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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을 짊어진 삶 (장편 소설)
작가: 백화 문상희 소설가
(1부)
육이오 동란 피란살이
1953년 마성재는 12살에 전쟁고아가 됐다.
성재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1,4 후퇴 때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피난길에 나섰다.
아버지 마길태는 황해도 평산에서 건축 자재상을
운영하다 가게 물품을 북한군 전쟁물자로
몰수당하고부터 남한 땅으로 피난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여름날 피난길에서 아버지 마길태는 가족들
배고픔에 무주 근처에서 야산에 열매를 따려고
산으로 갔다가 지뢰를 밟고 안타깝게 폭사하였다.
전쟁통에 장례는 꿈도 꾸지 못했고 어머니와
어린 마성재는 근처 느티나무 옆에 묻어드렸고
마성재는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시며 성재에게 말했다.
"고생했다 성재야!
또 포성이 들리는 걸 보니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지나 보다 얼른 가자꾸나!
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밀양에 가면
우리 식구는 먹고살 수가 있다고 했단다.
일본 징집에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함께 돌아온 친구가 밀양에 산다고 했단다.
그러니까 이 주소를 들고 밀양으로 가보자 성재야!"
"네~,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겁이 나요 어머니!"
"걱정 말거라 성재야!
돌아가신 아버지가 우리를 지켜줄 거야!"
마성재는 어머니의 말을 위로삼아
아버지의 무덤을 몇 번씩이나 뒤돌아보며
길을 떠났다.
두 사람은 야산의 열매와 풀뿌리 죽을 끓여
목숨을 연명했고
다시 거창 함양땅을 거쳐 해만 뜨면 걷고 또
걸어 닷새만에 밀양땅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남긴 주소에는
"경상남도 밀양군 가곡리 조성태,, 가 전부였다.
어머니는 동네사람에게 물어 가곡리로 향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 두 사람은 가곡리에
도착해서 동네사람에게 물어서 바로 찾을수가 있었다.
"저~, 아저씨!
혹시 여기 가곡리에 조성태라는 분을 아시나요?"
"아~,
조성태요?
아이고 알다마다요!
그분이 이 동네에서 제일 부자입니다."
"네~, 그렇군요!
그럼 집은 어디쯤에 있나요?"
"네~, 저기 아랫동네 가운데 우물이 있어요!
그 우물 옆에 기와집이 바로 조성태 씨
집입니다.
기와집은 그 동네에서 한집밖에 없으니
찾기가 쉬울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자세히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고
그 아저씨는 행색이 초라한 모자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성재와 어머니는 커다란 기와집 대문 앞에서
주눅이 들어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는 사십 대 아저씨와
마주쳤다.
"어흠, 누구신가요?"
"예~, 아저씨!
그럼 아저씨가 이 집 주인되시는 분이신가요?"
"예, 그렇소만 무슨 일로 남의 집을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나요?"
그 아저씨 역시 행색이 초라해진 두 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시면 아저씨가 조 성자, 태자, 되시는 분이
맞나요?"
"예, 제가 바로 조성태입니다 만,
무슨 일을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예~, 아저씨
저는 황해도 평산에 살던 마길태 씨 안사람
입니다.
피난을 내려오다 남편은 지뢰를 밟아 돌아가셨고
돌아가시기 전에 보여준 주소를 가지고 여기를
찾아왔답니다."
"아~, 황해도에 마길태요?
그러면 그 길태의 부인과 자제분 되시나요?"
"예~, 그렇습니다 아저씨!"
"아이고 그러시군요!
그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얼른 집으로 들어갑시다."
조성태는 모자를 데리고 안채로 들어갔다.
"여보~, 민우 엄마!
이리 좀 나와보시구려!"
"예~,
무슨 일이세요?"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던 조성태의 부인이
앞치마를 두른 채 마당으로 나왔다.
"여보, 내가 예전에 말했던 그 조길태의 부인과
자제가 피난을 내려왔구먼!
자세한 얘기는 들어가서 하고 얼른 저녁상을
좀 내오도록 해줘요!"
"예, 알았어요!"
조성태 부인은 대답을 하고 빨랫줄에 걸린
수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식모와 내가 저녁상을 준비할 테니까 저기
우물가에서 우선 좀 씻으세요!"
"예~, 고맙습니다."
안절부절못하고 엉거주춤 서있던 두 모자는
우물가로 가서 대충 씻었다.
우물가에는 최신식 스텐으로 만든 대야와
세숫비누도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성재와 성재 어머니가 세수를 하고 마루 쪽으로
들어서자 조성태는 부인을 시켜 우선 입을 옷가지도
준비를 하였다.
"아주머니 옷은 집사람 옷이고요 자제가 입을 옷은
아들놈 것을 준비했으니 아랫방에서 우선 이것으로 갈아입으세요!"
"아이고 아저씨!
입을 옷까지 준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아랫방으로 가서
모자는 옷을 갈아입었다.
"아주머니~,
옷 갈아입으셨으면 얼른 방으로 들어오세요!"
조성태는 두 모녀를 정중하게 대접했다.
"아이고 아저씨,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시장하실 텐데 얼른 저녁을 드시도록 합시다."
저녁상은 부잣집답게 해물 반찬과 닭백숙까지
다양하게 올려져 있었다.
"아이고, 아저씨!
이렇게 후하게 대접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성재 어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며
오랜만에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말이 없던 성재도 그제야 배고픔에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어느 정도 저녁 식사가 끝나자 아저씨가 이것저것
물었다.
"그래, 길태가 지뢰를 밟아서 죽었다고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 역시 필리핀 전쟁터에서 일본군 진지를 빠져나와
탈영을 할 때 길태 아니면 나도 죽었답니다.
그때 내가 철조망에 발목이 걸려 꼼짝달싹 못할 때
길태의 도움으로 빠져나왔지요!
발목에 흐르는 피를 길태의 옷을 찢어서 지혈을
해주었고 절뚝거리는 저를 부축해서 도망쳤지요.
그때 일본군은 우리를 발견하고 뒤에서 총을 쐈지요!
길태와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뛰었고 우리는
구사일생으로 살았답니다.
그리고 미군에게 투항할 때도 길태가 내복을 벗어
나무에 매달아 흔들어 무사하게 탈출을 했지요!
길태와 나는 필리핀 포로수용소에서 있다가
해방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왔답니다."
"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남편에게 대충은 들었답니다."
"그때 길태는 고향 황해도 평산으로 돌아갔고
나도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왔지요!
내가 자네에게 은혜를 입고 살았으니 행여나
어려움이 닥칠때 밀양으로 내려오면 내가
그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을 했답니다.
우리는 헤어지면서 서로의 주소를 교환했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는데 길태는 죽었지만
이렇게 가족이라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예~,
어쨌거나 저들을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래 너는 이름이 성재라고 했느냐?
올해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
"예~, 아저씨
저는 마길태이고 올해 열두 살입니다."
"그렇구나
우리 큰애 민우가 열네 살이고 딸 민지가
열두 살이니까 민지와 동갑이구나!"
두 모녀는 조성태가 하는 말을 듣고 고개만 끄덕였고
조성태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애들은 지금 작은방에서 식모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있을 겁니다.
아랫채에 방이 두 개인데 한 개는 식모 아이가
쓰고 한개는 비어있으니 우선 주무시도록 하세요!"
"예~, 고맙습니다 아저씨!"
이번에는 성재가 나서서 대답을 했다.
"여보,
민우와 민지가 저녁을 다 먹었으면 이리로
좀 오라고 해요!"
"예, 알았어요 여보!"
뚱뚱한 조성태의 아내가 작은방에서 애들을 데리고
왔다.
"얘들아~,
여기는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의 부인이고
마성재는 아들이란다.
그러니 인사드리고 앞으로 친하게 잘 지내도록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저는 열네 살 조민우이고 동생 민지는 열두 살입니다.
민우와 민지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래,
둘 다 씩씩하게 자라서 보기가 좋구나!"
성재 어머니는 칭찬을 하며 화답을 했다.
"민우는 두 살 형이고 민지와는 동갑이니까
서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도록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민우는 형답게 대답을 했고 민지는 동갑이라 하니까
궁금증에 성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자, 그러면 아주머니와 성재는 아랫채에서
주무시고 너희들도 여름방학이니까 일찍 자고
내일 성재와 함께 놀도록 해라!"
뒷날 민우는 아침을 먹자마자 동네 친구들에게
놀러 나갔다.
활달한 동생 민지는 혼자서 놀기가 뭐 했는지
성재를 큰소리로 불렀다.
"야~, 성재야 밖으로 나와봐라!
우리 메뚜기 잡으러 가자!"
성재는 대답대신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응, 메뚜기를 잡는다고?"
"그래, 메뚜기 잡아서 반찬 만들면 얼마나 맛있는데
너는 안 먹어봤니?"
"응, 어머니가 해주신 거 먹어봤어!"
민지와 성재는 주전자를 들고 논으로 나갔다.
"야~, 성재야!
너도 열두 살이면 나하고 동갑이잖아
너는 생일이 몇 월이야?"
"응, 나는 구 월 달이 생일이야!"
"나는 생일이 이 월이니까
너는 나보고 누나라고 불러야겠다. 호호호"
"뭐, 그래도 나이는 똑같은 열두 살 이잖아!"
"그래, 여하튼 내 말 잘 들으면 내가 맛있는 거
많이 해줄게! 호호호"
민지와 성재는 동갑내기 친구로 조금씩 정이 들어갔다.
그 뒤로도 민지는 먹을 것이 생기면 꼭 성재와
나누어 먹었다.
성재는 내심 동갑내기 민지가 좋았지만
아버지 친구 집에 얺혀서 산다는 자격지심에
내놓고 가까이할 수가 없었다.
성재는 농사일을 거들며 때로는 민지와 놀면서
조성태의 집에 조금씩 적응을 했다.
두 모자가 조성태의 집에 들어오고 한 달 남짓한
어느 날 동네에서는 떠들썩한 행사가 벌어졌다.
삼팔선이 그어진 채로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되었다는 소식에 동네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성재야!
전쟁도 끝났다는데 너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얼마나 좋았겠니!"
"아이고 어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래도 아버지가 알려주신 덕분에 아버지 친구
집에서 우리가 편히 살고 있잖아요!"
"그래 성재야!
너 아버지가 우리 모자를 살려주셨구나 안 그래?"
"예, 맞아요 어머니!"
아버지의 친구 조성태는 밀양군 가곡리에서
대를 이은 부농으로 알려졌다.
두 모자는 밀양에서의 더부살이 인생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재 어머니는 식모와 함께 부농집의 여러 가지
집안일을 하였고 성재 역시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거들었다.
조성태 집에는 원래 머슴이 있었으나 나이 들어
살림을 차려 나가는 바람에 일거리가 넘쳐났다.
두 모자는 밥을 굶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에
만족을 해야 했다.
성재는 평산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했으나
언감생심 학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성재는 두 살 위의 조민우가 중학교 1학년 때 쓰던
교과서를 가지고 아무도 몰래 틈틈이 공부를 했다.
성재는 부농집 가을겆이 일에 전념해야 했고
성재 어머니 역시 타작한 곡식들을 마대에 담아
창고에 들여놓는 일에 열중했다.
가을겆이가 끝나고 조성태는 두 모녀를 불러서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고 아주머니와 성재가 도와준 덕분에
백 마지기 농사를 끝낼 수가 있었답니다.
수고해 주신 것에 대해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아이고 아저씨!
오갈 때 없는 우리 모자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해주신 것에 제가 더 고마운 일이지요!"
"우선 쓰실 수 있는 돈을 봉투에 좀 넣었습니다.
장날 필요한 물품을 사시도록 하고요
성재는 머슴 한 명 몫은 충분히 해주고 있으니
커서 독립을 할 수 있도록 저축을 해서 나중에 성재에게 따로 드리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아저씨!"
"성재 네가 수시로 공부하는 것을 내가 보았다.
꼭 학교를 가지 않아도 검정고신지 뭔지 하는 것을
합격하면 고등학교를 갈 수가 있다고 들었다.
열심히 일만 하면 내가 몇 년 안에 네 엄마와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해서 독립을 시켜주겠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아저씨!"
가을겆이가 끝나고 시간 날 때마다 성재는 더욱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겨울철 찬바람이 불자
기침을 하기 시작하였고 날이 갈수록 기침이 심해졌다.
그것은 어쩌면 두 달간 피란살이할 때 모진 고생을
한 이유가 원인이었다.
어느 날 아침 어머니는 일어나자마자 기침을
심하게 했고 각혈도 했다.
"아니, 어머니 괜찮으세요?
아무래도 아저씨에게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아니다, 성재야
따뜻한 물이나 한 그릇 마시면 괜찮아질 거다."
"아니에요 어머니!
그냥 이대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아요!"
성재는 곧장 아저씨에게 가서 사정을 전했다.
조성태는 바로 아랫채 어머니에게 건너왔다.
"아이고 아주머니!
성재에게 얘기를 들었습니다.
죽이라도 한 그릇 드시고 보건소로 갑시다.
제가 자전거로 모실테니 가보도록 합시다."
"아이고 아저씨!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진작에 말씀을 하셨으면 보건소에 가볼 텐데요!"
조성태는 아침을 부랴부랴 챙겨 먹고 어머니를
자전거에 태우고 십리나 떨어진 밀양 읍내
보건소로 떠났다.
성재는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일손이 잡히지가
않았다.
소여물인 볏짚을 나르다가 넘어져 발목이 겹쳐
통증을 느껴 방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를 태우고 가셨던 조성태의 자전거가
마당에 들어섰다.
성재는 아픈 것도 잊은 채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어머니는 자전거 뒤에 앉아 힘없이 조성태의
옷을 잡고 있었다.
"아이고 아저씨 고생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디가 편찮다고 하시던가요?"
"그래,
우선 어머니를 부축해서 방으로 모시고 가자꾸나!"
"예~, 아저씨!"
성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어머니를 부축해서
방으로 모셨다.
"성재야
전쟁통에 다친 사람들이 넘쳐나서 보건소 진료를
받는데 오래 걸렸단다.
그나저나 너 어머니는 병명이 폐결핵이라고 했단다.
약은 받아왔지만 잘 듣을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폐결핵이란 병은 가족에게 전염이
된다고 의사가 너 어머니 혼자 주무시게 하란다.
그러니까 너는 마구간 옆에 골방이 있으니
거기서 자도록 해라!
호박과 감자 고구마를 창고로 옮기고 군불을
지피면 따뜻해질 거다!"
"예~, 알겠습니다 아저씨!"
성재는 어머니를 때마다 식사와 따뜻한 물을
방으로 들여놓고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그러나 성재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날은 다가왔다.
동지섣달 어느 날 아침 성재가 어머니를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성재의 어머니는 피란살이 모진 고생을 겪었고
밀양땅 조성태의 집에 와서도 몸 사리지 않는
부지런한 성격 탓에 병을 키웠고 결국은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성재의 오열 속에 조성태는 일꾼들을 사서
친구 마길태의 부인을 양지바른 뒷산에 묻어드렸다.
조성태는 결국 1953년 겨울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잃고 혈혈단신 고아가 되었다.
*비운의 짊어진 삶은 총 6부작으로 완성됩니다*
*아래는 국가기록원에 관리 등재된 사진입니다*
첫댓글
폭설이 내린 날 미끄러워서
일도 안 나가고 뭐 했냐구요?
그래요 뭐, 방구석에 처박혀
소설 썼답니다 됐나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