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쁠 '희' 싹 '아'

<A name="[문서의 처음]"></A> 희망을 연주하는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 희아를 처음 본 것은 1998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학생 시절 방학이 되어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아침 교양프로에 희아와 희아엄마가 나오는 것이었다. 저렇게 불우하게 태어난 아이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인터뷰를 듣다 보니 점점 빠져 들었다. 마지막에 희아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주르르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희아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월드컵이 있던 해 오월이었다. 신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수녀님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구산성지에서 만나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수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녀님 본당에 희아네 모녀가 사는데 함께 만나도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 날 우리는 성지에서 만나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고 구산성당에 들렀다. 마침 성당 문이 열려 있고 성당 안에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다. 희아와 엄마가 피아노에 앉고 나만이 넓은 성당에 관객이 되어 꿈결 같은 콘서트를 가졌다. 그렇게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희아는 벌써 네 번째나 내가 부임했던 성당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해주었다. 그 네 번째 감동적인 공연을 지금 소개할까 한다.  지난 달 성모성월의 마지막 날 저녁, 죽전1동 하늘의문 성당에서는 희아를 초청하여 죽전야외음악당에서 음악회를 가졌다. 1300명 남짓 신자와 비신자가 어우러진 야외음악당은 성모님의 품안처럼 아늑했다. 주변에 활짝 핀 장미울타리도 한몫을 했다. 나는 8시 정각에 수단자락을 휘날리며 무대에 올라가 시작기도를 하였다. “가정의 달이며 성모님의 달인 오월의 끝날 평화로운 저녁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희아는 네 손가락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희아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희아의 꿈은 사랑과 희망이 없는 곳에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희아 이름의 ‘희’자는 기쁠 희(喜) 자요, ‘아’는 싹 아(芽) 라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의 가슴속에 기쁨이 싹트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소리’ 청년성가대와 함께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 봉헌하였다. 이어서 청년성가대는 'To ta pulchra'(아름다운 성모님께)와 ‘기쁨’이라는 창작성가를 멋들어지게 불러주었다. 청년들이 퇴장하고 난 뒤 파란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희아가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걸어 나왔다. 장내가 조용한 가운데 희아는 무대중앙에 놓인 피아노로 다가가 자기 얼굴높이쯤 되는 피아노 의자에 능숙한 솜씨로 담을 오르듯 올라갔다. 그리고는 몸을 굽혀 자신의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은 마치 오랜 수도생활을 한 수도자가 기도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처럼 나에게 비쳐졌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였다. 성가 401번 ‘천사들아 찬미하라! 주를 찬미하여라.’로 시작하는.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시편 가사를 흥얼거렸다. ‘해야, 달아, 그리고 희아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첫 곡 연주가 끝나고 희아는 환한 웃음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희아 희아친따입니다.” 희아는 신앙심이 깊다. 아니 어머니의 신앙심이 깊다. 특히 성모신심이 깊다. 어머니 세례명은 루르드 성모님을 목격한 ‘벨라뎃다’이고, 희아는 파타마 성모님을 목격한 세 어린이 중 하나인 ‘희아친따’라는 세례명을 갖은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희아를 키우면서 얼마나 성모님께 전구의 기도를 드렸겠는가! 언젠가 희아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부님 개신교 사람들은 참 불쌍해요!” “왜?” “그 사람들은 결손가정에서 자라는 거잖아요. 아버지 사랑은 받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못 받으니까요!” 희아는 노래도 잘 부른다. 'Amazing Grace'를 파리나무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보이소프라노처럼 하이 톤으로 부르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말 제목 그대로 놀라운 은총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Ave Maria'를 부를 때에는 무대에 마련된 성모님의 손을 잡고 부르는데 모두들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국어 가사 중에 “한 소녀의 간절한 기도를 성모여 들어주옵소서.” 라고 부를 때에는 모두들 희아와 엄마가 저 기도를 얼마나 수없이 바쳤을까를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희아 공연의 백미는 역시 쇼팽의 ‘즉흥환상곡’이다. 희아는 이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5년 6개월을 연습했다고 한다. 희아는 쇼팽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쇼팽 곡을 연주하면서 많은 교감을 체험했었나보다, 희아엄마의 명연설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희아는 손가락이 네 개인만큼 네 가지의 은총을 받았어요. 첫 번째는 감사입니다. 나에게 여섯 개의 손가락이 없는 것에 대해 실망하지 않고, 네 개의 손가락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내 즉 끈기입니다. 하루에 열 시간씩 5년 6개월을 연습해서 희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즉흥환상곡을 연주하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감성입니다. 산술적인 지능은 떨어지지만 문학적인 감수성은 뛰어납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사랑입니다. 이렇게 죽전야외음악당에 와서 여러분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이유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날 죽전1동 하늘의문 성당의 찬란한 희망을 보았고, 평생 손에 꼽을 만한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다. 2시간의 공연이 끝날 무렵 나는 수단자락 휘날리며 무대 위로 올라가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며 마침강복을 드렸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