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서예전 도록을 보다가 또 저의 작품을 세편이나 발견했어요. 현존인물의 가사작품은
거의 없는 중에 내가 작품을 준 일도 없고 올 봄에 지어서 책에도 실리지 않았는데 참으로 이상하고도 좋은 일입니다.
달성하빈 화전가/장혜완
계묘 삼월 스무엿새
짧은 봄 꿈 꾸었더니
화류춘풍 긴 긴 날에
꽃그늘 아래로다
뒷동산에 벚나무는
꽃구름을 피워내고
나리나리 개나리는
작은 손을 활짝 폈네
키 큰 목련 미련없이
꽃잎 뚝뚝 떨군 자리
제비꽃은 폭신폭신
꽃방석을 만들었네
봄이왔네 봄이왔네
완연한 봄이로구나
상촌하촌 친구님들
화전놀이 모듬하니
일년삼백 육십일중
양춘가절 좋은날에
일년한번 여자놀음
꽃지기 전 화전하세
남헌선생 전원주택
정원에서 화전하니
배산임수 갖춘 길지
울긋불긋 꽃대궐에
꽃을 흐쳐 놓은 듯한
가인들이 모였으니
여느 꽃이 곱지않나
사람꽃이 최고라오
그리움에 상사화는
청곡 선생 꽃이 되고
고급스런 노고화는
가화 선생 꽃이로다
수런수런 고운 등꽃
안정 선생 꽃이 되고
꽃의 여왕 장미화는
자용염미 목화 선생
주황색 명자꽃은
한복미인 남헌선생
일지단심 동백꽃은
모임당 선생 꽃이요
양반집 담 능소화는
소현당의 꽃이 되고
품위고결 군자란은
여중군자 은림선생
추녀 밑에 선비화는
지원선생 닮아 있고
팔방미인 새암 선생
붓꽃 같은 명필가인
공작깃털 자귀꽃은
지정선생 꽃이 되고
음전하고 참되어서
참꽃같은 한들선생
홍일점의 석류화는
문경선생 닮아 있고
분홍비단 금낭화는
보민선생 꽃이로다
부귀영화 모란화는
노을선생 닮아있고
고결우아 최정자님
옥창매화 자태로다
은발미인 이영애님
팔선화를 닮아 있고
분홍입술 앵도화는
명옥씨의 꽃이라오
이꽃저꽃 많다마는
혜완꽃은 무엇인가
나의 꽃을 고르라면
고민을 좀 해야겠네
꽃호강을 하였으니
입호강도 하여 볼까
돌절구에 찹쌀 찧어
인절미를 빚었으니
월궁예처 항아님의
불사단약 비할소냐
비빔밥 쑥버무리도
남헌선생 정성이요
다식 과일 풍족하니
친구님들 수고라네
그중에 으뜸 요기는
찹쌀반죽 꽃전이요
참꽃으로 요리조리
모양내어 구어내니
화려한 시절 기운
복중에 가득하네
나물밥과 수육으로
마음에 점을 찍고
너른마당 자리잡고
풍악을 울리어라
장고와 꽹가리 소리
산천을 울리는데
덩더쿵 장단 흥겨우니
춘흥이 따라 올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너도나도 춤을 추네
닐니리 쾌지나칭칭
대구 아리랑 부르며
자봉댁은 당실당실
소산댁은 덩실덩실
안덕댁은 너울너울
한들댁은 자분자분
물야댁은 조용조용
대산댁은 나풀나풀
목계댁은 은근슬쩍
인동댁은 빙글빙글
우록댁은 선창하고
신매댁은 배운 솜씨
춤을 추는 모습들도
양반가의 부녀답게
우아하고 고상하고
고요하고 아름답다
춘분 지나 장장춘일
아침부터 만났으나
못다한 정 남았는데
서둘러서 파회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머뮷머뭇 아쉽구나
한바탕 꿈 속 같은
좋은 시간 빨리가니
우리에게 남은 봄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
아낌없이 사랑하고
미운 마음 날려불고
후년을 기약하며
석별가를 불러보네.
*가사에 등장하는 꽃은 모두 남헌선생댁 정원에 있는 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