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 이어 2부를 시작합니다. 혹시 1부를 보지 못하신 분은 먼저 1부를 보시고 2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5. 고택과 충무정, 활터
충무정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가족 그리고 후손들이 1960년대까지 쓰던 물이다. 현재는 탐방객들이 마시는 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순신과 후손들이 살았던 집이다. 집 옆에는 후손들의 묘도 있다.
집 내부는 ㄷ자형으로 건축되어 있고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고 화가들의 작품이 집 마루에 전시되어 있었다.
대청마루 뒤편 열린 문으로 오월의 녹음방초들이 목제 문을 프레임으로 자연이 그린 명화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그림에 대해서 문외한이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마루에 옆으로 누워 저 장면을 바라본다면 어떤 그림과도 바꿔줄 수가 없겠다.
이곳은 옛 활터인데 610년이나 된 거목의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1982년 지정 당시 570년이니 40년이 지난 지금은 610년이 된 것이다.
이곳에는 후손들의 묘만 있고 정작 충무공의 묘는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약 9km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어라산에 자리하고 있다고 안내한다. 묘소 뒤편으로 송림이 울창하다. 원래 나무 중에는 소나무가 제일 기가 세다고 기 수련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이 나무도 금시 초문이다. 이럴 때는 무조건 다음의 꽃검색 앱을 열어서 사진을 찍으면 해결사 노릇을 해 준다. 백과사전으로 검색해보니 꽃은 흰데 열매는 붉은 구슬 같은 모양이다.
6. 기념관
이곳이 끝이다. 돌아서 나가며 들어올 때 ‘나가면서 구경하자’고 일행과 약속한 기념관에 들렀다.
기념관 입구쪽 이미지를 깜박 놓쳐서 현충사 대문에서 스크랩해서 갖다 놓았다.
기념관은 크게 전시관, 교육관, 사무동 등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는 전시관만 구경하였다. 잔디를 입힌 언덕 모양의 두 건물(사무동과 교육관) 속에 흙벽을 입힌 전시동이 안겨있는 형상이다.
상기 사진에서 태극기가 있는 곳이 입구이다. 내부에는 이 충무공의 전과에 대한 것과 거북선 기타 이 충무공 가족사와 임진왜란의 연대별 전쟁기록 등이 있다. 다 열거할 수 없어서 중요한 몇 개의 자료만 이미지로 담아왔다.
위 두 사진은 한 개의 도표로 전시된 것인데 길어서 두 장으로 나눠 찍은 것이다.
나는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군과 접전할 때 거북선을 사용했는지 궁금하였다.
‘성능 좋은 거북선이라면 많이 만들어서 사용하면 되지 왜 최대 5척 정도 밖에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은 어느 정도 풀린다. 원거리에서는 함포를 이용해서 전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효했을 것 같고 근거리나 근접의 전투에서는 불편한 점이 있었을 것 같다.
이 돈은 우리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1전2전씩 저축했던 돈인데 이충무공 묘토가 경매를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랍고도 비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서 이 돈을 가지고 왔습니다. 묘토를 다시 환퇴하는데 보태어 주십시오.
- 박한철, 박수완 남매 -
천고 무쌍한 거북선을 창조하신 이충무공어른의 묘소가 위토경매로 넘어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한 줌의 흙이 태산이 될 수도 있기로 미천한 돈을 보내오니 물리치지 마시옵소서. - 백운현 기생 -
매일 새벽부터 돌아다니고 일곱 가족의 생활을 부양하는 한 명의 참기름 행상입니다. 이충무공 묘소의 문제를 보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고이 품었던 돈을 꺼내니 보태어 쓰길 바라는 바입니다. - 참기름 행상 -
미약하지만 슬픈 마음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어서 약소한 돈을 보내니 세계적인 위인 충무공의 묘소를 어떻게든 구해 주십시오. - 동경 메이지대학 예과 안영택 -
이 충무공은 성인이시고 우리를 살리신 은인이시오. 티끌 한 점 섞임없는 순수한 조선사람이심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이 편안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와 저의 아우가 같이 이 돈을 올립니다. - 정광수, 정태수 -
이번 이충무공 묘소 문제에 대해 한없이 애통하였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무력한 우리들이나마 간절한 마음으로 모은 돈을 보내드리니 받아서 보존비로 보태 쓰시기를 바랍니다. - 고무공업소 남녀직원 일동 -
푸른 오월 하늘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격을 안고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