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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창수 시 연구
강희근
(시인,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Ι. 들머리
파성 설창수(薛昌洙, 1916~1998)는 경남 창원에서 아버지 설근현(薛根憲) 어머니 황호(黃鎬)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창원 공립 보통학교 6년을 마치고(1928) 진주 농고 5년을 수료(1935)했으며, 창녕군 대지 공립 보통학교 촉탁교원(6월)으로 잠시 근무했고 부산 무진 진주 지점 서기(1월)로 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1939년 입명관 대학(立命館 大學) 예과 야간부에 입학했다. 1년 후 그는 다시 동경으로 가 일본대학예술학원(전문부) 창작과에 입학하여 모국 팔도에서 모여든 10여 명의 동과생들과 함께 문학 동호회를 만들었으나 아마추어 수준이라 그만 두고 2학기에 이석영, 김보성, 박현수 등과 일인학생 네 명과 더불어 「화요그룹」을 만들어 창작에 몰두했다. 그는 북구주(北九州)의 저수지 공사장에 원치공으로 일하던 겨울 방학때(1941. 12. 31) 일인 형사대에 연행되어 부산에 압송, 경남 경찰부 유치장1호 감방에 수감되었다. 불충사상 죄목으로 징역 2년 언도를 받았으며 1944년 만기 출옥했다. 광복 후 경남일보에 입사하여 주필, 사장이 되었으며 문교부 예술 과장 참의원 의원 전국문화단체 총연합회 대표 의장 한국문학인 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는 사이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시인, 예술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독립지사 등으로 다양했다.1)
작품집으로 「三人集」2)이 있고 미주기행 문집 「성좌있는 대륙」(1960. 수도문화사) 시선집 『開閉橋』(1976, 현대문학사), 「薛昌洙 全集 Ⅰ-Ⅳ」(1986, 시문학사) 등이 있다.
그의 시는 생존시 작품론의 조명을 거의 받지 못했는데 이는 시가 서사적 특성이나 관념 지향 위에 놓여 있었던 데 그 까닭이 있지 않은가 한다.
본고는 그런 비정본적 특질이 오히려 하나의 뚜렷한 개성이 되고 있음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서사성과 아이러니, 시 세계 순으로 검토해 나갈까 한다. 설창수 시선 『開閉橋』에 실린 시 100여 편이 대상이 된다.
Ⅱ. 서사성과 아이러니
파성의 시에서 지루할 정도로 드러나는 특질이 있다면 서사성과 아이러니가 될 것이다. 사물을 소재로 잡으면 그 소재에 대한 있어온 내력을 먼저 말하거나 아니면 자기 감정을 가탁하여 아이러니로 끌고 간다
1. 서사성
우선 시를 한 편 보자.
玄樵가 寒蘭을 보내왔다-
작년 五月 濟州 갔을 때 예약대로
廳水軒 준공 날을 맞춰
늦가을 궂은 비 내리는 날 오후에
멀리 다녀 온 普光月여사 편으로.
蘭家 小堂居士 말씀으론
뿌리나 勢力이 안심 안된다고
寒夜에 들고 가서 뿌리 씻고
火成역土에 이끼 싸서 심어 入院시켰다
-작은 여섯 포기 가운데
뿌리 없는 한 포기는 버리고.
나 나름대로 서툴게 심은 그대로였더라면
영락없이 전멸의 변을 당했을 것을
한 달 남짓 지난 歲寒의 밤,
퇴원 진단을 받은 그를 안고 왔다.
-<寒蘭詞> 전반부-
따옴시는 <寒蘭詞> 전반부로서 한란이 화자의 소유로 오게 된 경위를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한란이 입수된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을 표현하는 서술의 양식이 서사인데 따옴시는 그 서사적 성질을 띄고 있다. 사건은 행동, 시간, 그리고 의미의 세 요소를 내포하는데3) 시간은 현초에게서 건네 받은 한란이 보광월을 통해 건네지는 과정에서 응분의 양으로 경과되고 있으며, 의미 또한 그런 과정을 통해 난은 예사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정리가 된다.
다시 <逢別>을 보자.
京釜선, 大田역, 오전 3시.
2동 待合실, 12월-
어둠과 밝음 속으로 왔다간
밝음과 어둠 속으로 띄엄 띄엄
사라져 가는
나그네들.
기둥처럼 섰다간 없어지곤 하는
改札員 말고는 來往地를 모른다.
잠들고 어둠 있는 正常 속에
출몰자들은 한갓 異常의 點.
깡그리 잊어 먹은 어느
前生圖의 그림자.
<스팀 ․ 파이프>가까운 長椅子 위에
난 앉았다 섰다…….
곁에 머물다 떠나는 이름 모를 대합객.
아낙네들 눈우물은 깊고
아가씨들 것은 반짝인다.
-<逢別> 전반부-
따옴시는 대전역 풍경을 말하고 있다. 인사 없이 만났다가 뿔뿔이 헤어지는 그런 무상감을 드러내고 있다. 줄거리가 있는 사건을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일들을 보이는대로 서술하고 있다. 비약이나 서정적인 접근이 아니라 어떤 경과의 행동, 시간이 서술되고 있다. 과정의 제시인 것이다.
파성의 시는 이렇게 ‘서사적 내력’, ‘서사적 전제’가 시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예가 허다하다. <白鯉兒의 사연>은 ‘백리아’를 키우던 사연이 서술되어 있고, <無緣墓地>는 무연고 묘지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제3부 「舍利」편은 거의 서술적 진행을 보이고 있다. <石窟庵 大佛과 十一面 觀音>, <四獅子 三重 石塔><大源寺 九重 塔>, <恩津彌勒>, <多寶塔> 등 불사의 내력이 있는 소재에는 어김없는 행동, 시간, 의미라는 사건의 요소를 지니는 서술적 전개가 전반부를 메우고 있음을 보게 된다.
2. 아이러니
파성의 시는 사물에다 스스로의 심사를 가탁하는 탁의(託意)의 시법을 주로 쓴다. ‘老鷹’,‘開閉橋’,‘役牛’,‘大地의 노래’,‘濁流’,‘時計’ 등 대상이 있는 시는 그 대상이 곧 화자로 드러내짐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상의 속성을 드러내는 표면문맥이 있고 그 안에 의미를 감추어 놓은 내면 문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러니를 쓰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짓밟음, 바람비, 수레바퀴, 침뱉음을
오랜 동안 말없이 참아온 내다.
내 등덜미의 살결은 메마르고
뼈, 힘줄, 주름살, 흉터만이 남아 있다.
디디어 보라. 내 껍질은 따글거린다.
이제 난 일어선다
성낸 <쟈이안트>처럼 감연히 일어선다.
銳角화 된 내 등덜미 위에
아무도 기어 오르지 못한다
내 두 줄기 動靜脈은 불꾼 번쩍이고,
내 머리카락은 끊어진 양 곧게 뻗어
난 이 때 발목으로 自由를 보장한다.
난 푸른 港灣의 숨통을 해방한다.
난 兩洋의 동경을 연결한다.
-<開閉橋> 전반부-
따옴시는 부산에 있는 열고 닫는 다리 개폐교 영도다리에다 화자의 감정을 가탁한 시이다. 제 1연은 다리가 닫혀 있는 상태를 그리고 있으며 제 2연과 3연은 다리가 열리어 비스듬히 일어서는 상태를 그리고 있다. 겉으로 하는 진술로 치면 영도다리의 닫히고 열리는 상태의 진술이다. 그러나 딴전을 피운 가운데 드러내는 속뜻은 민중의 짓밟힘, 희생과 정의 ․ 자유로 일어난 민권의 궐기이다. <時計>를 보자
간밤에 뼈를 가는 사람의 憤怒에는
소리마저 있건만
너 孜孜한 切齒는 長短의 <펜>끝대로 밤낮을 돌린다.
내 50여 년의 펜끝으로 돌아가는 어느
외로운 언덕 위에 風車 하나 없건만
너는 12指時와 60分秒로 영겁을 譜表한다
-<時計> 앞 2연-
따옴시에서 아이러니는 아이러니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면적인 의미와 표면적인 문맥이 대립 노출되는 구조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첫행은 내면적 의미이고 둘째행은 시계가 갖는 태연한 표면적인 문맥이다. 이러한 짜임이 아이러니가 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엄격히 말하면 대립하는 양상이지 아이러니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이러니의 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시인 또는 화자는 끝까지 초연한 입장을」4) 취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노출 구조의 아이러니는 <뿌리>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背日性이란 實은 太陽이 아쉬움의 한갓 逆理.
意志의 艱難함이 무릇 바위에 사무쳐도 오랜 時間을 얻어 이를 뚫고.
蒼天에 아득히 정정한 棟梁을 가꾸기에 거미줄 보다 가냘픈 毛細管은 젖줄기가 된다.
-<뿌리> 앞부분-
‘뿌리’는 땅속으로 뻗쳐 들어가지만 ‘太陽이 아쉬움’의 표현이라는 것이고 ‘가냘픔 毛細管’은 창천에 동량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역으로 작용하는 대립이다. 대립이 서툴고 노출되어 있다. 파성의 시에서는 이렇게 서술과 아이러니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을 때 제격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만큼 이런 성격의 시가 흔하기 때문이다.
Ⅲ. 설창수 시의 세계
파성 설창수의 시는 조손(祖孫) ․ 조국에의 지향이라는 스케일이 큰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고 수형의식(受刑意識)과 절치부심의 세계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불가적 문화 의식을 드러내는가 하면 관조와 자연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파성의 시가 전반적으로 서사적 특질을 지니고 있고, 아이러니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므로 관조와 자연의 세계는 시의 주요한 부면이 될 수 없다고 하겠다. 관조와 자연은 보다 서정적이거나 비유적이거나 이미지의 측면이 두드러질 때 잘 드러내지는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1. 조손(祖孫) ․ 조국에의 지향
파성의 조손에 대한 의식은 곧 조국에 대한 의식과 동궤로 걸림을 본다. 그만큼 조상과 자손에 대한 혈통의식이 유다름을 알 수 있다.
난 新羅 建國 전 금강산에서 내려 왔다는 明活村長의 후손,
건국 공신이라 하여 그 3대 儒理王께서 주셨다는 성-薛氏,
王命 修學次 義湘과 더불어 당나라 가는 길의 하룻밤, 인두골 고인 물을 마시곤
見性했다는 중 元曉는 18대, 그와 공주 요석 사이의 秘合에서 태어난 선비 聰은 곧 19대
나 昌洙는 62대
-<祖孫哀歌>의 ‘1. 祖國에게’ 앞부분-
따옴시는 설씨의 내력과 파성까지의 세계가 먼저 적혀져 있다. 즉 ‘明活村長’→‘元曉’→‘聰’→‘昌洙’로 이어지는 설씨 계통선에 대한 은연중의 자부심과 책무의식이 깔려 있다. 이는 2번째 연이 뒷받침해줌을 본다.
知天命의 마룻턱을 이미 넘어 서서
돌아보면
걸어온 半 넘어 길을 나도 托鉢인생으로 저물었건만
강산 안팎의 물을 다 마시고도
大慈大悲의 참뜻을 깨달은 바 없고,
얼핏하면 내 것인양 하늘을 빌어다 쓰건만
仁義禮智의 까닭을 아직도 모른다.
여기서 보면 조상 내지 혈통에 대한 책무를 갚는 일은 大慈大悲‘의 참뜻’과 ‘仁義禮智의 까닭’을 깨치는 일에 있다. 그러나 다음 연에서 씨족의 혈통이나 ‘사성(賜姓)의 왕은(王恩)’도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만 오늘
내 힘으로 달랠 수도 아예 몰아낼 수도 없이
몸져 누운 양 소리없이 울고 있는 것은
나에겐 끝내 하나인 祖國이란 이름의 문둥이
임을 밝히고 있다. 조손 ․ 혈통의식이 ‘祖國이란 이름의 문둥이’로 전이되고 있다. 조손과 조국이 동렬이요, 동궤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시는 이어서 <Ⅱ. 子息들에게>로 나가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 근거로 볼 수가 있다. 김광섭은 시 <祖孫 哀歌>를 두고
먼저 그의 시 「祖孫哀歌」에서 나는 그가 新羅의 建國功臣으로 儒理王에게서 姓을 薛氏로 받은 後孫임을 알음과 동시에 그의 敬虔한 愛國心의 深遠 함을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始祖功臣을 崇拜하여 하늘이 가르치는 글을 쓴 것이 이 시집이 아닌 가 싶었다5)
고 하여 시집 전체가 시조공과 관련된 ‘하늘이 가르치는 글’이라는 말을 했다. 조손과 조국에의 지향이 ‘하늘이 가르치는’ 바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 <植木日에>를 보면 조손․조국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얘들아
나물 심으러 가자
山도 물도 맘까지도
오랜 메마름 헐벗음 속에서
살아온 우리네.
한 해 三百六十五日 동안
오늘 하룰랑은 나물 심자.
반드시 華麗한
錦繡江山을 꿈꾼다기 보다
國土의 젖가슴을 후벼서
한 그루씩 나무를 심어 두면
장차 너희들이 춥지 않고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없는 날,
鳳圭, 孟圭, 月正, 俊圭
너희가 자라 남을 것을 믿듯이
바람비와 세월은 물론
世上 썩은 온갖 汚物까지도
거미줄보다 연약한 毛細管으로
알알이 삭여 피와 살이 되고
한푼도 不勞의 차지나
건너 뛰기를 꾀할 줄 없는 性品은
마침내 해와 달과 별을 이마하여
푸른 하늘을 받들고
설움에 사무친 百姓들이
累累한 주검 따가
허물어져 가는 山脈의 安泰를 보장하기 위하여
뿌리 뿌리 아귀잡고 서서 있을
茂盛의 그 날을 믿기 까닭에.
-<植木日에> 전문-
따옴시는 식목일에 나무를 심어 삶이 춥지 않고 외롭지 않게 하자는 내포의 시다. 이 시에서는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서도 ‘국토’의식과 ‘설움에 사무친 백성’을 떠올리고 있다. 아들 딸 네 사람이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 ‘푸른하늘’을 받들고 나라의 안태(安泰)에 이바지하기를 바라는 심정의 메시지가 살아나 있다. 앞에서 김광섭이 말한 대로 ‘하늘이 가르치는 바’나 경건한 ‘애국심’이나 조손에 대한 지향이 이 한편 속에 그대로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다. 파성은 국가와 관련하여 ‘山脈’이라는 말을 흔히 쓰고 있다. 따옴시에서도 그렇고 <老鷹>에서도 그렇고 <役牛>에서도 그렇다. 그렇다고 보면 ‘地下’, ‘大地’, ‘濁流’, ‘裸木’, ‘巖山’ 등 자연에 대유될 만한 소재들은 모두 조국 내지 국토의 변용이라 볼 수가 있다
2. 수형의식(受刑意識)과 절치부심
파성 시는 상당 편수에서 수형의식이나 절치부심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한 부재를 노래한다. 시 <觀山曲>을 보면 그 사정이 짚힌다
나 모양 그리움을 여윈 사람은 산이나 보려무나.
안개 쌓여 있는 봄 산이라야 알맞으리라.
잊고파서건 찾고파서건 내내 그리움 때문이라면
첩첩 산이나 봐야 든든하리라.
-<關山曲> 전문-
그리움을 여윈 사람인 화자는 봄산을 봄으로써 그 여윔을 잊을 수 있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전체 문맥은 현실지향이다. 고산 윤선도 <잔들고>6) 시조가 현실 초월의 세계를 보여 주는데 파성은 그 초월로 가지 못하고 있다. 「잊고 파서건 찾고 파서건 내내 그리움 때문이면」에서 현실 쪽의 그리운 대상에 집착해 있기 때문이다. 고산에 비해 불행한 편이다.
실제로 그는 시에서 수형의식을 노출시키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一切 닫혀 있는 이 慈悲 없는 落寞의 城門앞에
알몸뚱이로 서서 있는 나의 있음은 있는 것일까.
이것은 푸른 季節에 있었던
나의 그림자가 아닐까.
나는 門이 없다
나를 지켜 주는, 나에겐 門이 없다.
안팎 어디메도 門이 없는
孤立과 刑罰만이 있는 내 가지 끝에
별 하나 걸려 있다
파아란 별이...
-<裸木과 별> 후반부-
따옴시는 닫혀 있는 문 앞에 나목으로 서서 고립과 형벌로 살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절망시편이다. 가지 끝에 ‘별’하나 걸려 있지만 희망이기 보다는 절망의 확인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파성의 이 수형의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觀山曲>에서 본 대로 그리움의 대상이 부재인 데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百번 통곡한 自由의 슬픔에 장승이 되어도
漆夜를 지켜 새우는 너 燐빛 눈망울과
-<時計>에서-
내 찢어진 깃발을 <마스트>에 올려 다오.
다시 물이거나 불이거나 바람이거나
-<老朽船 6601>에서-
간악한 씨앗이 마르기까지
내 서리 맺힌 두 눈으로 샅샅이
내려 밝히기를 쉬지 않을지며
-<수리>에서-
믿음이 사람을 돌아앉은 더럽힌 祖國에 있을지라도.
-<漢拏를 보며>에서-
따옴시편들에서 ‘自由의 슬픔’,‘더럽힌 祖國’,‘찢어진 깃발’,‘간악한 씨앗’ 등을 통해 짚히는 것은 자유와 민주의 깃발이 훼손당한 조국이다. 있어야 할 것으로서의 그리움은 자유와 민주가 온전히 실현되는 조국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파성은 1960년 4 ․ 19을 지난 뒤 실시된 7 ․ 29총선에서 초대 참의원 6년제 의원에 당선되어 정치 일선에 참여했다. 시인이 정치에 참여한 근거는 민주제단에 피를 흘린 고귀한 4 ․ 19정신을 완성하고자 한 데 있다고 선거유세에서 밝혔다. 실제 그는 합동 정견발표 7회와 의원 선거때 선고의 유의(遺衣)인 모시 두루마기를 입었던 것은 4월 영령들에 대한 위령제복의 의미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1961년엔 전국 문화단체 총연합회 대표의장(현예총회장)에 취임했지만 5 ․ 16군사 구테타로 일거에 야인으로 돌아갔다. 이때 공식 직위를 내놓은 것으로는 국회 참의원 의원, 문총 대표의장, 경남일보 회장, 개천 예술제 준비위원장, 영남문학회 회장 등 5개직이었다.7) 국회등원 10개월만에 그 직을 탈취당했던 분노와 4 ․ 19정신 구현의 좌절이라는 참담한 그의 입지는 박탈감, 군사정권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끓을 밖에 없었다.
그는 김삿갓처럼 유랑에 나서 시화전 보퉁이를 들고 전국 순회 시화전 길에 올랐다. 1963년 제4회 개인시화전(8월,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발길을 옮겨다닌 회수는 221회를 기록했다.8) 진귀한 기록으로 이것이 시인으로 하여금 생활의 강을 건너게 하는 방편이 되어주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정도면 파성이 수형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절치부심 떠돌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행간의 의미를 붙들어 볼 수 있지 않은가 한다.
보라 梢端이 가리키는 그의 一念, 百倍 天心이 그리운 수줍음은 차라리
大地껴안으며 切齒하는 것
-<뿌리>에서-
팔매 던진 돌멩이처럼
원수를 겨누어 부딪혀 가면
돌멩이 송두리째 불꽃이 된다.
-<돌멩이>에서-
불구멍을 물로 담은 너와 더불어 來日을 믿으리라
-<漢拏를 보며>에서-
이런 사나운 切齒의 白眼과 黙秘의 항거 속으로 한 줄기 차고 해맑은 피, 샛하얀 피 는 살아 흐르고
모여 쏟아지면서 저기 일체의 정지와 적막속에
-<겨울 물레방아>에서-
파성은 나무 뿌리가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절치하는 것으로 말하고, 돌멩이를 보면서 원수를 겨누는 불꽃으로 말하고, 한라산 정상 분화구를 두고 불구멍으로 물을 담은 애끓이는 절치부심의 이미지로 올려 놓는다. 그 정도가 대단하다.
3. 불가적 문화의식
파성의 시는 소재에서 불가에 깊이 관여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제3부 ‘舍利’에 들어 있는 20편 가운데 ‘孵化운동’ 한 편을 제외한 19편이 불교에 관한 소재이다. ‘舍利’,‘觀音’,‘석굴암 대불’,‘石塔’,‘群尼 禮佛像’,‘은진미륵’ 등 대체로 손에 잡히고 보이는 사물이다. 그런데 파성은 불가적 세계관에 깊이 침윤되어 있지만 불가의 삶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 어느 스님인지
이 깊숙한 골짜구니에
절 하나 이룩하여
大雄殿, 寂黙堂, 鳳棲樓
낮이면 새 소리
밤이면 바람 소리
새벽마다 종소리, 목탁소리, 염불소리
밤낮으로 물소리.
닫지 않는 門간 양쪽에
四天王이 지킨다 히여
누구를 막는 노릇이 아니기에
이 밤 깊이 우리를 맞나니
사람이 살이에 지친 마음을
모두 고향인 양 여기 찾아 와서
바람소리, 물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면
어느 임도 따로 계시지 않는 밤을
꽃촛불 長燈한 양 화려하고나
-<龍門寺>의 밤>전문-
<龍門寺>의 밤>은 화자가 불가 밖에 있다가 불가 안으로 맞아 주는 용문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절은 절로써 따로이 있고 화자의 삶은 삶대로 따로 있음을 구별해 볼 수 있다. 절은 고향인 양 맞아 주지만 화자의 삶과 연속성 위에 있지 않다. 그렇더라도 파성의 불가 이해는 상당한 전문성에 이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누구에게도 있으면서
누구에게도 없는
너의 창을 열라
-<觀音의 창>에서-
生國 天竺을 버리고 건너 왔던 開山主 연기가 세운 이 곳, 전라도 華嚴寺, 대웅전 뒷 등성이에다
四獅子를 기둥한 三重石塔 하나를 母靈 공양 삼아 세워 놓아
-<四獅子 三重石塔>에서-
부처님 계실 때 말씀 계시길
「여인은 成佛 大願을 발하지 말라」셨는데
그렇듯 燔緣을 끊기 어려운 천성으로
-<群尼 禮佛像>에서-
따옴시편에서 보는 대로 공관(空觀)이나 사찰 축조 연기설화, 부처님 설법 등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교양으로 깊이 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은진미륵’에 대한 생성과정이라든가 ‘阿斯 夫娘’의 전설이라든가 원효 ‘僧俗’에 대한 이해에다가 ‘修子’의 단경에 이르면 불가적 사유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파성의 시는 불가의 삶 안으로 들어가 있지 않다. 화자의 삶이 불가의 교양 내지 불가적 문화의식에 깊숙이 젖어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가령 <群尼 禮佛像>에서 비구니 가람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경우 「치마 벗고 여기 머물게 된, 술도 없는 酒幕!」이라는 절묘한 시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비구니들을
하나뿐인 人生의 즐거운 輓歌
하나뿐인 人生의 서글픈 讚歌
하나뿐인 人生의 정다운 哭
이라 하여 불가 세계와의 거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거리감은 <大源寺 九重塔>에서도 잘 드러난다.
염불 합장하여 공덕을 바람이란
한갓 구차한 迷信이여.
난 끝내 非情의 보살
나의 聖域은 이승밖엔 없다.
난 有無常의 關路에 독립한 終身哨다.
<大源寺 九重塔> 말미 부분이다. 불법과 무관하게 탑으로의 의미만 추구한 것이지만 탑신과 관련한 신앙적 면모가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이 부정적인 이해가 불가를 부정하는 아니라 하더라도 불가의 공력에 대한 무관심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파성의 불가 소재의 시는 지나치게 사변적이다. 석가가 침묵 대신 언어를 선택함으로써 팔만사천법문이 경전의 골격을 이루게 되고 지구상에 가장 많은 경전을 가진 종교가 성립하게 되었지만9) 실천에 들어서서는 불립문자나 언어도단이 소중한 덕목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시는 말을 줄여서 속뜻을 더 깊이 우려내는 예술이라 할 수 있겠는데 사변은 현실세계에 머물러 있는 대상과 어울리는 것이므로 비불가적이기도 학 비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바람과 비, 파도와 천둥, 메아리와 폭포.
종도 목탁도 징소리도 바라소리도
웃음과 울음, 성냄과 속삭임, 애원과 기도.
땅과 하늘, 정과 무정의
모든 소리가 내내 그 소리인 줄을
아시고도 굳이 닫은
너의 창은 진정 있는 것이냐.
너는 나로써 있고
내가 또한 너로써 있다 하면
너가 내이고 내가 너이어서
마침내 너도 나도 없고
너도 나도 있어
너만 있고도
나는 있는
너 나의
하나.
-<觀音의 窓>에서-
‘관음’ 지향의 시인데 말의 밀고 감에서 끈질김의 진술을 만나게 된다. 요설과 되풀이, 밀어붙임과 되풀이의 흐름에서 속악한 현실이 재구성되고 있다. 시는 언어도단을 언어도단으로 만족하는 예술이다. 따옴시에서 언어도단까지 도달한 세계가 이를 박차버리고 다시 현실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Ⅳ. 마무리
파성의 시에도 아름답고 숨가쁜 서정시가 있다. <石蘭>,<무지개>,<모란 움 하나>,<치자꽃 핀다> 등이 그것이다. 특히 <모란 움 하나>나 <치자꽃 핀다>는 그의 대표시라 할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그의 시는 거의가 스케일이 크고 장엄하고 서사적이다. 서정보다는 조손 ․조국에의 지향이 더 강했고 현실의 물굽이에 휘감겨 일생을 수형의 고뇌로 일관했다. 있어야 할 것이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한 만큼 그의 시는 아이러니적인 성질을 띄게 되었다. 그를 그나마 지탱시켜 준 힘은 불가적 문화의식이 아니었던가 한다.
「소승적(小乘的)이라 할 만큼 淸淨에 대한 고집」으로 표현되는 그의 삶은 시를 ‘詩言志’의 세계로 울타리 쳤다. 서사성과 ‘시언지’는 동전의 안팎과 같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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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선배님 글을 통해서 내 동기 설봉규군 어른이신 파성의 시 중에서 맘에 쏘옥 드는 시를 하나 얻었습니다. <조손애가>
파성선생에 대한 시 연구 역작을 준비해 주시느라 대단한 수고를 하셨습니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파성선생은 역시 진주가 낳은 큰 문인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