현하면 일근천하 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산을 쳐다보면서 높은 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땀흘려 오르려고는 하지않는다. 그래서 조선시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양사언(楊士彦)은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었다.
태산(泰山)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山)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말처럼 반복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학문이건 사업이건 꾸준한 노력을 해야 성과를 보게된다. 필자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중용(中庸)의 다음과 같은 글귀가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다른 사람이 한번에 할 수 있다면 나는 백 번하고, 남이 열 번에 성취한다면 나는 천번 되풀이 해서 성취하리라.(人一能之己百之, 人十能之己千之:인일능지기백지, 인십능지기쳔지) (202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