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배생활이 오히려 ''실학(實學)의 대가 정약용'을 만들었습니다.
강진은 <다산초당(茶山草堂)>과 <영랑생가(永郞生家>가 있는 곳이라 꼭 들러야 합니다.
목포와 해남에서 제대로 된 한정식을 못 먹은 아내는 '다산초당'보다 "맛의 고장' 강진을 벼르고 있었습니다. ^^^
저녁해는 서산에 걸려 있는데, 강진 길목에 있는 다산초당을 찾아 갔습니다.
정조 사후(死後) 벌어진 천주교 탄압의 신유박해(辛酉迫害)로 '폐족(廢族)'이라는 정약용의 표현대로, 정약용 집안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18년의 유배 생활 중 11년을 여기 다산초당에서 보냈습니다. 권세가들은 그를 세상 밖으로 밀쳐냈지만,
그로 인해 정약용은 사람 사는 세상에 눈을 뜨고, 세상을 위한 학문에 정진, 목민심서를 비롯한 수많은 연구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다산초당 가는 산길에서 대전에 살며, 부친의 고향이 이 곳이라는 한 젊은이를 만나 안내를 받았습니다.
유배생활 보내는 집답게 산 속 비탈진 곳에 세워진 초라한 거처, 그는 이 집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 학문의 터를 닦고 대들보를 세우고, 기와를 얹었습니다. 젊은이도 '실학(實學)의 대가(大家) 정약용'을 강조하며, 카메라에 나를 담아주었습니다.
* 여행의 재미가 맛 찾아 삼천리 ? 맞습니다.
아내가 택시기사를 통해 얻은 정보로 강진군청 골목에 있는 해태식당에서 25가지 반찬 한정식을 먹었습니다.
좁은 골목, 허름한 이 집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오는 한국의 3대 한정식집에 꼽힌다는 것은 서울에 와서 알았습니다.
작은 상위에 가득 놓인 반찬들, 그 위에 접시가 또 놓이고,
장어, 조기, 광어, 낙지, 생선회, 새우, 전어무침 등 강진만 일대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에 생고기, 갈비찜 등 육류가 올라오고,
젓갈, 튀김, 김치, 매생이국 등 다양한 밑반찬, 홍어와 돼지고기에 묵은 김치로 어우러진 홍어삼합에다, 화전, 죽순, 가자미찜, 대합구이, 버섯탕수육. 2인분 6만원이 오히려 적다 싶었습니다.
맛도 엄마 손맛, 외갓집 맛, - 전통방식 그대로의 재료를 쓰면서 조리법도 옛날식, 바로 맛의 비법입니다.
차는 주차장에 안전하게 대놓았겠다, 하여튼 여행 3일째 밤에 처음 입에 대는 잎새주 한 병이 그렇게 맛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 영랑생가 앞에서, * 장흥 토요장은 7일만에 열리니까 활기가 돕니다.
9월12일 토요일.
여행 4일째 마지막 날 아침, 눈 뜨기가 무섭게 곧바로 <영랑생가>부터 찾아 갔습니다.
강진에는 찜질방이 없다는 말 처음 들었고, 할 수 없이 어젯밤은 <모두모텔>이라는 여관방에서 잤습니다.
아내는 집에서 준비해 온 베개와 얇은 이불을 덥고 잤는데도 여관 특유의 냄새때문에 잠을 설쳤고, 동 트기만 기다린 눈치입니다.
아침비는 실비처럼 내리는데 모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영랑생가는 사립문이 굳게 잠겨 있어 사진 한 장 찍고 울 안을 기웃거렸습니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슬픔에 잠길 테요.
"모란이 떨어져야 나의 봄이 간다"는 지독한 애착, 이 시의 주제는 모란의 실체를 캘 때마다 달라지는데 묘미가 있습니다.
* 장날은 우리네 세상살이가 한 곳에 모여 드는 저자거리입니다.
예정에 없던 장흥으로 차는 달립니다.
어제 다산초당에서 만났던 젊은이가 추천한 장흥토요시장에 가기 위해섭니다.
토요일만 장이 서니까 7일장, 농수산물 풍부한 남도의 시장답게 시장은 먹거리가 넘쳐나고 사람들도 활기찹니다.
아내는 먼저 대나무 체반 큰 것 두 개, 작은 것 하나 사서 차에 넣고, 본격적인 장보기에 나섭니다.
먼저 소머리국밥 잘 한다는 식당 수소문해 드디어 발견, 국밥으로 푸짐하게 배를 채웠습니다.
이어 국밥집 추천으로 딸이 운영한다는 정육점 찾아가서 - 국밥집 바로 건너편입니다. ^^^ 소고기 몇 근 사서 진공포장해 담고,
진짜 목포 먹칼치 파는 가게 탐문하여 외교적 수완 발휘하여 최저가로 한 박스 사니까,
부산이 고향이라는 주인남자 큰 삼치 한 마리 소금 뿌려 덤으로 주고,
소금 보니까 탐이 나서 간수 뺀 천일염 한 자루를 1만원에 사고, 처음 본 주인여자 목디스크 걱정도 큰언니처럼 살뜰하게 해 주고,
이렇게 아내는 시장 상인처럼 분주하고 활기차게 물건을 재미나게 샀고, 나는 돈만 내야하는 물주(物主)일 뿐입니다.^^^
* 녹차밭은 시원하고 상쾌합니다.
보성 녹차밭은 입구 양 옆에 서 있는 삼나무 열병식부터 야 ! 의 시작입니다.
차 밭 조성과정에서 방풍림으로 심은 삼나무가 지금은 <대한다원>의 명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진한 숲의 향내가 가슴 속까지 상쾌하게 스며들고, 가로등불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이국적인 숲길은 영화 속 한 장면.
나무 계단을 올라서자마자 시야에 펼쳐지는 녹차밭, "연두빛 카펫"이 봉우리까지 깔려 있습니다.
활성산 자락 해발 350m, 오선봉 주변의 민둥산에 차나무를 심어 차밭을 조성한 지 50여년.
삼나무 편백나무 주목 은행나무 동백나무 300여만 그루가 관상수와 방풍림으로 다원에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고,
170여만 평의 땅 위에 차나무 밭만 50여만평, 차나무는 580여만 그루, 한마디로 '눈이 시원합니다.'
다성(茶聖)으로 추앙 받는 초의선사가 녹차를 예찬하는 시를 썼습니다.
옥화 한잔 기울이니 겨드랑에 바람 일어
몸 가벼워 하마 벌써 맑은 곳에 올랐네.
내린 커피보다 자판기 커피를 더 선호하는 나도, 이 곳 녹차밭에 오기 전에 대한다원의 차가 가장 맛 있었습니다.
비록 초의선사처럼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오르는 신선의 경지는 못 미치지만, 아슴프레 차의 멋과 맛을 알 듯합니다.
* 송광사 일주문 앞에 서서 남도여행의 마무리를 합니다.
순천의 송광사도 대웅전 안에는 대흥사처럼 신자들의 기도가 간절합니다.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서산대사가 승병을 일으켜 왜적과 일전을 벌인 역사도 구국(救國)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합천 해인사(法寶), 양산 통도사(佛寶)와 더불어 삼보사찰(三寶寺刹)로 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
법당 앞에 있는 목백일홍이 한창 붉어 아내를 세워 놓고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선운사의 계곡길을 본 탓인지, 송광사 일주문까지의 깊고 넓은 계곡을 보고도 아내는 별 감동이 없는 듯 싶었습니다.
하기사 아까 해우소를다녀온 아내, 한참 코를 쥐고 숨을 안 쉽니다.
외국인이 공부하는 국제선원도 있는 절인데, 왜 송광사만 재래식 화장실인지, 나도 방문했다가 코를 감싸고 나왔습니다.^^^
법당을 기웃거리다가 아내가 스님들이 참선하는 선방인 수선사로 과감하게 들어갑니다.
나는 돌계단에 앉아 기도를 올리는 신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남도여행의 마지막 여정,
송광사에 머무르며 이제 속세로 돌아가서도 일상(日常)에 충실하리라, 마음 속에 단단한 매듭을 묶으며 합장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