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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7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설교
제목 : 조건을 걷어내야 기도가 선명해진다!
본문 : 창세기 28장 21절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개역개정>
드디어 8월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8월이 시작되었던 한 주간 평안하고 즐겁게 보내셨습니까? ‘진짜 덥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더위도 늘 조심 하시고, 냉방병도 조심하셔서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잘 유지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8월 첫 번째 주일 저희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28장 21절을 본문으로 하여 ‘조건을 걷어내야 기도가 선명해진다!’ 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개역개정으로 준비된 본문을 먼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세기 28장 21절, 개역개정>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횟수로 이런 모습을 가진 저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조건부기도’를 하고 있는 제 모습입니다. 기도를 하긴 하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을 먼저! 반드시! 들어주셔야! 한다는 무언의 협박이 들어가 있는 기도입니다. 아주 쉽게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저를 발견하고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물론 여러분은 ‘조건부기도’와는 관계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건을 걷어내야 기도가 선명해진다!’ 이 말은 정말 계속해서 마음에 새겨야 할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선명해 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건을 걷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조건부기도’ 그 자체가 기도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에는 ‘조건부기도’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눔으로 우리 모두의 기도가 조건을 걷어내고 선명해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은 창세기로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이스라엘이 되지 못했던,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던 시절의 야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의 뜻에 따라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명목은 아내를 맞이하기 위함이었지만, 사실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무려 20년이나 이어질 도망자의 삶이 이제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나 온 곳을, 반대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야곱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신기하게 이런 기록을 통해 앞으로 야곱의 여정이 꼬이고 힘들지도 모른다는 복선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복을 빌어 주고 당부하였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아라. 이제 곧 밧단아람에 계시는 브두엘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거기에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들 가운데서 네 아내가 될 사람을 찾아서 결혼하여라. <창세기 28장 1~2절, 새번역>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마침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길 위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야곱입니다. 아마 자신의 평생에 경험해 보지 못한 불편함이었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야곱은 '금수저'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 보니 할아버지가 아브라함이고, 아버지는 이삭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모두 큰 부자였기에 야곱은 어릴 때부터 큰 어려움 없이, 불편함 없이 자라왔습니다. 그런데 길 위에서 자야 한다고 생각하니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마땅히 베고 잘 것도 없어 주변을 둘러보며 평평한 돌 하나를 찾아 베개로 삼고 고단한 몸을 뉘였습니다. 저라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피곤한 몸은 불편한 상황과 상관없이 잠을 청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유명한 일화를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창세기 28장 10~15절, 새번역>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대로, 이삭에게 말씀하신대로, 이제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함께 하시며,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지켜주며, 결국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다 이루기까지 결코 야곱을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사실 야곱은 진작, 벌써부터 이 하나님을 찾아야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진정한 축복을 받는 비결이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축복을 받는다고 해서 축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진정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이 하나님을 찾지 않자 하나님이 꿈에 찾아오셔서 야곱에게 말씀하시는 순간입니다. 실로 야곱은 하나님을 잊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잊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하나님은 야곱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야곱은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자 바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분명히 지금, 이곳에 여전히 함께 계시는데도, 자신이 그것을 미처 몰랐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깨닫고 나자 원인 모를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저는 이 마음을 ‘경외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현재 있는 이곳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지 느끼며, 이곳을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인 동시에 하늘로 들어가는, 즉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 곳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창세기 28장 16~17절, 새번역>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하였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야곱은 어떤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그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 <창세기 28장 18~19절, 새번역>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서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그렇게 서원을 하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창세기 28장 20~22절, 새번역>
여러분은 이 서원을 보면서, 들으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습니까? 저는 이 서원을 드리고 있는 야곱의 모습을 묵상해 보면서 처음엔 조금 안타깝다가 나중엔 야곱의 모습이 마치 제 모습인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딱 기도할 때 제 모습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 내가 이런 기도를 해왔던 거구나!’
야곱의 기도, 서원이 바로 '조건부기도'였습니다. 꿈에서 분명히 하나님은 동행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때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아브라함과 이삭을 돌보아주신 것처럼 야곱도 돌보아 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 말씀에 지금 '조건'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이 아니라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야곱은 아직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해주지 않는다면, 언제든 하나님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해주신다면,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려는 마음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과 완전하게 반대입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야곱입니다. 이렇게 보니 야곱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으로부터 신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을까요? 야곱은 지금 그저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조건부기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모습은 기도가 아닙니다. 아직 기도에 대해서 선명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야곱을 보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조건을 걷어내면, 기도가 더 선명해 질 수 있겠구나!”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조건부기도’와 완전히 반대되는 믿음의 단어가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것 또한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선명해지기 위해서 이 말을 기초로 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 고백이 새삼 너무도 멋지게 다가왔습니다. 정말 멋진 신앙고백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장 17~18절, 개역개정>
실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왕에게 하고 있는 말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드리는 너무도 선명한 기도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자신들을 풀무불에서 건져내지 않으시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들의 하나님이라고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응답하시는 것에서 모자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함께 하십니다.
왕이 말을 이었다. "보아라,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다. 모두 결박이 풀린 채로 화덕 안에서 걷고 있고, 그들에게 아무런 상처도 없다! 더욱이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과 같다!" <다니엘 3장 25절, 새번역>
그리고 바로 이방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의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활활 타는 화덕 어귀로 가까이 가서 소리쳐 말하였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이리로 나오너라!" 그러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왔다. <다니엘 3장 26절, 새번역>
9회말 투아웃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보다 더 짜릿합니다. 방금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던 왕의 입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목소리를 듣게 되다니! 이것이 바로 조건부기도가 아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선명한 기도의 힘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 그대로를 담아 믿음으로 드린 기도! 그 기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또한 시편 73편의 저자에게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선명한 기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기도 역시 우리의 입술에 너무도 필요한 기도입니다.
내가 어리석었고 무지했습니다. 내가 주 앞에서 짐승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주와 함께 있습니다.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들어 주십니다. 주의 지혜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중에 나를 영광스러운 곳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시편 73편 22~24절, 우리말성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믿음이 없다면 결코 고백할 수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선명한 믿음이 있어야만 드릴 수 있는 선명한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한 분이야!’ 라는 신념을 기도로 선포할 수 있는 아주 멋진 고백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아주 쉽게 '조건부기도'를 하면서 기도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그대로 해주신다면', '제가 원하는 그 곳으로 인도해 주신다면', '제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제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움직이시면' 등등 '조건부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믿음이 없는 언어일 뿐입니다. 결코 '조건부기도'는 올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라고 조차 말할 수 없습니다. 조건을 내밀고 있다는 그 자체가 믿음의 행동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그대로 해주시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그 곳으로 인도해 주시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움직여 주시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새번역>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는 기도에서 '조건'을 걷어내셔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의 방법에 순종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의 음성을 먼저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듣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종된 우리의 마땅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깨 버리는 것이 바로 '조건부기도'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결국에는 하나님조차도 '조건부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필요할 때만, 내가 원하는 대로 될 때만,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내 기도를 들어주면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죽은 하나님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바로 조건을 걷어내는 선명한 기도로부터입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여전히 야곱은 무지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는 야곱은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그 여정을 통하여 야곱은 연단되어 질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 갈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야곱이 기도한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조건부기도'에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약속신대로 야곱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아무리 조건을 내밀어도, 하나님은 먼저 말씀하신대로 하나님 스스로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반대로 그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실하게 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야곱이 믿음의 행위를 한다면, 믿음의 기도를 드린다면, 조건을 걷어내고 선명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모습이 바로 그 모습일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우리 역시 아직은 야곱처럼 무지하고 부족합니다. 아직 '조건부기도'가 더 익숙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수시로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 연약한 모습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지켜 가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을 확실하게 해야 할 때입니다. 조건은 버리고! 선명하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창세기 후반부의 기록을 보면 먼 훗날 야곱도 분명히 자신의 신앙을 진심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건을 다 걷어내고 선명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행동과 동일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야곱처럼 조건을 걷어내기 위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때론 연단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연단의 시간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조건'을 걷어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기도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인정하면 해결됩니다.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이, 내가 지금 기도를 드리고 있는 대상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깨닫는 신앙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믿음이 생기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믿음의 고백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신기하게도 조건부 기도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에 '조건'을 걷어내면, 그제야 선명한 기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뿌옇게 보이는 것처럼 믿음 없이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믿음'으로 드리는 선명한 기도에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하실 것입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22절, 새번역>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원하십니까? 오늘 야곱의 서원을 보면서 한 가지 실천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도에서 '조건'을 걷어내십시오. 그리고 기도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발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이게 될 때, 그 기도의 놀라운 능력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조건부 기도가 아닌,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체험! 믿음의 현장’에서 주인공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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