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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년
이해고가 이토록 어이없는 참패를 당한 것은, 그의 자만심 때문이다. 부하 장수들이 군사를 나누어 추격하자고 요청했으나, 주변에 다른 적군이 없는데다 단주성 군대의 후원이 있었고 또 고조영의 군대를 일거에 쓸어버리겠다는 야심 때문에 이해고는 전군을 독려해 무리하게 천문령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설사 천문령에 적군이 매복해 있다 하더라도 그의 대군은 소수의 적군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게, 그의 큰 과오였다.
그 옛날 창주성에서 이 노사라는 창술의 달인에게 들은 교훈을 그가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면, 이처럼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때 이 노사는 그에게 이런 취지의 말을 했었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심법은 겸손이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그 사이 고조영에게는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이해고와 일대일로 맞서 싸우던 사비우가 중상을 입고 끝내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천문삼걸로 불리던 세 용사도 이 전투에서 선두에 나가 가장 용감하고 맹렬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실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투지와 무용이 고구려군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쳐 고구려말갈거란 연합군이 당군에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조영은 사비우와 천문삼걸의 시신을 정중히 수습하게 했다.
그 동안 전세를 관망하며 힘을 비축해두었던 고조영은 당군이 거의 다 무너져 내렸음을 확인하고, 백여 기를 거느리고 북으로부터 조선하 다리를 건너 이해고에게 다가갔다.
이해고의 군대는 보병이 모조리 죽거나 사라지고 마병만 겨우 백여 기 남아 있었다. 그 때 남쪽에서는 미시아가 마병을 거느린 채 선두에 서서 형형한 눈빛으로 이해고를 바라보며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이해고는 투지를 잃은 지 이미 오래다. 그는 말머리를 돌려 백여 기를 거느린 채 고조영 군대의 후군인 미시아를 충돌하고 지나가려 했다.
미시아 역시 온종일 창을 휘두르며 전투를 치르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족히 당나라 군대 수백, 수천 명과 싸움을 치른 것 같았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야차 같았다.
이해고가 앞장서서 돌진했다. 미시아는 길을 가로막고 긴 창을 휘두르며 이해고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 이해고의 뒤편에서는 고조영이 정예 기마군을 거느리고 이해고를 따르는 백여 기를 헤치며 이해고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미시아는 창으로 이해고와 부닥쳐보니, 창술에서 자신이 이해고보다 한 수 아래임을 깨닫고, 창을 버리고 검을 뽑아 들었다. 병장기 자체로서는 검이 창보다 불리했지만, 그녀의 검법은 영묘하기 짝이 없었다. 창으로 싸울 때는 미시아가 패색이 짙었으나 검으로 이해고의 창을 대하자 금새 기세를 회복해 피차 백중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자 이번에는 이해고의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해고는 온 힘을 다해 장창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혈로를 뚫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일부 고구려군과 거란군은 퇴로를 차단한 채 두 사람의 싸움을 관망하고 있었다.
그 때다.
“피융!”
어디선가 화살 한 대가 급하게 날아오더니 미시아의 갑옷 솔기 사이에 정확히 꽂히는 것이었다.
미시아는 이해고와 싸우느라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거나 방비할 틈이 없었다. 뒤쪽에 있던 이해고의 부하가 찰나 간에 화살을 날려 근거리에서 미시아를 명중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화살을 날린 그 군사 역시 고려군의 즉각적인 응사에 맞아 말위에서 떨어졌다.
그 동안 일백여기의 당군도 모조리 죽거나 부상당해 넘어지고 당군은 오직 이해고 홀로 남아있었다.
“이해고!”
이해고의 등 뒤에 접근한 고조영이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것은, 미시아가 화살에 맞아 가슴을 움켜쥐고 있을 때다. 이해고는 마지막 일격으로 미시아를 찌르려 하다가 고조영의 고함소리를 듣고 휙 뒤를 돌아보더니, 갑자기 왼손으로 고조영을 향해 비삭飛索을 날렸다.
당나라 장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천하의 비기, 이해고의 비삭술이다. 밧줄이 정확하게 날아가 고조영의 몸을 마치 뱀처럼 휘감아버린다.
그 찰나, 미시아의 부상에 깜짝 놀란 이루하가 달려와 미시아를 말에서 부축해 내린 후, 응급처치를 가했다.
고조영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왼손으로 밧줄을 움켜쥐었다. 이해고도 역시 오른손으로 장창을 들고 왼손으로 밧줄을 꽉 잡은 채 힘껏 끌어당겼다. 하지만 고조영은 요동도 하지 않았다.
고조영이 바른 손에 든 창을 버리고 갑자기 양손으로 줄을 당기자 순간적으로 이해고는 밧줄을 놓쳐버린다. 고조영은 밧줄을 몸에서 풀어버리고, 검을 뽑아 든 후 이해고에게 서서히 접근했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작렬한다.
“고조영! 내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알았다.”
이해고가 신음하듯 내뱉었다.
“이해고! 당신이 거란을 배신하고 당군에 설 줄은 꿈에도 몰랐소. 옛정을 생각해 내가 십초를 양보하겠소.”
이해고는 두말없이 장창을 휘두르며 고조영에게 나아갔다. 고조영은 약속대로 검으로 막거나 피하기만 할 뿐 공격하지 않았다. 이해고의 십초 공격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고조영이 한발 뒤로 물러서며 말한다.
“당신이 나의 검을 받아 백 합을 넘긴다면, 내가 당신을 살려서 보내겠소.”
고조영이 가벼운 손짓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스산한 봄바람이 산야를 휩쓸고 지나간다. 이해고는 창으로 차분하게 고조영의 검을 받았다.
다음 순간 고조영이 휘파람을 한 차례 강하게 불더니 갑자기 검세를 변화시키며 장창을 뚫고 이해고에게 바짝 접근했다.
어느 순간, 고조영의 왼손이 이해고의 창 자루를 붙잡고 있었고, 그의 검 날은 이해고의 어깨 위, 목에 핍근해 멈추어 있었다.
“이해고! 항복하시오!”
이해고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긴 한숨을 내쉬더니, 처량하게 말했다.
“내가 졌다.”
“항복하시오!”
“항복할 순 없다. 나를 죽이라!”
이해고는 삶을 포기한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조영은 이해고의 창을 빼앗아 던져버리고 검을 거두어 검 집에 넣었다.
“돌아가시오. 옛정을 감안해, 한 번은 살려주겠소. 하지만 두 번 다시 걸리면 그 때는 당신의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오.”
고조영은 병사들에게 명했다.
“여봐라! 길을 터주라!”
이해고가 고조영을 한 차례 노려보더니, 말을 돌려 서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해고는 그의 비밀 병기인 비삭飛索도, 장창도 고조영에게 빼앗겨 버려둔 채, 처량한 표정으로 남쪽을 향해 말을 몰기 시작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고조영의 군대는 사비우와 군사들의 시신을 수습해 이해고를 따라 남쪽으로 행군하기 시작했다.
조영이 하늘을 쳐다보니 장엄한 노을이 동쪽부터 시작해 온 하늘에 퍼지고 있었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늘의 붉고 밝은 빛이 지상에 임한 것 같았다.
잠시 후 이해고는 그들의 시야에서 어느 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고조영의 천문대첩은, 당군을 세 갈래 길의 중앙에 넣고 세 갈래 길을 삼면에서 모조리 차단한 다음 산위에서 맹공을 가해 전멸시킨 작전이었다(앞의 그림 참조). 세 갈래 길의 양쪽은 산과 물이 많은 골짜기, 가파른 계곡이었으므로 당군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고조영의 이 작전과 동일한 전법을, 훗날 거란군이 다시 사용한다. 설인귀의 아들 유주대도독 설눌이 두빈객, 최선도 등과 더불어 육만 대군을 이끌고 단주로 나가 거란군을 추적한 것이 714년이다. 거란군은 당군에 패주하는 척하며 단주(북경 밀운현) 북쪽의 천문령을 거쳐 고북구를 지나고 난하 상류까지 그들을 유인했다.
당군이 산골짜기에 들어서자, 거란군은 당군의 앞뒤를 차단하고 산위에 복병을 두어 그들을 들이쳤다. 설눌은 전군을 모조리 잃고 겨우 수십 기만을 거느린 채 도망가야 했다. 살아남은 설눌의 장수들은, 설눌의 무리한 행군에 반대했던 두빈객을 제외하고 모조리 사형을 당했으며 설눌도 사형 언도를 받았다가 겨우 사면 받아 목숨을 부지했으나 관직과 작위를 모조리 삭탈당해야 했다<자치통감>.
밤새 길을 재촉해, 이튿날 저녁 고조영의 선봉부대는 부상당한 미시아를 말에 태우고 계성에 도착했다. 계성을 지키던 고구수는 잠깐 고조영의 부대와 싸우는 척 하다가 성을 버리고 요동고성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계성에 다시 무혈 입성한 고조영이 군대를 점호해보니, 당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지 않고 온전하게 살아 돌아온 이는 오천 밖에 되지 않았다.
그 때 계성의 노약자, 부녀자, 어린이들을 호위하던 고조영의 부대 일만 오천이, 백성들과 함께 고북구로부터 다시 돌아와 군세를 합하니, 고조영의 군대는 이만을 헤아리게 된다.
한편, 고조영은 계성의 용한 의원을 찾아, 화살에 부상당한 미시아를 정성스럽게 치료했으나 미시아는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미리 해독제를 먹여 화살에 발라진 독기를 중화시켰지만, 그녀의 상세는 안타깝게도 날이 갈수록 중해졌다.
춘삼월 따스한 봄날 고조영은 홀로 미시아의 거처를 찾아갔다. 그날따라 왠지 미시아와 단독으로 면대하고 싶었다. 고조영이 방안에 들어가니 미시아가 힘없이 누워있었다. 그녀의 꽃 같은 얼굴이 몹시 초췌해보였다.
“미시아!”
고조영이 안타까운 음성으로 미시아의 이름을 직접 불렀다. 고조영이 그녀의 이름을 손수 부르는 이런 일은 극히 드문 경우다. 고조영은 언제나 그녀를 아가씨라 호칭했었다.
미시아가 실 날 같은 미소를 머금고 눈을 뜨더니 고조영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어인 일로 이렇게 혼자 찾아오셨습니까?”
“나 혼자서 당신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오.”
미시아가 감격에 젖은 낯빛으로 한참 동안 고조영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좌우를 물리쳐 주세요.”
고조영이 손짓하자 그녀의 병구완을 하고 있던 두 하녀가 밖으로 나갔다.
“귀를 이리 가까이 대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한다.
고조영이 고개를 숙여 귀를 기울이니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태자 전하.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의 아기를 가졌다는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고조영을 언제나 태자 전하라 부르던 미시아가 갑자기 호칭을 바꾸어 고조영을 당신이라 부른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고조영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당신을 차지하고 싶어서, 당신과 혼인하고 싶어서,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니, 그럼 그날 밤 마미성의 방 안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말이오?”
“네.”
대답하고 그녀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고조영은 손수건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를 애처롭게 응시했다.
“어서 속히 일어나시오. 병은 곧 나을 거요.”
미시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정과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고조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한다.
“당신이 내 눈물을 닦아주니, 저는 너무나 행복해요.”
슬픔에 겨운 고조영의 눈에서도 어느 덧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런 말 말고, 어서 일어나오. 나는 진즉부터 당신을 내 아내 될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소.”
갑자기 미시아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해졌다.
“전하, 그게 사실이에요?”
“그럼요, 사실이고말고요. 재작년에 유주에서 당신을 다시 만난 후부터 어딜 가든 늘 당신을 데리고 다닌 것은, 실상 당신을 나의 배우자 될 사람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만면했다. 한참 동안 미시아는 행복하고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진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은 곧 나을 거요. 병석에서 일어나면 즉시 혼인예식을 치릅시다.”
미시아가 고조영을 응시하다가 물었다.
“이진영 대인이 별세하기 전, 따님인 이루하를 전하께 부탁했는데, 그녀는 어쩔 셈이에요?”
“그녀는, 그녀는···.”
조영이 말을 맺지 못한다.
그녀가 실처럼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한참 동안 두 눈을 감고 있던 미시아가 눈을 감은 채 고조영에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전하의 손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군요. 하지만, 내가 부상을 입어 전하께서 나를 안고 말에 손수 태워주셨을 때, 나는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아, 내가, 나 미시아가 전하의 품에 안기다니.”
그 날 일을 회상하는지 미시아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감돌았다.
고조영은 그녀의 뜻을 알고, 그녀의 손목을 살며시 붙잡았다. 그 순간 미시아가 온몸을 가늘게 떨었다.
“전하의 손이 너무나도 따스하군요.”
한참 동안 조영은 손을 놓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 빨리 여미아와 극시아, 이루하를 불러주세요.”
고조영이 미시아의 손을 놓고 하녀들에게 그녀들을 급히 모셔오게 했다. 얼마 후에 세 여인이 뛰어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와 초췌한 미시아의 안면을 보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언니, 어서 일어나세요. 곧 일어나실 거예요.”
극시아가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미시아가 눈을 떴다.
“내게 얼굴 좀 보여주세요.”
아마도 고개를 돌릴 힘조차 없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이 그녀의 눈앞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이루하 아가씨, 그리고 여미아, 극시아. 태자전하를 잘 보필해주세요.”
잠깐 멈추었다가, 그녀가 말을 잇는다.
“태자전하. 여미아와 극시아를 잘 돌보아 주세요.”
“그건 염려하지 말고, 어서 속히 쾌차해 일어나시오.”
“전하, 제 손목을 다시 잡아주세요.”
고조영이 미시아의 팔목을 살며시 붙잡았다.
“저를 안아주세요. 그 날, 말에 태울 때처럼.”
“당신은 상세가 위중하니, 움직이면 아니 되오.”
“괜찮아요.”
고조영은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상체를 두 팔로 안았다. 몸이 너무나 가벼웠다.
고조영은 마음이 아파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한동안 눈을 감고 고조영의 품에 안겨 있던 미시아가 입을 열어 말한다.
“저는, 우리 여미아가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사모하던 어진님 품으로 이제 갑니다. 저 세상에 가서 어진님을 만나면··· 고국의 땅을···.”
그녀가 한 차례 숨을 몰아 내쉬고 말을 띄엄띄엄 이었다.
“고국의 땅을··· 되찾게 해··· 달라고··· 어진님께···.”
그녀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빌··· 빌겠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힘을 내시오!”
“빛난 옷을 입은 어진님의 사자들이··· 절··· 데리러 왔어요. 저기···.”
다음 순간 미시아는 깊은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평화롭고 행복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렇게 한 많았던 미시아의 인생은 고요히 이 세상을 하직하고, 저 하늘의 천향, 천궁으로 돌아가, 어진님의 품에 영원한 행복 속으로 안겼다.
슬픔도 눈물도 고통도 아픔도, 이별도 질병도 죽음도 없는, 가없는 희락과 행복만이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연연세세 무궁의 저 본향으로 그녀의 영혼은 기쁨이 가득한 채 돌아갔다.
고조영이 그녀의 시신을 안고 통곡을 터뜨린다.
“미시아!”
“언니!”
“아가씨!”
여미아, 극시아, 이루하도 일제히 울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계성 관아의 뜰에 모란꽃이 활짝 피던 봄날, 미시아를 잃어버린 고조영은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공무도 내 팽개치고 사저의 방안에 누워있었다. 그날따라 미시아에 대한 추억이 간절해, 마음속으로 미시아를 애타게 연신 부르고 있었다.
그 때 소리도 없이 방문이 사르르 열렸다. 깜짝 놀란 고조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시아!”
그가 불시의 방문객 얼굴을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다.
미시아가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 채, 진분홍 장미가 수놓인 예의 그 연보랏빛 치마저고리를 입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었다.
“태자 전하! 저는 미시아가 아니라 여미아입니다.”
“아니오. 당신은 틀림없는 미시아요. 나를 속이지 마시오.”
“전하! 미시아 언니는 이미 죽음 없는 본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옷차림이나 얼굴은 여미아가 아니라 미시아요.”
“전하! 저는 여미아에요. 왜 저를 모르세요?”
몹시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그녀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조영을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문밖으로 나가는데, 다시 문이 스르르 열리며 그녀는 조용히 사라졌다.
“미시아! 아니, 여미아! 잠깐만, 잠깐만! 날 좀 보고 가시오!”
고조영은 소리쳐 부르다가 문득 깨어나 보니, 한바탕 봄꿈이었다. 몹시 기이하게 생각하며 고조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뜰에 모란화가 활짝 피어 있다. 한참 동안 뜰 안을 거닐다가 바깥의 봄바람을 쐬고 싶어 대문을 열었다.
한 발자국 대문 밖으로 나서며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니, 보라! 한 여인이 하늘거리는 몸짓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는데, 연보랏빛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미시아다.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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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5. 10. 16. 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