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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의 대명사인 미국 하버대학교도 출발은 메사추세츠 주의회가 설립한 지방의 전문대였다. 주의회 공공교육기관으로 시작한 이 대학이 세계최고수준의 대학으로 성장한 것은 찰스 월리엄 엘리엇이라는 총장때문이다. 엘리엇 총장은 1869년 이사회 선임으로 총장에 취임한 후 1909년 퇴임할 때까지 40년을 총장으로 재직했다. 취임 당시 별 주목받지 못했던 하버드대는 그가 총장으로 일하는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내 명문대의 아이콘이 됐다.
대학의 미래가 한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총장이 누구냐에 따라 대학의 발전속도, 변화의 속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훌륭한 CEO가 파산문턱에 까지 곤두박질치던 기업을 회생시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마찬가지로 대학의 운명도 총장에 의해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 사례는 많다. 하지만 관행적인 인선으로 총장이 선임되면 대학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100년이상 오랜 전통이 있는 대학이 많은 미국에서 단순히 역사가 길다고 명문대가 되는것은 아니다. 영국 식민지시절인 1636년에 문을 연 하버드대가 명문대가 된것은 고색창연한 역사때문이 아니라 엘리엇 총장의 혁신과 교육철학 때문이다.
오는 11월말 총장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는 충북도립대에 새 총장이 누가 올것인가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이때문이다. 하지만 새 총장의 인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학내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톡 까놓고 얘기하면 정해진 수순에 따라 그들만의 '밀실'에서 총장이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학교수들의 불만과 반발도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이제까지 총장 인선은 대체로 퇴직을 앞둔 충북도청 간부들의 몫으로 정해져 있었다. 역대 4명의 총장중 1명만 교수 출신이고 3명이 고위 공무원이었다.
현 연영석 총장도 소위 '워커 공무원'이라는 유신사무관 출신이다. 도립대가 정체되고 있는 이유는 뻔하다. 임명권자가 총장자리를 대학의 발전보다는 도청공무원들의 인사숨통을 틔워 주는 자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얼마전부터 대학이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너무 식상한 얘기라 관심거리도 안된다. 대학은 우후죽순격으로 난립하고 있지만 학령인구는 꾸준히 줄고 있다.
교수들이 상아탑에서 안주하던 시대는 지났다. 자기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학생들을 찾아 홍보팜플렛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세일즈하는 것이 이젠 흔한일이 됐다. 경쟁력없는 대학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특히 기반이 취약한 지방 사립대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따져보고 고민해야할 시기다.
이런점에서 충북도립대 구성원들은 상대적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비록 옥천군이라는 군단위에 위치해 있지만 충북도라는 막강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충북도로 부터 매년 14억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등록금이 저렴한 것은 이 대학의 강점이다. 반값등록금을 실현한 대학이 충북도립대다. 그나마 전교생의 60% 이상이 장학예택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등록금 전액 면제의 혜택을 받는 학생들도 속출하고 있다. 등록금 '0원'이 찍힌 납입고지서를 받은 학생이 전교생의 23%인 243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 정도면 평균으로 따지면 등록금이 가장 싸다는 교원대보다도 70만원이 적고 연간 180만원 수준인 고교 수업료에도 못미친다. '교육복지'라는 측면에서 볼때 이 대학만큼 좋은 대학이 있을까. 중요한 것은 이런 특혜만큼 이 대학의 수준이 향상됐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퍼주기식으로 학생들을 끌어모으는 것은 쉽다. 도민들이 낸 세금으로 얼마든지 인심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 도립대의 취업률은 충북도내 전문대중 꼴찌였다. 올 들어 졸업생 취업률이 지난해에 비해 무려 20% 가까이 떨어진 47.2%를 기록하며 꼴찌로 곤두박질 친것이다. 취업률이 대학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라고 볼 수는 없지만 우수한 인재를 키워 사회에 내보내는 것은 대학의 중요한 기능이다.
충북도립대에 전문성과 교육철학, 글로벌한 감각을 지닌 유능한 총장이 필요한 것은 이때문이다. 장학금 혜택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우수한 교수진을 영입하고,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특성화 대학에 걸맞는 연구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총장 영업이 더 시급하다.
이시종 지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고위공무원 인사적체 해소라는 관행을 되풀이 할까. 아니면 도립대의 도약에 초점을 맞출까...
/네이버 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