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도전 이주명씨
대기업에 재직 중인 이주명씨(31)는 날마다 달린다.
지난 3월1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5㎞씩 뛰었다.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황사가 시야를 가려도 한결같이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로
나가 치달렸다. (생략) "항암치료를 끝내고 복직한 후 1년 동안 불면의 밤이 많았어요. 죽음을 곁에 끼고 산다는 게 참 서럽더군요. 이제는 삶의 의지를 제 스스로 확인하고 싶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특히 딸에게 말이에요."
그는 2000년 6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3개월 이상 살기 어렵다는 '사형선고'가 뒤따랐다. 영화 또는 소설 속에서나 접하던 시한부 인생이 앞에 놓이자 그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했다. (생략)
하늘이가 태어난 지 2개월쯤 지나 그의 항암치료도 끝났다. 발견 당시 빠른 속도로 다른 장기에 전이되던 암이 완전히 제거됐다. 기적이라는 게 담당 의사의 얘기다. (생략)
의사들은 5년 이내에 암이 재발하지 않아야 그때 비로소 완치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내는 물론 부모형제들의 관심은 오직 그의 건강상태에 쏠렸다.
그는 퇴원과 동시에 걷기운동에 나섰다. 심폐운동에 도움을 주고 저항력이 높아진다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던 까닭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걷기운동에 짜증이 나고, 하루쯤 건너뛰고 싶은 유혹도 찾아들었다. 운동이 약이라고 생각하니 걷기가 더욱 싫어졌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처럼 마지못해 걸을 뿐이었다.
"저는 술ㆍ담배를 거의 안했는데 폐암에 걸렸어요. 큰아버지와 사촌 큰누나가 암으로 돌아가신 것을 보면 가족력이 높은 것 같아요. 어쨌든 '인명은 재천'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폐암과 사투 벌인 박현운씨
95년 2월 박현운씨(47·여)는 오른쪽 허벅지에 종기 같은 게 만져지는 걸 발견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듬해 종기가 갑작스레 주먹만큼 커졌다. 통증이 없기에 또 그냥 지나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피로하고 종양 주위에 시퍼런 멍이 생기는 게 아닌가. 이내 병원 수술로 종양을 깨끗이 없앴다. 그뒤 안심하고 지내다가 암이 폐 전체와 임파선으로 전이된 사실을 안 것은 96년 11월이었다. 병원에서조차 “전이가 심해 수술 자체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2개월 시한부 인생’이란 낙인이 찍혔다.
그냥 물러설 그녀가 아니었다. 무조건 1년 동안 항암치료를 했다. 97년 6월 암 진행이 멈췄다. 기쁨도 잠시, 3개월 뒤 재발하기 시작했다. 항암제 주사를 맞았으나 독성 때문에 보름 동안 누워만 있어야 했다.
박씨는 다시 살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통증만이라도 덜어보고자 그해 11월 한방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양방 병원을 매일 가는 동시에 한의원을 2~4주마다 1번씩 다녔다. 약 100일만에 가래가 없어지고, 기침도 떨어졌다. 이어 폐의 통증도 사라졌다. 외출할 때마다 들고 다녀야 했던 산소통도 필요없게 된 것이다. 1년만에 쉬었던 학교도 복직했다. 그러나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병이 또 재발했다.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식이요법을 꾸준히 한 결과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다.
2001년 겨울부터는 친구들과 등산을 시작했다. “폐와 다리가 아팠기 때문에 처음엔 못 올라갈 것이란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러나 나중에 얻은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대전의 한 마라톤 대회까지 참가했다. 무려 10㎞구간에 참가, 2시간 안에 완주하며 메달까지 받았다. “제가 뛰는 것은 누굴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죠. 올해는 연습을 해서 하프코스에 도전해 보려고요”. 이제 박씨의 표정에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http://www.a-m.or.kr 한국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
http://www.fourel.co.kr 암을 이기는 이들의 모임
http://www.cancerinfo.co.kr 암 정보 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