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건국한 왕, 태조 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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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왕, 태조 이성계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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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탄탄한 기반을 다져놓은, 태종 이방원
조선의 탄탄한 기반을 다져놓은, 태종 이방원 두번째
모든 백성들의 스승, 세종대왕
모든 백성들의 스승, 세종대왕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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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배성들의 스승, 세종대왕 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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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의 가족관계를 살펴보시겠쉬먀.
세종은 왕비 소헌왕후와의 사이에서 8남2녀를 두었긔.
후궁들의 자녀까지 합치면 모두 22명 이었는데.
왕자가 18명, 공주가 4명이었긔. 아들들이 ㅎㄷㄷㄷ 했지라?
* 첫째는 정소공주가 태어나긔.
본래 시호는 정혜공주였다고 하긔. 근데, 태종의 딸 정혜옹주와 같아서 정소로 고치셨다구예.
정소공주는 태종의 첫 손녀였기 때문에
태종과 그부인 원경왕후, 다른 왕실어른들이 그렇게나 이뻐 하셨다고해요.
세종도 첫딸인 정소공주를 유난히 아끼고 사랑하셨는데, 그 일화로
세종이 바쁜 업무중에도 정소공주를 찾아가서 직접 학문을 가르치셨다고 하긔.
근데 이 정소공주는 13살의 나이로 사망했는데요..
정소공주가 죽은 후에 세종대왕님께서는 정사를 돌보지 못할 정도로 크게 상심에 빠지셨다고하긔.
장례를 치룰때 세명의 공신 (윤회, 맹사성, 황희) 와 육조의 당상관들이 성문 밖에 까지 장송할 정도로
크게 우대해주었다고하긔 ㅠㅠㅠㅠ
* 둘째로는 문종, 이 향 이 태어나게 되오.
문종에 관련된 이야기는 문종 편에서 들려드리겠긔 !!
* 셋째, 정의공주 긔.
정의공주는 무척이나 똑똑하셨다구 하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문종과 수양대군(훗날 세조), 안평대군과 함께 많이 도와주셨다구예.
훈민정음을 만들던 중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고 하긔.
그래서 세종이 여러 대군 (아들들) 에게 풀어보게 했는데, 아무도 못풀었던거긔.
그 때, 정의공주에게 풀어보라고 했는데 공주는 곧 풀어서 세종에 바쳤다고 하긔.
세종이 느무느무 좋아라 하면서 크게 칭찬하고 상을 내려주셨다고 해요ㅋㅋㅋㅋ
후에, 결혼을 하시고 남편 인 '안맹담; 이 죽자,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지장보살본원경' 이라는 책을
상 중 하로 나눠서 간행했다고 하긔. 이 책은 대한민국 보물 966호에 지정되게 되오.
세종대왕님 딸이라 다르긔 bbbbb ..... 우리아빠 딸 힘내라긔......
* 넷째로 이 유, 수양대군이 태어나긔
훗날 세조가 되는 인물이지라? 세조 이야기에서 들려드리겠긔!!
* 다섯번째, 안평대군. 이름은 이 용 이긔.
여러 왕자들과 함께 성균관에 입학해서 학문을 닦아다고 하긔.
평소에 왕자들이 지내는 걸 보시면서 세종대왕은,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야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신거긔.
그래서 세종께서는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을 궐 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했긔.
* 안평대군은 기질이 호탕해서 무사들을 이끌고 매사냥 다니는걸 좋아했지만,
그 주변에는 주로 문인들이 많았다긔.
이후에 문종 때 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조정의 정치에도 참여하고 했는데,
단종이 즉위한 후에 수양대군과 경쟁하다가 사형당하지라ㅠㅠ
* 안평대군은 세종대왕, 소헌왕후, 그 형인 문종 까지 잇달아 붕어 (돌아가시는것) 하시고,
아들 '이우량' 까지 병으로 잃게되긔 ㅠㅠ
그 때부터 많이 힘드셨는지 불교 사찰을 찾아다니면서 공덕을 드리고,
떠나간 넋을 위로 하고 그러셨대긔. 근데 그 이후에 또 아내가 죽게되오....
그러자 " 불교? 이거 엉터리네 " 하면서 불교를 믿지않게되오.
* 세종은 돌아가시면서, 병약한 아들 문종도 오래 살지 못할꺼라고 생각하셨긔.
그래서 문종의 아들, 즉 손자인 단종이 걱정됐긔.
왜냐, 자기아들인 수양대군이 야심이 그득그득하다는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긔.
그래서 돌아가실때. 단종을 잘 보필해달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부탁하셨다고하긔.
그것때문이었는지, 문종이 죽고나서 단종이 왕이 되었을 때,
안평대군은 왕자리를 차지할려고 하는 수양대군과 경쟁하기 시작하오.
이 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사건을 계유정란 이라고 부르긔.
이 계유정란으로 인해서 수양대군은 왕위에 올라가게되긔. 그에 반대했던 안평대군은
유배 중에 교동도에서 사형당했다긔.
* 안평대군은 시문과 그림에 관심이 많아서 글과 작품들이 많았다고하긔.
근데, 계유정난 이후에 세조가 된 수양대군이 작품들을 보지도 않고
'괴상한 글과 작품' 이라는 이유로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하긔 ㅠㅠㅠㅠㅠㅠ 아... 세조 형..
* 여섯번째, 아들 임영대군 이 구 이긔.
임영대군은 수양대군처럼 무술에 능하였긔.
효심과 우애도 깊었다고하긔.
성격에 꾸밈이 없고 사특함이 없어서 늘 진실하고 대쪽같다고 세종대왕이 칭찬하셨다구예.
세종도 임영대군을 참 좋아해서 여러번 임영대군 집에 가서 거둥하시기도 하셨긔.
* 근데 이 임영대군 첫 부인이.... 또르르..
임영대군의 첫부인이었던 남씨는, 정신질환이 있었다고하긔.
혼인한지 한 달 정도 됐을때, 세종이 황희와 맹사성, 최윤덕을 급히 불러모아서
" 임영대군의 아내 남씨... 걔.. 나이가 12살이 넘었는데. 맨날 이불에 오줌싸고
눈빛도 이상하고, 말도 어눌하게 하고, 행동도 좀 이상해. 미친것같아.. "
하시면서 , 강제 이혼 시켜버리긔. 그 이후에 부부인 최씨를 맞이하게되오.
* 임영대군은 이후에 안평대군과 수양대군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 질 때, 수양대군의 편을 들게 되오.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되자, 왕실의 수장격이 되었고 큰 시련없이 지내다가 51세에 사망하긔.
죽으면서 아들들에게 유훈을 남겼는데
" 첫째, 왕자간에 서로 분쟁을 일으키지 말 것.
둘째,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것 " 이라고 했다고하긔 .
이런 유훈을 남긴걸 보니 아마 형들끼리 (수양vs안평) 싸우는 모습을 보고 회의를 느끼고 있었지않았을까요?
* 일곱번째, 광평대군 이 여 이긔.
사치도 심했고, 인사청탁 문제등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세종이 아끼는 아들이라 많이 감싸주셨다고하긔
하지만 ,창진을 앓아서 일찍 요절했긔.
광평대군이 죽자, 세종은 상심에 빠져 밤을 새워 자지도 않고, 하루종일 밥도 거부했다고 하시긔 ㅠㅠ
그래서 신하들이 걱정하여,
"수라를 들어달라" 고 청했는데, 죽만 조금 먹다가 입맛이 없으시다고 하시며 자리에 누우셨다고하긔.ㅠㅠㅠㅠ
* 여덟번째 아들, 금성대군 이 유 이쉬먀.
역시나 세종의 총애를 받아서, 세종이 계속 금성대군 집에 머무르시거나 놀러도 많이 가셨다고하긔 ㅋㅋ
광평대군이 창진에 걸려서 사망했잖아예?
금성대군도 역시나 창진에 걸려서 생명이 위독했던 적이 있는데 기적적으로 병을 이겨냈다고하긔.
세종은 그게 너무 기뻐서 치료한 의관과 관련자들에게 크게 상을 내리셨다고해여.
또, 금성대군은 불교 신자라서 사찰에 후원도 했다하쉬먀.
* 금성대군은 형 문종이 죽고, 조카인 단종이 왕위에 올랐을때
단종을 보필할 것을 약속했다고 하긔.
근데 수양대군이.... 정권탈취해서 단종을 폐위 시키고 왕이 되지예?
이 때, 형인 수양대군(세조)을 반대하고, 조카를 보호할려고 힘썼긔.
이것때문에 수양대군(세조)이 금성대군을 싫어하게되오.. 아... 세조 형..
그 이후에, 단종이 폐위 되자. 금성대군은 아버지인 세종과 맏형이 문종의 뜻을 받들어서
두 사람이 사랑했던 손자이자, 아들, 그리고 자신의 조카 인 어린 단종을 끝까지 보호하고 복위 시킬려고하긔 ㅠ
그렇게 거사를 꾸미고 있던 중!!!!
... 어떤 관노가 이 거사 계획을 알게되어, 탈출해서 세조에게 다 일러바치긔
" 쟤네들, 단종 복위 시킬려고 계획 꾸미고 있던데?" 하면서여.... 또르르.... 아... 관노 형...
그래서 친 형인 세조에게 31살의 나이로 사형을 당하게되긔ㅠㅠㅠㅠㅠㅠㅠ
이 일로 유배가 있던 단종도 살해되지예........
* 이어서, 평원대군이 태어나는데..
천연두로 인해서 18살이 되던 해에 사망하게 되오.
* 마지막 적자녀인 영응대군 이 염 이긔.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고, 음률에 밝았다고 하긔.
세종은 여러 아들들 중에서도 막내아들인 영응대군을 특별히 사랑하고 총애하셨다긔.
그래서 1450 년 승하 하실때도, 영응대군 저택인 동별궁에서 돌아가셨다고해요.
* 세종은 원래 불교에 대해서 억압하는 정책을 쓰셨긔.
근데, 아끼던 정소공주가 요절하고, 후반에는 광평대군과 평원대군이 잇따라 요절 하시면서
세종과 소헌왕후는 비탄에 빠지시게 되긔ㅠㅠ 자식을 셋이나 잃은 슬픔이 컸겠지라?
그래서 불교 사찰을 찾아다니시면서 자식들의 명복을 빌어주셨다고하긔.
근데 또 하늘도 무심하시지.... 소헌왕후 마저 승하하시게되긔... ㅠㅠㅠ
이때부터 세종께서는 궐 안에 내불당 이라는 왕실 사찰을 지으시고 불교에 의지하시게되긔ㅠㅠ
힘들면 종교를 찾게되지라....
이때, 유학자들이 " 나라의 국교가 유교인데, 왜 그런 미신을 믿으시냐 " 며 엄청나게 반발했긔.
세종은 개의치 않고 계속 불교에 의지해서 먼저 죽은 가족들의 넋을 위로 하셨다고하긔...
* 세종께서는 어렸을때부터 육식을 좋아하시는 탓에 늘 비만하시고 소갈증(당뇨로추정)을 달고사셨긔.
또,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으로 몸에 종기가 많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온천!!! 을 자주 갔다는 점!!!!
<맹사성>
* 이 온천이라는 것은, 황희와 같이 세종대왕을 보필하는 맹사성!! 기억나시지라?
맹사성이 추천해드렸긔. 세종이 참 신뢰하는 인물이었다긔.
그 이유는, 맹사성의 성품 때문이었다고 하긔.
일화로 맹사성은 자기보다 벼슬이 낮은 사람이 집에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을 다 갖추고
대문밖까지 나가서 맞아들였다구해요. 뿐만 아니라 벼슬이 낮든 높든간에 손님이기 때문에
항상 윗자리에 앉히고, 손님이 돌아갈때도 공손하게 배웅해서 손님이 말을 탄 뒤에서야 집에 들어올 정도로
소탈하신 분이셨다긔.
또, 공무가 아닌 일에는 결코 말을 이용하지 않고, 항상 소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다녔다고 하긔 ㅋㅋㅋ
그래서 맹사성 동네 사람들은 맹사성이 재상인 줄 알지 못했다고하긔. 농부처럼 소 타고 다녀서요 ㅋㅋㅋㅋ
이런 성품으로 인해서 세종이 맹사성을 참 신뢰하셨는데 ,
맹사성이 " 나 이제 일안할래... 집에가서 부모님 병간호도 해야하고.. 나도 나이가 많이들어서 힘이 딸려."
하며, 벼슬을 내놨었는데 그 때 마다 세종 " 놉. " 안된다며 사직을 윤허하지 않으셨다고하긔
* 세종의 신뢰를 받은 이 맹사성이 사는 동네가 온천이 있는 지역 이었다긔.
어렸을때부터 온천을 들락날락 거렸던 맹사성이, 온천이 몸에 좋다는 걸 알고
건강이 좋지 않는 세종에게 온천을 추천해드리긔.
" 올ㅋ 그래?" 하면서 세종께서 맹사성을 따라가서 온천을 해보니.. 띠용. 반하신거긔.
" 으아니.. 물도 좋고, 뜨뜻한게 온몸이 풀리는것같구나 " 하시면서 직접 그 지역에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그게 바로 온양 이었긔. 온양온천 유명하지라?
그 이후로 세종께서는 자주 온양에 내려가 온천욕을 즐기셨다고하긔 !!!
" 이렇게 좋은건 나 혼자 즐길수야 읎지. " 하시며, 온천 치료의 혜택이 백성에게도 돌아가야한다고 생각하셔서
백성을 위한 온천탕을 만들고 백성들이 장기간 머물면서 치료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긔 ㅎㅎ
그 일을 맹사성에게 맡기셨구예!!!
하... 그 왕의 그 신하 도다....... ㅠㅠㅠㅠ
* 하지만, 세종께서는 젊은 시절 부터 무리하게 국정을 돌본 탓에 후반에는 들면서
건강이 매우 악화 되셨고, 온천욕 또한 소용이 없으셨긔.
중풍, 요로결석 에 자주 시달리시고,
안질환(눈병) 이 악화되서 결국에는 바로 옆에 앉아있는 사람도 못 알아보실 정도가 되셨긔..
아... 너무 슬프네요...
정무를 보시는 날 보다 자리보전하고 누워계시는 날이 더 늘어가게 되긔.
그래서 어쩔수 없이 세자인 훗날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게 되긔.
문종은 세종을 대신해서 8년간 대리청정을 하게 되긔.
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날려고 하셨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번번히 무산되셨다구예ㅠㅠㅠ
* 결국, 1450년 3월 30일에 54살의 나이로 사망하셨다고 전해지긔.
세종은 죽어서도 아버지인 태종의 곁에 있고자 하셨는데, 풍수지리적으로 묘자리가 좋지않다는 이유로
후에 경기도 여주로 이장되었다긔.
<영릉>
* 세종의 능을 영릉 이라고 부르고, 경기도 여주군에 위치해 있긔.
소헌왕후와 한 봉분안에 합께 묻혀있는 합장릉입니다.
* 1418 년 부터 1450년 까지 약 31년 재위 하셨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