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하는 성격에 금방 또 반성도 잘해/예민해 밤잠은 설치고 존심도 강해/황당한 사고에 썸타임 진실은 보여/많이 좋아만 하기엔 내 맘만 다치고 있어”(김현정 노래 ‘B형 남자’). 요즘 혈액형별 특성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높아지고 있다. 관련 서적들이 잇따라 출판되는가 하면 라는 제목의 영화도 만들어진다.
최근 국내의 한 병원에서는 임상분석을 통해 혈액형과 질병 유형 사이에 어느 정도 상관성이 있음을 밝혀내 눈길을 끌고 있다. 알고보니 영국과 미국에서도 이미 유사한 분석조사들이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의 한 조사는 O형과 A형의 평균수명이 20세 이상 차이가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혈액형에는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상식밖의 상식’이 의외로 많다. 혈액형은 조사 시기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가 있으며, 한쪽이 AB형인 부모 아래서 O형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혈액에 관한 상식은 어디까지 맞는 것일까.
학교 혈액 검사에서 AB형은 결과가 나온 중학생 은진(여·14)이는 말못할 고민에 빠졌다. 아빠는 A형이고 엄마는 O형인데 자신이 AB형이라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엄마나 아빠 두 분 중 한 분이 친부모가 아니거나 더욱 심하면 자신이 어디서 입양됐던 것은 아닐까. 평소 속이 깊은 은진은 자신의 출생에 무슨 비밀이 있거나 자칫 부모님 사이에 불화라도 생길까봐 집에서 말도 못하고 혼자서 몇 달을 끙끙 앓아야 했다. 그런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상상은 더욱 끔찍해져 갔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고 엄마 아빠에게서 거리가 느껴졌다.
은진의 고민은 결국 혈액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해결되었다. 유전자 검사까지 동원한 정밀 검사에서 은진은 분명한 친부모 사이의 친자식임이 규명이 되었던 것이다.
A형과 O형의 부모 사이에서 AB형의 친자가 과연 나올 수 있는 것일까.
“cis-AB라고 해서 AB형의 일종으로 유전방식이 특이한 희귀 혈액형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정밀검사로도 발견이 어려워 유전자검사까지 받아야만 발견된다. AB형과 B형 부모 사이에서 O형이 나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 혈액형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특성을 갖고 있다. 때로는 오랫동안 잘 알려진 상식을 뒤집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혈액형에 비하면 Rh- 정도는 그래도 덜 희귀한 편이다.
혈액형 검사와 관련한 유사 사례는 많다. 19세 진수군은 헌혈을 위해 ‘헌혈의 집’에 갔다가 자신의 혈액형이 AB형임을 알게 됐다. 아빠는 B형, 엄마는 A형, 동생이 AB형이니 자신도 AB형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몇 달 전 다시 헌혈을 하러 갔더니 B형으로 나왔다. 알아보니 특이성 B형이었다.
30대 여성 이유정씨는 작은 수술을 받기 위해 혈액검사를 해보니 그제까지 B형으로만 알고 있던 혈액형이 A형으로 나와 놀랐다. 역시 특이성이어서 종전 검사에서 쉽게 오판이 되었던 것이다.
과연 이들의 혈액형은 도중에 바뀐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혈액형이 저절로 바뀌는 일은 없다. 있다면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 빈혈 등으로 다른 사람의 골수를 이식받은 경우 자신의 혈액형과는 상관없이 골수를 기증한 사람의 혈액형을 따라 새로운 혈액형을 갖게 되는 경우뿐이다.
그렇다면 검사원의 실수 때문에 잘못 나온 것일까. 아주 간혹 그런 경우는 있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원인은 역시 희귀혈액형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혈액형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은 대개 cis-AB, weak 혈액형 등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약한(weak) 혈액형이란, 분명 ABO 혈액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서도 이에 해당하는 항원의 작용이 미약한 혈액형을 말한다. weak-A형은 A형 항원이, weak-B형은 B형 항원이 보통의 경우보다 약하기 때문에 일반의 혈액 검사에서 판단에 착오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만약 자신의 혈액형이 예전 검사결과와 다르게 나온다면 반드시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정확한 혈액형을 알고 있어야 의학적으로 응급을 요하는 경우에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서 있는 헌혈버스를 슬슬 피해 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헌혈을 하면 건강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헌혈할 때 한번에 뽑는 혈액의 양은 보통 4백cc. 성인 몸에 지닌 총 혈액량의 1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물론 건강한 사람에게 이 정도 양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헌혈까지는 아니지만, 임신중인 여성이 출산 후 자가수혈을 위해 혈액을 채취해도 태아의 상태나 산모의 심전도, 맥박수, 혈압 등에는 아무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요즘은 혈액 성분을 모두 빼내는 전혈헌혈 대신 일부 성분만 빼내고 다시 헌혈자에게 넣어주는 혈소판 헌혈, 혈장 헌혈 등 성분헌혈도 가능해 부담은 한결 적어졌다. 혈소판 헌혈은 3일 후 다시 헌혈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
핀란드 공중보건연구소는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사람의 심장마비 발생 위험은 헌혈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보다 훨씬 낮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피속에 남는 잉여 적혈구가 헌혈과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가면 몸 속에 쌓인 철분이 감소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철분은 피를 만드는 데 필수 성분이지만 피속에 쌓이면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 쉽다.
백혈병이나 암환자들은 항암치료를 하고 난 후 혈액을 응고시켜 주는 혈소판을 반드시 수혈받아야 한다. 비장이 커지거나 세균에 감염돼 패혈증이 생기는 경우에도 혈소판이 감소한다. 혈소판이 감소하면 자주 멍이 들고 피가 나도 지혈이 잘 되지 않아 위험하다.
그런데 국내 혈액은행에 보관된 혈액은 언제나 절대 부족이다. 백혈병이나 암 환자에게 필요한 혈소판은 연간 23만 유닛이지만 적십자사가 성분 채집하는 혈소판은 연간 3만9천 유닛 정도로 수요량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권 교수는 “자신이 기억하기 좋은 생일, 결혼기념일 등을 정해 매년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것은 자신의 건강에도 유익하고 생명을 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 궁합이 다르다는 등 혈액형과 관련된 속설들이 많다. 업무 배치에 혈액형을 참고하는 기업들도 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상관성이 입증된 것은 혈액형과 질병특성 사이의 관계다.
지난 11월 서울아산병원은 내원환자 1만1천여 명의 혈액형과 질병 종류를 분류해 분석한 결과 A형에서는 위암과 류머티즘관절염, 관상동맥질환, B형은 유방암당뇨병, O형은 십이지장궤양, AB형에서는 패혈증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앞서 영국 런던대 연구팀은 O형은 바이러스성 질병에 저항력이 상대적으로 높고 A와 B형은 세균성 질병에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혈액형에 따라 수명이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미국인 5천여 명 대상의 조사에서 A형은 평균수명이 61.6세, AB형은 69.5세, B형은 78.2세, O형은 86.7세 순으로 긴 것으로 분석됐다.
권 교수는 “혈액형은 단순히 수혈 또는 장기이식 외에 세균감염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일부 질병과도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체에 침투하는 미생물도 각기 혈액형을 갖고 있는데, 자신과 비슷한 혈액형의 몸에 더 쉽게 침투한다”고 설명했다.
혈액형이 다양한 것은 사실 유전자가 다양하기 때문이고, 유전자가 다르면 체질이나 질병의 감수성도 달라질 것은 추정하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직 혈액형과 질병특성, 성격 등과의 관계는 이제 통계적 유의성이 드러나고 있을 뿐 과학적인 기전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상관성은 의지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한편 한방에서는 혈액형과 한방 이론상의 사상체질 사이에 관련성 여부를 찾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지금까지는 별다른 연관이 없는 것으로 결론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