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영 묵상노트]
용서와 사랑의 편지 빌레몬서(9)
빌레몬서 1장 18절-19절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몬 1: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몬 1: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이제 이 서신을 끝맺으려 하면서 오네시모의 일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즉, “그가 만일 네게 불의한 일을 하였거나(εἰ δέ τι ἠδίκησέν σε), (또는 ἢ)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ὀφείλει)”이라고 말함으로써, 오네시모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주인의 물건을 훔쳐 그것을 이용하여 로마에까지 올 수 있었던 사실을 이렇게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오네시모가 왜 주인의 물건을 훔쳤을까? 그냥 무한한 동경심에 자신의 노예 신세를 벗어나고 또한 당대 최고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로마를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을까? 주인과의 불화로 인하여 앙갚음을 하기 위하여 물건을 훔쳤을까? 아니면 다른 노예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여 흔히 말하는 왕따를 당하고 있어, 이곳을 피하기 위하여 주인의 물건을 훔쳐 여행비로 사용을 한 것일까? 우리는 그 어느 것 하나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분명한 답을 할 수 없다.
어쨌든 불의한 일로 도망을 갔거나 아니면 주인에게 어떤 채무를 지고 있었지만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도망을 간 것이건, 분명히 오네시모는 그의 주인에게 경제적인 손실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대부분 성경학자들은 오네시모가 주인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을 갔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필자 역시 이렇게 생각을 한다. 다만 바울은 오네시모의 잘 못에 대하여 불의(ἠδίκησέν)만을 단정하지 않는 것은, 빌레몬을 향하여 오네시모를 좀 더 신뢰하도록 하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는 중에 어느 일반의 말만을 듣고 단정하는 예(例)가 많은데, 바울은 빌레몬의 직접적인 말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오네시모의 일에 대하여 오네시모를 통하지 않고 혹 골로새로부터 온 에바브라로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좀 완화된 표현을 한 것은 아닌지? 여러 모로 바울의 인격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바울은 이렇게 빌레몬이 진 빚에 대하여 먼저 자신이 갚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18절 후반 절은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ἐλλόγα, 나에게 책임을 돌려라)”라고 하고 있다. 바울은 정말 자신이 이렇게 오네시모의 빚을 갚을 정도로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을까? 우리는 바울이 한 말을 단순히 의례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그가 한 말은 진심이라 이해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바울을 향하여 과거 벨릭스가 그를 만났을 때 그가 자신에게 뇌물을 줄 만큼 충분한 자산을 소유했다고 생각한 것을 보면(행 24:26), 그리고 그가 로마에 감금 상태로 2년 동안 체류하는 동안 자비로 셋집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행 28:30), 이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어쩌면 바울은 복음 전하는 전도자가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말하면 일류 재벌이 될 수 있는 능력도 겸비한 사람이 아니었든가? 텐트 만든 사업 수완은 물론 기술자였지만,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포기한 사람이 아니든가. 물론 바울이 지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수 있다면, 그가 이처럼 직업을 가지고 일을 했다는 것은 아니고 틀림없이 빌립보 교회의 지원에 힘입었기 때문일 것이다(빌 4:14-19 참조).
그러나 바울은 이와 같은 모든 일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배설물로 여기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이렇게 진력을 다해 온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오네시모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것으로 보면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의 고난도 마다하지 않으신 주님의 모습을 읽는다. 이는 마치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빚이 있듯이, 우리도 빚을 지고 있는 자들이다. 바울이 오네시모의 실수에 가담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부담하겠다고 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가 치러야 할 죗값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던 것 아니겠는가?(히 4:15, 7:25) 바울이 오네시모의 빚을 담당하려 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상의 죄악을 담당하셨다(사 53:6; 요 1:29; 히 7:27, 9:26, 26).
바울은 이와 같이 빌레몬에게 말한 후에 19절에서 이 사실을 확인시킨다. 즉, “친필로 쓴다”(ἐγὼ Παῦλος ἔγραψα τῇ ἐμῇ χειρί)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더 확답을 준다. “내가 갚겠다”(ἐγὼ ἀποτίσω, 내가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여기 “친필로 쓴다”는 의미는 일종의 계약서와 같은 의미이다. 흔히 차용증서, 기타 계약서에 도장을 찍거나 싸인을 하듯이 이 당시에도 동일하게 자필로 이 사실을 약속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손으로(χειρί) 쓰게 하였는데, 바울은 스스로 자신이 이렇게 친필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갈 6:11 참조).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문구가 있다. 바울은 이렇게 친필로 자신이 오네시모의 채무를 이행할 것임을 약속하면서, 19절 끝에서는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렇게 바울이 쓰고 있다. 무슨 말일까? 바울은 “그런데 너는 나에게 빚진 것이 없니?”라고 묻는 것이다. 바울은 빌레몬을 향하여 “네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내가 전도하였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너는 나에게 영적인 빚을 진 것 아닐까?” “빌레몬 네가 나에게 진 빚을 생각한다면, 오네시모가 너에게 진 빚도 한 번 생각해보게나.” “그러나 나는 오네시모가 진 빚을 네게 갚으려 하네.” “나의 형제 빌레몬이여….” “나는 네가 나에게 진 빚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 하네(ἵνα μὴ λέγω σο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