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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사도행전 3부
<기도>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생명의 말씀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는지, 또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섬겼는지, 교회가 어떻게 개척되었는지, 이런 것을 잘 배우게 도와주시고,
또 옳고 바르고 좋은 것을 배워서 우리도 본받아 충성된 증인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도행전을 같이 봅시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도행전 9장]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다메섹 쪽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예수 믿는 사람이 있으면 잡아 오겠다, 그 정도의 열정이었어요. 이 사람이.
여러분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나가면 다마스커스 문이라는 문이 있습니다.
그 쪽으로 올라가면 다메섹이 되겠는데,
제가 다마스커스 그 고대도시를 2008년도 3월에 처음으로 가 봤어요.
성지순례 여러 번 갔어도 그 쪽에서 잘 못 갔는데 그 때는 특별히 다마스커스에 가봐야 되겠다고 가봤는데, 그야말로 인류 역사에 가장 오래된 도시 몇 개 중의 하나입니다. 다마스커스가.
거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잡아다가 때리고 가두고 그렇게 할려고 그 먼 길을 간 거야.
그래서 다메섹 가까이 갔을 때,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아마 걸어간 것 같지는 않고 말이나 아니면 약대나, 그 먼 길을 걸어서 가기는 힘든 길입니다. 그래서 아니면 당나귀나, 아마 말이나 약대를 탔겠죠.
그래서 갔는데 굴러 떨어져서,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그 때는 사도가 아니고 사울이라는 사람이 아직도 나이가 젊을 때죠.
그 때 나이가 많아 봐야 30안팎인 그런 나이인데, 사울이 예수님을 핍박한 게 아니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한 거죠. 그렇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죠?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거야.
그래서 ‘너희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그런 말씀도 하셨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 맞아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이 곧 누구 핍박하는 거죠?
예수님 핍박하는 거예요.
예수 믿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 사랑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 곧 예수님 섬기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사랑하는데, 예수님 믿고 예수님 존경하지만, 교회는 싫어한다. 그래서 자기는 교회에 안 나간다. 그런 사람이 있어요.
물론 교회에 안 나가고 집에 앉아서 성경보고 기도하고 해도 신앙이 유지될런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학교에 안 가고 집에서 독학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러나 원만한 인격을 갖추기 어렵고, 독학을 해서는.
여러분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게 단지 지식전달 지식습득 그것만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얻어지는 것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교제하면서 거기에서 얻는 게 많다는 거예요.
무슨 꼭 교사가 흑판에 써서 주입하는 것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학교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과 교제하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게 많다는 거죠.
또 교회라는 생명의 유기체, 성령이 역사하시는 생명의 유기체가 되는 교회라는 곳에, 교회라는 그 가지에 붙어있지 않고 한 이파리처럼 날아다니면 어떻게 생명이 유지 되겠어요?
그러니까 지금도 아마 이 CTS방송을 보고 계시는 분 중에, 뭐 사람들 사는 곳이니까 교회에 가서 상처를 입고 교회에 나가는 게 싫다 하면서 방송만 보고 신앙생활 하는 분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썩 잘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어느 한 방향만 잘못된 게 아니라, 상처를 받은 자기가 잘못된 수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아무데 가서도 사랑받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데 가서도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니까.
누가 상처를 안 줘도 스스로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성품들이 썩 그렇게 좋은 성품이 아닙니다.
가서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고.
그러니까 사랑받는 얘기는 어제 좀 했는데, 자꾸 시간이 쫓기니까 줄이고 줄이고 빠지고 빼먹고 건너뛰고 생략하고 이런 게 자꾸 나와요.
사랑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 예절이 있어야 돼요. 예절.
여러분 예절이 없는 곳에, 예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사랑받기 거의 어렵습니다.
둘째 겸손해야 됩니다.
겸손하고 그리고 예절이 있으면 사랑을 받아요.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자기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야 돼요.
남의 일 간섭하지 말고.
괜히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남의 말 하고 다녀요. 그렇죠?
그러면 사랑받기 어려워요.
세 가지예요.
예절이 없고 겸손하지 않고, 자기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의 말 하고 다니고 그래가지고 사랑받는 것은 말이 안 돼.
그러니까 얼굴이 아름답거나 예쁘거나 핸섬하거나 이래가지고 사랑받는 사람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해도 잘 없고,
제가 볼 때 한국 사람은 다해봐야 별로 미인이 없는 것 같아요.
얼굴이 예뻐 가지고 사랑받는 사람은 그것은 희귀한 것이고, 영화 배우급 되어가지고 한두 사람 그런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별로 썩 탁월하게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도 어떻게 사랑받느냐 하면, 예절이 있고 겸손하고 자기 일에 충실하고 남의 말 너무 하지 말고.
그러면 사랑 받게 되어 있어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싸들고 와도 미운 놈 있죠. 그렇죠? 얻어먹으러 와도 예쁜 놈 있다니까.
예절이 있고, 겸손하다는 말은 좀 보충이 필요한데, 겸손한 척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것은.
겸손한 교만이야. 나는 이만큼 겸손하다고 하고.
지나치게 일부러 겸손한 것은 그런 것은 성경이 금하고 있어요.
겸손이 뭐냐?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예요.
그러면 교만이 뭐겠습니까?
겸손이 뭐라고? 끊임없이 배울려고 하는 자세가 겸손이라면, 교만이 뭡니까?
공부하지 않는 게 교만 이예요.
배울려고 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을려는 사람들 이런 사람이 교만 이예요.
어디 가서든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디서든지 배울 것이 없는가 하는 늘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겸손이야.
그런데 도무지 공부하지 않고 배울려고 하지 않는.
우리가, 한번 보세요.
가끔 드리는 말씀인데, 우리가 지식 조금 학위가 있다 해서 교만 떨지 말라고.
보세요.
대학이나 신학대학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세요.
우리가 읽은 책이 얼마나 됩니까?
설사 우리가 박사학위 갖고 있다손 쳐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일천하고 망매한 그런 정도밖에 안 돼요.
항상 어디가든지 배우고자 하는 그런 자세가 이게 겸손이야.
그리고 배우기 위해서 배울 기회가 있으면 어디든지 배워서, 배울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말이 없습니다.
제가 사랑받는 의원 누가, 미움 받지 않고 있는 그 세리로서도 미움 받지 않는 마태 이야기를 했어요.
잘 듣는 사람이고,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야.
복음서를 다 뒤져도 마태가 한 말이 없고, 성경 신약성경 다 뒤져도 누가가 무슨 말을 했다는 말이 안 나와요.
종용한 사람들인데, 끝없이 듣고 자기 정리를 하고 겸손하고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들.
이 사도행전을 쓴 분이 누가죠.
누가라는 말은 우리 한국식 발음이고, 원래는 루카스입니다. 루카스.
‘루카스’라는 말은 ‘빛나다.’ 하는 말이죠.
방금 우리가 너무 어두웠다가 이제 좀 밝아졌죠?
그 빛의 밝기를 재는 척도가 룩스(lux)라고 하죠?
룩스라는 말이 루카스에서 온 말 이예요.
그래서 자기를 막 으시대고 드러내어도 별로 빛이 안 나는 사람이 있고, 누가처럼 루카스처럼 조용히 말없이 있어도 영원히 빛이 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우리 속에 생명이 있고 진리가 있고 사랑이 있으면 숨어 있어도 빛이 나게 되어 있어요.
대개 자기 자신의 내면 속에 쌓인 것이 없어서 인위적으로 인간적으로 자기가 자꾸 드러낼려고 나서는 그런 모습들은 별로 그렇게 빛이 나지 않습니다.
어떤 여성들이 옷을 굉장히 명품에다가 진품 명품에다가 아니면 악세사리를 그냥 귀걸이에다가 목걸이에다가 팔찌에다가 반지를 두툼한 것을 끼고 이렇게 하면 튀어나는 것 같아도 그런 것 보면 인디언 추장 딸 같아요.
그게 무슨 귀티가 나 보이는 게 아니라 처량하게 보여요. 처량하게.
조용하게 겸손하게 그리고 배우는 자세 항상 공부하는 자세.
그리고 항상 마음이 열려있는 자세, 그리고 옳은 것은 항상 옳은 것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자기 것이 잘못되면 하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세, 이런 자세가 겸손 이예요.
그래서 겸손과 예절과 그리고 자기 맡은 일 성실하게 하고 남의 말 하지 않으면 어디가도 사랑받게 되어 있어요.
저는 학교 다닐 때 신학교 다닐 때에 항상 제가 맨 앞에 앉고, 또 질문도 가끔 질문 같은 질문을 하고 하니까 학장님부터 모든 교수님들이 저를 사랑하시는 거야.
저는 전혀 어제도 말씀드렸는데, 귀엽게 생기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저를 다 사랑하는 거예요.
우리 신학교 30년 역사에 100% 장학금을 제가 처음 받았다고 해요.
나이가 좀 들어서 공부를 했는데, 다른 학생들보다 내가 10살 늦게 공부했어요. 신학공부를.
저보다 10살 쯤 아래 있는 사람들과 동기생 이예요.
그래서 이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잘해 주는 것이 예수님께 잘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겁니다.
예수님 섬긴다 해가지고 우리가 예수님께 양복 한 벌 해줄 수도 없고, 예수님께 식사 한 끼 대접해 줄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몸 된 교회를 섬기는 그런 자세가 예수님을 섬기는 자세예요.
이게 기본자세죠.
그 때,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뉘시오니이까’ 물었어요.
여러분 사람이 일생일대에 질문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질문이 ‘예수님이 누구신가?’
이것을 보통 우리가 신학적으로 ‘기독론’이라고 합니다. 기독론.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가?
그 이야기는 제가 복음서 말씀드릴 때부터 특별히 요한복음 강의를 할 때 누누이 말씀드렸죠?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3년을 가르친 후에 졸업여행 갔고 가이사랴 빌립보로 졸업여행 가서 졸업시험 한 문제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내가 누구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것이 시험 문제였어요.
그래서 사람이 이 세상 태어나서 참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고 책도 많은데, 그런 것은 우리가 아무리 해도 다 하지 못해요.
그러나 다 몰라도 좋은데, 하나는 알아야 돼요.
예수님이 누구신가.
여러분 어쩌면 신약성경 전체의 주제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중요해요.
그것을 신학적으로 조직신학이 7개 마당이 있는데,
맨 처음에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러니까 신론, 인간론, 기독론. 기독론 다음에 구원론이죠. 구원론.
구원론 다음에 교회론이예요. 교회론 다음에 성령론이 나오고,
성령론 다음에 종말론이 나와요. 에스카톨로지라고.
7개의 마당이 있어요. 보통.
그런데 거기 세 번째, 신론 인론 기독론.
세 번째가 기독론 이예요. 그리스도가 누구시냐?
하나님을 알아야 인간을 알고,
인간이 타락된 사실을 알아야 그리스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구세주가.
그리고 그리스도가 하신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고,
구원하신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는데,
그 교회는 누가 이끌어 가느냐? 성령이 이끌어 가시는데,
그 성령이 교회를 쭉 이끌어 가시다가 교회 시대가 끝나면 종말이 오는데, 종말론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신학을 하면서도 제일 아주 가장 긴 시간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데가 바로 기독론 이예요.
그리스도가 누구시냐?
사도바울이 그 때는 사울이죠. 사울이라는 사람인데, 예수님을 보고 ‘주여 뉘시니이까’ 물었습니다.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사람이 엉겁결에 꼬꾸라지면서도 질문 같은 질문을 한다니까.
예수님을 향해서 ‘주여 뉘시니이까’ 이렇게 묻는 거예요.
여기는 ‘주여 뉘시니이까’ 하는 것만 물었는데, 나중에 다시 한 번 이 부분을 사도행전 22장에서 바울이 간증을 할 때 보면, 뉘십니까만 물은 게 아니고 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이렇게 했는데,
두 번째 질문하기를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렇게 물었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알면 인생에서 알 것은 다 안 거예요.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내 사명이 무엇인가.
내가 무슨 일 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으며, 내가 무슨 일 하고 하나님 앞에 설 것인가.
그래서 ‘주여 뉘십니까?’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굉장히 중요한 질문 이예요.
여러분 어떤 사람을 보면 강의를 하거나 설교를 하거나 상담할 때, 그 사람의 질문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대강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좋은 질문은 풍부한 지식과 상식이 구비해야 옳고 바른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여기 사도바울이 했던 ‘주여 뉘십니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궁극적인 질문을 하는데,
우리가 적어도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항상 근본적인 문제, 본질적인 문제, 근원적인 문제부터 시작해가지고 궁극적인 문제까지 심도 있게 다루어야 돼요.
예수 믿는다하면서 물을 것을 묻지 않고 꼭 쩨쩨한 것 물으면 안 돼요.
우리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 오면 질문하고 대답하는 방이 있어요.
지금까지 질문하는 대답한 건이 4천 건을 넘게 올라간 것 같은데, 제가 일일이 전국 온 세계에서 이런 저런 질문한 것을 성경에 관해서 혹은 인생에 관해서 역사에 관해서 질문하는 것에 답을 쓰고 하는데, 제가 아는 데까지 성실히 답을 쓸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참 어떤 분은 질문 같은 질문을 하는 거예요.
제가 학교 다닐 때 교수님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것은 그 강의를 다 들어보고 꼭 해야 될 만한 질문, 그런 질문을 잘 하니까 교수님들이 전부 저를 다시 보고 또 보고 이렇게 눈여겨보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 같은 질문을 함으로서 교수의 강의에 불을 붙이는 거야.
교수님들이 공부를 하게 만드는 거야.
가치 있는 질문 비중 있는 질문을 하니까 교수님들도 공부를 안 했다가는 이런 질문에 답을 못하겠다 할 정도로.
그런데 오늘 우리 교회가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문화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죠?
일방적으로 설교하고 ‘무조건 믿어 그냥.’
그러면 몰라서 물어봐요. 가서.
‘목사님 아까 예배시간 설교에 이러이러한 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물으면 ‘뭐 그렇게 따지기는 따져. 믿어 그냥!’
그러면 다시는 질문 못하는 거야.
몰라도 묻는데 그것을 따지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참 곤란하다는 거죠.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항상 질문하라고 해요.
답이 안 나와도 좋으니까 질문 해보라고 일단.
‘여러분이 질문 안하면 제가 질문합니다.’ 그러면서.
자꾸 모르는 것을 질문해서 알고 넘어가야지, 모르는 것을 물으면 한번 수치면 끝나는데, 모르는 것을 가만히 가지고 있으면 평생 수치야.
저는 저의 공부하는 좌우명이 그 말 이예요.
‘몰라서 물으면 한번 수치일 수 있으나 모르고 계속 있으면 평생 수치다.’
그래서 끝없이 묻고 물어서.
여러분 어린 아이가 성장할 때 보면 되게 묻죠.
‘엄마 그것은 왜 그런데? 또 왜 그런데?’
‘시끄러워! 그냥’ 엄마가 무식하면 대답을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때 자라는 거야.
어린 아이가 끝없이 묻고 묻고 할 때 그 때 한없이 자라는데, 엄마도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돼요.
너무 공부를 안 하고, 학교에서도 질문이 안 돼.
질문도 안 되고 토론도 안 되고 ‘믿습니까?’ 하면 안 믿어지면서도 ‘아멘’ 그러고.
‘알았나?’ 하면 모르면서 ‘예!’ 그러고 지나가버리고.
이렇게 기초가 부실하니까 우리 학교에서 머리가 나빠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대개 100명에 한명쯤 있습니다. 대체로.
그것은 구제불능이야. 노력해도 안 되고 기도해도 안 되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도 감당을 못해요.
그런 물리적으로 뇌에 어떤 손상이 있다든지, 아니면 음식을 잘못 먹어가지고 행동항진증, 과잉행동증 이런 것이 있다든지 이래가지고 공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본래 머리가 나빠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음식을 잘못 먹어서 공부 못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안 믿어지거든 여러분 MBC에서 진행했던 ‘두뇌음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꼴찌가 음식을 바꾸고 1등을 한 사건이 나왔어요.
영국에서 그것도 한두 건이 아니고.
그래서 음식을 잘못 먹여서 공부를 못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어린 아이 때부터 악령이 들어가서 그런 경우도 있어요.
여러분 어린 아이에게도 악령이 들어가는 수가 있어요.
계속 욕을 하고 싸움을 하고 이런 아이를 보면 영적으로 잘못된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다시 말해 95% 99% 정도는 다 그런 대로 공부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수업진행 방식이라든지 질문하는 게 안 되어가지고 ‘알았나?’ 할 때 ‘예’ 하니까 넘어가버리는 거예요.
‘알았나’ 할 때 진짜 아는 사람은 4명 5명밖에 안된다고.
그래서 우리 학교나 교회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질문할 수 있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 가야 돼요.
그래서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그 점을 늘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도 에스라 홈페이지에서도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도록 해 놨습니다.
예배시간에는 질문할 수 없지만, 끝나는 시간에 아무 때든지 상담할 때 혹은 심방 갔을 때 만났을 때 언제든지.
여러분 목사라고 해서 전지전능한 것 아니잖아요.
모를 수 있어요. 몰라도 일단 목사도 질문 받아가지고 그런 질문이 자꾸 들어오면 목사도 공부할 수밖에 없죠.
어떻든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알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면 인생의 중요한 것은 다 안 거야.
아주 중요한 거죠.
그래서 사울이 다마스커스에 들어가서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에게 가서 안수기도를 받고, 그리고 눈에서 정말 비늘 같은 것이 벗어졌다. 콩깍지 같은 것이 벗어졌다 하는데, 그러고 나서 이 사람이 완전히 정말 거듭나게 됩니다. 사람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도 지식도 있고 권세가 있고 해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볼 수도 없다.
여기 사도바울이, 길리기아 다소라는 곳이 학문의 도시인데, 거기에서 세상적인 학문은 기초를 잘 닦았고, 그것을 넘어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전수받으면서 아주 당시 당대에 최고학부를 공부했다할 정도로 그런 지식이 있는 거예요. 이 사람이.
그래도 눈에 뭐가 씌여 있기 때문에 그 비닐 같은 것이 벗어지지 않고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라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었다면 복 받은 사람들이야.
앞으로 복 받을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복 받는 게 아니고, 복 받을 사람이 예수 믿는 거야.
복중에 최고의 복이 예수 믿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그 뒤에 뭐 무슨 재산이 늘어가는 이런 너절한 복에 불과한 것이고, 진짜 복의 진수가 뭐냐 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
그게 최고의 복인데, 다른 복은 부수적으로 다 따라오는 거야. 저절로 따라와요.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적어도.
우리가 물론 좋은 일 아름다운 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경제적 혹은 물질적인 풍요가 따라오면 좋겠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이 뭐냐 하면, 예수님을 믿은 게 복이라는 거예요.
복 받은 사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된다니까.
그래서 사울이 정말 거듭나서 그 때부터는 사도행전이 9장에서부터는 사울이 바울이 되면서 선교의 한 주역으로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를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잠깐 거기 보면 베드로의 활동을 소개하는데,
9장 31절에,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그러니까 질적인 성장이 있은 후에 양적으로 또 성장하는 거예요.
그 둘이 병행해야 됩니다.
그냥 그저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숫자만 끌어 모으는데 질이 성장 안 됐다 그러면 곤란해요.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수적으로는 상당히 양적으로는 빠른 시간 내에 많이 성장한 것 같이 보이는데, 질적으로는 아직도 많이 미흡한 것 같아요.
저가 말하는 질이라는 것은 헌금 잘한다 새벽기도 잘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향기가 예수님을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리고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저희로 세상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래서 우리의 삶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하는 그 정도의 사랑의 사람들로 성화되고 있다면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이용해서 교회를 이용해서 내가 잘 되겠다 그 정도밖에 안 된다면 저는 질적으로 성장 했다 할 수 없어요.
미국에 아주 유명한 존경받는 목사님이 있는데, 윌로크릭교회라는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금년 2008년 초에 교회가 많이 성장 했는데, 양적으로 많이 성장했는데, 질적으로도 과연 따라 성장했는지 부목사 두 사람을 시켜가지고 정밀 조사를 해 봤어요.
정밀하게 성도 의식 조사를 해봤는데, 양적으로는 이렇게 성장했는데, 질적으로는 이렇게 성장한 거야.
질적으로는 하나도 성장을 안 한 거야.
그래서 솔직히 고백을 했어요.
역시 빌 하이벨스 목사님 쯤 되니까 자기 목회가 양적으로 그렇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자백을 하는 바람에 전 미국교회가 충격에 빠졌어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그렇게 인격적으로 존경받고 그리고 가장 훌륭하게 성장하는 온 세계의 교회가 모델로 삼을 만한 그런 교회가 실패했다면 그러면 누가 성공했단 말이냐?
그래서 교회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충격에 빠지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양적으로 그렇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는 하나도 성장이 안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그런 자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했어도 하나님 사랑하는 것도 시원찮고 이웃 사랑하는 것도 너무 시원찮고.
그래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우리가 살고 있느냐 할 때, 별로 그렇지 못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솔직해야 됩니다. 솔직해야 돼요.
여기 다시 31절 보세요.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줄을 그으세요.
탁월한 일꾼들 인물들은 한 교회에서 성실히 자기 교회를 섬기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베드로의 활동을 보세요. 사방으로 두루 행하는 거예요.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 지 팔 년이라
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그래서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이런 것은 중풍이라는 게 우리 한국에 상당히 많은 병이죠.
중풍이 생기는 것은 대체로 피가 깨끗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피가 깨끗하게 되면 중풍이 잘 안 생겨요.
음식을 잘 못 먹어서 피가 탁해지고 탁해지면 피 흐름이 좋지 않습니다. 혈류가.
혈액순환이 잘 안 돼요.
피가 너무 걸쭉해가지고 동물성 지방질을 자꾸 먹어서 피가 탁해지니까, 산소와 영양분이 원활하게 공급이 안 되니까 걸쭉한 것 중에서 소통을 빨리시킬려고 혈관 벽에 자꾸 쳐 발라요.
그러다 보니까 혈관 벽이 점점 오염되고 더러워지고 때가 끼고 구멍이 좁아져가지고 피가 흐르는 게 너무 작아요.
그러니까 압력만 높아지니까 심장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펌프질 하니까 머리 속 어딘가에 터져버리는 거죠.
이런 것이 이른바 뇌졸증 혹은 그 결과로 중풍 수족마비 이런 것이 오는데, 이런 것은 성경에서 먹지 말라는 것을 먹어서 그래요.
그 먹지 말라 한 것 중에 가장 먹지 말아야 될게 통닭 같은 거예요. 통닭 같은 것.
통닭은 처갓집도 안 되고 외갓집도 안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 한방에서 한의사 한의원에 가면 약을 지어주면 꼭 금하는 게 있죠?
무엇을 금해요?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하죠?
물어보면, 왜 먹지 말라합니까? 물어보면 자기도 몰라.
저는 그런 데에 관심이 많아서 지난번에 레위기 할 때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닭고기는 원래 먹을 수 있는 고기입니다. 원래가.
그런데 먹는 방법에 있어서 닭 껍질을 벗겨버리고 안에 하얀 살 이른바 닭 가슴살 닭 다리살 하얀 살 그런 것은 먹어도 괜찮아요.
좋은 것일 수 있어요. 오히려.
그런데 한국 사람은 그렇게 먹으라 하면 안 먹을 겁니다. 꼭 껍데기를 먹어야 닭고기 먹은 것 같고.
그런데 닭고기 속에 있는 닭기름이 어떻게 나쁘냐 하면, 우리 사람의 몸은 36.5도죠.
그런데 그 36.5도가 신부 온도입니다. 우리 몸의 내부 깊은 곳, 입 안 혹은 겨드랑이 이런 곳의 온도이지, 팔의 온도는 보통 33도쯤 되고, 우리 무릎 온도는 보통 31도 밖에 안 돼요.
그런데 닭은 얼마나 몸이 뜨거우냐? 41.5도야.
그래서 여러분 닭 날갯죽지 밑에 손을 넣으면 뜨거울 정도입니다. 41.5도 되는 닭의 체온에서는 그런 데로 충분히 잘 돌아가는 기름인데, 사람 몸은 무릎은 31도 밖에 안 되니까 닭과 10도나 차이가 난다는 거예요.
사람 몸에 닭기름 같은 게 흐르면 잘 안 돌아가는 거야. 굳어져 버려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닭 살이라면 몰라도, 그 닭을 통 채로 넣어가지고. 통 채로 넣으니까 통닭 아닙니까?
통째로 넣어서 기름에 튀겨봐. 그 튀기면 또 트랜스 지방이 되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수많은 기름들이 식용유라든지 면실유라든지 포도씨유라든지 이런 것도 옛날에는 물리적으로 그냥 짰습니다. 압착을 해가지고.
압착을 해서 기름을 짜면 기름은 좋은데, 문제가 뭐냐? 깻묵에 기름이 너무 많이 뺀다는 거야.
그게 아까운 거니까 지금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핵산이라는 화학 물질을 딱딱한 씨에 범벅을 하면 딱딱한 껍질들이 허물허물 해져서 녹아버려요.
녹아버려서 분리가 됩니다. 화학분리가 돼요.
지방질과 핵산으로 해서 껍질이 허물허물 해져서 분리가 되어서 기름을 짜면 기름 양이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핵산이라는 물질을 넣어가지고 화학처리해서 기름을 짜기 때문에 기름을 분리하기 때문에 그 때도 화학변화가 일어나고, 또다시 산화되지 않게 할려고 끓여버립니다.
그래서 여러 단계로 지방에 구조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이른바 트랜스 지방이 되는 거죠.
수소를 첨가하지 않아도.
쇼트닝이나 마아가린처럼 수소를 첨가해가지고 트랜스 지방되는 것도 트랜스 지방되는 것이지만, 기름을 추출하는 방법 자체가 화학 물질을 가지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능하면 여러분 기름을 사먹을 때 그냥 동네 방앗간 있죠? 지금도 짜는데 있잖아요. 짜는데.
짜면 깻묵에 기름이 스미는 것 때문에 아까워서 대량생산하는 것들은 다 핵산이라는 물질로 처리하는데, 귀찮지만 동네 방앗간에서 짜서 물리적으로 짜가지고 금방 짜서.
오래 가면 안 돼요.
많이 사오지 말고 조금 사다가, 넣고 끓여서 튀기는 것은 별로 안 좋습니다.
튀김 종류 중에 우리 몸에 좋은 것은 거의 없어요.
튀기지 말고 그냥 솥뚜껑에 살짝 발라가지고 눌어붙지 않게 해서 전 붙이듯이 먹어야지.
하여튼 세계적으로 음식을 제일 비위생적으로 몸에 안 좋게 만들어가지고 먹는 사람이, 좋은 음식을 몸에 안 좋도록 열심히 만들어 가지고 먹는 사람이 한국사람 이예요.
그 중에 제일 몸에 안 좋은 게 통닭입니다. 통닭.
돼지고기도 마찬가지. 개고기도 마찬가지. 성경에서 먹지 말라 한 것들이죠.
쇠고기 기름은 더 나빠요.
고기 중에 쇠고기 기름이 더 나쁘다고.
저는 쇠고기 기름을 쇠고기 국을 끓여가지고 위에 뜨는 기름을 딱 가제로 걷어가지고 10분 있다가 보세요.
양초 같은 것이 떠 다녀요. 허옇게.
그런 것이 우리 몸에 핏속에 흐르게 되면, 옛날에 우리가 막노동하고 중노동하고 육체노동하고 진땀 흘리고 에너지가 모자랄 때는 지방 1g이 9칼로리로 열로 타서 없어지는데,
땀도 안 흘리지 불한당처럼. 조금 땀나면 에어컨 틀어버리지 걷지도 않고 차타버리고.
들어가는 지방마다 먹는 족족 배로 나와버리고.
나중에 고지혈증에다가 지방간에다가.
그리고 순환기 계통 모든 혈관이 지방질과 동물성 콜레스테롤 이런 것들이 더럽게 만들어가지고 중풍이 일어나고 하는 거예요.
잘못 배워서 엉뚱한 이야기 하지 말고,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닭고기 통닭 먹고 돼지고기 먹는다고 지옥 간다 그런 말 하는 것 아닙니다.
그런 것 하루 종일 먹어도 지옥에 안 가. 어디로 가느냐? 빨리 병원으로 갑니다.
피가 더러워져서 머리가 나빠져요. 머리가 나빠지고 성질이 더러워집니다.
피를 먹거나 순대를 먹거나 이런 것을 먹으면 우리 피가 더러워지고 그리고 성질이 더러워지고 피부가 나빠져요.
구원과 상관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의 현저한 차이가 나는 거예요.
반면에 채소 곡식 과일들을 먹고, 가능하면 내츄럴(natural) 한 것, 많이 가공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
아니면 발효된 것을 먹고.
여러분 발효된 식품을 먹을 때 끓여버리면 그 모든 효과가 다 날아가 버려요.
효소라는 것들은 45도에서 105도 사이에 다 죽어버려요.
그러니까 된장을 잘 만들어가지고 된장찌게를 끓여버리면 다 죽어버립니다.
빨리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것이 찌게예요. 그리고 국도 없어져야 돼요.
세계에서 위장병이 제일 많은 나라인데, 국 때문에 그래요.
국 먹지 숭늉먹지 커피 먹지 찌게도 먹고 하니까 우리 배속이 완전히 출렁출렁 배가 되어가지고 위액이라는 게 소화액이 조금밖에 안 나오는데 그렇게 물을 많이 타버리니까.
그래서 서양 사람들 음식도 우리가 경계할 것이 더러 있는데, 그래도 그 사람들은 국을 먹지 않습니다.
찌게가 없어요. 숭늉이 따로 없습니다.
빵을 먹기 때문에 안 씹고 넘길 수가 없어요.
꼭꼭 씹게 되어 있어요. 빵은 어쩔 수 없이. 침이 다 섞일 때까지.
그런 것 참 좋은 방법 이예요.
그래서 음식 문화도 좀 합리적으로, 맨 습관에 젖었다고 늘 해오던 거라고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옳지 않으면 고쳐야 돼요. 그것도.
이런 것만 해도 하루만 해도 꼬박 하루는 해야 돼요.
우리 생활 실제에서 고칠만한 생활을.
여러분 이번에 오신 분들은 전부 앉아서 공부는 안 하고 노목사 나이가 몇인지 내기나 하고 싸우고 그렇게 한다는데.
뭐하는 거요? 도대체가.
머리카락을 보면 70이 되었다 이렇게 하고, 얼굴을 보면 50대 초반이라고 싸운다는 거야.
저도 지금 제가 몇 살인지 몰라요.
제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여러 번 살아가지고 몇 살 되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정신 연령은 아직 26살 밖에 안 되었어요. 26살.
그리고 어차피 영생할 사람인데 나이 세어봐야 뭐 하겠어요?
그것은 숫자에 불과한 겁니다.
저에게 어떻게 그렇게 피부가 고우냐? 저는 화장 그런 것 안 합니다.
가을철에 봄철에 혹시 피부가 까칠해질 때 로션 하나 사서 한번쯤 발라보고 별로 냄새가 안 좋아서 안 발라요.
왜 냄새가 안 좋으냐 하면 하나 사면 10년 넘게 쓰니까 결국은 썩어서 갖다 내버리니까.
그래도 제가 피부가 깨끗하잖아요.
전부 다 머리카락만 보고 나이를 높이 잡는 모양인데, 제가 염색을 할려고 마음 먹어봤고, 염색약을 누가 사와서 제발 염색 좀 하시라고 했는데,
성도들에게 물어보니까, 우리 온 성도들이 반대한다는 거야. 염색하는 것을.
왜 반대하느냐 물었더니, 노목사님 얼굴의 특징이 아무 것도 없는데 머리카락이라도 있어야지.
그것까지 검어버리면 우리가 어떻게 알아보겠느냐.
그래서 다른 목사님들은 다 염색을 했는데 한 사람이라도 안 한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겠나. 하지 말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청년들 혹은 젊은 목회자들 잘못하면 더러 야단치고 하잖아요.
머리가 허옇게 해가지고 야단 쳐야지, 새까맣게 해서 야단 쳐봐.
그래서 한국 교회 잘못하는 것 야단칠려고 일부러 염색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제가 혈액검사를 해보니까 피가 상당히 맑고 동맥경화는 하나도 없다는 거야.
음식을 제가 가리거든요.
그런 것 먹으면 지옥 가는 그런 게 아니고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게 아니라 건강과 상관이 있는 거예요.
또 치매 같은 것 안 걸릴려면 피가 맑아야 돼요.
그래서 이것은 여러분 음식에 대해서 성경이 이렇게 이렇게 규제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저는 믿기로 무엇을 시키셨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지키라고 하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먹지 말라 하는 것은 안 먹는 게 좋겠죠.
구원과는 상관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별로 사랑도 없으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 먹이고 싶죠? 맞아요?
여기는 안 그런가 보네.
그리고 자기 자녀들이 나쁜 것 먹는 것 부모들이 염려하죠?
우리 같이 뭘 무식한 사람도 그래도 자식에게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좋은 것 먹이고 싶은데, 하나님은 오죽하겠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전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유익되게 하신 말씀으로 믿는 게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음식을 가리라고 했더니, 가렸더니 건강이 이렇게 좋아졌다 하는 간증이 끝없이 올라오고 있어요.
우리 에스라 하우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딸아이가 아토피 때문에 밤새도록 잠 한숨도 못자고 긁었는데 3개월 음식을 가렸더니 깨끗이 사라졌다. 이런 간증이 올라와요.
그리고 막 아이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공부를 못하고 했는데, 음식을 가렸더니 아이가 차분해지면서 착하고 성숙하게 달라졌다는 거예요.
분명히 달라집니다.
우리 교회에 오면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예배드려요.
거기에 뛰어다니거나 그런 것 없습니다.
그것이 음식을 가리니까 다 착해요.
그리고 식품 첨가물 든 것 먹으면 안 돼요.
그래서 여기에 중풍 병 때문에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가능하면 중풍 안 걸려야 돼요.
중풍 안 걸리고 그리고 몇 살까지 살아야 되느냐?
최소한도 120살까지는 살아야 돼요.
그것도 눈도 흐리지 아니하고 귀도 멀지 않고 정신도 흐리지 않고.
그래서 사는 것도 믿는 사람들은 아름답게 살아야 되지만, 죽는 것도 웰 다잉(well-dying), 웰 빙(well-being)만 아니라 웰 다잉(well-dying).
멋지게 죽어야 돼요.
죽을 때도 고래고래 고함지르고 추태부리고 그러면 안 되고, 성경대로 죽을려면 한번 따라합시다.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 돌아가셨더라.'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조용히 아무 병도 없고 기운이 조용히 진해가지고 그 열조에게 돌아가셨더라.
기본으로 우리가 누려야 될 수명이 120세 정도. 그것도 병 없이.
그렇게 할려면 성경대로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
우리 몸을 설계한 분이 제일 잘 아신다고. 맞아요?
우리 몸에 무엇이 해로운지 무엇이 유익한지 제일 잘 아시는 분이 우리 몸을 디자인 한 하나님께서 제일 잘 아시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먹으라 하신 것도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먹지 말라 한 것도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성경에 규정한 거예요.
맞아요?
그렇게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거예요.
저는 음식물 결벽증 이런 것 아닙니다.
제가 돼지고기 한번 먹었다고 누구 정죄하거나 질겁하거나 그렇지 않아요.
저도 돼지고기 기름 다 빼고 맛있게 해 놓으면 한 점 쯤 먹어볼 수 있어요.
그것 먹는다고 지옥 안 갑니다. 전혀.
그런데 해롭다는 거예요. 해로워요. 그런 것은.
그리고 우리가 한국 사람들은 지금 먹는 양보다 채소를 한 다섯 배 이상 더 먹어야 돼요. 채소를.
그리고 곡식들을 먹을 때는 껍질을 깎지 말고 먹어야 돼요. 가능하면.
과일도 마찬가지.
과일도 그 사과를 껍질을 깎는 것은 아주 무식하고 야만적인 거예요.
단감을 깎아먹는 것은 그것은 무식 충만한 사람이야.
포도씨와 포도껍질을 뱉어내는 사람은 정말 야만인도 그렇게 안 하는 거야.
전 세계에서 포도씨와 포도껍질을 뱉어내는 사람은 오직 한국사람 만 그럽니다.
여러분 자녀를 프랑스에 유학을 보내가지고 애가 한국 사람은 씨 뱉어내고 껍질 뱉어내고 그러면 하숙집 할머니가 아 하고 입을 벌려 다 입에 털어 넣어요.
그것을 안 먹고는 너 건강 책임질 수 없다는 거야.
온갖 깔끔은 다 떠는데 병은 병대로 걸리고 암은 암대로 걸리고 그런 나라가 한국사람 이예요.
식품 영양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어요. 도대체가.
그래서 그런 과일들 참외 같은 것은 깎을 필요가 없습니다. 씻어서 그냥 먹으면 돼요. 껍질 채.
수박은 좀 곤란하겠죠. 알밤도 껍질을 까야 되죠.
그러니까 딱 보면 껍질을 먹을 수 있는 것인가 먹을 수 없는 것인가.
꼭꼭 씹어서 씹을 수 있으면 다 껍질 채 먹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쌀도 깎아버리면 안 돼요.
소금도 하얀 정제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일염이라고 해가지고 저 전라남도 어디 신안 쪽에 가면 진짜 천일염 만들어요. 믿는 사람이 만드는데.
거기에 미네랄이 듬뿍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무공해로 만드는 천일염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요. 약품 취급 받습니다.
한국에서도 20배 값을 더 받아요.
너무 너무 고급 이예요. 한국 천일염이.
이런 것을 사서 김장도 해야 되고 이런 것으로 음식을 먹어서 우리 몸 안에 미네랄 광물질이 모자라지 않게 해야 돼요.
그러니까 아이를 기르는 것도 우리가 성경을 잘 공부하고,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겨우 예수 믿고 천당 가는 하나만 알고 그렇게 많은 어마어마한 언약들을 약속들 보고(寶庫)를 갖다가 단지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그것 하나만 알고 있다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삶 전반에 걸쳐 지혜가 나와요. 이 안에서.
이게 바로 ‘성경의 힘’이라는 거예요.
우리 삶을 아름답게 건강하게 거룩하게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말씀을 잘 배워서, 영적으로는 맑고 육체적으로는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건전한 그런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정리]
◎ 사도행전 9장 : 사도바울의 회심, 베드로의 사역
◎ 사랑받는 비결
1. 예절
2. 겸손
3. 자기 맡은 일에 성실(남의 일 간섭하지 말고)
◎ 사도바울의 일생일대에 중요한 질문
1. 주여 뉘시오니이까?
2. 내가 무엇을 하오리이까?
◎ 조직신학의 7마당
1. 신론 :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
2. 인간론 :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3. 기독론 :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4. 구원론 : 어떻게 구원받는가?
5. 교회론 :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는가?
6. 성령론 : 그 교회를 성령이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가?
7. 종말론 : 성령이 교회를 이끌어 가시다가 교회 시대가 끝나고 종말 시대는 어떻게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