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
인천대교 조망 포인트, 광화문 자동차 궤적, 안면도 폐선, 운염도, 풀등, 염초암릉의 기억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해상교인 인천대교는 송도신도시와 영종도 국제공항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그 길이가 무려 18.38km, 세계에서도 7번째 긴 해상교량이라고 한다. 인천대교는 특히 S자형의 곡선으로 되어 있어 높은 곳이나 드론으로 찍으면 경관이 정말 아름답다.
벌써 10년 전인 2013년 9월 16일. 필자는 사진동호인들과 함께 인천대교 야경포인트를 찾아간 적이 있다. 동춘터널이 위치한 봉재산이라는 나지막한 야산 너럭바위가 인천대교를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촬영포인트였다. 너럭바위 포인트는 5-7명 정도만 겨우 올라가 삼각대를 세울 수 있는 크기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인천대교의 S자 곡선과 주탑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면 일몰풍경도 장관이다.
주탑 사이로 거의 매 5분 마다 비행기가 오고간다. 비행기를 찍는 재미도 괜찮다. 특히 이곳은 다리에 조명이 들어오면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다.
그런데 그 후 언제인가 봉재산과 인천대교 사이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인천대교 조망이 완전히 사라졌다. 정말 아쉽기 그지없다. 송도 센트럴파트 역 부근 G-Tower 33층에 전망대가 있고 송도랜드마크시티1호 수변공원 등에서 인천대교를 조망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뷰가 봉재산 너럭바위에 결코 미치지못한다.
사진취미를 즐기다 보니 도시 야경을 장노출로 담아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광화문 바로 앞에는 건널목 중간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아일랜드’라는 게 있었다. 자동차가 빈번하게 오고가는 도로 한복판이면서도 이곳 아일랜드 만은 건널목 중간 쉼터여서 교통의 치외법권 구역이다.
사진작가들은 이곳이 자동차 불빛궤적을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촬영포인트이기도 했다. 광화문 앞에서 좌회전하거나 유턴하는 차량들의 불빛은 앞에서 오는 차량은 힌색, 뒷모습을 보이면서 달리는 차량은 붉은색의 궤적을 그린다. 그리고 버스 등 대형차량의 백라이트궤적은 파란색 또는 녹색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일랜드’ 구역에 삼각대를 낮게 세우고 광화문 앞을 오고가는 차량궤적을 올려 찍으면 사진과 같이 재미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곳 ‘아일랜드’ 역시 지금은 교통 라인 조정 등으로 사라지고 없다.
안면도 백사장항 근처에는 2019년까지만 해도 조그만 폐선 한 척이 있었다.
왜 폐선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주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함께 했던 배라 폐선으로 방치할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노후화돼서 더 이상 사용할 수는 없고, 폐선을 처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바다에 버려뒀던 게 아닐까 추측될 뿐이다.
백사장항 갯벌은 간조시에는 물이 거의 없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다. 폐선은 갯벌에 박혀 있어서 물이 들어와도 뜨거나 움직이지않는다. 바닷물이 갯골을 따라 들어오기 시작하면 폐선도 갯벌과 함께 서서히 물 속에 잠긴다.
사진작가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않는다. 물이 들어오는 과정을 20-30분 정도 장노출로 촬영하면 바닷물은 우유빛으로 변하면서 잔잔하게 갯골을 덮는다. 이른바 '고요의 바다(Sea of Tranquility)'가 된다. 아직 물이 다 차지않은 갯벌 황토색 부분과 우유빛 바닷물색 그리고 폐선 모습이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최근에 다시 가보니 그 폐선이 사라졌다. 바다 속 흉물로 남아 있던 폐선을 선주 또는 지자체에서 꺼내 폐기시킨 모양이다. 해안가에는 폐선을 해체하고 남은 나무판자들이 쌓여 있다. 청정해안과 자연경관을 위해서 당연히 바다 속 폐선은 폐기시켜야 마땅하겠지만, 사진적 측면에서만 볼 때는 사라진 폐선이 못내 아쉽기도 하다.
인천국제공항을 가다 보면 영종대교 우측으로 광활한 갯벌과 섬들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 섬중 필자가 언급하고자 하는 곳은 운염도라는 섬이다. 운염도(雲廉島) 또는 운렴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의 유인도로, 영종대교 남쪽에 있다. 1960년대까지는 운겸도(雲兼島)로 불리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갈라진 땅’, 갯벌과 갯골 주변에 붉게 피어 있는 칠면초, 함초, 나문재 등으로 마치 지구 밖 어느 행성(行星)같은 신비스러운 풍경을 보여주던 섬이다.
‘한상드림아일랜드’라는 해양공원으로 개발 예정인 이곳은 수년간 갯벌을 계속 매립, 염분있는 바닷물이 건조되는 과정에서 ‘거북이 등’모양의 기기묘묘한 ‘갈라진 땅’이 형성되어 왔으며, 이와 같은 토양구조는 당연히 사진작가나 화가들의 훌륭한 작품소재가 되어 왔다.
그런데 현재는 해양공원 조성공사로 인해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친환경복합문화예술 신도시로 탈바꿈될 예정이다. 다시 볼 수 없는 그 신비의 섬이 그립고 또 그리운 요즘이다.
*풀등 조망-OBS영상에서 캡쳐
또, 이 섬은 어떤가?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20분 거리, 대이작도와 사승봉도 사이에는 만조시에는 바다가 되었다가 간조시에는 물이 빠져 광활한 모래섬이 생기는 '풀등'이라는 바다의 신기루가 있다.
썰물 때 불과 3 - 4시간 보였다가 밀물이 들면 사라지는 모래섬. 섬사람들은 이곳을 '풀등' 또는 '풀치'라고도 부른다.
이 신비의 섬은 그 규모가 무려 30만 평이 넘는다. 대이작도나 승봉도에서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데, 풀등에 올라 모래섬을 걷다보면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않는다. 섬인지 육지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이다. 풀등은 이어도의 16배 크기로 동서 약 3.59km, 남북 1.15km에 이른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사리 때는 길이가 5km까지 드러난다. 해수에 잠겨 있는 부분까지 포함하면 32.49k㎡, 길이가 동서 9.8km, 남북 4.4km에 달한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 모래사막을 계속 걸어본다. 사방은 바다. 철창벽 없는 '열린 감옥'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갈매기떼들 만 이방인들을 반겨준다. 웅덩이처럼 움푹 패어진 사구들도 있는 반면, 대부분 지역은 다리미질을 한 듯 곱게 다져진 사막이다.
모래사막을 걷다 보니 발 아래 작은 깃털 하나가 눈에 띈다. 갈매기 깃털인 것 같다. 몇시간 후면 이 깃털도 다시 바다 물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모래 위의 모든 흔적이나 발자취들은 예외없이 바다 속으로 잠길 것이다. 오늘 우리가 본 모래섬의 흔적들은 내일은 다시 보지못할 기억 속의 보물같은 존재들이다. 우리가 찍어놓은 사진 만이 유일하게 그 흔적의 실존을 증명해줄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모래섬에 계속 남아있으면 어찌될까? 바닷 속 용궁으로 들어가 인어공주라도 만날 수 있을까? 매일 변하는 모래섬의 흔적들을 사진으로 모아 용궁 전시회라도 하면 어떨까?
하긴, 살다보면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어찌 이것 뿐이랴. 가까이 지내던 가족이나 지인,친구 등을 먼저 떠나보냈을 때의 ‘아픔’은 ‘아쉬움’이라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필자는 젊었을 적 10년 넘게 암벽등반의 마력(?)에 빠진 적이 있다. 늦은 나이에 암벽등반을 시작해서 실력은 중급단계 이상을 벗어나지못했고, 암벽화에 쓰여져 있는 것처럼 '5.10(파이브 텐)' 이상의 고난도 바위타기는 몇번 시도에서 대부분 실패 만 거듭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미흡했던 등반실력에도 불구하고 10여 년의 암벽등반 경험은 어쨋든 내 생애에서 가장 화려하고 꿈같은 시절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10여 년, 결코 길지않은 암벽등반기간 중 나는 남녀 2명의 동료산우를 잃는 등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않은 슬프고 쓰라린 경험도 했다. 암벽등반시 마다 거의 함께 다녔던 두명의 후배 산우. 그들 중 여자산우 한 분은 어느날 관악산에서 혼자 바위를 타다 추락하여 사망했고, 특히 남자 후배산우는 필자와 함께 북한산 암벽등반 도중 바로 내 눈 앞에서 수십미터 절벽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2007년 10월 14일 오전 11시 40분경, 북한산 염초암릉에서 생긴 사고였다. 사고는 결코 실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암벽등반시 가장 위험한 '선등'(루트에 자일을 깔기 위해 제일 먼저 맨몸으로 암벽을 오르는 것)을 하는 등 실력이 우수한 산우였는데도 순간적인 방심과 실수로 추락하여 당시 불과 44세의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이상했다. 염초직벽을 오른 후 찍은 단체사진. 필자 포함 11명의 동료산우 중 유일하게 사고를 당한 후배산우만 중앙에 편안하게 앉아 있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이 승에서 마지막으로 잠시나마 쉬고싶어서였을까? 그리고 불과 몇분 후 그는 먼저 우리 곁을 떠났다. 필자는 그때 그 후배산우를 잃은 슬픔에 '아, 염초암릉'이라는 졸시를 쓰기도 했다.
"그대 오르는 길 밝히려나/그날 따라 하늘은 참으로 맑고 푸르렀네/그대는 바람 타고 구름 타고/날개 펄럭이며 춤추듯 떠나갔네//한번 오르면 다시는 내려올 수 없는 정상/그대가 먼저 하늘길 열었네/언제나처럼 선등으로 올라갔네/왜 그렇게 서둘렀는가/혼자 가는 길 외롭지 않던가//인수봉, 선인봉, 오봉, 만장봉, 숨은벽, 만경대, 약수암, 염초봉.../함께 오른 바위봉우리 마다/그대 모습이 보이네/그대가 자일을 타고 있네//먼저 자리잡고 기다려주시게/언젠가는 우리도 올라야 할 마지막 봉우리/우리 모두 그곳에 오르거든/자일 풀고 정상주라도 함께 나누세/그대가 잠든 염초암릉/참으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면서,(졸시 '아, 염초암릉' 전문)" (글,사진/임윤식)
첫댓글 추억이 공유되는 사진들도 쭈욱 보이고...글에 공감하고 끄덕이며 서로를 시인이라는 호칭에서 작가로 부르기까지 참 짧지않은 세월도 스칩니다. 한 페이지씩 주제가 됐을 사진들이 모아져 또다른 주제를 만들었네요. 저는 사진가로서 시인으로서 오랜 지인으로서 감사하게 읽으며 미소 짓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시간이 조금 생겨 문득 '사라져버린 아쉬움'들을 몇 점 정리해봤습니다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