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악을 찾는 사람들이 신흥사를 거쳐 설악산을 구경 하듯 내설악을 찾는 사람들은 으례 백담사 를 찾게 된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자리잡고 있는 백담사는 내설악의 첫 관문이다. 외가평에서 들길을 걸어 공원관리 사무소를 지나 백담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백담사가 나온다.
고찰 백담사의 창건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해 한용운이 지은「백담사사적」에 의하면, 신라 진덕여왕 1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절을 지어 미타상 3위를 조성, 봉안하고 이름을 한계사라고 했다. 한계사는 자장이 창건한지 50여년만인 신문왕 10년인 690년에 실화로 불타 없어졌지만 곧 재건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백담사는 1919년 4월에 당시의 주지 인공선사가 복구한 것이다. 백담사의 현존건물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山靈閣) 화엄실법화실 요사채 만해기념관과 함께 3층석탑도 1기가 있다. 백담사는 여러 차례 절이름이 바뀌었고 위치도 달라졌기 때문에 그 전모를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체로 화엄학이나 천태(天台) 등 교학계통을 연구하는 사찰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오세암 봉정암 등은 모두 유명한 기도도량이다.
백담사목조아미타불좌상
이 불상은 북면 용대2리 백담사의 극락보전안에 주불(主佛)로 봉안되어 있으며 높이87cm,어깨너비42cm,무릅너비가 42cm이다.
목조아미타불좌상은 조선 영조24년(1748)에 조성되었으며,이 불상은 목재로 두손은 시무외,여원인에 엄지와 중지에 맞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이고, 두발은 결과부좌형(結跏趺坐形)이며 신고(身高)는87㎝,두고(頭高)30.6㎝,어깨너비42㎝,무릎너비65㎝이다. 머리에는 정상계주가 큼직하게 솟아있고 육계의 구분이 불분명하며, 나발(螺髮)이 촘촘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둥글고 단아하여 당시의 사가형적이고 평탄적인 얼굴보다 우수한 편이다.
또 한 눈이 가늘고 입이 작으며 코가 돌출하여 독특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다. 상체는 가슴이 넓고 어깨가 둥글어 당당한 인상을 주지만 다소 평판적인 것은 당시의 특징을 따른 것이며, 하체의 앉아있는 형태는 넓고 큼직하여 상체와 조화를 이루는데 이러한 특징은 당시의 목불상 가운데 대표작임을 알려주고 있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두꺼운 편인데, 옷 주름이 돌출하고 어깨의 Ω형 주름과 무릎사이의 주름들이 곡선적으로 처리된 점, 그리고 가슴은 U자형 중복 주름이나 가슴 내의 상단주름의 곡선적인 주름들은 조선초기의 특징이 내려온 것으로 이 불상을 좀더 돋보이게 한다. 이 불상 제작연대는 조선 영조 24년(1748년)에 조성되었다.
만해기념관
일제시대 《님의 침묵》을 집필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작품활동과 항일운동 업적을 조망할 수 있는 만해 기념관은 만해 선생의 민족 사랑 정신을계 승하기 위해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 내에 3백33㎡ 규모로 1997년 11월 9일 개관하였다.
백담사는 만해선사가 《불교유신론(1910년)》과 《님의 침묵(1925년)》을 지은 곳이며, 만해의 승려생활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로인해 백담사는 만해의 정신이 깃든 곳으로 많은 탐방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백담사 사찰 경내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은, 일제 당시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기리고자 백담사측에서 설립했다. 그 외 만해당과 만해적선당, 대규모 강당인 만해 교육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백담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극락보전이 보이고 좌·우로 화엄실과 법화실이 보인다. 일주문에서 우측에 보면 'ㄱ' 자형의 전통 한옥을 만나게 되는데 이 건물이 기념관이다.
만해기념관은 아직 탐방객이 많지 않다. 그러나 백담사에 만해기념관과 만해당, 만해교육원 등이 건립되면서 백담사에서 만해 한용운의 정신과 그의 일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교육장이 되고 있다.
또한 만해기념관에는 1929년 1월 1일 만해가 조국의 청년들에게 용기와 신념을 갖고 새날을 개척하라고 격려한 신년논설 등 만해의 독립정신을 볼 수 있는 유품이 상당수 전시되어 있다. 독립은 민족의 자존심이라며, 독립은 남을 배척함이 아니라는 엄격한 한용운의 독립정신, 재판과정에서 만해가 민족독립의 당위성을 피력한 내용을 보도한 신문기사, 옥중 투고 글도 게시되어 있다. 님의 침묵 판행본도 30여가지 전시되어 있어, 외국 발간본도 있다.
만해기념관: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1백10평 규모로 모두 8백여점의 유물이 상설전시하고 있다. 만해가 사용했던 육필원고인 《불교유신론》,《님의침묵》,《불교대전》 등 만해 저서 초간본 10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한용운 시집 영역본, 만해 문학세계 및 사상을 조감한 각종 논문평전 등이 있다. 만해의 출가 및 수행, 3.1운동, 옥중 투쟁, 계몽 활동, 문학활동, 신간회 활동 등을 분야별로 나누어 놓아, 한눈에 만해의 일생을 볼 수 있다.
기념관 내부 한편에 만해스님의 일대기를 비디오로 상영하고 있고 만해스님을 기리는 후학들이 만든 조각품 초상화 등도 선보이고 있다. 기념관 밖에는 만해의 시《나룻배와 시인》이 조각된 만해시비와 만해의 인물 두상 조각이 있다.
지하 전시장: 만해개인이 아닌 불교의 유물,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조계종 종정 월하스님의 글, 중광스님의 글과 백담사 주지가 소장한 심우도 10폭 병풍 등이 눈길을 끈다.
교육관: 총 1백20평 규모로 만해시인학교와 만해불교사상강좌 등을 통해 만해스님이 일제강점 암흑시대에 겨례의 가슴에 심어준 사상을 되살릴 수련장으로 활용된다.
개장시간
o 셔틀버스를 이용할 경우 - 08:00(첫차 출발) - 16:00(나오는 마지막 차) - 총거리 7km중 4km만 버스가 운행되고 나머지 3km는 도보 - 왕복 2시간 소요 o 도보로 왕복하실 경우 - 셔틀버스운행시간과 관계없이 통행하실 수 있습니다. - 왕복 3시간 3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