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는 3m 정도이고, 어린가지는 은백색을 띠며 가시가 달려 있다. 잎은 타원형으로 어긋나고 잎에 은백색의 비늘처럼 생긴 털이 있으며 잎가장자리는 밋밋하다. 5~6월에 흰색 또는 연한 노란색의 꽃이 잎겨드랑이에 1~7송이씩 무리져 핀다. 꽃잎은 없고 꽃받침이 종(鍾) 모양으로 자라 꽃부리를 이루는데 꽃부리 끝은 4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수술 4개는 꽃부리에 달라붙어 있으며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10월에 붉은색의 장과(漿果)로 익으며 날것으로 먹는다.
이밖에 한국에서 보리수나무라고 부르는 식물로는 불교에서 말하는 보리수, 슈베르트의 가곡에도 나오며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 보리자나무(Tillia miqueliana)가 있다. 그러나 이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는 '린덴바움'(Lindenbaum)으로 보리수나무 종류가 아니라 피나무류 식물이다. 피나무 종류에는 염주나무 와 중국에서 불교와 함께 들어온 나무로 알려진 보리자나무가 있다. 그런데 가곡의 린덴바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불교의 보리수와 혼동하여 잘못 옮긴 것이라 여겨진다. 한국에서 자라는 보리수나무는 키가 작은 관목으로 노래 가사에서처럼 나무 그늘 밑에서 단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보리자나무가 절에서는 흔히 보리수나무로 불린다. 이는 피나무과(Tiliaceae)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키는 10m 정도이다. 잎은 심장형으로 잎끝이 뾰족하며 잎의 기부는 조금 파여 있다. 잎에는 회백색의 별 모양의 잔털이 있고, 연한 노란색의 꽃은 이른 여름에 취산(聚繖)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꽃자루에 커다란 포(苞)가 달려 열매가 익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다. 열매는 구형의 핵과(核果)로 익는다. 중국 원산으로 한국에는 불교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알려질 뿐, 언제부터 심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석가가 그 밑에서 해탈한 나무라 해 절에서 주로 많이 심고 있으나, 불교에서 말하는 보리수와는 다른 나무이다. 석가와 관련된 보리수는 보오나무이다. 이 나무는 인도의 가야산(伽倻山)에서 자라는 나무로 사유수(思惟樹) 또는 인도보리수라고도 부른다. 보오나무는 상록교목으로 키가 30m에 이르며 잎 기부가 꼬리처럼 길게 자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보리수는 석가모니가 이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각수(覺樹·깨달음의 나무) 또는 도량수(道場樹)라고도 불리는 나무다. 그 씨는 깨알보다 작지만, 자라면 평균 30m나 되는 거대한 나무로 우뚝 서 뭇 중생에게 그늘을 선물한다. 이 때문에 작은 보시가 큰 은덕으로 되돌아온다는 의미로 자주 인용된다. 보리수 한 그루가 커다란 숲 하나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보리수는 아열대 기후에 사는 나무여서 우리나라에서는 자랄 수 없다. 절 마당에서 키우는 보리수는 완전히 다른 피나뭇과의 나무이다. 원산지는 중국이며, 열매로는 염주를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또 다른 보리수나무도 있다. 산과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가을에 약간 떫고 단맛이 나는 보리똥이라고도 불리는 빨간 열매를 맺는다. 경남 고성에서는 이 열매로 보리수 와인을 만들어 특산물로 판매하고 있다.
세 종류의 보리수는 이처럼 완전히 다른 나무다. 나무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학명조차 다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물론 스님들조차 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다. 학계에서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는 '인도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 보리수는 '보리자나무'로 따로 부르기도 한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 있던 인도보리수의 직계 후손목이 부산으로 올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지난 1월 16일 뉴델리에서 개최된 한·인도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인도 정부가 한국 국민에 대한 각별한 우의를 전달하기 위해 산림청에 전달한 묘목이다. 인도는 가야 때 아유타국 공주인 허 왕후가 김수로왕에게 시집오고, 신라 때는 혜초 스님이 구법 여행을 떠날 만큼 우리나라와 깊은 유대를 갖고 있다. 인도 뭄바이와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부산에서는 올해 다양한 인도 관련 행사가 예정돼 있다. 인도보리수가 인도와 부산을 잇는 거목으로 자라나기를 기대한다.
[꽃산행 꽃글·80] 해인사에서 만난 보리수나무 열매
(프레시안 2013.10.18 09:11:00)
감기 날릴 보리수나무 열매에 얽힌 추억
콜록콜록. 몇 해 만에 감기에 걸렸다. 으슬으슬 한기는 없었지만 기침이 요란하게 몸 안에서 나왔다. 가래도 몹시 집요하게 끓었다. 땅에 떨어져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이 은행나무에서 바람 불 때마다 떨어지는 것처럼 그 좁은 목구멍 안에 웬 그리 많은 기침과 가래가 살고 있었는지 좀체 그칠 줄을 몰랐다. 은행 알처럼 쓸어 담는다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기침도 몇 가마니는 되었을 것이다. 콜록콜록.
이젠 조금 사그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쿨렁쿨렁 잔기침이 묻어나는 몸을 이끌고 해인사에 갔다.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의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 전시회, <A Dream I Dreamed>를 보러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른 것이다. 해인사는 마침 <2013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주문으로 가는 도중에 <마음>을 주제로 한 각종 설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축제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많았다. 합천은 나의 고향인 거창과 이웃한 곳이라서 해인사하고는 쌓은 추억이 많다. 어느 해 동네 어른들이 추수 끝내고 단체로 해인사로 놀러 갔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나도 부모님을 따라갔던 기억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길바닥에 내려앉은 나뭇잎의 그림자들을 보자니 옛날 사람들 생각이 났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젠 저 길바닥보다도 더 낮은 곳으로 들어가셨다. 변하지 않는 것은 저 그림자들 뿐.
가야산 능선을 짚어가는 산행에야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울창한 숲을 따라 걷는 가야산 소리길을 걷는 맛도 훌륭했다. 이제 단풍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저 혼자만의 세계로 떠나는 꽃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임시 장터가 열렸고 각종 기념품과 먹을거리가 너도나도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때마침 터져 나오는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며 가까이 가 보았다. 매직펜으로 휘갈겨 쓴 글씨의 두꺼운 마분지가 꽂혀 있었다. "보리수, 국산. 기관지, 천식, 편도, 기침, 가래에 특효. 감기, 피로 회복에 좋음". 알고 보니 그것은 보리수나무 열매였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전국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보는 보리수나무. "국산"이라고 표시된 것으로 보아 아마 이곳 가야산에서 수확한 열매인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우리 고향에서도 다래, 정금, 오디와 함께 참 많이 따먹었던 열매. 우리 동네에서는 '뻐리똥'이라고 했었다. 나는 뻐리똥을 안 지는 제법 오래 되었지만 보리수나무를 보리수나무로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그동안 미련하게도 나무를 나무로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장 바로 지난 주 나는 인왕산에서 보리수나무를 만난 적이 있었다. 범바위 근처에 딱 한그루가 있다. 혹 열매가 있나 샅샅이 훑어보았는데 누가 다 따먹었는지 도무지 눈에 띄지가 않았다. 바람이 몹시 부는 곳의 길목에서 오직 열매 하나가 애달프게 달려 있었다. 그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라도 주려는 듯 고향 근처의 햇빛과 물을 먹고 자란 열매가 눈앞에 대량으로 척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은 씨알도 탄탄하게 굵었고 색깔도 선명하게 붉었다!
부처가 그 아래에서 정등각(正等覺)을 이루었다는 보리수하고는 전혀 다른 나무이지만 그래도 보리수, 나무라고 하면 괜히 기분이 더 좋아진다. 더구나 여기는 해인사가 아닌가. 더구나 지금 나는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는 감기환자가 아닌가. 가래와 기침에 특효이고 감기에 좋다고 하지 않은가. 면허증 따위야 없겠지만 가야산을 누비고 다니는 분들이 제시하는 민간 처방의 효능을 무작정 믿고 싶어졌다.
그냥 먹어도 되고 술에 담가 먹어도 좋다고 했다. 몇 알을 입안에 넣었더니 시큼한 맛이 돌고, 금방 입안에 침을 고이게 했다. 덩달아 물컹한 옛날 생각이 떼 지어 일어났다. 이 상큼한 옛 생각이 목구멍에 들러붙은 감기 기운을 데리고 가주면 좋으련만!
햇볕을 따뜻하게 쬐고 계시는 모습이 멀리서 볼 땐 생전의 외할머니 모습과 비슷했던 할머니. 좌판 가까이 가서 뵈니 틀니를 하고 계시어 더욱 그랬던 것 같았다. 일금 5000원 어치를 샀더니 한 쌀밥을 담는 사기그릇에 고봉으로 한 움큼 주셨다. 그러고도 한 주먹 더 쥐어주었다. 보리수열매를 파는 가게 할머니는 요란하게 해대는 나의 기침소리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셨나 보다. 콜록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