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 성당은 1899년경 약현(현 중림동약현) 본당 관할로 설립된 행주 공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행주 포구는 한강을 통한 수로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거주 인구가 제법 많은 지역이었다. 이에 따라 1899년 당시 약현 본당 주임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는 이곳에 행주 공소를 설립하였는데, 당시 신자수는 52명이었으나 공소 설립 1년 만에 102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교세 성장과 더불어 이 지역은 또한 약현 본당 관할의 경기도 서부 지역, 즉 김포군 · 통진군 · 고양군 · 양천군 · 양주군 · 파주군 등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공소들을 관할하기에도 적격이었다.
그러자 뮈텔(Mutel, 閔德孝) 주교는 1909년 5월 21일 행주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김원영 신부는 이듬해 8월 17일, 성모 승천 대축일 직후에 뮈텔 주교를 모시고 고양군 주도면 행주외리 197번지에 마련한 성당의 봉헌식을 거행하고 주보를 성모 승천으로 정하였으며, 1922년에는 성당을 증축하면서 사제관도 신축하였다.
그 후 행주 본당은 일제 말기에 선교사 추방 등 교회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질 무렵인 1942년 1월, 8대 주임이었던 김유룡(金裕龍) 필립보 신부가 대전 목동 본당으로 전임된 후 신부가 파견되지 않음으로써 한때 공소로 격하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광복이 된 후 1948년 2월에 9대 주임으로 김성환(金成煥) 빅토리노 신부를 맞이함으로써 본당으로 부활되었다.
본당으로 부활된 후 공동체는 활기를 되찾았으나, 얼마 못 가 도시화 현상으로 신자수가 감소하자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신부는 그 보완책으로 1957년에 수색동 205번지로 성당을 이전하고, 본당 이름을 ‘수색동 본당’(현 수색 본당)으로 바꾸면서 행주 본당은 재차 공소가 되었다.
그 후 수색동 본당은 12대 주임인 김윤상(金允相) 베네딕토 신부 때인 1970년 8월 2일 현재의 증산동 부지를 마련한 뒤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8월 12일 대지 425평에 연건평 232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관할 구역이 너무 넓어 사목상 어려움이 따르자 1978년 11월 8일에 대지 500평을 마련하여 능곡 공소를 설립하였다. 그 후 1981년 8월 10일 능곡 공소 강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8월 26일 이를 신축함과 동시에 능곡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그러면서 행주 공소는 능곡 본당 관할 공소로 변경되었다.
2004년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교구가 분리 · 설립되면서 행주 공소는 그 해 11월 18일 능곡 본당에서 분리되어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행주 본당은 2007년 5월 27일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을 열고 ‘행주 공소 설정 110주년 · 본당 설정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이 자랑인 행주대첩의 고장이며 교회사적으로 100년이 넘는 고양 지역 신앙 공동체의 중심인 본당의 위상을 새롭게 하기 위한 기념사업에 들어갔다. 그 일환으로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부식돼 가고 있는 성당을 복원하고, 신자 재교육을 위한 피정센터를 건립하는 한편 학술대회, 100년사 편찬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2008년 5월 25일 본당 설정 99주년 및 100주년 역사자료 전시관 개관식을 가졌는데, 전시관에는 주요 연보 및 사진 자료 등을 보기 쉽게 전시해 행주 공동체의 역사를 꼼꼼히 챙겨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성당 마당에 조성한 십자가의 길 축복식도 가졌다.
이런 준비과정을 거쳐 2009년 5월 31일 이한택 주교의 주례로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성당 옆 마당에서 ‘100주년 역사 기념관’ 기공식을 가졌다. 이날 첫 삽을 뜬 100주년 역사 기념관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 3년여의 공사를 통해 100년이 넘는 본당 역사를 몸소 느끼고 싶은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소규모 피정의 집과 교구사제 숙소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1910년 소박한 한옥 형태로 지어진 행주 성당은 1928년 인근의 현 위치로 옮겨 지으면서 상량 목부재를 포함한 기존 기초 부재를 대부분 재활용했고, 1949년에 증축하면서 기록한 자료 등 변천 과정의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건물의 뼈대를 구성하는 목조가구의 경우 최초 건립 부분과 증축 부분이 잘 남아 있어 성공회 강화 성당(사적 제424호)과 함께 대표적 한식 목조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행주 성당은 2010년 2월 19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55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0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건물도 낡고 지붕이나 벽도 예전 모습과는 달리 많이 변형되었다. 이에 행주 성당의 역사적 · 문화재적 가치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2013년부터 정부의 지원의 받아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복원작업은 문화재 전문가들의 역사적 고증과 자문을 거쳐 1950년도 과거 자료를 기준으로 진행되었고, 성당 해체 과정에서 나온 부재 중 사용 가능한 부재들을 재사용하고 낡은 곳은 구조를 보강해 최대한 문화재의 역사적 의미를 보존하고자 했다. 모든 공사를 마치고 2015년 12월 2일 행주 성당 복원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또한 성모승천을 주보로 모신 행주 성당은 2016년 1월 25일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과 특별한 영적 유대를 맺고 특별 전대사 순례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를 기념해 같은 해 10월 26일 대구대교구 성모당을 모델로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동굴과 같은 모양의 성모당을 건립해 축복식을 가졌다.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제8, 12권에서 발췌 및 내용 일부 추가(최종수정 2016년 1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