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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만큼, 영화가 가진 현실적인 함의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더군요. 특히 자주 이야기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인 것 같습니다. 영화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혹은 이라크 전쟁을 모티프로 차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실제로 미국 보수층에서는 이 영화를 반미 영화라며 비판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러한 비평은 충분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영화 포함)이 현실에서 뚝 떨어져서 존재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디언1들의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 영화는 사극이 아니라 판타지 영화지만요. 명백한 운명: 인디언들의 재앙흔히들 미국을 최초의 근대 국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미국의 건국이 계몽 사상에 기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전의 국가들은 신이 국왕에게 부여한 권리에서 통치의 적법성이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인간의 이성을 신뢰한 계몽 사상은 국가의 적법성이 피지배되는 국민들의 이성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따르면 국왕이 국민들의 뜻에 반하여 권력을 휘두를 경우, 국민들은 이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독립은 이러한 생각에 기반해서 이루어졌고, 독립 선언서에도 잘 나타나 있지요. Governments are instituted among Men, deriving their just powers from the consent of the governed, ...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는 13주의 대표들.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Declaration_independence.jpg 북미 대륙 전체에 자유를 확대하는 것은 신이 우리(백인)에게 맡긴 책무이다. 따라서 대륙 전체로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우리의 명백한 운명에 따른 권리이다. [출처]배경이야 다분히 경제적인 것이었겠습니다만, 어쨌든 이러한 표어는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학살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인간의 자유가 이성에 근거한다는 생각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성이 없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도 되거든요. 실제로 인디언들은 이성 - 혹은 과학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지배했던 것은 자연 모든 곳에 영혼이 있고 또 이들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범신론적 · 순환론적 사고였습니다. 그러니 명백한 운명 운운은 결과적으로 인디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려버린 셈이 되어버립니다. 본격적인 인디언 말살은 1830년 5월 26일,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인디언 제거법"에 서명하면서 시작됩니다.2 미시시피 강 동쪽에 살고 있던 인디언 부족들을 서부로 강제 이주시키는 것이 이 법의 내용이었는데, 당연히 그 집행은 그리 점잖치 못았습니다. 특히 체로키 족이 쫓겨갔던 길은 지금도 눈물의 길이라고 불리고 있을 정도니까요. 이후 남북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인 서부 개척의 시대가 열리면서, 인디언들은 착실히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수우족 추장 시팅불(1831~1890)을 찍은 사진. 시팅불은 미국 기병대에 저항한 가장 유명한 인디언 추장이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Chief_sitting_bull.JPG 세계 평화를 위한 최선의 희망은 전세계로 자유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 세계의 폭정을 종식시킨다는 궁극적인 목표로 민주주의 운동과 제도의 성장을 추구하고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영화에 그려진 인디언의 이미지지배적 이데올로기는 대중 문화에도 스며들기 마련입니다. 흔히 미국적 가치를 가장 잘 반영했다고 불리는 것들은 서부극인데, 이 영화들에서 인디언들이 어떤 식으로 다뤄졌는지는 아마 설명이 필요없을 겁니다 - 예, 말 그대로 악역이었죠. 그것도 10원짜리 단역. 1970년 개봉된 <솔져 블루Soldier Blue>는 인디언의 눈에서 서부 개척을 바라본 최초의 영화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데는 시대적인 변화도 한 몫 했습니다. 60년대 이후 사람들은 기존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이성적 합리성에 의심5을 품기 시작거든요. 환경 파괴나 베트남 전쟁의 수렁 같은 데 염증6을 느꼈기 때문인데, 어쨌든 그 과정에서 인디언들의 문화는 관심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뭐, 여기에는 비슷한 시기에 활발하게 일어난 인디언 저항 운동도 한 몫 했을 겁니다. <늑대와 춤을(1990)> 그런데 <아바타>를 보다 보니... 오히려 이 영화가 딱 그 범주에 들어가더군요. |
먼저 이름. 영화에서는 나비족의 이름을 소개하면서 하나씩 그 뜻을 일러 주는데, 이런 식으로 이름을 해석하는 것은 백인들이 북미 인디언들을 부르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수우Sioux족의 추장 타탕카 이요타케는 라코타 말로 "앉아 있는 황소" 라는 뜻인데, 흔히 시팅 불Sitting Bulll이라고 부르죠 - 그러니까 뜻풀이를 해서 영어로 부르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유명한 추장 타순케 윗코는 "미친 말" 이라는 뜻으로, 보통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라고 부릅니다.
사우스 다코타에 있는 크레이지 호스 조각상. 그는 1876~1877년의 수우족 전쟁에서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제 7 기병대를 전멸시켜 큰 명성을 얻었다. http://www.flickr.com/photos/kkanouse/4096646484/
또 하나는 동물과의 교감을 중요시하는 문화. 영화를 보신 분은 나비족이 된 제이크가 처음으로 말(?)을 타려고 할 때 말하고 교감이 안되서 곤두박질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외에도 용가리(?)를 탈 때도 동물하고 교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죠. 제이크가 사냥을 할 때 사냥감의 영혼을 위로하는 말을 읊조리는 장면도 기억하실 겁니다.
이건 수렵을 중요시하는 인디언 부족들에서 보이는 풍속입니다. 아니, 수렵이 거의 유일한 생존 방식인 곳에서는 기본적으로 다 보이긴 한다고 하는군요. 고래를 잡아 먹는 에스키모나 곰을 잡아 먹는 아이누 족 같은 곳 말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문명인들 하듯이 함부로 동물을 다루거나 잡아먹으면 그 영혼이 해꼬지를 하기 때문에 위로를 하거나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찾아 본 자료들 중에서는 라코타Lakota족 샤먼의 회고담에 동물의 영혼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랍니다. 아마 신내림을 받던 시절의 이야기였던 것 같았습니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의례를 행하고 있는 블랙풋Blackfoot 부족의 샤먼을 그린 그림. 조지 캐틀린, 1832년.
외적인 것도 하나 있었죠. 인디언들이 쓰는 가슴 방어구BreastPlate를 나비족 전사들이 그대로 착용하고 나오더군요. 이것(BoneHair)은 기본적으로 뼈를 엮어서 만드는데, 일종의 갑옷 같은 역할을 합니다. wow의 타우렌 전사들이 이걸 착용하고 다니니까 게임 해보신 분들은 꽤 익숙하실 겁니다.
이름난 수우족 전사, 쇼트불Short Bull을 찍은 사진. 가슴 방어구를 차고 있다.
<늑대와 춤을(1990)>의 한 장면. 수우족 인디언이 존 던바에게 자기 보호대를 벗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은 세계수 개념입니다. 세계수란 우주의 층위를 연결한다는 신화적인 나무인데, 보통 물리적 세계와 영혼의 세계를 잇는 역할을 합니다. 영화에서도 딱 그런 역할을 하지요. 전세계적으로 조금씩 발견되는 것이긴 합니다만 백인들의 눈에 가장 일반적인 것은 여전히 인디언들의 개념이겠죠. 특히 오지브와 족의 신화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러한 이유로 <아바타>가 반쯤은 인디언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좀 계시더군요. <아바타>와 <포카혼타스>의 이야기 구조가 동일하다는 주장도 있었고, 동아일보 권재현 기자는 "<늑대와 춤을>의 명백한 대체 역사물" 이라 평했습니다. 둘 다 정확한 평1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나비족의 말은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 말을 가지고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여기에 대해서는 이 기사 참조.
ps) 사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지구인들이 쓰는 거대한 메카닉이었습니다. 금속제 피규어로 만들어 출시하면 정말 멋있을 것 같네요. 여기에 일본도와 토마호크를 보조 장비로 추가하라!! 멋진 추가 데칼을 듬뿍 넣어달라!! 고 외치면 짤없이 오덕 확정이지 말입니다. 하지만 고어핀드 군은 오덕이 아니니 그렇게 외치지 않지 말입니다.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리지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고어핀드 군을 위한 아이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