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의 생존자들 http://user.alpha.co.kr/~smurphy/survive.htm
체가 발굴하기까지는 스스로도
자신의비범함을 깨닫지 못한 인물.
베니그노라고 불렸던 다리엘
알라르콘 라미레스가 지금은 군에서
은퇴해 아바나 근처에서
정원을 가꾸고 있다.
라미레스는 최근에 <체의
생존자들>이라는 책을 펴내 체와 함께했던
볼리비아 시절을 들려주었다.
두 명의 동지들과 추로 계곡에 남아 있는 체의 본대에 활로를 터주기
위해 출발한 베니그노는
본대가 볼리비아 정부군과 접전하는 바람에
대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무
뒤로 숨어 계단형 대형을 갖추었다.
나는 서고, 엘 인티는 나무에
등을 대고 쪼그려 앉았으며, 다리오는
내 발밑으로 누웠다. 우리는
이렇게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때 우리는 지축을 흔들며
벼락이 튀는 듯한 맹렬한 폭음소리를 들었다.
체가 은신해 있는 비트가
적들의 집중포화로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정부군 병사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게릴라 한 마리 사살!"
살펴보자니 아니세토가 쓰려져 있었다.
나는 M-2를 어깨에 받치고
조준경으로 적군 지휘자를 겨누었다.
나는 체의 명령에 불복하는
게 아니다. 적군이 어차피 비트를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벌써 아니세토까지
사살했다.
방아쇠를 당겼다. 적군 장교가
병사들 앞에 쓰려졌다.
그들은 분명히 놀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 아래 우리 편이 은신해 있는 위치에서는
이렇게 정확하게 조준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제2탄을
준비해 지휘봉을 이어받은 자를 겨냥해 날렸다.
제3탄도 마찬가지. 이것은
병사들의 사기를 꺾는 최상의 방법이다...
추로 계곡 전투는 내 게릴라
생활에서 가장 치열한 것이었다.
전투력의 처이는 엄청났다.
그들은 우리를 겨냥해 5개 대대를 투입했다.
더욱이 그들은 모두 유격대원이
아닌가. 그들 중에는 부상을 당하고도 끝까지
전투에 임하는 용기 있는
자들도 있었다. 우리 편은 열 일곱 대원 가운데 단
아홉만이 온전한 몸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
이 순간, 몸을 움직여 나무
뒤로 적정을 살피는데 한 병사가 나를 식별했다.
나에게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적의 총알이 허리에 차고 있던 빈 탄창에 와서
박히는가 싶더니, 옆구리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M-2 탄알이었다.
이 탄알과 9월26일에 얻은
탄알은 허리춤에 박혀 있다가 수천 킬로미터를 나와
함께했다. 볼리비아를 떠나
쿠바까지 나를 동반한 충직한 벗이라고 할까....
나는 계속 후속 사격을 가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오후 5시까지 단 스물
여섯방으로 적군 수명을
사살하고 여섯 명의 중상자를 낼 수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5시 반 또는 6시 가량 되니까
드디어 그들에게 후퇴명령이 떨어진 것 같았다.
그들은 쓰러진 자기 동료들마저
챙기지 않고 빠르게 도주해 버렸다.
그들의 도주를 바라보며,
우리 셋은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환수했다는 자부심이
흘렀다. '내가 적군을 퇴각하게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그것은
곧 계곡에 은신해 있는 체와 다른 동지들이 드디어
출구를 찾았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내가 출구를 열었다.' 체가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니었는가. 인티와
다리오에게 말했다.
"페르난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고....
셋 다 목마를 타다시피 하면서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오며, 동지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준다는 기쁨에
들떴다.
그런데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형제들의 찢겨진 몸체들이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안토니오, 파초, 아르투로,
아니세트. 그들의 얼굴은 식별하기조차 힘들었다.
... 체와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우리는 그대로 쭈그리고 앉았다.
고개를 쳐박고, 이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우리 안으로 거대한 무력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우리는
겨우 이 모습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했단 말인가.....
그때 폼보, 우르바노, 엘
냐토가 페르난도가 명령한 위치에 있다가 나타났다.
그들은 다른 계곡 끝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페르난도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봤다. "너희들과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는 해가 뜰 때까지 걸었다.
그때 우리 발밑으로 이게라가 나타났다.
광장에 군대가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사령부
자리임을 알아차렸다.
우리가 우리 사령관이 거기에
포로로 잡혀 있다는 생각을 어찌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알았다면 우리는 지체 없이 죽을 각오로
들어가 그를 구했거나 그의
곁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여섯 명 가운데
누구 하나도 그때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시체를 운반하는 걸 보았다.
우리는 그들이 추로 계곡에서
영웅적으로 투쟁하다가 죽음을 당한 우리의
동지들-안토니오, 파초,
아르투로, 아니세토-과
부상당한 채 내버려두어
죽게 만든 자기들의 동료들일 거라고 짐작했다.
나는 저들이 '시체를 찾으러
다시 계곡으로 돌아갔던 모양이군.'하고 생각했다.
나는 코코가 죽기 직전에
추억으로 건네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항시 가지고
다녔는데 오전이 무르익은
지금-10시경이었다-저 아래 무슨 일이 있는지를
알아보자며 라디오를 나지막이
켰다. 라디오에 귀를 가져다 대자마자 체의
소식이 흘러 나왔다. 그의
이름, 그의 특징, 그가 신고 있던 신발 모양새,
양말 색깔까지 모든 것이
전파를 타고 있었다. 다른 주파수를 잡아봐도
한결같이 같은 소식이었다.
라디오 알티플라노, 라디오
산타크루스, 라디오 발마세다모두가
추로 계곡 전투에서 쓰러졌다는
전설의 게릴라 대장 체 게바라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라디오에 잡힌 이야기를
'이런저런 색깔의 자켓을 입은 게릴라 대장이
시계 두 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자기 것이며, 다른 하나는 투마의 것'
이라는 이야기까지 모두가
정확했다.
왜 이런 자세한 기억까지
한꺼번에 몰려드는지 회한이 밀어닥쳤다.
병사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억눌러야 하는데,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
'체게바라 만세'를 외치며 모두 죽이고 싶었다.
정부군 병사들은 바로 지척인데.
나는 그들을 가까이 보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 이게라에 있고
적이 만족할 터이다.
그들은 흡사 잔치라도 벌이듯
움직임이 분주했다.
어쩌면 체의 죽음에 건배할
수도 있겠지. 눈물이 느껴졌다.
나의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훔치고 눈을 크게 움뜬다.
내 앞의 동지들을 본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전투에 숙달될 만큼 숙달된
인티, 용맹스러운 엘 냐토, 아이 같은 다리오,
폼보, 우리바노, 죽음에
익숙한 이 사나이들이 모두 울고 있었다.
그래 내 의식이 애써 부정하고
있었던 것은 단 하나,
저, 들, 이, 체, 를,
죽, 였, 다.
거대한 평화가 내 가슴속에
퍼졌다.
마치 진정제가 퍼지듯. 국경도
, 국적도 없이 오직 여섯 사나이들이 울고 있었다.
시에라마에스트라 시절부터
함께한 쿠바인들, 볼리비아인들, 우리 모두에게 체는
지도자이자 동지였으며 소중한
친구였다.
그를 잃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옥죄오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체는 추로 계곡에서 쓰러졌다.
내 영혼은 체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속삭인다.
그러나 이 눈물을 앞에 두고
보니 이제 희망이 설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저, 들, 이, 체, 를, 죽,
였, 다.
다리엘
알라르콘 라미레스
<체의
생존자들>, 1995년
Socialism and
Man in Cuba
by Ernesto Che Guevara
This article was written in the form of a letter to Carlos Quijano,
editor of Marcha,
a weekly published in Montevideo, Uruguay.
It was first
published in the March 12, 1965, issue of Marcha.
It is reprinted
from Che Guevara and the Cuban Revolution,
copyright
ⓒ 1987 by Pathfinder/Pacific and 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