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과 군사력 간의 선순환이 조화롭게 이루어 졌던 것이다.
중국 요서 지방에는 조양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곳의 옛이름은 유성이다. 1500여년전 이곳에서는 중국, 한반도, 일본, 중앙아시아 등 세계 각국의 특산물들을 사고파는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 무역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유성에 고구려 시장이 있었다'는 "신당서의 기록으로 보아 6세기 말에 초양의 국제시장을 고구려가 운영하였으며 이 시장을 통해 고구려가 주변의 여러나라들과 활발하게 대외 무역을 전개 했슴을 알 수 있다. 이 시장이 조그마한 장터 수준이 아니라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그 규모에 대해서는 다음 이야기로 추롱해 볼 수 있다.
수나라는 중국 대륙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주변국들을 정복해야만 했고 그 중 거란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나라 조정에서 어떻게 하면 거란을 정복시킬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유성의 고구려 시장에 다양한 사람들이 쉴새 없이 드나들며 장사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그러자 수나라 조정에서 이를 이용하기 위해 꾀를 냈다. 잘 훈련된 정예군사 2만명을 뽑다 장사꾼처럼 보이도록 옷을 입힌후 짐보따리를 매어 잠입하도록 한 것이다. 이들이 뺀 짐보따리의 깊숙한 곳에는 무기가 숨겨져 있었고, 겉에는 농산물이나 수공예품 등을 채워 상인처럼 보이도록 위장하였다. 장사꾼 집단으로 위장한 수나라 군사들은 큰 의심을 받지 않고 거란 지역으로 잠입해 들어 갈 수 있었고 이곳에서 기습공격을 하여 거란을 멸망시켰다
이 이야기는 「수서」, 「위운기 전」에 전해지고 있는데 그만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의 장사꾼으로
위장하고 잠입하는데도 거란 측에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였으니 당시 고구려 시장의 크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능히 짐작하고 남을 만 하다.
평소에도 그정도 인원이 오가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였던 것이다. 고구려는 이곳을 통해 북방의 유목국가들과 활발히 교역을 하였다. 명실공히 세계 여러 나라가 교류하는 대규모 무역 시장이었던 만큼 시장에서 거래되는 품목과 규모도 엄청 났을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문영과 이곳을 통한 주변국들과의 교역을 통해 고구려는 자신들이 창출해낸 부가 가치를 수출하고 그를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고구려가 군사 강국이 된 데에는 철의 생산과 세계적인 제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빼 놓을 수 없는데 고구려는 이러한 자신들의 경쟁우위를 활용하여 부를 축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