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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축(立春 祝)
千災雪消(천재설소)-모든 재앙은 눈처럼 녹아 없어지고,
萬福雲來(만복운래)-많은 복이 구름처럼 밀려오리라.
재앙(災殃)이란 사람에게 대하여 자연적으로나 인위적 사고 등의 불행(不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재앙이 없어지도록 입춘 축(立春 祝)으로 간절히 비는 것입니다.
복(福)이란 인간의 삶에서 누리고 싶은 만족할 만한 행운과 거기서 얻는 행복을 말합니다. 즉 오복(五福)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로 집을 짓고 상량(上梁)할 때 대들보에 연월일시(年月日時)를 쓰고 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오복(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이라 씁니다. 이 뜻은 “하늘의 세 가지 빛의 힘에 의하여 인간 세계에는 오복이 갖추어주소서”하는 소망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민족은 새봄에 대한 소망을 세시(歲時)에 기원하는 목화처럼 소박한 순박성이 있습니다. 입춘 날에 재앙을 멀리하고 축복을 비는 마음은 첨예(尖銳)한 과학문명의 여행에 지친 현대인의 목마름의 절규(絶叫)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재앙을 멀리하고 복을 가까이 하는 것은 소원만 해서는 안 되고 복을 받고자하는 사람이 선(善)한 노력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공자(孔子)께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 계선편(繼善篇)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子曰(자왈)
僞善者 天 報之以福(위선자 천 보지이복)
爲不善者 天 報之以禍(위불선자 천 보지이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는다 』
또한 성경 창세기에는 유명한 기록이 있습니다
요셉(Joseph)은 구약성서 창세기(37장~)에 나오는 야곱과 라헬의 12명의 아들 가운데 11번째 아들로서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에 팔려가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이집트 주변의 흉년과 기근을 미리 예지하고 대책을 미리부터 세운 이상적 덕목을 갖춘 명재상(국무총리)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12부족(部族) 족장의 한 사람입니다. 야곱의 느즈막에 난 아들로 아버지의 편애를 받아 형제들의 시기를 샀습니다. 요셉이 왕이 되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다가 이집트의 유목민 장사꾼 대상(隊商)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러나 운좋게도 이집트 왕의 시위대장인 보디발 집에 하인이 되어 말단 관원생활을 하게 되어었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매우 아름답고 음탕한 여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을 하며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유혹을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께서 나를 믿어 이 집안의 모든 것을 맡기고
아무 것도 간섭하지 않으시면서
주인은 나에게 당신의 아내 말고는 무엇이고 다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감히 주인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런 엄청난 나쁜 일을 하여 하느님께 죄를 짓겠습니까?』
그러던 중 파라오(바로)왕의 꿈을 해몽한 것을 계기로 왕의 신임을 크게 얻고, 마침내는 총리대신이 되어 이집트 주변의 흉년과 기근을 예지하고 대책을 미리부터 세워 해결하였으며, 기근에 시달린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을 맞아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진실 순종 인내 사랑 등 이상적 덕목을 갖춘 명재상(국무총리)으로서, 이국인 이집트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매우 각광받는 인물이며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매우 좋은 본보기가 되는 훌륭한 사랍인니다.
이와 같이 복은 바르고 선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이 내리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올해처럼 설 이전에 입춘이 들면 봄이 짧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다른 해 보다 더 바쁜 한해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위에 있는 그림은 입춘에 간장을 담그는 모습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입춘 무렵에 장(醬)을 담그면 좋다고 하였습니다. 대부분 눈이 왔을 때 눈물(雪水-설수)로 담그는 정월 장이 맛있다고 하여 정월달 말(午-오)날에 장을 담그는데 그 이유는 부정을 타지 않아 발효되는 동안 나쁜 곰팡이가 생기지 않아
장이 썩지 않고 추울 때 장을 담그게 되면 간을 짜게 하지 않아도 간이 잘 맞고 장이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만물을 생동시키고 한해를 출발하는 첫 입춘 절기는 신성합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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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축(立春 祝)
哄然大笑(홍연대소)-큰 소리로 껄껄 크게 웃으면,
養情益壽(양정익수)-정기가 길러져서 장수하게 된다,
웃음을 뜻하는 글자인 웃음 소(笑)자는 竹+夭=笑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웃음 소(笑)자를 파자(破字-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누어서 설명)하면 음(音-소리)을 나타내는 어릴 요(夭)는 요염하게 앉아 있는 여자의 모양과 같고 대나무 죽(竹)은 댓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웃음소리 같다고 하여 이 두 뜻이 합(合)하여 “웃다”를 뜻하는 소(笑)자가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웃음 소(笑)자 글자 모형의 기원(起源)은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이 요염한 여자가 몸을 꼬면서 웃는 모습이라 하고 하였습니다.
웃으면 건강에 좋다, 많이 웃어라!
TV나 신문에 황수관 의학박사 이상구 의학박사등 세계의 저명한 의학계의 학자들이 웃음이 건강관리의 최고 방법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많이 웃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건강을 위하여 많이 웃어야 겠습니다.
그런데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입춘 축(立春 祝)의 내용으로
“큰 소리로 껄껄 크게 웃으면 정기가 길러져서 장수하게 된다” 는 글을 써 놓고 웃음에 대한 생각을 쓸려고하니 너무 어려워서 엄두가 나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웃음을 제목 삼을 건더기가 없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에서도 매일 보는 식구들보고 계속 웃을 건수도 없고, 친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나는 사람과도 대화만 오가지 별로 웃지를 않습니다.
버스 전철칸을 둘러봐도, 시장에 가봐도, 음식점에도 심지어는 인라인 타는 곳에도 웃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봉사일로 교회를 가보고 절에 가봐도 웃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국민성이나 생긴 골격이 웃음에 불리한 조건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특별히 화내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웃음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언제 웃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눈만 뜨면 얼굴보는 아내와 식구들에게 뭐 좋은 일이나 우스운 일이 있으면 그냥 한번 씩 웃고 끝입니다. 계속성이 없습니다.
TV 화면에 코미디나 우스운 장면, 지난 월드컵에 4강에 오를 때 좀 웃었습니다.
그중에 많이 웃은 것은 친구들 모임에 갔을 때 “진한 농담”을 했을 때 이었습니다. 그러나 헤어지고나면 웃음은 끝입니다.
내킨 김에 혼자라도 한번 웃으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인라인을 타려 가는데 자전거로 왕복 60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요즘 춥기 때문에 눈만 나오는 복면을 하고 자전거를 탑니다.
마주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소리 내어 웃어 보았습니다.
목구멍에서 목젖이 흔들리는 소리가 괴상하게 나오고 별로 크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하였습니다.
이것은 웃음이 아니라 악을 쓰는 거나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처음에는 미국 코미디인 찰리 채플린의 걷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웃었습니다. 그러나 채플린의 얼굴표정은 항상 슬픈 표정입니다. 별 도움이 안됩니다.
다시 심형래의 헛손질하는 연기를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로또복권도 당첨되었습니다.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는 가늘어서 배꼽에 힘을 주고 웃었습니다.
목소리는 좀 굵어졌지만 도둑놈 웃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집에서 거울을 보고 웃어 보았습니다.
웃는 얼굴이 아니라 오만상을 찡그린 아인슈타인의 몰골입니다.
아내가 옆에서 보고 “당신 지금 뭐하냐고” 하면서 오히려 히죽 웃습니다.
웃음, 참 어렵네요 !
건강에 좋다고 주문하는 웃음은
모나리자의 알 듯 모를 듯한 웃음도 아니고,
성경속의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의 웃음도 아니며,
마음이 모나지 않고 둥굴둥굴하게 웃으라는 부처님의 원만구족(圓滿具足)의 웃음도 아니고,
꽃을 집어 들고 웃으라는 마하가섭의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웃음도 아닙니다.
건강이 요구하는 웃음은 이런 의미 있는 종교 철학적인 웃음 보다는
배를 안고 넘어질 정도로 몹시 웃는 포복절도(抱腹絶倒)의 웃음,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 박장대소(拍掌大笑)의 웃음이나
너무 즐거워 얼굴을 활짝 펴고 웃는 파안대소(破顔大笑)의 웃음
모임에 둘러 앉아 입을 크게 벌려 껄껄 웃는 만당홍소(滿堂哄笑)의 웃음입니다.
그래야 진통효과 물질인 엔도르핀(endorphin) 보다 강력한 행복의 전달 물질인 도파민(dopamine)이 생산되어 우리의 건강을 증진 시켜 준다고 합니다.
내일 모레 닥아오는 설날에는 가족끼리 윷판에 둘러 앉거나
아니면 고 스톱 판(go stop fun)을 만들어 한번 웃어 보세요.
시작한 김에 좀 오랫동안 웃기 위해서 모임이나 개인생활에서 농담도 많이 하면서 웃음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사 웃음판이 없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가 판(fun)을 만들어 웃어야 겠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농월이 요즘 좀 이상해, 마치 나사빠진 사람같이 맛이 좀 간 것 같해” 하는 말을 듣더라도---
끝으로 중국 무협영화 허관걸 주연 소호강호(笑傲江湖)의 주제가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 “웃음을 파도에 실어 보낸다”를 소개 합니다.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웃음을 파도에 실어 보내며
滄海一聲笑(창해일성소)
푸른 파도에 한바탕 웃는다
滔滔兩岸潮(도도량안조)
도도한 파도는 해안에 물결을 만들고
浮沈隨浪記今朝(부침수랑기금조)
물결 따라 떴다 잠기며 아침을 맞네
滄天笑紛紛世上滔(창천소분분세상도)
푸른 하늘을 보고 웃으며 어지러운 세상사 모두 잊는다!
誰負誰剩出天知曉(수부수잉출천지효)
이긴자는 누구이며 진자는 누구인지 새벽하늘은 알까
江山笑煙雨遙(강산소연우요)
강산에 웃음으로 물안개를 맞는다
濤浪濤盡紅塵俗事知多少(도랑도진홍진속사지다소)
파도와 풍랑이 다하고 인생은 늙어가니 세상사 알려고 않네
淸風笑竟惹寂寥(청풍소경야적요)
맑은 바람에 속세의 찌든 먼지를 모두 털어 버리니
豪情還剩了一襟晩照(호정환잉료일금만조)
호걸의 마음에 다시 지는 노을이 머문다
蒼生笑不再寂寥(창생소불재적요)
만물은 웃기를 좋아하고 속세의 영예를 싫어하니
豪情仍在癡癡笑笑(호정잉재치치소소)
사나이도 그렇게 어리석고 어리석어 껄껄 웃는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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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축(立春 祝)
立春大吉(입춘대길)-봄이 오니 행복도 같이 오고
建陽多慶(건양다경)-새해는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아침은 1년이 시작되는 첫 절기 입춘입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이절기에 건강과 경사스러운 일이 온 집안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춘날 전야(前夜)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민속(民俗)이 있었다 합니다.
이를테면 밤중에 남 몰래 개울물에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가파른 고갯길을 조금 평평하게 깎아 올라가기 쉽게 한다 든지
다리 밑 걸인들의 동냥움막 앞에 밥을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연고 없는 병자가 누워있는 원(院) 문전에 약탕 끓여 몰래 놓고 온다든지...
조그만한 일이라도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현자(賢者)들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올해도 밝은 마음으로 많이 웃으시고 건강하게 보내십시오.
매경한고 발청향(梅經寒苦 發淸香)이란 말이 있습니다.
매화는 혹독한 추위에서도 맑은 향기를 낸다는 뜻이랍니다.!
매화는 지난해의 추위 속에서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세월을 이겨낸 우리는 인고(忍苦)의 향기(香氣)를 피우고 있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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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
烏有反哺之孝(오유반포지효)
까마귀는 먹이를 새끼들이 어미에게 물어다 먹이고
鳩育三枝之禮(구육삼지지예)
비둘기는 부모 보다 나무의 세(三) 가지 아래 가지에 앉는다.
反哺之孝(반포지효)
까마귀(烏-오)는 새(鳥-조)종류의 하나입니다. 몸이 검어서 눈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여 새 조(鳥)자의 눈 부분의 한 획을 생략하여 가마귀 오(烏)자가 되었습니다.
까마귀는 나라에 따라 흉조나 길조로 인식됩니다.
한자로 까마귀는 그냥 오(烏)이나, 자오(慈烏), 효조(孝鳥), 반포조(反哺鳥)라는 “은혜 갚는 새”로 불립니다. 까마귀 어미는 새끼를 낳자마자 산후통으로 눈이 먼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끼들이 엄마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합니다.
우리말에 “까막눈”이라는 말도 눈이 먼 까마귀 어미에서 유래했고 합니다. 여기서 어미에게 은혜를 갚는 까마귀의 효성이라는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들도 아이를 날 때 170여개의 뼈가 움직일 정도의 고통이 있다고 합니다.
설이 가까이 닥아 왔습니다.
명절은 계절적 자연적 정서가 내포되어 있는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지내온 축일입니다.
이날은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조상을 받들고 형제간에 우애를 다시 확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효행(孝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시대가 변화되어 효에 대한 윤리관이 많이 변화되었다고 하지만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는 효의 덕목이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전통적인 아름다운 효경(孝敬)의 사상을 넓은 의미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효(孝)는 부모 경노에 대한 수직적(垂直的)인 봉공(奉恭)입니다. 효(孝)의 밑바탕에는 존경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존경은 수평적(水平的)이야 합니다.
효(孝)의 섬김을 받는 부모도 자녀에게 효(孝)의 정신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부부(夫婦)간에도 효(孝)의 정신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며느리에게도 시부모가 효(孝)로 사랑해야 효도(孝道)를 받을 수 있습니다.
친구 간에도 효(孝)의 정신으로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국가에 대한 애국심도 효(孝)의 정신으로 애국해야 합니다.
회사 내의 노사관계도 효(孝)의 정신으로 맺어져야 합니다.
전철 속에서 좌석도 노년이라고 양보받기만해서는 안되고 때로는 젊은이에게 양보하기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효(孝)의 정신입니다.
효(孝)는 진심으로 마음에서 울어나야 합니다.
효(孝)는 일방적으로 받는 것만이 아니고 주는 덕목도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와 앞으로의 세상은 많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세계가 무한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세계도 국가도 신앙도 가정도 개인도 수직적(垂直的) 도식(圖式)은 붕괴되고 있습니다.
까마귀 새끼 앞에 부끄러운 인간의 효(孝)를 새로운 가치로 회복해야 합니다.
-농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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慈烏夜啼(자오야제) 효성스런 까마귀는 밤에 우는데
慈烏失其母(자오실기모)-효성스런 까마귀 그 어미를 잃고,
啞啞吐哀音(아아토애음)-까악, 까악 섧게 울고 있네.
晝夜不飛去(주야불비거)-밤낮없이 날아가지 않고,
經年守故林(경년수고림)-일년이 넘도록 옛 숲을 지키네.
夜夜夜半啼(야야야반제)-밤이면 밤마다 울어대니,
聞者爲沾襟(문자위첨금)-듣는 이의 옷깃을 눈물로 적시게 하네.
聲中如告訴(성중여고소)-우는 소리 흡사 호소하는 듯,
未盡反哺心(미진반포심)-키워준 은혜를 다 갚지 못했음을.
百鳥豈無母(백조기무모)-어찌 어미 없는 새들이 있으랴?
爾獨哀怨深(이독애원심)-그런데 그 슬퍼함이 너 홀로 지극하구나.
應是母慈重(응시모자중)-어미의 사랑이 얼마나 두터워,
使爾悲不任(사이비불임)-너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게 하는가?
昔有吳起者(석유오기자)-옛날 오기(吳起)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母歿喪不臨(모몰상불림)-모친 죽음에 장사지내러 오지 않았다네.
哀哉若此輩(애재약차배)-슬프다! 이런 무리들은,
其心不如禽(기심불여금)-그 마음이 새만도 못하구나.
慈烏復慈烏(자오부자오)-효조(孝鳥-효자새)여! 효조여!
鳥中之曾參(조중지증삼)-새중에서도 증삼(曾參)같은 효자로구나.
백거이(白居易)
이 시(詩)는 효성스런 까마귀가 그 어미가 죽자, 어미를 그리워하여 어미가 살던 숲을 일년이 넘도록 떠나지 못하고 그 숲에 머물러 밤마다 슬프게 운다고 한 효성(孝誠)의 새입니다.
특히 요즘 세상에 만물의 영장(靈長)인 인간이 나를 낳아준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부모를 학대하고 심지어는 버리기까지 하는 불효의 세태를 훈계하는 글입니다.
예로부터 까마귀는 반포(反哺-새끼가 어미를 먹임) 효조(孝鳥-효성의 새)라 하여 태어났을 때에는 어미에게 60일 동안 먹이를 얻어먹고, 자라서는 반대로 60일 동안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뜻으로 온몸이 검고 반포(反哺)하는 새를 까마귀라 하고,
반포하지 않는 새는 작고 배 밑이 흰 놈을 아오(鴉烏-갈까마귀)라 합니다.
오기(吳起 BC440~BC 381)는 오자(吳子)라고도 하는 사람으로 우리가 흔히 손자(孫子)의 병법과 더불어 손오(孫吳) 병법이라 불리는 춘추전국시대(戰國時代) 위(衛)나라 병법가(兵法家)입니다. 출세를 위하여 집을 떠날 때 그의 모친과 약속하기를 “대신(大臣)이나 재상(宰相)이 되지 않으면 다시는 위나라 땅을 밟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증자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던 중 모친이 죽었지만 출세를 하지 못하여 장례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증자는 오기(吳起)를 박정한 사람이라 하여 문하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증삼(曾參)은 증자(曾子BC 506~BC 436)라고도 불리며 공자의 도를 계승한 제자로 동양(東洋) 5대 성인(聖人)의 한 사람입니다. 효도의 경전인 효경(孝經)의 작자라고 전해지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학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백거이(白居易)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772~846)으로 우리가 잘 아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한가를 지은 사람입니다. 이 장한가 속에 사랑에 대한 극치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비익조(比翼鳥-사랑을 찾아다니는 반쪽새)와 연리지(連理枝-두 가지가 하나로 합친 나무)가 들어 있습니다.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리니--
이 장한가(長恨歌)는 총 840 글자로 되어있는 사랑의 연서(戀書)로서 다음에 꼭 소개 하겠습니다.
-농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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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시(元正詩) 설날아침 축배를
元正啓令節(원정계령절)-설날이라 한 해 시절이 열리고
嘉慶肇自玆(가경조자자)-즐겁고 기쁜 일도 이날부터 시작되네
咸奏萬年觴(함주만년상)-다함께 축배를 드세
小大同悅熙(소대동열희)-우리 모두 기뻐하세
신소(辛蕭)
설날 아침입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많이 웃으시고 건강하세요
신소(辛蕭)는 중국 진(晉)나라때의 작가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 마음속의 경건함과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시입니다.
가족 친지가 한자리에 모여 지난해 괴로움과 슬픔은 한잔술에 씻어내고 오늘은 다같이 기뻐하고 함께 어울리는 축배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추석이 기달려지고 다음 설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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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춘)봄
春雨細不滴(춘우세불적)-봄 비 가늘어 방울 없더니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밤 되자 빗소리 귀에 들리네.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눈 녹아 시냇물 불어날 테고
草芽多少生(초아다소생)-파릇파릇 풀 싹도 돋아날 거야
정몽주(鄭夢周)
이제 쌓인 눈도 녹고 얼음도 풀리는 봄이 시작 되었습니다
정몽주(鄭夢周 1337~1392)
포은(圃隱) 정몽주는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입니다.
고려 말기 문신 겸 학자로 성리학에 밝았습니다. 시문에도 뛰어나 시조〈단심가〉외에 많은 한시가 전해지며 서화에도 뛰어났습니다. 이성계의 위망(威望)이 날로 높아지자 그를 추대하려는 음모가 있음을 알고 이성계 일파를 숙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1392년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세자를 마중 나갔던 이성계가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황주(黃州)에 드러눕자 그 기회에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 했으나 이를 눈치챈 방원(芳遠-太宗)의 기지로 실패하였으며, 이성계를 찾아보고 귀가하던 도중 선죽교(善竹矯)에서 방원의 부하 조영규(趙英珪) 등에게 격살되었습니다.
이방원의 세력에 합류하기를 권하는 유명한 만수산(萬壽山)으로 정몽주를 회유하는 데
만수산(萬壽山)
如此亦何如(여차역하여)-이런들 어떠하리
如彼亦何如(여피역하여)-저런들 어떠하리
城隍堂後坦(성황당후탄)-만수산 드렁칡이
頹搔亦何如(퇴비역하여)-얽혀진들 어떠하리
我輩若此爲(아배약차위)-우리도 이같이 얽혀
不死亦何如(불사역하여)-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李芳遠)
정몽주는 절개를 지키는 단심가(丹心歌)로 아래와 같이 대답한다.
단심가(丹心歌)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이몸이 죽고죽어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일백번 고쳐죽어
白骨爲塵土(백골위진토)-백골이 진토되어
魂魄有也無(혼백유야무)-넋이라도 있고없고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님향한 일편단심이야
寧有改理也歟(영유개리야여)-가실줄이 있으랴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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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頭(강두) 봄 강가에서
春江無際暝煙沈(춘강무제명연침)
봄 강은 한없이 넓고, 어둑한 연기 자욱한데
獨把漁竿坐夜深(독파어간좌야심)
혼자 낚싯대 잡고 앉으니, 밤이 깊어간다
餌下纖鱗知幾箇(이하섬린지기개)
미끼에 어린 고기 몇 마리나 물렸는지
十年空有釣鷔心(십년공유조오심)
긴 세월 흐른 동안 이 노릇이 부질없소
오순(吳洵)
오순(吳洵)
본관(本貫)은 보성(寶城) 자(字)는 여장(汝章) 영조(英祖)19년
(1743년), 정시(庭試) 병과(丙科)하였고 시문(詩文)에 뛰어났다.
인생이란 낚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라 한 마리 낚으려고 봄 강물에 낚시를 드리운 것이 얼마나 긴 세월이던가.
밤안개는 먼 훗날처럼 막막하고 봄 강물은 세월처럼 흘러간다.
돌아보니 어느덧 십년(긴 세월)
그래도 자라(희망하던 포부)는 낙지를 못하고
잡은 것은 자잘한 송사리 몇 마리뿐
세월은 누구를 만나려 저처럼 바쁜 걸음을 옮기는가.
큰 포부를 안고 고향을 떠나든 소년은 어언 백발이 되었고
세월은 어느덧 10년 20년 60년이 흘렀다
강물에 비치든 아름답던 봄은 어느덧 아득히 사라져 갈것이고
돌아보면 봄안개 속에 뿌연 언덕만
이리 급하게 저리 뛰고 하였지만 애만 태웠을 뿐
아내 하나도 제대로 돌보는 한낱 평범한 가장(家長) 노릇도 못하고 있으니---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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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早春) 이른 봄
南麓久田啄飢雉(남록구전탁기치)
남쪽 기슭 묵은 밭에는 굶주린 꿩 쪼고 있고
裸林鵲巢孤曇陽(나림작소고담양)
벗은 숲 까치 집에 흐린 볕 외로운데
落陽哀霞斜靑苔(낙양애하사청태)
지는 해 서러운 노을 푸른 이끼 빗겼구나
群鳥何來深林歌(군조하래심림가)
새 떼는 언제 와서 짙은 숲에서 노래할까
채설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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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경치
門外道路長(문외도로장)-문 밖의 뻗은 길 길고
路傍楊柳綠(노방양류록)-길가의 버들나무 푸르기만 하다
白馬啼蕭蕭(백마제소소)-백마는 쓸쓸히 울어대는 걸 보면
誰家又送客(수가우송객)-어느 집에서 또 손이 떠나시는가
김삼의당(金三宜堂)
김삼의당(金三宜堂)
삼의당은 직필사관으로 이름 높았던 탁영 김일손의 후손입니다. 김일손의 11대손 김인혁의 따님이 삼의당 김씨입니다. 명문의 자녀였지만 세인들의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는 없었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우리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지금 SBS 드라마 왕과 나에서 뒤에 연산군이 임금이 된 후에 무오사화로 인하여 신진 사림인 김종직 김일손등이 정적인 훈구파 이극돈 유자광등에 의하여 무참히 살육을 당합니다. 무오사화의 이야기가 “조의제문”등 너무 길고 복잡하여 여기에 소개 할 수는 없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고향은 경북인데 전북 남원 김씨 댁에서 출생한 것을 보면 무오사화로 인하여 후손들이 숨어 사는 형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어떤 기록에는 전북 남원 누봉방(樓鳳坊) 김씨댁에서 출생하여 삼의당고(三宜堂稿)라는 개인 문집을 남긴 기록도 있습니다. 삼의당은 일상적인 농촌의 생활과 부부화애의 시, 자연교감의 시 농촌생활의 시 세시풍속을 시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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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객봉서(春客封書) 봄 나그네 편지
世沈地獄深(세침지옥심)-세상은 어둡기가 지옥 같은데
何事念觀音(하사염관음)-관음은 외워서 무엇에 쓰리
顧程影猶孤(고정영유고)-온 길 돌아봤자 그림자만 외롭고
岐路泣路窮(기로읍로궁)-갈림길 눈물은 길 막혔기 때문
蒲池春意遲(포지춘의지)-부들(향포-香蒲)못에 봄기운 멀고
客稀日拱窓(객희일공창)-손 드문 창에 햇살만 가득
可人招不得(가인초불득)-쓸 만한 사람 부를 처지도 못 돼
誰與步施施(수여보시시)-누가 같이 있어야 흥도 나지
都是一胸襟(도시일흉금)-모두가 품안의 가슴이건만
添脚遊滄波(첨각유창파)-걷고 걷다보니 물결만 더했구나
百歲悲歡事(백세비환사)-인간사 희노애락(喜怒哀樂)
還同水上波(환동수상파)-흐르는 물결로 돌아드는 것
旅久樽無綠(여구준무록)-길 떠난 지 오래라 술병은 비었고
阿世懸空月(아세현공월)-세상에 아부해야 허공의 달빛
一陽今正復(일양금정부)-새 기운 깃든다는 동짓달에
短軒風晛暖(단헌풍현난)-짧은추녀 햇살이 따사롭기도 하네
채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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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鼠(사서)숨어 사는 쥐
鼠有戴冠者(서유대관자)-갓 쓰고 싸다니는 쥐 떼들이여
主家貓甚仁(주가묘심인)-주인집 고양이가 너무 어질다
徒懷秦李嘆(도회진이탄)-편안한 쥐의 신세 그리워하고
未有漢張嗔(미유한장진)-쥐를 보고 욕질해도 헛된 일일세
白晝財生脛(백주재생경)-대낮에고 재물에 발이 생기고
黃昏錢有神(황혼전유신)-해가지면 돈에는 귀신이 붙어
人皆永某氏(인개영모씨)-사람들은 모두가 쥐새끼처럼
虛宿下臨身(허숙하임신)-헛되이 빈집을 지키고 있네
김시습(金時習)
사서(社鼠)라는 말은 숨어 사는 쥐란 뜻으로, 정부의 어떤 기관(機關)이나 사람의 세력(勢力)즉 빽에 의지하여 간사(奸邪)한 일을 저지르고 재물을 탐하는 자를 이르는 말입니다. 쥐에 대한 이미지는 옛날부터 부정적이었습니다. 쥐는 농작물을 해치고 곡식을 훔쳐 먹는 해로운 동물이며 더러운 곳에 사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옛날 사람들은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을 쥐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쥐새끼”란 욕도 이런 연유입니다.
그러나 2008년의 희망의 새해는 석서(碩鼠-큰쥐) 사서(社鼠-숨어사는 쥐)같이 사는 사람이 없고 정부나 사회 개인에 이르기 까지 밝고 투명한 해가 되는 바람을 갖어 봅니다.
우리나라에 쥐에 대한 문헌의 기록이 처음 나오는 것은 신라 때 쥐에 대한 전설인 사금갑(謝琴匣) 이야기와 삼국사기에는 혜공왕 때 강원도 치악현에서 8천 마리에 이르는 쥐들이 이동하는 괴변이 있었는데, 그해 눈이 내리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새해들어 첫 상자일(上子日)에는 특히 근신하는 날로 여겨 모든 일을 조심하였다 합니다. 특히 이날은 길쌈하거나 의복을 짓지 않았는데. 이는 쥐가 무엇이든 잘 물어 뜯기 때문입니다. 2008년의 첫 상자일(上子日)은 양력은 2월 18일이고 음력은 정월 12일인 무자(戊子)일입니다.
쥐는 다산(多産)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궁중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상자일에 곡식의 씨를 태워 비단주머니에 넣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답니다. 상자일에는 쥐불놀이도 행해졌는데 이날 청소년들은 마을 부근의 밭두렁을 태우면서 한해의 건강을 빌고 마을의 풍년을 기원합니다. 우리도 시골 어릴 때 많이 한 놀이입니다. 이때 불기운이 세면 풍년이 든다하여 밤늦게 까지 쥐불놀이를 하였습니다.
쥐가 신앙(信仰)의 동물로 등장한 것은 천간(天干) 지지(地支)중 12지신에 들면서 부터입니다. 12지신앙에서 쥐는 맨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쥐는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음(陰)과 물의 성질인 수성(水性)에 들어 있습니다. 방위로는 북쪽이고, 인체로는 신장(腎臟콩팥)에 해당하며 검은 색이며 맛은 짠맛이고 시간으로는 밤11시에서 새벽1시가 자시(子時)입니다.
또 쥐는 종족끼리는 질서가 분명해 부부침실과 새끼방 화장실과 식량창고 등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쥐는 화산이나 지진, 또는 홍수나 산불 등 자연재해를 미리 예고해주는 영물로도 알려져 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쥐가 집안에서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겼고, 어부들은 배 안에 쥐가 보이지 않거나 쥐 울음소리가 들리면 불길하다 하여 출어(出漁)를 삼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지방에서는 배 안에 배 서낭(鼠囊-쥐주머니)을 모시고 쥐들을 살게 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농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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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양(哀絶陽) 양물(陽物)을 자름을 슬퍼한다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노전(전남 강진)마을 젊은 아낙 그칠 줄 모르는 통곡소리
哭向懸門呼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청문을 향해 슬피울며 하늘에 호소하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부복상가유)
싸움터에 간 지아비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남자가 그 걸(성기) 자른 건 들어본 일이 없다네
舅喪已縞兒未燥(구상기호아미조)
시아비 상복 막 벗고, 아기는 탯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삼대가 다 군보(軍保-군 미필 세금)에 실리다니
薄言往訴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가서 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里正咆哮牛去皂(이정포효우거조)
관리는 으르렁대며 마굿간 소 몰아가듯 하고
朝家共賀昇平樂(조가공하승평락)
조정에선 모두 태평의 즐거움을 하례하는데
誰遣危言出布衣(수견위언출포의)
누구를 보내 위태로운 말로 선비로 내쫓는가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하고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자식 낳아 군대 액 당한 것 한스러워 그랬다네
蠶室淫刑豈有辜(잠실음형기유고)
무슨 죄가 있어서 양물 자르는 형벌을 스스로했던가
閩囝去勢良亦慽(민건거세량역척)
옛 민나라 자식들 거세한 것 그도 역시 슬픈 일인데
生生之理天所予(생생지리천소여)
자식낳고 사는 이치 하늘이 준 바이고
乾道成男坤道女(건도성남건도녀)
하늘 닮아 아들 되고 땅 닮아 딸이 되지
騸馬분豕猶云悲(선마분시유운비)
불알깐 말, 불알깐 돼지, 짐승들도 서럽다 할 것인데
況乃生民恩繼序(황내생민은계서)
대 이어갈 인생들이야 말을 더해 뭣하리요
豪家終歲奏管弦(호가종세진관현)
부자들은 일년내내 풍류나 즐기면서
粒米寸帛無所捐(입미정백무소연)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세금 바치는 일 없는데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똑같은 백성 두고 왜 그리도 차별일까
客窓重誦鳲鳩篇(객창중송시구편)
유배지 창가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다산 정약용(丁若鏞)
SBS드라마 왕과나가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습니다.
2007년 “가을 한시”에서 절양(絶陽-남자 성기를 자름)한 내시에 대하여 소개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드라마 왕과나는 내시 김처선(金處善)의 일대기로서 단종 세조 성종 연산군등 여러 왕을 모셨으며,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기도 하였으나 곧 복직되었습니다.
연산군이 스스로 창안한 처용희(處容戱-여자나체 가면극)를 벌여 그 음란함이 극에 달하자, 연산군의 잘못을 극간(極諫)을 하다가 연산군에 의해 직접 다리와 혀가 잘려 죽고, 부모의 무덤까지 헐린 내시입니다. 드라마는 아마 김처선이 죽음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연산군은 이후로 김처선(金處善)의 이름자인 “처(處)”자 사용을 금하여 처용무(處容舞)를 풍두무(豊頭舞)로 고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내시(內侍)는 태어날때부터 고자(鼓子)가 된 것도 있고 또 궁중의 내시가 되기 위하여 외과 수술로 성기를 자르는 절양(絶陽)의 내시도 있었습니다.
그런되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는 위의 두가지 이유외에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병전육조(兵典六條) 제1조 첨정(簽丁) 편에 보면 당시 군대 행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가구(家口)마다 아이들 숫자에 따라 세금을 물리자 견디지 못한 가난한 백성이 아이를 그만 낳기 위해 자신의 생식기를 잘랐다는 슬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일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지않기 위해서 스스로 거시기를 잘랐다 !
형편은 다르지만 마치 60~70년대에 산아제한 운동시 정관절제수술(精管切除手術)과 같은 것입니다.
애절양(哀絶陽)시는 이를 보고 분노한 다산 정약용이 그 분노한 마음을 시로 읊은 내용입니다.
정약용이 (1762. ~ 1836)에 살았던 사람으로 불과 170년전의 일입니다.
비록 지금은 자신의 양물(陽物)을 자르는 백성은 없지만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는 지금도 여전하여 선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쩔수 없다"고는 하지만 국민소득 2만불을 넘어 4만불을 희망하는 이시대에 아침식사를 굶고 학교가는 학생있다는 현실은 현대판 절양을 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늘이 낸다는 국가의 역대 최고지도자들은 퇴임후에 자기가 살집은 천문학적 돈을 들여 짓고 있으니 어찌 배고픈 국민의 사정을 알리가 있겟습니까.
재산없는 가난한 백성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다산의 애민사상(愛民思想)과 일치하는 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정부패에 진저리나던 조선 후기의 정치 문란을 한 편의 시로 질타한 통쾌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단한 시인이었습니다.
-내시(內侍)-조선시대 내시부(內侍府) 관원의 총칭으로 거세자만 이 입명될
자격이 있었다. 선천적 거세자가 대부분이 었으나, 스스로 거세하여
내시로 임명된 자도 많았다. 고려 때 중국의 환관제도를 들여와 조선
시대로 이어졌다.
-환관(宦官)-거세(去勢)된 남자로서 궁중에서 벼슬을 하였으며 고대의 서(西)아시
아 여러 나라와 그리스·로마·인도· 이슬 람교(敎) 국가들에서도 있었
으나, 특히 중국의 환관이 가장 유명하였다. 주넉크(eunuch)환관
-고자(鼓子)-생식기가 불완전한 남자로 엄인(閹人-내시)이라고도 하며 고자좆이
라는 뜻은 바둑에서 “찌를 구멍이 있 으나 찌르면 되잡히게 되므로
찌르지 못하는 판국” 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서 즉 찌를 힘이 없다는
뜻이다. 물고자는 정자가 전혀 없는 무정액을 말한다.
-양물(陽物)-남자 성기
-절양(絶陽)-생식기를 자르다.
-시구편(鳲鳩篇)-시경(詩經)에 수록된 시의 편명(篇名).
뻐꾸기 시. 통치자가 백성을 골고루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시구새(뻐꾸기)에 비유해서 읊음.
-군보(軍保)-군대를 안 가는 대신에 쌀이나 벼를 세금으로 내도록 한 제도.
-객창(客窓)-유배지에서 읊으므로 객이라 함.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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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送人) 친구를 보내며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개인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정지상(鄭知常)
정지상(鄭知常)
고려 시대의 문인으로 호는 남호(南湖) 좌사간(左司諫)의 벼슬을 지냈습니다, 고려의 수도를 서경(西京) 천도(遷都)를 주장했으며,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김부식에게 참살되었습니다. 시에 뛰어나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으며 그의 시풍(詩風)은 중국 당나라 말기인 만당(晩唐)풍으로 매우 청아하며 호탕하고 빼어났다는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를 너무 아껴서 봄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에 소개하려고 하였는데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시를 읽으시는 분들은 “임을 봄 언덕에서 이별” 한다는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임을 보내며) 한시가 송별시(送別詩)의 한시로서는 우리나라 한시(漢詩) 중 최고의 걸작(傑作)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 두십시오.
어느 좌석이든지 대화 속에 “응, 나도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알고 있어. 그 남포항 푸른 언덕위에서 임을 보내고 대동강 물결에 눈물을 보내는 장면 말이야” 하고 말하면 제목만 알아도 한시(漢詩)의 정서(情緖)를 아는 사람으로 멋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임이 떠나지 못하도록 계속 와야 할 비도 개고 말았습니다. 남포 항구의 긴 둑엔 비에 씻긴 풀들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으니 이별의 애달픔이 더 고조된 것입니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송별시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에 비유되는 이 절세의 절구(絶句)는 1~ 2행에서 이별은 남포항구에서 하는데 3~4행에서는 대동 강물을 등장시켜 이별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고 했습니다.
뭇남녀의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는 제4행에 이르면 신운(神韻-신비스러운 운치)마저 감돈다 고 평하고 있습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받고 있는 송인(送人)의 작자, 정지상!
작가는 심정에 쌓인 사연을 대동강을 빌려 슬픔의 토로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을은 호젓한 외로움 길을 걷는 감상의 계절이라고 하면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 속에서 사랑도 이별도 그리움도, 미인의 손짓도, 들풀 파릇 돋는 강 언덕에서는 아련히 추억하는 나그네의 고향생각도, 마른 잔디사이에 고개 숙인 할미꽃을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봄의 아픔이 주는 상춘(傷春)의 사색입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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把酒問月(파주문월) 술잔을 잡고 달에게 묻다
靑天有月來幾時(청천유월내기시)
푸른 하늘의 달이여, 언제부터 있었느냐?
我今停杯一問之(아금정배일문지)
나 지금 술잔을 멈추고 한 번 물어 보노라.
人攀明月不可得(인반명월불가득)
사람은 저 밝은 달을 잡을 수 없는데
月行卻與人相隨(월행각여인상수)
달이 도리어 사람을 따라 오는구나.
皎如飛鏡臨丹闕(교여비경임단궐)
떠 다니는 거울같이 밝은 저 달은 신선이 산다는 선궁(仙宮)에 걸린 듯이
綠煙滅盡淸輝發(녹연멸진청휘발)
푸른 안개 다 사라지니 맑은 빛을 내는구나.
但見宵從海上來(단견소종해상래)
다만, 밤이면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을 볼 뿐이니
寧知曉向雲間沒(영지효향운간몰)
어찌 새벽에 구름 사이로 지는 것을 알리오?
白兎搗藥秋復春(백토도약추부춘)
토끼는 일년 내내 불사약을 찧고 있는데
嫦娥孤棲與誰鄰(항아고서여수린)
항아(선녀)는 외로이 살면서 누구와 이웃하고 있는가?
今人不見古時月(금인불견고시월)
지금 사람들은 옛 날의 저 달을 보지 못하지만
今月曾經照古人(금월증경조고인)
지금 저 달은 옛 사람들을 비추었으리라.
古人今人若流水(고인금인약류수)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 모두 흐르는 물과 같아
共看明月皆如此(공간명월개여차)
다 같이 달을 보고 모두 이와 같았으리라.
唯願當歌對酒時(유원당가대주시)
오직 바라노라, 노래하고 술 마실 동안은
月光長照金樽裡(월광장조금준리)
달빛이 오랫동안 술통을 비추어 주기를.
이백(李白)
이백(李白 701~762)
중국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로 불린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너무 유명하여 이태백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으로 넉넉한 집안의 출신이다.
성년이 되면서 불우한 생애를 보내었으나 43세경 당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이란 벼슬이 되었던 1, 2년이 그의 영광의 시기였다.
그의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는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과 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이다. 이것으로 그의 시명(詩名)은 장안을 떨쳤다. 너무나 유명한 시 이므로 여기에 소개 하고 싶지만 너무 길어 별도로 편집할 생각이다.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의 시는 당 현종(玄宗)이 양귀비(楊貴妃)를 데리고 모란을 보며 즐기던 중, 이때까지의 시에 흡족하지 못하고 이백에게 새로 시를 지을 것을 명했다. 이때 이백은 술에 만취되었으나 즉석에서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시 세 수를 지었다.
그 중 청평조사(淸平調詞)제 2수에서 양귀비를 조비연과 빗대어 칭송하기를
一枝濃艶露凝香(일지농염로응향)
한 가지 농염한 모란꽃에 응이진 이슬 향기
雲雨巫山枉斷腸(운우무산왕단장)
무산의 구름비 하염없던 단장의 슬픈 여신
借問漢宮誰得似(차문한궁수득사)
한나라 궁중에 누구라 비길까보냐
可憐飛燕倚新粧(가련비연의신장)
조비연 단장이 산뜻이 아름답구나!
라고, 양귀비를 한(漢)나라의 성제(成帝)를 유혹한 조비연(趙飛燕)과 비유한 대목이 있어 귀비의 미움을 받아 이백이 추방되었다고 한다.
조비연(趙飛燕)은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날씬한 여인이 있었다.
날으는 제비라는 뜻으로 본 이름 조의주(趙宜主) 대신 조비연(趙飛燕)으로 불렀다. 뛰어난 몸매에 가무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 그녀는 한나라 성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까지 된다.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귀양지의 신선)”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그의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寵臣)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궁정을 쫓겨났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고, 때로는 강호(江湖)의 무리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두보가 전란 중에 가족을 데리고 강남을 떠돌던 것과 달리 이백은 결혼을 4번이나 했다.
전설에는 채석강에서 술에 취하여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러 뛰어 들었다 한다.
이백의 시세계는 호방한 성격에서 우러나는 낭만주의 시풍이 특색이다. 서정(抒情)성이 뛰어나 풍류를 즐겨 술과 달을 소재로 지은 시가 많고 소녀의 염원을 노래한 것 또한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이 때문에 퇴폐적이고 쾌락주의적 면모가 풍긴다는 평가도 있다.
이백의 호탕한 성격은 현종의 애첩 양귀비(楊貴妃)에게 벼루를 들고 서있게 했던 기인이다. 만년은 처참하여 가난과 울분에 62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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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福)있는 사람은
有福者之惡人之謀不從(유복자지악인지모부종)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罪人之途不立(죄인지도불입)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傲者之位不坐(오자지위부좌)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唯以耶和華之律法爲悅(유이야화화지율법위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晝夜黙想其律法之此人(주야묵상기율법지차인)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성경(聖經) 시편(詩篇) 1장 1절~2절
시편(詩篇)은 헤브라이어로 찬가(讚歌)를 의미하며, 영어의 프살모이(Psalmoi)는 “현악기인 수금(竪琴-하프harp)에 맞추어 노래하다”라는 뜻입니다.
BC 1000년~BC 200년경까지의 1,000여 년에 걸친 이스라엘 왕국 각 시대에 기록된 종교시(宗敎詩)의 대집성(大集成)인 시편 에는, 삶의 정황과 문학양식의 독특한 맛을 풍기는 상호관계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시편의 총 150편중 시를 쓴 사람의 이름을 밝히고 있는데 다윗왕이 쓴시가 73편이나 되어 “다윗의 시편”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다윗(David)왕은 BC 961년 고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교를 확립한 사실상 통일 이스라엘 왕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통치자로서는 솔로몬과 더불어 하나님께 가장 은혜 받은 제왕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시인으로서도 명성을 떨친 왕으로 전하여 지고 있습니다.
시편의 내용은 왕의 시(즉 메시아의 시)는 물론 직접적으로 왕에 대한 찬양이지만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았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기름부음”이란 예식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은 같은 동아리끼리 서로 왕래하여 사귄다는 뜻으로, 비슷한 부류의 인간 모임을 비유한 말로서 선(善)은 선대로 악(惡)은 악의 종류로 서로 따른다는 말입니다.
유유상종의 근원(根源)은 알 수 없으나, 주역(周易)의 계사(繫辭) 상편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방이유취 물이군분 길흉생의(方以類聚 物以群分 吉凶生矣)의 글이 있습니다. 즉 “삼라만상은 그 성질이 유사한 것끼리 모이고, 만물은 무리를 지어 나뉘어 산다. 거기서 길흉(吉凶)이 생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善)하게 살려면 악(惡)을 멀리해야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노름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게 되면 자연히 노름을 배우게 되고 도둑놈과 친하게 되면 도둑질을 배우게 되고 먹을 가까이 하게 되면 자연이 손이 검게 됩니다. 선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 자연히 선하게 됩니다. 그래서 친구를 잘 사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시편 1장 1절~2절 내용은 악(惡)을 예방하는 잠언(箴言)입니다.
기독교인이나 신앙적인 의미가 아니라도 이 5구절의 내용은 인간으로서 바른 삶을 살아가는데 좋은 지침서가 되므로 일반인들도 항상 이 구절을 묵상(黙想)하면서 자기의 위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 아름다운 생활을 보장 받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으므로 권하는 바입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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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雨水)에 봄 강물이 찰랑찰랑
雨霽淸江江水平(우제청강강수평)
비 걷힌 맑은 강에 강물은 넘실대고
江花深處浴鵁鶄(강화심처욕교청)
강 꽃 깊은 곳에 백로가 목욕한다.
東風綠盡王孫草(동풍록진왕손초)
봄바람에 왕손초는 초록으로 물들어
唱轉新詞無限情(창전신사무한정)
새 노래 들려오니 마음 가눌 길 없네.
백광훈(白光勳
백광훈(白光勳1537~1582)
조선 중기 시인으로 명나라 사신에게 시와 글을 지어주어 감탄케 하여 백광선생(白光先生)의 칭호를 받았으며 팔문장(八文章)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오늘 2월 19일이 우수(雨水)입니다.
우수(雨水)는 24절기(節氣)의 둘째일로 입춘(立春)후 15일 후인 양력 2월 18일 전후이나 무자(戊子)년 올해는 2월 19일(火)이 우수 날입니다.
우수(雨水)는 음력 정월(正月)의 중기이며 절기상으로 입춘(立春)과 경칩(驚蟄) 사이에 있습니다. 날씨가 거의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새싹이 돋아나는 시기인데, 우수라고 해도 비와 눈이 엇갈리며 아직도 동장군(冬將軍)의 마지막 안간힘은 남아 있습니다. 이글을 쓰는 시간이 아침 6시인데 영하 4도입니다.
예로부터 우수(雨水) 경칩(驚蟄)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하여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문턱입니다.
이 우수를 기준으로, 수달(水獺)은 강이 풀리면서 물위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하고, 추운 지방의 새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가고, 봄은 어느새 완연하여 초목에 싹이 트게 되는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꽃샘추위로 날씨는 여전히 쌀쌀합니다.
우수(雨水)에는 불어난 봄 강물이 찰랑찰랑 넘실댑니다. 저 건너 강 꽃이 뽀얗게 핀 곳에서 백로는 자맥질로 봄단장이 한창입니다. 그 사이 왕손초(王孫草)는 초록으로 물들었고, 노래를 부르는 새는 목청에 흥취가 돋아납니다.
왕손초(王孫草)란 차(茶)나무를 신성시해 서초괴(상서러운 식물중의 두목)혹은 왕손초’(王孫草)라고 부르는 이름입니다.
우수(雨水)에는 땅이 속살부터 풀려가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옛 어릴적 고향을 추억하면 아지랑이는 먼 산등성이부터 피어오르고 대나무 광주리를 인 아낙들이 봄나물을 뜯습니다. 머리에는 하늘의 뜨거운 기운을 방지하려는 듯 수건을 동여매고, 호미를 쥔 손은 개미의 발걸음처럼 부지런합니다.
얼음이 녹아내린 논두렁 밭두렁에서 봄나물을 캐는 아낙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문화적 신토(身土)의 원형(原形)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은 한시로만 우수(雨水)를 맞이할 뿐이지만----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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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枯木)
白虹倒立碧山陰(백홍도립벽산음)
흰 무지개 거꾸로 선 파란 산그늘
斤釜人遙歲月深(근부인요세월심)
도끼 든 나무꾼은 아득히 세월만 보냈구나!
堪歎春風吹又過(감탄춘풍취우과)
탄식하노니, 봄바람 불다가 다시 지나도
舊枝無復有花心(구지무복유화심)
옛 가지에 새로이 꽃은 피지 않으려나.
이담지(李湛之)
이담지(李湛之)
경주인(慶州人)으로 고려 명종 때의 학자이며 시인으로 자는 청경(淸卿). 죽림고회(竹林高會) 강좌칠현(江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이인로·오세재·임춘·조통·황보항·함순과 시로서 벗을 삼든 시우(詩友)이다. 이규보의 논주필사약언(論走筆事略言)에는 그를 주필(走筆)의 창시자로 기록하고 있다.
주필(走筆)이란 즉흥적으로 써내려가는 한시의 창작법으로 글이나 글씨를 흘려서 매우 빨리 쓰는 것을 말한다.
푸른 산 속 그늘진 곳에 눈바람에 깎이어 마치 흰용(白龍)의 새끼가 앙상한 뼈만 남은 채 거꾸로 선 것 같이 말라죽은 고목(枯木) 한 거루가 있다.
나무꾼의 도끼질 한 번도 만나지 않은 곳에서 부질없이 무심한 세월만 쌓여왔다. 이 고목에도 해마다 그리고 올해도 봄바람은 불어온다.
대지(大地)에는 생기가 돌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봄을 맞아 온갖 꽃을 피우건만 외로운(고목-孤木) 고목(枯木)은 다시 꽃 피울 생각을 품지 못함을 한탄한다.
그러나 꽃피우지 못함을 슬퍼할 것도 탄식(歎息)할 것도 없다.
봄이 오면 만물이 꽃을 피우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理致) 이지만, 고목(枯木)은 이미 그런 이치를 넘어선 신성(神聖)한 초월자(超越者) 이시니!
이것 또한 자연의 철리(哲理)에 따른 성자(聖者)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 인생도 아직까지는 고목(古木)이지만 얼마 지나면 나무꾼의 도끼소리가 그리운 또 하나의 고목(枯木)으로 자리를 지키면서 영원한 열반(涅槃)에 들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따라서 흘러간 세월도 도리킬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順理)다. 자신이 고목(枯木)임을 망각하고 다시 꽃피울 생각을 한다면 그거야말로 자연의 이치(理致)에 벗어나는 역리(逆理)인 것이다.
※참고
★강좌칠현(江左七賢)
고려 후기 청담(淸談-속되지 않은 대화)을 일삼던 7선비를 이르는 말이다. 무인정권이 수립된 이후 문인을 숙청하는 분위기 속에서 문인들은 산림(山林)에 은거하거나 불교에 의탁하는 자가 많았다. 이중 서로 의를 맺어 망년지우(忘年之友)를 삼고 시와 술을 즐긴 이인로(李仁老)·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를 중국 진(晋)나라 때의 죽림7현(竹林七賢)에 빗대어 강좌칠현(江左七賢) 혹은 죽림고회(竹林高會)이라 불렀다.
★고목(枯木)-마른 나무. 말라 죽은 나무
고목(古木)-오래 묵은 나무
고목(苦木)-소태나무의 줄기와 가지의 껍질을 벗겨 낸
나머지 부분(部分).
고목(高木)-높은 나무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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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望月) 보름달
未圓常恨就圓遲(미원상한취원지)
둥글지 않을 때는 늦게 둥글게 됨을 한탄만 하더니
圓後如何易就虧(원후여하역취휴)
둥글어 지고서는 어찌 그리 쉽게 이지러지느뇨.
三十夜中圓一夜(삼십야중원일야)
서른 밤에 하루 밤만 둥글고 말다니
世間萬事摠如斯(세간만사총여사)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이와 같이 이루어지는구나
송익필(宋翼弼)
송익필(宋翼弼1534~1599)
조선 중기 학자로 호는 구봉(龜峰), 서출(庶出)이라 벼슬은 못하였으나 이이(李珥) ·성혼(成渾) 등과 학문을 논하여 성리학(性理學)과 예학(禮學)에 통하였습니다.
문장에도 뛰어나 이산해(李山海) ·최경창(崔慶昌) ·백광홍(白光弘)등과 같이 “8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문하(門下)에서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등 학자가 배출되었는데, 그 중 김장생은 예학(禮學)의 대가가 되었다. 할머니가 서녀(庶女)였으므로 그의 신분도 서얼(庶孼)이었습니다.
오늘은 보름입니다.
오늘 일진(日辰)이 신묘(辛卯)일 토끼날이니 보름달과 안성맞춤입니다.
옛 전설에 태양에는 세 발 달린 황금빛 까마귀(三足烏-삼족오)가 살고 있었고 달에는 하얀 옥토끼가 사시장철 약방아를 찧고 있는데 그 약을 먹으면 불로장생(不老長生)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해를 금오(金烏=황금빛 까마귀)라 칭하고 달을 옥토(玉兎=하얀 토끼)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달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선녀 항아와 두꺼비 신령이 살고 있는데 두꺼비가 달을 갉아먹어 월식(月蝕)을 일으킨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달을 항아(姮娥)라고도 부르며 옥섬(玉蟾=옥 두꺼비)이라는 달의 별칭이 생겨난 것입니다.
달은 30일 내내 지고 뜨는 달인데, 휘황한 보름달은 한달 중에 하룻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들어, 번성함과 쇠퇴(榮枯영고), 융성하고 쇠망(盛衰)함이 인생살이에 비교되어 영광되고 융성(榮盛영성)한 때는 순간이고 고생하고 힘들고 괴로운 나날이 대부분인 생활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새벽달은 한기를 느끼게 합니다. 하얗게 깔린 서릿발을 밟고 새벽달을 쳐다보면 더욱 추위를 느낍니다.
새벽달보다는 차라리 초승달이 한결 친숙함을 느끼게 합니다.
개나리, 벚꽃들이 어우러질 무렵의 초승달이나 으스름달은 맑은 봄밤의 혼령 같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소동파(蘇東坡)의 시중에 봄날의 밤(春夜춘야)에
春宵一刻直千金(춘소일각직천금)
봄밤은 가히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데,
花有淸香月有陰(화유청향월유음)
꽃은 맑은 향기를 뿜고, 달은 몽롱하게 흐려있구나
위의 시처럼 달밤은 달빛인지 꽃빛인지 분간할 수도 없이 서로 어울리고 서려 있는 봄밤의 정취가 계절의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봄밤의 혼령 같은 초승달이 아무리 친숙함을 느끼게 한들
보름달을 겨룰 수 있으랴.
초승달 혼자서야 무슨 그리 위력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주위에 개나리, 복숭아, 벚꽃들이 조화를 이루어 주기 때문입니다.
보름달은 이와 달라 벚꽃이 어우러진 봄밤이나, 녹음과 물로 덮인 여름밤이나, 온산에 단풍으로 수를 놓은 가을밤이나, 천지가 눈에 싸인 겨울밤이나, 그 어느 때고 그 어디서고 아무것도 따로 분위기 잡아주는 것이 없어도 됩니다. 그대로 만족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도 좋습니다. 머리 위에 보름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황홀하고 또 슬프기도 하는 감정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보름달은 온밤을 같이 있어 또한 좋습니다. 초승달은 저녁에만, 그믐달은 새벽에만 잠깐씩 비치다 말지만, 보름달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온밤을 우리들을 내려 보고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도 보름달같이 꽉 차고 온전히 둥근 눈동자의 소유자를 좋아합니다. 흰자위가 많고 동자가 뱅뱅 도는 사람을 대할 때는 절로 마음을 가다듬게 합니다.
남자도 물론 이지만, 여자의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보름달같이 맑고 둥근 눈동자가 눈 한가운데 그득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사람, 약간 물기가 돌면서 누구를 바라볼 때는 애처로운 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무슨 물건을 살필 때나 사람을 대할 때, 눈동자를 자꾸 굴리거나, 곁눈질 하는 사람은 경박하게 보이고 신용이 안갑니다.
반대로 시선이 옆으로 비껴지지 않고, 아무런 사기(邪氣)도 편견도 없이 정면을 지그시 바라보는 보름달 같은 눈동자, 이러한 사람은 믿음이 가고 존경이 갑니다.
오늘밤 보름달은 이지러지면 다음 보름에 다시 떠오르지만 그믐달 같은 우리에게는 보름날이 오지 않으니 저 달이 지기 전에 달 옆에서 나란히 사진(寫眞)찍어 파일에 저장하여 두고 영원히 보름으로 살아가면 어떨까요!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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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서시(序詩)
滾滾長江東斷水(곤곤장강동단수)
세차게 구비치며 동으로 흐르는 양자강 물위에
浪花淘盡英雄(랑화도진영웅)
물보라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영웅들의 모습
是非成敗轉頭空(시비성패전두공)
인생의 시비와 성패는 엎치락 뒤치락하지만 고개 돌리니
허공(虛空)이구나
靑山依舊在(청산의구재)
청산은 옛 모습 그대로 있는데,
幾度夕陽紅(기도석양홍)
세월은 흘러서 석양은 몇 번이나 붉게 물들었으랴?
白髮漁樵江渚上(백발어초강저상)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는 노인네들...
慣看秋月春風(관간추월춘풍)
언제나 보던 가을 달빛과 봄바람..
一壺濁酒喜相逢(일호탁주희상봉)
한 병 탁주 사이에 두고 옛 벗과 마주 앉으니
古今多少事(고금다소사)
흘러간 옛날과 오늘의 이러저런 일들이,
都付笑談中(도부소담중)
한 바탕 웃음에 부쳐버린다네..
나관중(羅貫中)
나관중(羅貫中1330?~1400)
중국 원나라말기와 명나라초의 소설가입니다.
나관중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시내암(施耐庵)과의 공동저작인 수호지(水滸誌)의 2대 걸작을 썼습니다. 자는 관중(羅貫)이며 호는 호해산인(湖海散人)으로 본명 본(本). 산시성(山西省) 사람이라는 것과 1364년에 살았다는 기록 외에 전기(傳記)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최하급의 관리였다는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잘 알려진 이름(소설)입니다.
위의 서시(序詩)는 삼국지의 첫 장에 나오는 서문(序文)과 같은 글로서 사왈(詞曰)의 뜻은
“한시(漢詩)를 구성하는 한 체계(體系)”로서 중국 송대(宋代)에 유행한 가곡(歌曲)의 가사(歌辭)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왈(詞曰)이라고 하면 “가사가 다음과 같다, 이런 가사가 있다” 는 뜻입니다.
논어를 읽어보면 “공자왈(孔子曰)” 이라는 말은 “공자가 말씀하기를” 과 같은 뜻입니다.
위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서문(序文)인 이 시는 중국 역사의 격동기의 대서사시(大敍事詩)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걸작으로 서양의 호메로스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능가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같은 한문권인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많은 독자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소설의 내용은 읽지 못해도 “삼국지(三國志)” 이름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위의 서시(序詩)는 중국의 후한(後漢)이후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의 파란만장한 패권다툼의 역사 속에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만도 유비 조조 손건을 비롯한 무려 570여명의 영웅호걸이 저마다 한(漢)나라왕조와 난세를 구한다는 정의와 명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양자강에서 물보라처럼 일어났다 사라져 간 대역사의 파노라마(panorama)입니다.
삼국지는 전쟁과 평화, 영광과 좌절, 정의와 불의, 강자와 약자, 지략과 술수, 슬픔과 낭만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 그 자체의 지혜서입니다.
세인(世人)은 말하기를 “삼국지는 우리 인생을 이야기 한 것이다. 삼국지를 읽지 않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 라고 말합니다.
삼국지를 읽고도 위의 서시(序詩)를 모르면 알맹이가 빠진 것입니다. 많이 읽고 또 글자를 써 보시기를 권합니다.
오늘 삼국지 시를 소개드리는 이유는 지난 2월 20일 신문에 쿠바를 49년간 1인 통치해온 피델 카스트로(81세) 의장이 장출혈이 악화되어 모든 권력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마 현존하는 최장기간의 독재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이 있습니다.
지금 60세 이상 되는 분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1962년 9월 소련이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자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봉쇄령을 내렸습니다. 초강대국간의 전면 핵전쟁의 위기였습니다. 결국 미국이 쿠바를 공격 안하는 조건으로 소련은 핵탄두를 철수하고 위기를 넘깁니다. 이 사건의 핵심에 카스트로가 있었습니다.
49년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파란만장한 카스트로의 인생도 세월과 병마 앞에는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이제 카스트로도 끝입니다. 생각하면 허망(虛妄)한 ]일장춘몽(一場春夢)이지요.
이제 병에 못 이기고 나이에 밀려서 죽음의 이름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카스트로를 보면서 흘러간 옛날과 오늘이 한잔술과 한바탕 웃음 속에 사라지는 삼국지 시를 떠올리며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진시왕처럼 영원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고 죽고난후에도 이승의 생활을 연장하겠다고 산보다 더 큰 묘지를 만들고 시녀와 측근들을 생매장 시키고 지하 궁전을 만들었지만 남은 것은 말없는 백골(白骨)뿐입니다.
권력?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죽고 난 다음의 칭찬과 비판은 전부 산사람들의 말장난거리인 유희(遊戱)에 불과합니다.
죽은 자가 무엇을 알것입니까?
권력의 집착은 진시왕과 카스트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인생이 다한 나이에도 허무를 모르고 달콤한 꿀단지의 맛을 잊지 못하고 미몽(迷夢)을 헤매고 있는 권력중독자가 우리주변에도 흔히 볼수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삼국지 서시(序詩)는 양자강의 물거품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권력의 무상함과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 한것입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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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古木)
半樹惟存骨(반수유존골)
절반만 살은 나무는 뼈마디만 남았는데
風霆不復憂(풍정불복우)
바람과 천둥소리에도 다시 근심하지 않네
三春何事業(삼춘하사업)
봄 석 달을 무슨 일을 하느뇨?
獨立任榮枯(독립임영고)
인생의 영화와 쇠퇴를 뒤로 맡기고 홀로 서있을 뿐이네
김인후(金麟厚)
김인후(金麟厚1510~1560)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다.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성리학 연구에 정진하였다. 성경(誠敬-정성과 공경)의 실천을 학문의 목표로 하고, 퇴계 이항의 이기일물설(理氣一物設)에 반론하여, 이기(理氣)는 혼합(混合)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을사사화(乙巳士禍)는 드라마 문정왕후와 정난정이 등장하는 “왕의여자”를 기억하면 1545년(명종) 윤원형(尹元衡) 일파 소윤(小尹)이 윤임(尹任) 일파 대윤(大尹)을 몰아내어 사림이 크게 화를 입은 사건이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는 전남 장성 출생으로 호남의 대표적인 유학자다. 글씨는 행서(行書)와 초서(草書)에 뛰어났다.
광주에서 용봉탕(龍鳳蕩)으로 유명한 황룡강(黃龍江)을 따라 장성 맥동마을로 가면 거북등에 세워진 비가 하나 있다. 눈여겨보면 우암 송시열이 쓴 글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인물 중에서 도학(道學)과 절의(節義)와 문장(文章)을 겸비한 탁월한 이는 그다지 찾아볼 수 없고, 이 셋중 어느 한두 가지에 뛰어났는데 하늘이 우리 동방(東邦)을 도와 하서(河西) 선생을 종생(終生)하여 이 세 가지를 다 갖추게 하였다.”
최고의 칭송을 하는 비문이다.
조선 중엽 호남(湖南)의 북쪽에는 퇴계 이항이 있고 남쪽에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있다. 영남(嶺南)에는 이황, 충청에는 조식(曺植) 서울에는 이이(李珥)가 버티고 있었다는 역사서에서 보이듯이 김인후의 학덕은 크고 넓었다.
김인후(金麟厚)는 자녀에게 당부하기를 “내가 죽으면 을사년 이후의 관작(官爵)은 쓰지말라” 고 유언하고 이튿날 유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1,600수의 시를 보면 침묵과 준엄한 언어로 인간 내부에 잠적된 영혼의 육신을 회생시키는가 하면 지극히 감미로운 사랑의 훈육(訓育)으로 존재(存在)의 깊은 심연(深淵)을 느끼게 한다.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筆巖里)에는 하서(河西)선생의 필암서원(筆巖書院)이 있다. 소쇄(瀟灑) 양산보(梁山甫)의 담양 소쇄원(潭陽瀟灑園)과 함께 호남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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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좀 길어 지지만 참고로 500년동안 내려오는 호남 명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직장 관계로 약 6년동안 전남광주에 살면서 익히 듣고
답사한 이야기다.
전남 광주에 가면 “기(奇), 고(高), 박(朴)”씨의 말을 듣는다. 전남 광주 일대에서 500년 동안 명문으로 내려오는 기씨 집안, 고씨 집안, 박씨 집안을 일컫는 표현이다. 아직까지도 이 세 집안은 “혼인(婚姻)하고 싶은 3대 집안”으로 꼽힐 만큼 그 후광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 명문가의 자격요건은 대략 3 가지로 압축된다. 퇴계, 율곡과 같은 걸출한 학자를 배출했거나, 나라가 위급할 때 목숨을 바쳤거나, 아니면 대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많이 나온 집안이다. 기, 고, 박씨는 각각 그 세가지 요건에 해당된다.
기(奇)씨 집안은 퇴계와 사단칠정 논쟁을 벌였던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라는 걸출한 학자를 배출했다.
고(高)씨 집안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인 위기를 맞아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을 비롯한 삼부자(三父子) 모두가 목숨을 바쳤다.
박(朴)씨 집안은 조선 초기의 문장가인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 이래로 많은 벼슬이 나온 집안이다.
고(高)씨 집안은 “삼부자 불천위(三父子 不遷位위패를 옮기지 않음)” 집안으로 유명하다. 보통 제사는 4대까지, 즉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까지만 지내도록 되어 있다. 5대조 위패는 옮겨서 묘소 앞에 묻는다. 하지만 대학자가 되거나 국가에 큰 공로를 이룬 인물은 4대가 지나도 위패를 옮기지 않고 영원히 제사를 지내도록 국가에서 지정한다.
“불천위(三父子 不遷位”는 그래서 대단한 영광이다. 불천위가 한 명만 나와도 명문 집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씨 집안은 고경명과 그의 큰아들 준봉(▩峯) 종후(從厚)와 둘째 아들 학봉(鶴峯) 인후(因厚) 3명이 함께 불천위를 받았다. 조선조 500년간 한 집안에서 삼부자 불천위를 받은 것은 이 집안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제봉이 임진왜란때 전라도 의병장으로 금산전투에 참가하던 시점은 그의 나이 60세였다. 존경받던 원로가 앞장서 전쟁터로 나가자 이에 감격한 6000명의 전라도 사람들이 그의 뒤에 구름같이 모였다. 제봉이 말에 올라타고 전쟁터에 나가면서 작성한 격문이 오늘날까지도 식자(識者)층들에게 회자(膾炙)되는 “마상격문”(馬上檄文)이다.
더욱 고(高)씨가 존경받는 것은 창흥의숙(昌興義塾)인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동아일보 창업자인촌 김성수, 한민당 당수 고하 송진우,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호남은행 설립자 무송 현준호, 보사부장과 고재필 등 기라성 같은 호남인물을 들은 배출하였다. 필자는 이곳들을 모두 답사하였기에 잘 알고 있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작자 하서(河西)는 이를 반수(半樹-반만 살은 나무)라고 표현했지요.
사진에 보는 바와 같이 이 고목은 잎과 가지를 제대로 갖지 못하고 이끼만 낀 모습으로 서있습니다.
모진 바람이 불고 천둥이 쳐도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꺾일 잔가지도 없고 떨어질 잎사귀도 없기 때문이겠지요.
만물이 소생하는 봄, 고목(古木)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작가는 묻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 죽어가는 몰골로 무엇을 하겠냐는 이야기지요.
새 잎이 돋아나기도 어려울 것이고 꽃도 피우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목은 홀로 서있습니다.
영고성쇠(榮枯盛衰-인생의 번성함과 쇠락함)는 이미 관심 밖의 일처럼, 그저 묵묵하게 서있을 뿐입니다.
때로는 잠이 안와서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컴퓨터 켜서 한시 file을 넘겨보기도 합니다.
마음에 닿는 시 한 구절은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김인후 고목(古木)은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고고한 기상을 노래한 것 같습니다.
세월의 흔적과 고난의 길을 걸어온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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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제(哀題)슬픔
宗社幽靈不念誠(종사유령불념성)
종사(宗社-국가)의 넋이 나의 지성을 생각지 않아
如何忍頑我傷情(여하인완아상정)
어찌 이다지도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連年四子離如夢(연년사자이여몽)
해마다 아들들이 꿈같이 이 세상을 떠나가니
哀淚千行便濯纓(애루천행편탁영)
슬픈 눈물 줄줄 흘러 갓끈을 적시네!
연산군(燕山君)
이 시는 연산군이 왕위 10년(1504)이 되는 1월27일에 연산군이 직접 제목을 붙인 시다. 이 시는 자식을 연달아 네 명을 잃은 슬픔을 시로 표현하였다. 자식의 죽음을 두고 그 원인을 “종사의 넋”인 선왕(성종)과 인수대비(성종 모후) 등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으로 규정짓고 있다. 이 시에서 어머니 폐비 윤씨의 원한과 연산의 세상에 대한 자괴(自愧)감이 얼마나 깊은 지 주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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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三淸洞)
丹壑陰陰翠靄間(단학음음취애간)
푸른 아지랑이 사이로, 붉게 물든 골짜기는 그늘이 지고
碧溪瑤草繞天壇(벽계요초요천단)
골짜기의 아름다운 풀이 산꼭대기를 둘러쌓고 있네.
煙霞玉鼎靈砂老(연하옥정영사노)
안개와 노을과 옥 솥, 그리고 신령한 모래는 오래 되었는데
蘿月松風鶴未還(라월송풍학미환) 라
담쟁이 넝쿨 위로 달 오르고 솔바람 부는데, 학은 아직 돌아오지 않는구나.
광해군(光海君)
광해군(光海君)은 조선의 제15대 왕(재위 1608~1623)으로 임진왜란시 선조는 의주로 피난 중에도 왕자의 신분으로 많은 공을 세웠고, 전쟁이 끝난 후 세자 책봉 문제로 장자인 임해군과 갈등을 빚었으나 대북파의 지지를 얻어 왕이 되었다.
후금(後金)과 명(明)나라 사이에서 능란한 외교솜씨를 보였다.
일본과는 기해약조(己亥約條)를 체결하여 외교를 통하여 포로로 끌려갔던 조선인을 송환하였다. 선혜청(宣惠廳)을 두어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하고, 양전(量田)을 실시하는 등 많은 업적을 세우기도 하였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은 영창대군(永昌大君)을 1613년 대북파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강화에 귀양보낸 후 사약을 내리고 인목대비(仁穆大妃-선조 계비 영창대군 어머니)를 서궁(西宮)에 유폐시켰다. 이러한 정치 행위는 서인들의 반발로 인해 결국 인조반정 에 의해 폐위당하였다.
역사는 오늘날 광해군의 공과(功過)는 양면적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당파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측면이 있다.
2월 25일 0시를 깃점으로 새 대통령이 탄생을 하고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떠나게 됩니다.
때마추어 지금 TV에서는 역사 드라마들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데
이산, 대왕세종, 홍길동, 왕과나, 등 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고 있습니다.
이산은 조선 22대 정조(正祖)의 전기(傳記)이고, 대왕세종은 4대 세종(世宗)이야기, 홍길동은 조선 광해군 때에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洪吉童傳)을 드라마 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입니다. 왕과나는 연산군 때의 내시 김처선의 일대기입니다.
조선왕조는 27명의 왕이 대를 이은 왕조입니다. 조선조의 왕중에는 세종대왕처럼 성군(聖君)의 칭호를 듣는 왕도 있었고, 나라에 위기가 처했을 때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36계 줄행랑을친 선조와 인조같은 무능한 왕도 있었고, 백성을 잘못 다스린 것도 아니면서 당파와 권력내부의 갈등으로 왕의 칭호인 묘호(廟號) 자체가 없이 폭군(暴君)으로 규정된 10대 연산군(燕山君)과 15대 광해군(光海君)도 있습니다.
조선의 왕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조선 국토와 백성이 전부 왕의 나라이므로 왕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는 식의 왕권(王權)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왕은 끊임없이 도전받는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중신들의 권리)과의 헤게모니(Hegemonie주도권)쟁탈의 연속이었습니다. 오히려 공화국(共和國) 정체(政體)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현대청치체제의 대통령보다 실권이 없었습니다.
조선의 개국태조인 이성계와 정도전, 드라마 왕과나의 성종과 한명회, 대왕세종의 태종과 하륜, 홍길동에서의 광해군과 이이첨 정인홍, 등은 항상 왕권을 압도(壓倒)하려는 신하들 간의 권력 주도권 싸움이었습니다. 조선 개국시 정도전 조준 하륜 등은 이성계의 중심인물이었으나 태종 이방원이 골육상쟁(骨肉相爭)인 왕자의 난을 일으켜 대권을 잡을 때 정도전 조준은 제거되고 하륜은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浮上)하였습니다.
하륜은 당시 뛰어난 풍수지리가로 조선개국의 수도를 대전 계룡산밑 신도안에 천도(遷都)공사를 하는 도중에 풍수설에 맞지않다고 하여 현재의 서울로 옮긴 것도 하륜에 의한 것입니다. 동해안에 있는 절경 하조대(河趙臺)는 조준(趙浚)과 하륜(河崙)이 가장 득세(得勢)할 때 건축한 성(姓)을 딴 이름의 권력상징의 정자(亭子)입니다.
조선왕들은 성군(聖君)의 정치를 하기 위해 세자(世子)때부터 이름 높은 학자들과 경륜 높은 조정대신들로 구성된 경연청(經筵廳)에서 세자 때는 서연(書筵)을, 왕이된 후에는 경연(經筵)의 강의(講義)를 듣습니다. 이른바 임금 공부입니다.
조선왕들은 수준 높은 교수진들로부터 임금수업을 받기 때문에 경서(經書)의 지식과 문장 글씨등이 대단한 수준급의 실력자였습니다. 일상의 언어나 행동에는 항상 왕도(王道)의 엄격한 제약을 받았습니다. 말씨나 행동이 조금만 왕의 품위에 벗어나도 신하들로부터 충고를 받았습니다.
폭군(暴君)이라는 칭호를 받은 광해군과 연산군도 위의 한시(漢詩) 수준을 보아도 경연을 통해서 높은 교양과 지식을 쌓은 왕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같이 당파간의 권력 각축(角逐)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불운(不運)의 임금일 다름입니다.
조선왕조가 1392년 태조(太祖)이성계가 역성혁명(易姓革命-고려 王씨가 조선 李씨로 바뀜)으로 개국하여 1910년 마지막 임금인 순종(純宗)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간 지속된 왕조는 세계사에 드문 일입니다.
세계사의 가장 긴 왕조는 비잔틴제국(로마)2000년 일본1700년 신라 947년 조선 519년입니다. 중국은 한(漢)나라 왕조이래 60여개국이 난립하여 평균수명이 약 66년입니다. 중국의 가장 긴 왕조가 청(靑)나라 296년에 불과 합니다.
조선이 불리한 지리적 여건 속에서 세계사속에서 긴 왕조의 역사를 존속시킨 것은 유교철학을 바탕에둔 통치자들의 국가경영 철학과 능력이 탁월했다고 생각됩니다. 그 밑바탕에는 엄격한 경연(經筵)을 통한 공부를 한것도 중요한 요인이라 생각됩니다. 성군(聖君)이란 칭호를 듣는 세종대왕은 재임기간 32년동안에 1898회 경연을 열었으며 이 회수는 월5회에 해당하는 임금 공부를 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이래로 60년의 역사에 불과 합니다.
대한민국이 조선왕조와 버금가는 역사를 갖일려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가 나와야 되고 이런 지도자는 경연(經筵)을 통한 지도자 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성군(聖君)이라는 말을 듣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습니다. 국민의 다수표에 의하여 대통령이 되었다고 임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은 국민에게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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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료원(釋了圓)인간세상 고치 짓는 누에
三界癡如作繭蠶(삼계치여작견잠)
인간세상사(삼계三界) 어리석음이 고치를 짓는 누에 같고
白駒光景不停驂(백구광경불정참)
흰 망아지 같은 세월은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한다.
茫茫天地無人省(망망천지무인성)
아득한 천지에 그것을 살피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早悟浮虛只幻菴(조오부허지환암)
모든 것이 뜬 구름임을 일찍 깨달은 사람 다만 환암뿐이라
환암(幻庵)
환암(幻庵)
고려(高麗) 말엽(末葉)의 이름난 중으로 속성(俗姓)은 조(趙), 자는 무작(無作)이다. 13세 때 나옹(懶翁)을 따라 불법(佛法)을 배웠고 글과 글씨에 능했다고 전한다. 우왕(禑王) 9(1383)년 나라에서 국사로 봉하였다.
요즘에는 누에를 어떻게 기르는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누런 종이위에 .. 이런 점같은 알에서 누에가 시작된다. 누에의 일생은 좁쌀만 한 알에서 부화하여 먼지 같던 유충이 뽕잎을 먹으며 자라간다.
자라는 과정 또한 신비롭다. 일정한 기간을 두어 먹이를 먹다가 쉬고, 다시 먹기 시작하는 과정을 3번 반복한다. 이 기간을 일러 누에가 잠잔다고 한다. 누에는 석잠을 자야 성장이 완수된다. 이 석잠을 지나는 과정이 재미있다. 뽕잎을 먹어가며 자라는데 먹을수록 몸뚱이는 점점 액체처럼 투명해 진다.
다 자라 집을 지을 때가 되면 전신이 맑아서 투명해진다. 집을 지을 잠박(蠶箔)으로 옮기려면 등불에 비추어 투명한 놈을 골라 올린다. 누에 키우는 집에서 담배도 못 피운다. 매우 정결해야 한다. 우리 같은 개구쟁이는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우리는 누에에서 의미 깊은 것을 배운다.
누에는 자신의 집을 찾아 지어 놓고 그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이것이 번데기다.
그러나 누에는 번데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누에 자신이 지어 놓은 집에서 다시 수도(修道)의 잠을 자고, 그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환생(還生)이라는 대변화인 나비로 탈바꿈까지 하여 다시 제3의 삶을 사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속박의 구속을 벗는 부활(復活)이며 해탈(解脫)이 아닌가.
사람은 누에와는 달리 환생의 변화 없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환경에서 벗어나고 변화하는 지혜를 가졌으니 그야말로 영물(靈物)인 것이다.
집을 짓되 집에서 갇히는 누에가 아니고 벗어나는 누에를 닮아야 한다.
배움의 기간인 초 중 대학이라는 3단계를 누에로 비유하면 석잠의 휴식을 지나는 셈이다. 이 석잠을 지나 완숙된 인격체가 되었다면 누에처럼 투명한 맑은 몸이 되어야 하고, 누에의 고치처럼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의 집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은 지혜로 변하여 뽕을 먹고 맑아지는 누에처럼 머리가 맑아지고, 맑아진 육체에서 뽑아낸 섬유질이 비단을 낳듯이, 건전한 지식의 머리에서 창조된 지혜가 인류에게 공급되는 비단옷이 되어, 진(眞) 선(善) 미(美)의 아름다운 삶의 치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친구를 사귀고 좋은 사고를 갖일려고 노력하는 것은 구속되지 않은 좋은 집을 짓기 위함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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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瑞雪民豊殖(서설민풍식)-이 함박눈에 농사 풍년이었으면
民食吾亦食(민식오역식)-백성이 배불리 먹어야 나도 밥을 먹지
又此隆寒時(우차륭한시)-또 이렇게 차가운 날씨에
貧者何以衣(빈자하이의)-가난한 자는 어떻게 옷이라도 입는지
고종황제(高宗皇帝)
고종황제(高宗皇帝)
2월 25일은 이명박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2월 26일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취임식의 열기를 식히고 냉정한 머리로 돌아가라는 충고라도 하듯이 하얀 눈이 온 누리를 덮고 있었습니다. 이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들뜬 마음이 아니고 차분한 냉정입니다.
최근 우리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언어(言語)의 표현수준을 최상급(最上級best)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최인류국가” “범법자는 엄단한다” “카리스마”등--
그러나 실천하는 행동은 최하급(最下級)이 대부분입니다.
사상의학의 창시자 동무 이제마 선생은 말로만 대단한 계획을 세우는 지(知)보다는 작은 실천인 행(行)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위의 한시에서 보듯 고종황제는 함박눈이 내린 것을 보고 농사가 잘되어 백성이 배불리 먹도록 기원하였고, 여의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 시대”를 외치며 2008년을 “선진화 원년”으로 풍요와 배려 품격이 넘치는 나라로 만들자고 외쳤습니다.
고종황제는 조선왕조 마지막 왕 순종의 아버지입니다.
고종황제는 조선왕 27명중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습니다.
고종황제의 일대기(1864∼1907)는 너무나 순탄치 못했습니다.
개화당과 수구세력의 갈등. 명성왕후 민비와 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마찰에서부터, 불평등한 강화도조약 체결,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갑오농민혁명, 청일전쟁과 아관파천, 명성황후 시해사건, 러일전쟁과 을사보호조약 등 대내외적으로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열강(列强)들 틈에서 일제(日帝)의 마수(魔手)에 나라를 빼앗기고 그 일제 강점기의 쓰라린 고통속의 역사가 그 얼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독살(毒殺)에 의한 승하(昇遐)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한(恨)으로 길이 남아 있습니다.
취임이후 새 대통령은 취임축하차 방문한 일본 총리와 새 정부 출범 후 첫정상 회담을 갖이고 “새로운 차원의 한일 관계”를 논의하였습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일어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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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가야산 자락의 남연군(南延君) 묘, 지금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 자리는 1844년 헌종 때 고종황제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옛 가야사(절)를 불태우고 자신의 부친 이구(李球)를 모신 무덤으로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아들 고종황제를 임금으로 만들기 위한 집념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안동 김씨의 세도 밑에 “상갓집 개”라는 멸시를 받아가면서 왕권을 되찾겠다는 야심으로 명당자리를 찾아 아버지(남연군)의 묘를 이장하려고 풍수지리라는 책은 모두 섭렵했고 팔도의 명당을 찾아 헤맸습니다. 이렇게 10여 년 동안 헤매다 충남 예산군 가야산에서 명당을 발견했는데, 당시 자리를 잡아준 지관(地官)이 “두개의 묘 자리가 있는데 하나는 자손만대 평안할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두 명의 황제가 나올 자리다”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대원군은 주저 없이 왕기(王氣)가 서린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둘째아들 명복(命福-고종황제의 아명)이 왕으로 책봉되고 이어 순종이 뒤를 잇게 된 것입니다.
이 본을 보고 우리나라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이 부모나 조상의 묘를 왕기(王氣)가 있다는 소위 명당으로 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황제가 되면 무엇 하겠습니까.
나라도 빼앗기고 자기의 일신 하나도 구하지 못했던 것을---
저는 태평로 교보문고를 찾을 때 바로 앞에 서있는 옛 건물 “고종황제 등극 기념전비”를 보고 회상에 젖을 때가 있습니다.
세인(世人)이 명심해야 할 것은 산이 높고 기세가 등등하며 국세가 떨친다는 명당(明堂)을 찾아서 조상의 묘를 쓰고 대통령이 되어 개인은 일신의 영광을 누려도 국민이 힘들게 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옛말에 “대인은 의(義)를 보고 소인은 이(利)를 본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지금까지 서민들의 집을 지어주는 봉사를 볼 때 너무나 존경스럽고 부럽습니다. 진정한 대인(大人)이요 지도자입니다.
지도자가 찾는 명당은 나라가 부귀(富貴)하고 국민의 자손만대가 경제 안정을 찾고 도덕이 확립된 사회가 만들어져야 올바른 명당을 잡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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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와도 봄 같지 않습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오랑캐 지역에는 화초도 없어,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더랍니다.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자연스레 허리띠가 느슨해지는 것은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몸매 관리 때문이 아니랍니다.
동방규(東方叫)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날같지 않다” 이말은 철과 절기는 봄이지만 아직도 눈이오고 얼음이 얼고 추워서 봄날 같지가 않다는 뜻입니다.
또 한가지는 정치인들이 이 말을 잘 인용합니다. 요즘에는 별로 사용안하는데 옛날 군부정치 시절 계엄령이나 정치활동이 제약을 받다가 계엄령이 해제되고 정쟁법이 풀려서 연금이풀리고 명목상으로는 정치를 할수 있지만 사회분위기는 얼어붙어 언론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치활동이 순조롭지 못했던 시절에 이말을 사용했습니다.
위의 시는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사랑을 받던 미인 왕소군이 오랑캐나라에 친화정책으로 정략 시집을 간후 고국 한나라가 그리워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고 근심으로 인해서 허리는 살이빠져 가늘어진다는 슬픔을 노래한 것입니다. 오랑캐 나라에도 봄은 왔지만 고국 한나라를 그리는 왕소군의 마음은 겨울 같다는 노래입니다.
이 비운의 여인을 위해 후대에 이백(李白)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들이 그를 애석해 하는 시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동방규(東方叫)의 이 작품이 가장 널리 알려졌습니다. 특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못지 않게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도 옛날에 언어 유희(遊戱)로 많이 회자(膾炙)되던 구절입니다.
왕소군(王昭君)의 이름은 장(嬙)이고 자는 소군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중국의 미인이라 하면 양귀비(楊貴妃)만을 떠 올리지만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 양귀비(楊貴妃)를 중국의 4대미인 이라 합니다.
왕소군(王昭君)은 재주와 용모를 갖춘 미인이었습니다.
왕소군(王昭君)에 대한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에 시, 소설, 희곡, 등 문학의 소재로 끊임없이 전하여 내려왔습니다. 문학속의 왕소군(王昭君)은 역사속의 왕소군(王昭君)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한(漢)나라 원제(元帝)는 전국에 후궁 모집의 조서를 내려 선발된 궁녀수가 수천 명이되었습니다. 왕소군(王昭君)도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후궁으로 선발되었습니다. 황제는 수천 명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화공 모연수(毛延壽)에게 명하였습니다. 그때 돈많은 궁녀들은 화공에게 자신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뇌물을 바쳤으나, 오직 왕소군(王昭君)은 집안이 가난하여 화공에게 줄 돈도 없고 자신의 용모를 황제에게 속일 마음이 없었으므로 뇌물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화공 모연수(王昭君)는 뇌물을 바치지 않은 왕소군(王昭君)을 괘씸하게 여기고, 그녀의 용모를 아주 평범하게 그린후 얼굴 위에 큰 점을 하나 찍어 버렸습니다.
그 후 원제는 왕소군의 초상화을 보았으나 추하게 그려진 그녀의 모습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왕소군(王昭君)은 입궁한지 5년이 흘렀지만 황제의 얼굴도 보지 못한 궁녀가 되었습니다.
왕소군은 궁중일을 하면서도 남는 시간에 독서와 서예, 가무(歌舞), 그림 등을 익히면서 항상 자신을 가꾸는 일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홀로 고독을 달래는 쓸쓸한 밤이 되면 허송세월이 아쉽고 언제나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는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왕소군의 이런 생활에 마침내 그녀의 운명을 결정짓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한(漢) 원제(元帝)는 남쪽에 있는 흉노족(南匈奴族) 호한야(呼韓邪)와 평화조약을 맺고 있는 사이었습니다. 호한야는 많은 조공물을 한나라 원제에게 바치면서 한나라 황제의 사위가 될 것을 청하였습니다.
원제는 그 청을 받아들이고는 공주를 시집보내기 전에 먼저 그에게 한나라 황실의 위엄을 한 번 과시하기 위해 자기의 후궁 중에서 아직 총애를 받지 못한 미녀들을 불러와 술을 권하게 했던 것입니다.
후궁들은 황제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지라, 제각기 예쁘게 단장하여 황제의 환심을 사고자 하였습니다.
궁녀들이 들어오자 호한야(呼韓邪)는 많은 궁녀들 중에서 절색의 미인을 발견하고 황제에게 청하기를 꼭 공주가 아니어도 좋으니 저 미녀들 중의 한 명을 요청했습니다.
황제는 공주보다 궁녀를 주는 것이 쉽다생각하고 호한야(呼韓邪)의 청을 수락하였습니다. 호한야는 가장 아름다운 왕소군(王昭君)을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선택받은 궁녀를 보니 천하절색의 미녀가 사뿐히 절을 올리는 게 아닌가!
곱고 윤기 있는 머리결은 광채를 발하고, 살짝 찡그린 두 눈썹엔 원망이 서린 듯, 너무나 아름다운 왕소군(王昭君)의 미모에 원제도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황제는 후회 했지만 한 번 내린 결정을 다시 번복할 수도 없었습니다. 연회가 끝난 후 원제는 궁녀들의 초상화를 다시 대조해 본결과 왕소군(王昭君)의 그림이 실물과 다르게 그린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원제는 화공 모연수(毛延壽)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모연수를 황제를 기만한 죄로 참수하였습니다.
원제는 왕소군(王昭君)을 놓치기 싫은 마음에 3일 동안 왕소군(王昭君)과 못 이룬 정을 나누었습니다. 3일 후 왕소군(王昭君)은 원제에게 작별을 고하고 흉노족으로 떠났습니다.
떠날 때 원제는 그녀에게 소군(昭君)이라는 칭호를 내렸습니다. 소군(昭君)에는 한나라 왕실을 빛내고 황제를 대신하여 흉노를 빛내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왕소군(王昭君)은 마지막으로 장안을 한 번 바라본 다음, 가슴에 비파를 안고 말에 올랐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왕소군(王昭君)이 정든 고국산천을 떠나는 슬픈 마음을 달랠길 없어, 말위에 앉은 채 비파로 이별 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마침 남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가 아름다운 비파소리를 듣고 말위에 앉은 왕소군(王昭君)의 미모를 보느라 날개 짓 하는 것도 잊고 있다가 그만 땅에 떨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왕소군(王昭君)을 일러 "낙안(落雁)의 미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위의 동방규(東方叫)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왕소군이 북방에 도착한후를 노래한것이고 아래의 소군출새(昭君出塞)는 시성(詩聖) 이백(李白)이 한나라를 떠나는 왕소군의 모습을 그린 유명한 한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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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군출새(昭君出塞)오랑캐나라로 떠나는 왕소군
昭君拂玉鞍(소군불옥안)-소군이 옥안장을 떨치며
上馬涕紅頰(상마체홍협)-말을 타니 붉은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네
今日漢宮人(금일한궁인)-오늘까진 한나라 궁궐의 궁녀가
明朝胡地妾(명조호지첩)-내일 아침이면 오랑캐의 첩이 되는도다.
이백(李白)
왕소군(王昭君)이 떠날 때 중원은 따뜻한 봄이었지만 북쪽 변방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쳐 봄같지가 않았습니다. 흉노족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역의 풍경은 왕소군(王昭君)에게 고국의 그리움만 더해 줄 뿐이었습니다. 왕소군(王昭君)이 떠난지 3개월 후, 한나라 원제는 왕소군(王昭君)에 대한 그리움을 못 잊어 그만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흉노와의 친화정책을 위해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에게 강제로 시집을간 왕소군은 아들과 딸을 낳고 고국을 그리면서 한없는 원망과 절망 속에 쓸쓸히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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吟井中月(음정중월) 우물속의 달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산속의 스님이 저 달빛에 욕심이 생겨
竝汲一甁中(병급일병중)-우물에서 달을 길어 병속에 담았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그러나 절에 이르면 곧장 깨달으리라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병을 비우면 달 또한 비게 된다는 것을
이규보(李奎報)
이규보(李奎報)
고려 명종때의 문신으로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며 문장으로는 고려의 제일인자로 까지 높임을 받는 사람입니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등의 문집과 많은 시들이 전해집니다.
당대의 대문호로 이름을 날린 이규보는 많은 시를 남겼는데,
오늘 소개하는 시는 우물속의 달과 스님을 소재로 담담하고 재미있게 묘사한 시입니다.
우물에서 달을 길어 병속에 담았네. 절 안에 들어와 병을 비우니 달이 사라졌습니다. 달리 생각해 보면 거추장스런 병에 담아오느니 차라리 마음속에 담아왔으면 사라지지 않을 것인데 우매함이 미처 생각을 못한 것 같습니다.
청풍명월(淸風明月-맑은 바람 밝은 달)은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누구나 이를 마음대로 취하여도 탓할 사람이 없으니 굳이 달빛을 탐했다고 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우물 속에 금빛으로 넘실거리는 달빛에 잠시 속된 마음이 생겨 병속에 물과 함께 달을 취한 것입니다. 참 부질없는 짓이지요.
달빛은 절 처마 밑으로만 들어가도 비치지 않고, 병 속의 물을 다 기울여도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색(色)일 뿐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두고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하여 “만물이 빈 것이요, 빈 것이 즉 만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병 속에 길어 넣은 달빛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대단한 것 같아서 움켜쥐려 애쓰지만, 실제로는 붙잡을 수도 없고 형체조차 모호한 것이 아닐런지요. 병을 기울여 물을 붓듯이 마음을 비우면 그만일 것을...
그러나 알면서도 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 비우는 일입니다. 저 스님도 병을 기울이는 순간 욕망의 허무함을 깨달았겠지만, 다음날 밤에는 또 다시 별빛을 병에 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병을 기울이는 순간 득도(得道)를 하여 해탈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요.
스님이 물을 길으려는데 우물속 달빛이 참 고왔겠지요.
물을 긷다말고 스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겠지요.
물병에 물을 길러 잠깐 숨 돌리는 사이에 물 병속에는 신기하게도 방금 전 보았던 우물속달이 그대로 옮겨와 있는 것이 아닌가, 월인천강(月印千江)!
달은 어느 개인이 소유는 것이 아니고 소유 할 수도 없습니다.
밝은 달은 이 세상의 만물과 모든 강물에 고루 다 비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 했습니다.
우물 속의 달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들판에 원숭이 여러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숲 속에서 놀다가 큰 나무 아래로 왔습니다.
그 나무 아래에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우물 속에는 마침 달그림자가 떠 있었습니다.
그 때 우두머리 원숭이가 보니 달이 빠져 있는지라 원숭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달이 죽어 우물 속에 빠져 있다.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달을 꺼내자. 그래서 세상의 긴 밤이 어둡지 않도록 하자.”
“그런데 저 달을 어떻게 꺼내지?”
그러자 우두머리 원숭이가 다시 말했습니다.
“어려울 것이 없다. 내가 나뭇가지를 잡으면 누가 내 꼬리를 잡아라. 그 다음 누가 또 꼬리를 잡고, 이렇게 줄줄이 잇달아 잡고 우물 속으로 내려가면 달을 건질 수 있다.”
원숭이들은 우두머리의 말이 그럴듯하게 생각되어 우두머리의 말대로 줄줄이 꼬리를 잡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뭇가지가 약하여 부러지는 바람에 원숭이들은 모두 우물 속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역시 헛된 욕망입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망상(妄想)은 결국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달그림자를 보고 달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원숭이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규보는 이 한시를 어떤 생각으로 썼을까요?
이 한시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은 탐내지 말아야할 것도 탐을 내지만, 그것은 우물 속의 달처럼 허무하게 없어진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이 시는 아름다움과 함께 교훈을 주는 참으로 기막힌 작품입니다.
음정중월(吟井中月) 우물속의 달 !!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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