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예배-콩트
신 집사는 서리 집사가 된 지 4년째 되던 해에 구역장으로 임명받자 바로 구역예배에 대한 자기의 아이디어를 실천하기로 했다. 구역예배는 한 달에 한 번만 모이고, 장소는 자기 집에서 하기로 했다. 이 층에 있는 방 하나를 비우고 어린이 놀이방으로 꾸몄다. TV와 어린이용 비디오와 그림책을 사들여 비치하고 놀이 기구를 사 넣었다. 이것은 권사인 시어머니의 허락과 협조를 받은 것이었다. 비용은 중학교 선생인 그녀가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그날은 모든 구역원 부부와 어린애들까지 온 구역 식구가 저녁을 먹지 않고 음식을 한 가지씩 장만하여 들고 온다. 자기 집에서 식사를 나누고 어린 애들은 이 층의 어린이 놀이방에 가서 놀게 하는데, 어린이 방에는 그때마다 담당자를 한 사람 정하여 올려보낸다. 어른들은 어른끼리 모여 찬양하고 힘들었던 삶을 나누고 기도한다. ‘구역예배’도 ‘구역 기도회’라고 이름을 바꾼다. 매주 모임의 보고서에 ‘구역예배 인도자’가 나오는데 교회에서는 목사만 예배 인도를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어떻게 집사나 장로가 예배 인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교회에서 원하는 구역예배는 아닐지라도 친교와 말씀 나눔의 기도회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구역원들의 가정사를 잘 알게 되고 서로를 위해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이것은 신 집사 자신의 아이디어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한 교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떤 교회에 당회장 목사가 교인과 불화가 생겨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교회를 떠났다. 이에 급히 모셔온 목사는 목회를 잘하고 계셨는데 후임자에게 맡기고 조기 은퇴해서 시골에 살고 계시던 분이었다. 교회의 딱한 사정을 알고 사택이 없어도 자기 집에서 차로 다니며 교회를 돕겠다고 해서 모신 분이었는데 그동안 부목사와 전도사들이 강단을 맡고 있던 교회는 새 목사가 들어와서 차분한 설교를 시작하자 교회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었다. 거기다 새 목사는 자기가 나서서 사역자들을 동원하여 교회 청소도 하며 급할 때는 부 교역자들을 시켜 버스를 운전하게 하여 교인들의 교회 출석을 도왔다. 그러자 교인들이 버스와 소형 차량 운전을 자원해서 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또 교회 청소도 여전도회가 분담해서 하기로 하였다. 연말 예결산의 틀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엔 목사 사례비 인상 때문에 아주 시끄러웠는데 이반에는 목사가 난국을 수습하러 온 사람인데 무슨 사례비냐고 안 받겠다고 해서 실랑이였다. 교회 조직과 행정이 많이 바뀌었다. 구역예배는 없애고 원하는 구역이 있으면 조직해서 당회에 올리면 허락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신 집사가 평소에 원했던 것이었다. 또 성가대 지휘자는 성가대원들이 모시고 싶은 사람을 찾아 자원봉사 하는 사람으로 교회가 임명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유급으로 일하고 있던 반주자도 자기도 무급으로 봉사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자 교회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상부 지시를 따라 움직이는 조직 안에서의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스스로 모여 예배하고 힘을 얻어 일하는 단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의무적으로 주일을 지키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일이 있고 맡은 일이 있어 교회에 나오는 것이었다. 설교를 들으면 그것이 자기가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며 새 생명이 넘쳐 더욱 소중히 섬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신 집사의 새로운 구역예배는 대성공이었다. 교회에 내는 구역예배 보고서는 한 달 중 나머지 3주는 모인 장소도 없고 또 헌금 난은 늘 공란이었다. 이 소문은 각 구역에 퍼져 구역예배에 혼선이 왔다. 드디어 신 집사는 목사님께 불려가게 되었다. 집사가 된 지 몇 해도 안 된 신참자(新參者)가 왜 교회에서 정한 법도를 마음대로 어기느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조목조목 목사에게 따져 물었다. ‘구역예배’는 ‘구여 기도회’로 이름을 바꾸는 게 맞다. 꼭 헌금을 내서 구역에서 낸 돈까지 교회에 바쳐야 하는가? 사회활동으로 지쳐 있는 평신도들을 매주 밤 모이도록 하는 취지는 무엇인가? 매주 의무적으로 모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빼앗아 간다면,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범죄가 아닌가?
예상했던 대로 교회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교회의 명령을 어기고 그렇게 행한 사람은 교회의 권징(勸懲)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에 충성스럽던 그녀의 시부모 홍 장로 내외에 맡겨 훈계하기로 하고 앞으로 이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듣고 훈방되었다. 그러나 모처럼의 ‘구역 기도회’는 몇 달을 지속하지 못하고 많은 구역원은 기쁨을 잃었다. 그녀는 많은 교인에게 ‘말썽꾸러기 집사’로 이름이 났다.
10년 뒤에는 교인들 사이에 말썽꾸러기로 이름이 알려져 권사를 뽑는 투표에 신 집사는 오히려 많은 표를 받아 권사가 되었다. 신 집사는 권사가 교회의 계급도 아닌데 만나는 사람마다 “권사님, 권사님”하고 어른 대접해서 퍽 거북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를 비꼬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따뜻하게 사랑하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왜 자기주장만 하고 남을 참으로 섬기는 예수님의 본은 받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으로 자기는 남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만을 위한 삶이었다. 그러면서 아픈 사람,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를 이렇게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곳에서 오는 힘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권사로 세워주신 새로운 사명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 장로 문학 2023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