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존중하고 대의적인 정치 경로를 최대한 준수하되, 그것이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경우에는 직접행동형 민주주의에 돌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입헌민주주의, 공화주의, 참여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등 모든 민주주의 모델에 해당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어떠한 민주주의 형태를 선책하든 간에 직접행동(사회운동)형 민주주의가 일종의 확성기이자 기관차, 그리고 압력 밸브이자 응급조치로서 뒷받침될 때에만 그것이 더욱 의미 있는 민주주의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프릴 카터는 민주주의에 대해 직접행동(사회운동)만이 제공할 수 있는 여러 장점을 분석적으로 짚어낸다. 어떤 제도나 기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인식을 전제로 할 때, 논의의 준거틀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라면 직접행동은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 최후의,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잘 작동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직접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다. 또한 직접행동은 활발한 민주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직접행동만큼 개인의 자력화와 자존감을 즉각적으로 고무하는 방식도 잘 찾아보기 힘들다.
직접행동에 따르는 오해 중 제일 대표적인 것이 ‘직접행동은 과격하고, 폭력과 불법을 초래하는 반민주적 행위’라는 인식이다. 여기서 정치를 실천하는 행동방식을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생각해보자. 한쪽에는 평화적 방식(civil means)에 의한 정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폭력적 방식(violent means)에 의한 정치가 있다고 가정하자(예를 들어 테러, 게릴라전, 무장봉기, 유혈혁명). 극단적인 압제에 시달리거나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에는 폭력적 방식에 의한 정치도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논하는 직접행동은 그러한 폭력적 방식과는 거리가 먼 정치행위다.
평화적 정치행위의 스펙트럼 내에는 가장 소극적인 행위인 선거불참에서부터 적극성의 강도가 점점 늘어나는 투표 참가, 정당 활동, 시민사회단체 활동, 로비, 진정, 청원, 집회, 결사, 시위, 농성, 단식, 파업, 비폭력 시민불복종 등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직접행동은 평화적 정치행위 내에서 제일 적극적이고 ‘시끄러운’ 방식이며 예외적으로 경미한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크게 보아 폭력적 방식에 의한 정치와는 명백히 구분되는 ‘정상적’ 정치행위이다.
이런 설명을 염두에 두고 직접행동을 다시 바라본다면, 우리는 작은 사람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가두시위에 나서는 것조차(집회의 자유) 사회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금지하려는 당국의 시도가 얼마나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 반민주적 처사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른바 민주정치의 선진국들도 엄청난 정치적 파란과 투쟁을 거쳐 민주주의를 쌓아 올렸음을, 그리고 정태적인 절차 민주주의의 완성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절차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순간 그것은 화석화된 민주주의로 전락한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하겠다. 그러므로 직접행동 민주주의를 ‘위험’하고 ‘불온’하다고 생각하느냐, ‘정당’하고 ‘건설적’이라고 생각하느냐 여부에 따라 보수적 입헌주의자와 전향적 민주주의자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직접행동이 만병통치일 수는 없고 사회 진보와 참여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조차 직접행동을 일종의 ‘필요악’처럼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 과도한 직접행동은 취약한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고, 통상적 대의민주주의의 통로가 무시될 위험도 있으며, 공동선보다 당파성을 강화시킬 우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시민사회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요즘의 집회 · 시위가 감동이 없고 짜증만 유발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가 항구적으로 직접행동에만 의존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점은 또한 직접행동이 통상적인 대의민주주의적 채널과 적절하게 역할 분담을 하면서 사려 깊고 책임 있게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2. 자유민주주의는 비폭력적인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 확산을 폭력의 감소와 연결하는 이론은 계몽주의 시대 특히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근년 들어 포퍼와 보비오 같은 자유민주주의 이론가들이 이러한 상관관계를 재론하기 시작했고, 국제관계 이론가들도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서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낮다는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런 주장은 자유민주주의의 이상 그 자체에 내재해 있기도 하고, 실제로 그러하기도 하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실제로 어느 정도나 비폭력 원칙에 기반하여 운용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마르크스로부터 푸코에 이르는 다양한 이론가들의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비폭력을 암시한다는 논리의 배경에는 두 가지 역사적 동향이 전제되어 있다. 첫째, 시장경제와 국제 통상이 확산되면서 군사적 가치보다 개인의 자유와 상업적 가치가 더 신장된 점이 있다. 둘째, 폭력에 의존하는 것을 싫어하고 인간적인 태도와 정책을 취하는 경향이 점차 늘어났다. 이 두 가지 경향은 갈등을 해소하는 데 비폭력적 방식을 옹호하고, 개인의 존엄성과 인도적으로 대우 받을 권리를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적 사상 · 신념의 확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어느 정도나 이런 경향의 산물인지,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어느 저오나 이런 경향에 기여했는지, 하는 문제는 흥미로운 질문이기는 하나, 이 책의 논증에서 인과관계의 방향은 크게 중요치 않다.
이러한 전환, 즉 군사력의 위세를 핵심으로 여기고 명예와 영광이라는 이상에 기반을 두었던 귀족제 사회로부터 상거래와 금전적 이득을 중시한 부르주아 사회로의 전환은 17세기 홉스의 저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나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 같은 인물과 관련된 경제학이라는 학문 영역이 꽃을 피우고, 철학자들이 상거래의 금전적 · 평화적 효과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접어들어서였다. 칸트는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에서 상거래의 자유를 세계 평화로 가기 위해 전제해야 할 필요조건으로 규정했다. 19세기의 자유주의 이론가들, 특히 영국의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 리처드 코브던(Richard Cobden, 1804~1865), 존 브라이트(John Bright, 1811~1889) 같은 이론가들은 세계 무역과 세계 평화가 연결된다는 테제를 열렬히 제창하였다. 경제적 유대가 전쟁을 방지한다는 믿음은 1950년대에 유럽연합(EU)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전쟁과 개인 간 폭력에 기초한 사회로부터 상거래에 기초한 평화로운 정신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야만적인 사회 관행도 점차 사라졌다. 서구 사회의 계몽주의로부터 촉발되었지만 지난 2세기 동안 전 세계로 확장된, 인도적 · 비폭력적 태도의 발전은 형사정책 영역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났다. 예컨대, 태형(笞刑) 및 감옥 내 가혹한 강제 노동의 폐지, 사형의 대상이 되는 범죄 종류의 축소, 처벌보다 교화를 강조하는 경향 등이 범죄자의 처우를 크게 변화시켰다. 신체적 · 심리적 고통을 없애는 것이 사회정책의 핵심적 목표가 되었다. 이런 추세는 동물의 처우로까지 확대되었다.
흥미롭게도 소렐은 한 세기 전에 이러한 사회적 폭력의 감소 추세를 인식했고, ‘도덕가’들이 정치적 폭력을 혐오하는 원인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소렐은 프랑스 공립 초등학교의 체벌 금지, 신참직공에 대한 폭력과 희롱이 다반사였던 공장과 작업장 관행의 변화, 노동자 협회 간 폭력 대결의 종식 등과 같은 일을 이러한 비폭력화 경향의 사례로 거론한다.
원래 자유주의 정치사상은 개인의 생명권과 자유권에 대한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수 세기 동안 인권의 범위는 고문 받지 않을 권리,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을 받지 않을 권리, 모욕이나 강요를 받지 않을 권리 등으로 계속 확장되어 왔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인간과 평등한 존재로 인정받고 자기 인권을 누릴 수 있게 된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 예를 들어,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 그리고 남녀 동성애자도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어린이 · 청소년의 권리 역시 과거에 비해 훨씬 중요하게 취급된다. 관용(tolerance)의 신념은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이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자유론(On Liberty)》에서 지적하듯이 수 세기 동안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간에 전쟁과 박해를 일삼았던 유럽에서 관용의 사상은 참으로 어렵게 출현하였다. 관용의 원칙은 오늘날 상이한 문화와 사회적 관행의 존중, 그리고 상이한 사회적 · 성적 지향을 지닌 집단의 존중으로 확장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비폭력이 연결된다. 특히 폭압적인 탄압과 전쟁을 경험한 이론가들은 국가 내의 갈등 해소에서 평화적인 절차를 제공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곤 한다, 나치의 탄압으로부터 빠져 나왔던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에서 ‘민주주의’란 “피를 흘리지 않고, 예컨대 선거를 통해, 정부를 갈아 치울 수 있는 정치체제”의 줄임말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1945년 이후 수립된 이탈리아의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지키고 강화하고자 애썼던 보비오 역시 포퍼를 인용하면서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민주제도의 가치를 강조한다. 보비오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이런 원칙이 지켜질 때에만 우리의 상대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 반대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한 보비오는 “나는 비폭력이 민주주의와 여타 모든 정부 형태를 결정적으로 구분하는 한 요소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에서 폭력을 거부하려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이성적인 토론을 준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포퍼는 다원주의, 관용, 비판적 합리주의가 지켜지는 ‘열린 사회’와 비폭력을 연결한다. 보비오는 비폭력과 관용을 명확하게 연관시키고, 앨러스테어 데이비드슨(Alastair Davidson)의 해석에 따르면, 민주적 토론의 목적이 “폭력 없이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푸코의 저술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터져 나온 페미니즘, 동성애자 해방, 정통 정신병리학 비판, 어린이 · 청소년 권리운동 등의 운동과 사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러한 발전상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 내장된 여러 형태의 억압 - 계급 갈등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회주의 사상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억압 - 을 부각했다. 이러한 저항 형태는 기존의 정계를 ‘가로지르는(횡단적, transversal)’ 움직임이다. 자신의 비판자에게 응답하는 형식의 <구조와 권력(Structure et puissance)>이라는 글에서 푸코는 국소화된 권력에 관심을 기울이는 횡단적 저항의 표현을 연구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한다. 푸코는 경제적 권력의 작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견해(과거에 자신도 받아들였던)가 사회 내의 다중적이고 은폐된 권력 형태들을 간과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