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 폐단이 많았으며, 특히 1376년 7월에는 대규모의 왜구가 부여를 침공하고 공주까지 함락시켰다.
왜구가 또 석성(石城)을 침공하고, 연산(連山)의 개태사(開泰寺)로 향했다. 이를 막기 위해 양광도의 원수(元帥) 박인계(朴仁桂)가 군사를 이끌고 나섰으나, 패배하여 전사했다.
이에 최영이 나서서 왜구의 토벌을 자청하고 출정하여 양광도 도순문사 최공철(崔公哲), 조전원수 강영(康永), 병마사 박수년(朴壽年) 등과 함께 급히 홍산으로 갔다.
먼저 도달한 곳은 3면이 모두 절벽이고 길 하나만이 통하는 곳이어서 모든 장수들이 겁을 먹고 나서지 못했는데, 최영이 선두에 서서 정예부대를 동원, 진격하여 왜적을 대파했다.
이 전투는 1380년에 이성계(李成桂)·변안렬(邊安烈)이 거둔 황산대첩(운봉 부근), 1383년에 정지(鄭地)가 거둔 관음포전투(군산과 서천 앞바다) 등과 함께, 고려 말기에 왜구를 크게 무찌른 대첩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최영은 철원부원군(鐵原府院君)으로 봉해졌으며, 다른 장군과 병사들도 등분에 따라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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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라때부터 번성해서인지 곳곳에 유적이 될 만한곳이 많이 있네요. 잘 살려서 만들어가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