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이한 경원대 시창작반은 자체적으로 시모임을 가집니다. 누가 시키는 일도 아니지만 지금은 하나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제가 시창작반에 등록한 것이 지난 해 봄학기인데,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에 선배들 따라서 나섰던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뒤로는 자발적으로 단 한 주도 빠짐없이 만남을 가졌습니다.
모임이 그리 수월한 일만은 아닙니다. 각자의 생활과 생업이 있기에 강제성은 없이 모임을 갖지요. 그러나 모임에 참여해 본 사람들은 시를 탐구하는 효과와 시우들과의 만남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취하여 자청해서 참여하는 분위기가 된 것입니다.
매주 모임에서는 지난 주에 토론 끝에 정한 주제에 따라 창작을 해 옵니다. 한 사람씩 발표를 하고 듣는 시우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의견은 창작을 한 사람이 자신의 시를 다듬는데 큰 참고가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약 두어 시간이 지난 후에 식사와 막걸리 한 잔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또 다음 주에 지어 올 시의 주제를 정합니다.
함께 공부하는 공통의 주제와 돈독한 정이 통하는 뒤풀이.... 아마 회원들은 시보다 이 자리가 더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교수님도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십니다. 날카로운 지적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시우들 간에 ‘마에스트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초우 문복희 교수님이 더 자주 이 자체 모임에 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자리 잡고 있는 인사동에서 많이 만나지만 엊그제(2월 21일)에는 야외로 자리를 정하였습니다. 봄을 맞아 봄내[春川]의 의암호에 가서 바람도 쐬고 시를 낚기로 하였지요. 요즘은 경춘선 전철이 완공되어 상봉역에서 춘천까지 편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춘천 가는 전철에서 보는 차창 밖 풍경은 해맑게 내리 쬐는 봄햇살이 고양이 눈을 뜨게 합니다. 송헌 선생, 고경 선생, 박형주 님, 다일 선생, 그리고 새학기에 입학하실 허백 누님(이영희 님)과 저, 이렇게 뜻 맞는 시우들과 함께 하는 야외 모임, 마치 어릴 때의 소풍가는 기분입니다.
(의암호변에서. 좌로부토 송헌, 허백, 박형주, 다일, 고경)
의암호변에서 둘러앉아 백일장을 열었습니다. 각자 뒷짐을 지거나 긴의자에 앉아서 시상에 잠겨 있는 모습, 이 광경 자체가 바로 ‘봄날의 시’ 아닐까요?
잠시 후에 각자 쓴 시를 들고 와서 낭송하고 감상하고..... 이 때에는 의암호의 잔잔한 호수도 잔물결로 살짝 떨리는 듯합니다.
여기 일행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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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雨水)의 봄냇골* >
배 상 운
북한강 쉬고 있는 고즈넉한 호반(湖畔)에는
눈 녹은 물 도닥이는 바람소리 싱그럽고
떠나는
청둥오리의
고두백배 정겹구나
햇살이 가지마다 반갑다고 쓰다듬어
중도(中島)의 측백나무 수줍음이 가득하니
하늘은
봄냇골 위해
신방(新房)을 준비 하네
* 봄냇골 ; 춘천(春川)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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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온다 >
박 형 주
아직도 시린 바람 강 언덕 넘나들고
호반의 고요함에 마음을 빼앗긴다
저 강물
흐르는 사연
내 마음도 떠간다
눈 비빈 버들강아지 찬물에 세수하니
서린 김 하얀 얼굴 물오른 젓가슴 돼
첫사랑
수줍은 미소
초록 눈을 틔운다
포풀러 나뭇가지 분주히 물 올려서
가지에 살찐 움들 하루가 너무 짧아
올해도
찾아올 새들
보금자리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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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춘천 여행을 함께 한 허백 선생은 풍광 좋은 의암호에 유유히 떠서 놀고 있는 청둥오리를 보고는 김삿갓의 시 ‘부석사’ 한 수를 써서 소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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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生未暇踏名區 白首今到衣岩湖
江山似畵東南列 天地如萍日夜浮
風塵萬事悤悤馬 宇宙一身泛泛鳧
百年幾得看勝景 歲月無情老丈夫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 의암호에 닿았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백세 몇 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은 무정하여 나는 벌써 늙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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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중에 안양루를 의암호로 바꾸어서 참하게 쓴 시는 낭송이 끝나자마자 다일 선생이 챙겨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핸드백에서 꺼내 든 것이 세필로 정성들여 쓴 ‘심경(心經)’입니다.
.....意必之萌 雲卷席撤 (의필지맹 운권석철)
子諒之生 春噓物茁.... (자량지생 춘허물촬)
.....의도와 기필이 싹트면 구름이 걷히듯 자리를 거두는 듯하고
자애와 성실함이 생기면 봄이 생기를 뿜어 만물을 싹틔우듯 한다....
마침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아 준비해온 ‘심경’의 한 구절을 꼭꼭 눌러가며 진지하게 설명해 주는 허백 누님에게 꼭 이번 학기부터 함께 공부하자고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권하였습니다.
박형주 선생이 준비해 온 양주를 한 잔씩 돌리며 흥에 겨운 자리는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을 하여야 했습니다. 마침 고경 선생의 고향 친구께서 운영하시는 막국수 닭갈비 전문 식당 ‘송암골’에서 맛있는 식사와 팔봉막걸리로 흥을 돋우었습니다. 허백 누님이 여장부의 일면을 보여서 자리는 더욱 화기애애하였습니다.
마침 오늘 생일을 맞은 박형주 선생을 위해 작은 케익을 준비하여 생일축가를 부른 것은 서울로 돌아오기 전의 작은 재미였습니다.
이 자리에 동행 하지 못한 동기들과 문 교수님도 함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닭갈비와 막국수, 그리고 맛이 끝내주는 팔봉막걸리...
좌로부터 고경, 송헌, 박형주, 허백, 다일, 가인)
다음 주 월요일(2월 28일)이 겨울방학의 마지막 모임이 됩니다. 그 다음주(3월 7일)부터는 경원대 캠퍼스에서 시창작반이 문 교수님의 지도하에 좋은 수업을 할 것입니다.
시가 좋고, 시 공부가 좋고, 시우들이 좋은 경원대 시창작반은 앞으로도 학기 중이나 방학 할 것 없이 끊임없이 좋은 시를 만나기 위한 정진의 길을 갈 것입니다..
님께서도 함께 걷지 않으시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