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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삼대(三代) |
● 핵심 정리
* 지은이 : 염상섭
* 갈래 : 장편 소설, 세태(世態) 소설, 사실주의 소설, 가족사 소설
* 문체 : 만연체, 구어체
* 배경 : (시간적) 일제 강점기, (공간적) 서울(서울 조의관 집 사랑방)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재 : 족보를 둘러싼 조의관과 상훈의 논쟁(전체 - 일제 시대 중산층의 삶)
* 주제 : 조의관과 상훈의 대립과 갈등(전체 주제 - 중산층 가문의 현실 대응과 몰락)
* 특징
..........① 인물의 성격을 대화, 행동, 외양 등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②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냉정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③ 서울 토박이 말과, 호흡이 긴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
..........④ 각 장면에서 주요 인물을 시점의 주제로 설정하여 사실적이고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 등장인물
▶ 조의관(할아버지) : 조씨 가문의 가장(家長). 구시대의 고루한 사고방식과 인습에 젖어 있는 봉건주의자. 재산을 노린 후취 '수원집'의 일당에 의해 독살당함.
▶ 조상훈(아버지) : 조 의관의 아들. 덕기의 아버지. 미국 유학을 다녀온 기독교 신자이자 개화주의자이나 축첩과 노름을 일삼는 위선적 인물.
▶ 조덕기(아들) : 조상훈의 아들. 일본 유학생.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한다. 사회주의 운동의 심정적 동조자.
▶ 김병화 : 덕기의 친구. 사회주의자.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인간다운 삶의 길을 추구함.
● 참고 자료
* 이 글에 나타난 시대상 : 이 글은 1920년대를 살아가는 '조(祖)-부(父)-손(孫)'으로 이어지는 3세대의 인물을 통해 당시 사회의 현실을 효과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여전히 봉건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는 구한말 세대를 상징하는 조의관, 개화의 세례를 받고 서구의 신교육을 받았지만 주체성을 잃고 도덕적 타락의 지경에 이른 개화기 세대를 상징하는 조상훈, 일제 강점기에 청년기를 보내면서 식민직 상황의 극복과 근대화된 새 시대에 맞는 가치관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인물 간의 갈등은 당시 한국 사회의 사회 문화적 갈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세 인물은 세대적 갈등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돈'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보인다. 염상섭은 이를 통해 당시 한국의 자본주의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 이글에 나타난 갈등의 원인 : 이 글에서 조의관은 조상이나 족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조상훈은 아버지 조의관이 족보를 만드는데 많은 비용을 들인 것을 못마땅해하고 족보를 만드는 일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라며 아버지에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는 '족보'는 구한말 세대인 조의관과 개화기 세대인 조상훈의 가치관의 차이를 드러내 주는 중요한 소재로, '족보'를 둘러싼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두 사람의 갈등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저변에는 두 인물의 '돈'에 대한 집착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줄거리】
대지주인 조부 조의관은 양반 행세를 하기 위해 족보를 사들일 정도봉건적 사고 방식을 지니고 있음로 명분과 형식에 얽매인 구세대 의 전형이고, 아버지 상훈은 신문물을 받아 들였으나, 이중 생활에 빠지고 재산을 탕진하는 과도기적 인간형이다. 아들 덕기는 선량한 인간성의 소유자이나, 조부와 아버지의 부조리 속에서 재산을 지켜 나가는 일에 한정되어 적극성을 잃은 우유부단한 인간형으로 그려 진다.
덕기의 조부 조의관은 고루한시대에 뒤떨어진 봉건 의식의 소유자이다. 어렵사리 모은 거액의 재산으로 집안의 크고 작은 제사를 받들고, 가문의 명예를 키워나가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삼는다. 칠순 노인이면서 부인과 사별 후 서른을 갓 넘긴 수원댁을 후취(後娶)로 들여 네 살박이 딸까지 두고 있다. 조의관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은 바로 아들 조상훈이다. 맏아들이면서도 집안일을 안중에 없고 오로지 교회사업에 골몰해 집안의 돈을 바깥으로 빼돌리는 데만 혈안이 된 것으로 여긴다. 더구나 조의관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봉제사를 조상훈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우상 숭배라고 반대하고 전혀 돌보지 않아서 조의관은 아들보다도 손자인 덕기에서 더 큰 믿음을 가진다. 집안의 모든 일도 손자인 덕기와 의 논해서 결정하고, 자신이 죽고 난 후 재산 관리도 덕기에게 일임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덕기의 부친인 조상훈은 위선자겉과 속이 다름. 표리부동(表裏不同)다. 미국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에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요, 교회 장로인 그는 교회를 통한 사회 운동과 교육 사업에 큰 뜻을 품고 집안의 재산으로 그런 사업에 직접 투자하기도 하고 민족 운동가의 가족을 돌보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의 실생활은 구린내는 축첩(蓄妾)첩을 둠과 노름, 그리고 술로 얼룩진 만신창이 난봉꾼허랑방탕한 짓을 하는 사람의 생활이다. 그는 자신이 보살피던 운동가의 딸인 홍경애와 관계를 맺어 아이까지 낳고도 무책임하게 내동댕이치는하면, 당대의 오입쟁이들이 출입하는 매당집당시의 도덕적 타락을 상징하던 장소이란 곳엘 드나들면서 나이 어린 여자들과 불륜의 관계에 빠진다.
덕기는 할아버지봉건적 인물나 아버지과도기적 인물와는 다른 신세대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친구 김 병화처럼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 병화가 하는 일에 심정적으로 동조를 하기는 해도 그 자신은 법과를 마쳐 판사나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 품고 있다. 자신의 그런 꿈이 가끔 운동가인 병화의 조소를 받아도 크게 개의하지 않는다. 병화는 목사인 아버지와 사상적으로 대립하로 가출해서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기식하는 형편이지만 자신의 뜻은 절대 굽히지 않는 반면, 덕기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정면 충돌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세대를 달리하는 그들의 사고 방식과 행동을 이해하고 동정하기도 한다.
잠재되어 있던 조씨 가문의 불화와 암투가 정면에 드러난 것은 조부의 임종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을 앞두고 생긴 재산 분배 과정에서였다. 조의관의 후취인 수원집과 그를 조의관에게 소개해준 최참봉 등은 재산을 가로챌 욕심으로 유서 변조를 계획하고 조의관을 독살(毒殺)한다. 의사들의 배설물 검사로 비소 중독이 판명되자 상훈은 더 명확한 사이인 규명을 위해 사체 부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집안 어른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고 범인 찾기도 흐지부지되고유야무야(有耶無耶) 만다. 그러나 덕기 때문에 수원집 일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재산 관리권은 덕기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 상훈은 법적 상속자인 자신을 건너뛰고 아들인 덕기에게 그 권리가 넘어가지 유서와 토지문서가 든 금고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힌다.
한편, 상훈에게 농락당하고 아이까지 낳은 후 버림받았던 홍경애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술집 여급으로 나가면서 생계를 꾸러가지만 해외의 독립 운동가인 이우삼과 연계하여 경애는 뒤에서 도우는 역할을 한다. 경애는 과거에 묶이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병화와 자주 만나는 사이에 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조그마한 잡화상을 경영하며 경찰의 눈을 속이지만 그것이 다른 운동가인 장훈 일파들의 오해운동 자금을 빼돌려 가게를 운영한다는 오해를 사게 되어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한편, 이우삼이 국내를 다녀간 뒤 서울에서는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불어닥친다. 비밀 조직인 장훈일파는 물론, 가게를 운영하며 경찰의 눈을 피해 있던 병화와 경애도 검거된다.
그리고 덕기도 병화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혐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다.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장훈은 비밀 유지를 위해 코카인으로 음독 자살을 한다. 장훈의 자살로 갑자기 조사가 미궁에 빠지자 연행되거나 검거되었던 사람들은 다 풀려 나오게 된다. 가짜 형사를 등장시켜 금고와 문서를 훔쳐냈던 상훈도 결국 훈방 조치로 풀려난다. 덕기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공백을 느끼면서 이제 자신의 어깨 위에 내려얹힌 조씨 가문의 유업죽은 조의관이 남긴 사업을 어떻게 이끌나갈 것인가 망연해한다.
(1) 발단
"조가의 집이 번창하려고? …… 하지만 꾸어 온 조상돈을 주고 족보에 이름을 올려서 받들게 된 조상.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은 자기네 자손부터 돕는답디다."
상훈이는 불끈하여 소리를 높여서 또 무슨 말을 이으려다가 마루 끝에서 영감님의 기침 소리가 나는 바람에 좌우 방 안은 괴괴하여졌다.쓸쓸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고요해졌다.
"왜들 떠드니?"
화를 참는 못마땅한 강강한목소리가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건넌방 문이 활짝 열렸다.행동 묘사를 통한 심리적 태도 표현 - 불만의 표시 방 안의 젊은 애들은 우중우중몸을 일으켜 서거나 걷는 모양 일어서며 아랫목에 앉았던 상훈이는 윗목으로 내려섰다.
방 안에서는 더운 김이 서린 담배 연기가 뭉긋뭉긋 흘러나온다.
"이게 굴뚝 속이지, 젊은것들이 무슨 담배를 이렇게 피우며 주책없는 소리들만 씨부렁대는 거냐?"
영감은 방 안을 들어서며 우선 나무래 놓고 아랫목으로 가서 앉으며 자기의 발끈한 성미를 속으로 간정소란스럽던 일이나 앓던 병 따위가 가라앉아 진정됨시키려는 듯이 목소리를 가라앉혀서,
"어서들 앉아라."
하고 무슨 잔소리를 꺼내려는지 판을 차린다. 영감은 제청제사를 지내는 대청을 다아 배설필요한 여러 가지 제구를 차려 놓음해 놓고 시간을 기다리느라고 사랑으로 나오다가 종형제간사촌 형제인 형과 아우의 말다툼을 가만히 듣고 섰다가 참을 수 없어 뛰어든 것이다.
(2) 전개
"너 어째 왔니? 오늘은 예배당에 안 가는 날이냐?"기독교인 아들에 대한 반감의 표현
영감은 얼굴이 발끈 취해 올라오며, 윗목에 숙이고 섰는 아들을 쏘아본다.
"어서 가거라! 여기는 너 올 데가 아니야! 이 자식아, 나이 오십 줄에 든 놈이 젊은것들을 앞에 놓고 철딱서니 없이 무엇이 어째고 어째? 조상을 꾸어 왔어? 꾸어 온 조상은 자기네 자손만 도와? 배지 못한 자식……!"
영감은 금시로 숨이 넘어가려는 사람처럼 헐떡거리며 벌건 목에 푸른 힘줄이 벌렁거린다. 상훈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한 구석에 섰다.
"너두 내가 낳아 놓은 자식이면야 사람이겠구나? 부모의 혈육을 타고났으면 조상은 알겠구나? 가사가정하여 말한다면, 가령, 이를테면 젊은애들이 주책없는 소리를 하더라도 꾸짖고 가르쳐야 할 것이 되려 철부지만도 못 한 소리를 텅텅 하니 이게 집안이 되려고 이러는 거란 말이냐, 안 되려고 이러는 거란 말이냐?"
여기서 영감은 한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목청을 돋는다.
"이 집안에서 나만 눈을 감아 보아라! 집안 꼴이 무에 되나? 가거라! 썩, 썩 나가거라! 조상을 꾸어 왔다니 너는 네 아비도 꾸어 왔겠구나? 꾸어 온 아비면야 조금도 네게는 도울 게 없을 게다!조상훈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을 것임을 암시 다시는 내 눈 앞에 띠일 생각도 말아라!"
오른손에 든 장죽을 격검대격검채. 검도 연습을 할 때 칼 대신 쓰는, 참대로 만든 긴 막대기 모양으로 들었다 놓았다 내밀었다 들이켰다 하며 펄펄 뛴다.
【사천 원대동보소를 설치느라 들인 비용 돈이나 드는 줄 모르게 들인 것을 속으로 앓고 또 앞으로 돈 쓸 걱정을 하는 판에 앨 써 해 놓은 일에 대하여 자식부터라도 그 따위 소리를 하는 것이 귀에 들어오니 이래저래 화는 더 나는 것이다. 게다가 원래 못마땅한 자식이요, 또 오늘은 친기부모의 제사라 제사 반대군교회에 다니는 조상훈을 지칭을 보니 가만 있어도 무슨 야단이든지 날 줄은 누구나 짐작했지만 마침 거리가 좋아서 야단이 호되게 된 것이다.】서술상의 특징 - 그 동안의 경위에 대한 서술자의 요약적 제시
"아니에요, 그런 말씀이 아니에요. 아저씨께서 잘못 들으셨나 보외다."
창훈상훈의 사촌형이는 속으로는 시원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사치레로 한 마디 하였다.
"잘못 듣다니 ? 내가 이롱증귀가 먹어 소리를 듣지 못하는 병이 있단 말인가?"
"그만 해 두세요. 상훈 군도 달래 그렇겠습니까? 이 전황돈이 잘 돌지 않아서 매우 귀해지는 일한 통에 꿈쩍하면 돈이니까 그것을 걱정해서 그러는 것이지요."
창훈이는 이렇게도 변명해 주었다. 그러나 상훈이로서는 때리는 사람조의관보다 말리는 사람조창훈이 더 미웠다.
"누가 돈 쓰는 것을 아랑곳하랬나?남의 일을 알려고 하거나 참견하는 짓 누가 저더러 돈을 쓰라니 걱정인가? 내 돈 가지고 내가 어떻게 쓰든지……."
"아버님께서 하시는 일에……."
조금 뜸하여지며 부친이 쌈지를 풀어서 담배를 담는 동안에 상훈이는 나직이 말을 꺼냈다.
"……돈 쓰신다고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마는 어쨌든 공연한 일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창훈-조의관에게 빌붙어 재산을 우려내려는 일가붙이들이 첫째 잘못이란 말씀입니다."
"무에 어째 공연한 일이란 말이냐? "
부친의 어기말하는 기세는 좀 낮추어졌다.
【"대동보소만 하더라도 족보 한 길질(帙)에 오십 원씩으로 매었다 하니 그 오십 원씩을 꼭꼭 수봉①세금을 징수함. ②남에게 빌려준 외상값 따위를 거두어 들임하면 무엇 하자고 삼, 사천 원이 가외일정한 기준이나 정도의 밖로 들겠습니까?"】주위 사람들의 농간으로 지나치게 많은 돈이 들어갔음을 지적함
"삼, 사천 원은 누가 삼, 사천 원 썼다던?"
【영감은 아들의 말이 옳다고는 생각하였으나 실상 그 삼, 사천 원이란 돈이 족보 박는 데에 직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뷄`뷄 조씨로 무후(無後)한대를 이어갈 아들이 없는 집의 계통을 이어서 일문일족한 집안에 속하는 모든 겨레붙이와 하인에 끼려 한즉 군식구가 늘면 양반의 진국이 묽어질까 보아양반 가문의 정통성이 훼손당할까 봐 반대를 하는 축들이 많으니까 그 입들을 씻기기 위하여 쓴 것이다. 하기 때문에 난봉허랑방탕한 짓 자식이 난봉핀 돈 액수를 줄이듯이 이 영감도 실상은 한 천 원 썼다고 하는 것이다. 중간의 협잡배그릇된 짓으로 남을 속이는 사람는 이런 약점을 노리고 우려 쓰는 것이지만 이 영감으로서는 성한 돈 가지고 이런 병신 구실 해 보기는자신의 약점을 노리고 돈을 우려내려는 것을 알면서도 고스란히 주어야 하는 것 처음이다.】서술상의 특징 - 족보와 관련된 사건의 경위와 인물의 심리에 대한 서술자의 요약적 제시
(3) 위기
"그야 얼마를 쓰셨던지요, 그런 돈은 좀 유리하게쓸모있게 쓰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재하자 유구무언'아랫사람은 웃어른에 대하여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지냄을 이르는 말의 시대는 지났다 하더라도 노친 앞이라 말은 공손했으나 속은 달았다.몹시 안타깝고 조급했다.
"어떻게 유리하게 쓰란 말이냐? 너같이 오륙천 원씩 학교에 디밀고 제 손으로 가르친 남의 딸자식 유인하는 것독립 운동가의 딸이자 덕기의 동창인 홍경애를 첩으로 삼은 것.이 유리하게 쓰는 방법이냐?"
아까부터 상훈이의 말이 화롯가에 앉아서 폭발탄을 만지작거리는 것 같아서 위태위태하더라니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 겨우 간정되려던 영감의 감정에 또 불을 붙여 놓고 말았다.
상훈이는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벌게진다.
【부친의 소실 수원집과 경애 모녀와는 공교히도바라지 않던 일이 생각지 않게 일어나 뜻밖으로 한 고향이다.
처음에는 감쪽같이 속여 왔으나 수원집만은 연줄연줄이 닿아서 경애 모녀의 코빼기라도 못 보았건마는 소문을 뻔히 알고 따라서 아이를 낳은 뒤에는 집안에서 다 알게 되었던 것이다. 덕기 자신부터 수원집의 입에서 대강 들어 안 것이다. 그러나 상훈이 내외끼리 몇 번 싸움질이 있은 외에는 노 영감님도 이때껏 눈감아 버린 것이요, 경애가 들어 있는 북미창정조상훈이 경애와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을 위해 마련해 준 집 그 집에 대하여도 부친이 채근한 일은 없는 것이라서 지금 조인광좌중(稠人廣座中)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모인 넓은 자리의 가운데에서 아들에게 대하여 학교에 돈 쓰고 제 손으로 가르친 남의 딸 유인하였다는 말을 터놓고 하는 것을 들으니 아무리 부친이 홧김에 한 말이라 하여도 듣기에 괴란쩍고창피스러워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어색하고 부자간이라도 너무 야속하였다.】서술자의 요약적 제시. 시점상의 특징 - 조상훈의 입장에서 서술함
"아버님께서는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마는 어쨌든 세상에 좀 할 일이 많습니까. 교육 사업, 도서관 사업, 그 외 지금 조선어 자전 편찬하는 데……."
상훈이는 조심도 하려니와 기를 눅이어서굳거나 뻣뻣하던 것을 무르거나 부드러워지게 해서 차근차근히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할 말은 다 하겠다는 듯이 말을 이어 나가려니까 또 벼락이 내린다.
"듣기 싫다! 누가 네게 그 따위 설교를 듣자든? 어서 가거라."
【"하여간에 말씀입니다. 지난 일은 어쨌든, 지금 이 판에 별안간 치산산소를 매만져서 다듬음이란 당한온당한 일입니까. 치산만 한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서원을 짓고 유생들을 몰아다 놓으시렵니까? 돈도 돈이거니와 지금 시대에 당한 일입니까?"조의관과 상훈의 가치관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남】대동보소를 설치하고 나자 이번에는 조씨 중시조인 **당 할아버지의 산소가 수백년래에 말이 아니게 헐었으니 다시 치산을 하고 그 옆에 묘막보다는 큼직한, 서원 같은 것을 짓자는 의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상훈이 반대하는 것이다.
상훈이는 아까보다 좀 어기를 높여서 반대를 하였다.
(4) 절정
"잔소리 말아! 그놈 나가라니까 점점 더하고 섰고나.점입가경(漸入佳境) 내가 무얼 하든 네가 총찰모든 일을 맡아 총괄하여 살핌이란 말이냐. 내가 죽으면 동전 한 닢이라도 너를 남겨 줄 테니 걱정이란 말이냐. 너는 이후로는 아무리 굶어 죽는다 하여도 한 푼 막무가내다.절대 안 준다 너는 없는 셈만 칠 것이니까……, 너희들도 다 들어 두어라."
하고 좌중을 돌려다보며 말을 잇는다.
"내 재산이라야 얼마 있는 게 아니다마는 반은 덕기에게 물려 줄 것이요, 그 나머지로는 내가 쓰고 싶은 데 쓰다 남으면 공평히 나누어 주고 갈 테다. 공증인을 세우든 변호사를 불러 대든 하여 뒤를 깡그러뜨려 놀 것이니까확실하게 뒷마무리를 해 놓을 것이니까 너는 이제는 남 된 셈만 쳐라. 내가 죽으면 네가 머리를 풀 테냐, 거상상복을 입을 테냐?기독교를 믿는 아들에 대한 반김이 드러남"
【영감은 사실 땅문서도 차츰차츰 덕기의 명의로 바꾸어 놓아 가는 판이요 반은 자기가 쓰다가 남겨서 막내딸수원집 소생의 명의로 물려줄 생각이다. 만일에 십오 년 더 사는 동안에 아들 하나를 더 본다면, 물론 그 아들을 위하여 물려줄 요량도 하고 있는 터이다.】서술상의 특징 - 조의관의 입장에서 서술함
이 때까지 술이 취하면 주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기도 많이 하였지만, 오늘은 친기라 하여 술 한 잔 안한 자신이 영감이 맑은 정신으로 여러 젊은 애들 앞에서 이런 말을 떠들어 놓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야 이 방중은 고사하고 이 집안 속에서 자기 편을 들어 줄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구나 하는 생각고립무원(孤立無援)을 하니 상훈이는 새삼스러이 고독을 느끼고 모든 사람이 야속하였다.
"애비, 에미도 모르고 계집, 자식도 모르는 너 같은 놈은 고생을 좀 해 봐야 한다. 내가 돈이 있으니까 네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는 것이지 내가 아무것도 없어 보아라. 돌아다보기는커녕 고려장이라도 족히 지낼 놈이 아니냐. 어서 나가거라. 이 자식, 조상을 꾸어 왔다는 자식은 조가가 아니다."
하고 노인은 별안간 벌떡 일어나서 아들을 떼밀어 내쫓으려는 듯이 덤벼든다. 젊은 사람들은 와아 달려들어서 가로막는다.
"상훈이 어서 나가게. 흥분이 되셔서 그러시니까……."
창훈이는 상훈이를 끌고 마루로 나왔다.
(5) 결말
부친이 망령이 나느라고 그러는지는자신과 부자의 인연을 끊겠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젊은 사람들이나 자식 보는 데 창피도스러웠다. 상훈이는 안방으로 들어가는 수도 없고 아랫방에도 덕기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그리 들어갈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모자를 집어 쓰고 축대로 내려오니까 덕기가 아랫방에서 나와서 뜰로 내려온다.
"아랫방으로 들어가시지요."
덕기는 민망한답답하고 딱하여 안타까운 듯이 이렇게 부친에게 말을 걸었으나, 부친은 잠자코 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