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3월 21일 〈꼬마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의 작가 윌버트 오드리가 세상을 떠났다. 대단한 철도 애호가였던 오드리는 엄청난 연구와 철저한 고증을 거쳐 〈꼬마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을 창작했다. 이 동화는 1984년 영국 텔레비전이 아동용 드라마로 방영하면서 더욱 유명해졌고, 무려 54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야기 속 사건들은 철도회사가 있는 가상의 섬 소도어(Island of Sodor)에서 벌어진다. 동화와 드라마의 서사는 기관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만드는 철도 회사 노동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갖가지 애환을 담고 있다. 어린이들은 책과 화면을 통해 여러 교통수단들이 만들어지고, 사고를 일으키고, 처리가 되는 과정을 실감나게 간접체험한다.
2001년 3월 21일 ‘왕王회장’ 정주영이 타계했다. 아무도 그를 예술가로 여기지 않겠지만, 그래도 왕회장을 “예술교양사전”의 주인공으로 모시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그를 예술가로 추켜세우는 일은 결코 작위作爲가 아니다. 왜냐하면 세계적 문화비평가이자 미래학자 기소 르망GuySorman이 진작에 정주영을 “20세기 최후의 전위 예술가”로 평가한 바 있기 때문이다.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정주영은 소 1,0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건너 북한으로 갔다. 그는 17세 때 아버지 몰래 집의 소를 팔아 가출했던 죄를 이제야 갚는다고 했다. 그는 판문점에서 “이번 방문이 남북 사이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라는 감회를 밝혔다. 이때 정주영은 83세였다.
오드리가 철도를 첨단의 교통수단으로 보여주었다면 정주영은 발이 마음의 이동수단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걸어서 판문점을 통과한 그의 족적은 그해 11월 18일 금강산 관광선의 첫 출항을 낳았고, 2000년 6월 남북 최초 정상회담 및 8월 개성공단 건립 합의로 이어졌다. 군사구역 판문점을 걸어서 통과한 최초의 민간인 정주영은 그야말로 눈부신 전위 예술가였던 것이다.
1950년 3월 21일 출생한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가왕歌王’ 조용필은 〈걷고 싶다〉에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라고 했다. 〈허공〉에서는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라고 읊조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정주영은 없고, 금강산 관광도 없고, 판문점을 걸어서 지나갈 예술가도 없다. 남북 화해 또는 협력이나 통일이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가 되어버렸는가.
첫댓글 제일 현실적이어야하는 통일이 가장 공허한 낱말이란걸 알게 되면서 세상에 대해서 냉정한 시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어쩌면 일제청산,민주화가 되어야만 통일이 스멀스멀 오겠지요.그냥 신라인들과 고구려.백제인들이 오고가면서 살았던 그정도만 해도 충분한데.그래서 멀어진 그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