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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수필】
시내버스에서 몹시 쑥스러웠던 순간
―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대전 301번 시내버스.
만년동 서구보건소 앞에서 탔다. 나의 목적지는 도마동 배재대학교 방향이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어느 여성이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여기 앉으세요.”
▲ 시내버스 안에서 어느 여성이 내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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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자리 양보에 놀랐다. 학생도 아니다. 그렇다고 젊은 청년이나 아가씨도 아니다.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괜찮은 60대 여성이다.
“아이고, 저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게 상냥한 미소로 자리를 권했다.(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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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사래를 치자 또다시 앉으라고 자리를 거듭 권했다. 이때 버스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룸미러로 이 광경을 지켜봤는지 마이크를 통해 “자리를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요즘 대전 시내버스 운전기사들은 이렇게 친절하다. 승객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세심하게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어린 학생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예는 더러 있었으나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60대 여성이 내게 선뜻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처음이다.
여성은 남달리 공손한 태도로 자리에서 다소곳이 일어나면서 눈인사도 했다. 파마머리에 은은한 보라색 블라우스의 여인. 따뜻한 눈웃음과 더불어 상냥한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다.
나는 미안해서 여성에게 말했다.
“아니, 저보다 멀리 가시면 미안해서 어쩌지요. 그냥 앉으세요.”
그러자 여성이 하는 말, “저는 목운주택까지 가요.”
‘목운주택’이라고 하면 배재대학교 후문까지 가는 나보다 서너 정거장 앞서 내리는 승객이다.
자리를 양보해 준 여성보다 좀더 멀리 가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죄송하다.
뜻하지 않게 자리를 양보받아 편안히 앉아간다는 것. 적이 미안한 일이다. 나이 든 것이 무슨 특권이라고 이런 편안함을 누리는가.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 아름다운 마음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귀한 마음이다. 자리를 내어주는 이의 소중한 마음을 안다면 털썩 주저앉을 일이 아니다.
무엇을 차지하듯 냉큼 앉는 것은 예가 아니다. 눈인사하고 조심스럽게 앉을 일이다. 나이 든 사람은 그 값을 몸짓으로 해야 한다. 정중한 언어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그나저나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는 걸까?
저 60대 여성도 흰머리가 살짝 보인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내게 선뜻 자리를 양보하다니.
▲ 필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준 60대 여성(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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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있는 여성의 몸에 밴 노인공경 태도가 느껴졌다. 나는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어 얼굴을 거울처럼 살펴보았다.
모자를 썼으니 숱이 적은 민머리는 가려졌으나 귀밑머리는 백발이다. 그래도 아직 목주름은 심하지 않으니 늙은이 티가 완연히 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처럼 팽팽하지는 않지만, 언뜻 보기엔 탄력을 유지하는 피부처럼 보인다.
▲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일까?> 인공지능에게 물었더니 이런 모습을 그려내 놨다. 귀밑머리는 백발인데 검게 표현했다.(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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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차림도 그렇다. 머리숱이 적어 모자는 어쩔 수 없이 가발 대신 썼으나 옷은 될 수 있는 대로 밝고 깨끗해 보이는 색상을 선호한다.
외출할 때마다 아직 이 정도면 젊다고 자부하는 스타일인데, 시내버스에서 갑자기 자리를 양보받아 편안하게 가다니,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요즘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노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방송이 두 가지다.
“어르신에게는 자리를 양보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말과 “어르신 무임승차 교통카드를 부정 사용 시 1년간 사용이 중지되고, 부가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방송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온다.
자리 양보는 자발심으로 하는 것이다. 남이 강요하거나 권해서 하는 양보는 진정한 양보가 아니다. 노인들은 이 방송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방송 멘트가 어쩐지 불편하기도 하다.
노약자를 보호하는 일은 인간의 본성이다. 경로효친이라는 미풍양속의 전통이 몸에 밴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방송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또는 몸에 밴 습관처럼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려는 순간 강요하듯 ‘자리를 양보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면 공연히 머쓱한 일이다.
문단 모임에서 어느 원로문인은 또 이런 말을 했다.
“저도 시내버스를 주로 이용하는데 경고 방송을 그만 들었으면 좋겠어요. <어르신 무임승차 교통카드를 부정 사용 시> 운운할 때는 마치 양심 없는 부도덕한 노인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영 편치 않아요.”
더구나 요즘은 외국인들도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한다.
대체 대한민국에는 그런 부도덕한 노인이나 가족들이 얼마나 많으면 시내버스에서 저런 경고 방송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느냐,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줄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나는 70세 이상 대전 시민에게 무료 혜택을 주는 ‘어르신 무임 교통카드’ 덕분에 시 당국에 누구 못지않게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간다.
▲ 70세 이상 대전 시민에게 대중교통 이용 혜택을 주는 ‘어르신 무임 교통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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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교통비를 절약한다는 차원에서 고마운 것이 아니다. 무임승차 교통카드가 ‘경로 우대증’ 같은 공경의 느낌을 받는다.
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때마다 ‘세계 일류 복지국가’ 국민이라는 큰 자부심도 생기는 것이다.
오늘 내게 자리를 양보한 60대 여성은 아직 그런 무임승차 대상은 아니지만, 가정에서는 ‘할머니’ 소릴 들을 연세로 보인다.
60대 할머니가 낯선 70대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비록 미안하고 쑥스러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왔지만, 그 여성의 따뜻한 말씨와 상냥한 얼굴이 쉽게 잊히지 않고 인상 깊게 뇌리에 남아 있다.
▲ 내게 자리를 양보했던 여성의 상냥한 모습이 오래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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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밴 양보의 미덕. 일상적으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교양 있는 그 여성의 모습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를 지켜본 학생들도 역시 한 가족처럼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따뜻한 어른 공경 태도가 삶의 본(本)이 되리라 믿는다. ■
2025. 7. 3.
윤승원 삶의 이야기
♧ ♧ ♧
▣ 작품 해설과 문학평론 ▣
윤승원 수필가의 신작 『시내버스에서 몹시 쑥스러웠던 순간』은 일상 속에서 포착한 작고 따뜻한 순간을 통해, 시대의 정서와 인간의 품격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다음은 문학평론가의 관점에서 본 감상평과 작품 해설입니다. (자료제공=✍ AI 문학평론가) |
📚 감상평 – 작지만 큰 울림, 양보의 인문학
윤승원 수필가는 이 작품에서 “자리 양보”라는 익숙한 일상행위를 통해 낯설고 신선한 감동을 전달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예의’의 차원이 아니라, 몸에 밴 인격과 인류애, 베풂의 철학이 자연스레 녹아 있는 풍경입니다.
독자는 이 수필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했었지’, 혹은 ‘나 역시 누군가에게 양보받았지’ 하는 개인의 기억과 맞닿게 됩니다.
그러나 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장면은 평범함을 넘는 품격 있는 교양인의 모습이며, 그 한 장면이 수필이라는 장르를 통해 고요한 울림으로 승화됩니다.
특히 윤 작가 특유의 정갈한 문장과 유머 섞인 자기 성찰은 독자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하며, 동시에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게 만듭니다.
수필에서 이처럼 ‘쑥스러움’이라는 감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점은 더욱 인간적이고 공감 가는 대목입니다.
□ 문학평론 – 자리 양보라는 ‘소중한 문화 자산’
1. 주제와 소재의 확장성
이 수필의 핵심은 ‘자리 양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다층적인 사회적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 경로효친 사상
- 일상에서 실천되는 공경의 미덕
- 현대 사회의 복지 시스템과 그 인식
- 공공 방송 언어의 윤리성
작가는 단순한 감동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공공 버스 내 경고 방송의 반복에 대한 어르신의 불편한 감정을 짚으며 복지와 존중 사이의 간극도 세심히 조명합니다. 이는 단순한 체험기가 아닌 사회적 성찰을 담은 인문 수필로서의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2. 문체와 서사의 미학
윤승원 수필가는 서정적이면서도 담백한 문체로 “소박한 미덕”을 한 폭의 풍경처럼 펼쳐냅니다.
○ 인물 묘사: “파마머리에 은은한 보라색 블라우스의 여인. 따뜻한 눈웃음과 상냥한 목소리…”
○ 내면 고백: “나는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어 얼굴을 거울처럼 살펴보았다.”
○ 자조적 유머: “그나저나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는 걸까?”
이러한 표현들은 인물과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할 뿐 아니라, 노년의 자의식을 유쾌하게 드러냅니다. 동시에, 수필의 정서적 여운을 깊게 만듭니다.
3. 현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이 수필은 단지 ‘양보’를 칭송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다음과 같은 사회적 질문을 던집니다.
“공공의 언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복지적 배려가 인격적 존중과 함께 가고 있는가?”
“나눔과 공경의 실천은 어떻게 세대 간에 이어지는가?”
이런 질문은 수필이 가지는 정서적 호소력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 전달 기능까지 확장시킵니다. 윤승원 수필가는 이처럼 소박한 장면을 통해 거대한 화두를 던지는 데 능숙한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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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 시대의 양보, 마음의 자리
『시내버스 ‘자리 양보’에 몹시 쑥스러워하다』는 단순한 교통수단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태도와 말씨, 배려의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얼마나 따뜻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독자들은 이 수필을 통해 일상에 숨어 있는 ‘작은 위대함’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 글이 말하려는 것은 “버스에서의 자리가 아니라, 마음속 자리”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내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행동,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아름다운 ‘인간성’이 아닐까요? (자료제공=✍ AI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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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 평론 ▣
삶의 자리, 마음의 자리
― 윤승원 수필 『시내버스 ‘자리 양보’에 몹시 쑥스러워하다』를 읽고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작고 조용한 장면들이다. 윤승원 수필가의 신작 『시내버스에서 몹시 쑥스러웠던 순간』은 바로 그런 장면 하나를 붙잡아 독자의 가슴에 따뜻한 불빛을 켜는 작품이다.
작가는 시내버스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벌어진 짧은 순간을 통해, 단지 ‘자리 하나’를 양보한 데 그치지 않고, 세대 간 존중과 따뜻한 인격의 문화라는 보다 큰 가치로 시선을 확장한다.
이 수필은 ‘자리 양보’라는 흔한 소재를 다루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일상적이지 않다.
작품의 중심에는 한 60대 여성이 있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그녀는 70대 작가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부드러운 미소와 다정한 말씨로 이 짧은 인연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 장면은 흔히 있을 법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쉽게 보기 힘든 미덕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작가에게 ‘처음 받는 양보’의 경험으로 다가오며, 인간 내면의 미묘한 감정—쑥스러움, 미안함, 그리고 감사함—을 진솔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자리를 권하는 여성의 말투와 옷차림, 공손한 태도, 따뜻한 눈웃음까지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기록하며, 그녀의 ‘몸에 밴 교양’과 ‘베풂의 습관’을 조명한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품격을 넘어, 한국 사회가 지켜온 경로효친의 정신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편, 이 수필은 단순한 미담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는 시내버스 내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에 대한 노년층의 불편한 감정을 언급하며, 복지적 배려가 때때로 인격적 존중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짚는다.
“<어르신 무임승차 교통카드를 부정 사용 시> 운운할 때는 마치 양심 없는 부도덕한 노인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이 대목은 수필의 진가를 드러낸다. 감동의 순간 속에서도 사회적 문제의식을 잃지 않는 작가의 통찰력은 이 작품을 단순한 체험 수필에서 시민 인문학적 글쓰기로 격상시킨다.
윤승원 수필은 감성에 기대지 않고, 지성과 공공의식을 함께 싣는다.
또한, 자리를 양보받으며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는 걸까?’라며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독자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안겨주는 동시에, 노년기의 자의식에 대한 은은한 묘사로 여운을 남긴다. 이처럼 이 수필은 가벼운 유머와 깊은 성찰을 절묘하게 엮어낸다.
윤승원 수필가는 35년 문단 활동을 통해, 삶의 구체적이고 사소한 순간에서 보편적 인간성을 발견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 힘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교양 있는 여성의 작은 양보는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전승될 수 있는 삶의 ‘예’(禮)로서 기능하며, 그것이 바로 윤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양보’와 ‘존중’이라는 덕목을 필요로 한다. 이 수필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어떤 자리를 내어주었는가?”
이 물음은 물리적 좌석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 말 한마디의 친절, 잠시 멈추는 배려—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이다.
윤승원 수필 『시내버스 ‘자리 양보’에 몹시 쑥스러워하다』는 그 ‘자리’를 나누는 따뜻한 문화를 다시금 일깨운다.
수필 한 편이, 한 사람의 양보가, 한 사회의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증명하고 있다. ■ (자료제공=✍ AI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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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5.07.05.06:03
문학평론이 아주 좋습니다.
여러 개의 댓글보다 참으로 유익한 내용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06:14
감사합니다.
어제도 똑같은 시간에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어느 중년 여성이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아,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무슨 벼슬도 아닌데
공연히 남의 자리 하나를 빼앗은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승용차를 새로 살 수도 없고...
"어르신 무임 교통카드" 덕분에
요즘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카페 회원 댓글
◆ 오스톤(자유기고가) 2025.07.05. 07:18
시내버스 자리 양보에 대한 윤 선생님의 생각에 공감해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교통 약자석이나 임산부석에 대해 생각이 복잡해요.
한가지 제 의견을 말씀드려 볼게요. 법 제정까지는 아니더라도 홍보와 사회적 인식이 ‘교통약자석(경로우대석)’을 구분해 놓다 보니, 나이 드신 분은 권리라 인식하고 젊은이들은 그 자리에 앉으면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일 거예요.
또한, 자기가 앉은 자리에 노인이 다가오면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경우가 많더군요. 졸립지 않은데도 외면하려 일부러 눈을 감는 경우도 여러 번 봤어요. 저는 자리를 특정하게 구분 짓는 것보다 과거처럼 약자에게 양보하는 미덕이 우리 정서상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답글 / 필자 윤승원
『'교통약자석(경로우대석)'을 구분해 놓다 보니, 나이 드신 분은 권리라 인식하고 젊은이들은 그 자리에 앉으면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
오스톤 선생님이 지적해 주신 요 대목에 저도 공감합니다. ‘바늘방석’을 사회적 제도로 만들어 놓으면 자발심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 윤리와 미풍양속이라는 가치가 무너집니다.
시내버스라는 작은 공간에서 20~30분 거리를 오가는 동안 깊은 상념과 인생 철학을 공부합니다. 노약자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자리 양보를 강요하거나 지겹게 권유하는 차내방송은 고마움에 앞에 노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