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빙글 돌아내리는 아들의 발이 꽃처럼 예뻤다."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전율을 전해주는, 빙글빙글 꽃 같은 '감동의 동작'은 터키 콘야에서도 마주하게 된다. 콘야는 이슬람의 한 종파인 메비레비의 종교춤 '세마'의 근거지인 도시다.
이슬람의 신비로운 춤사위 '세마'
조명이 숙연해지고 웅장한 음악이 잦아들면 원통 모자를 쓴 무용수들의 춤사위는 시작된다. 오른팔을 하늘로, 왼팔을 땅으로 향한 채 세마 무용수인 세마젠들은 빙글빙글 팽이처럼 맴돈다. 이들이 쓰고 있는 원통형 모자는 묘비, 흰색치마는 장례용 덮개를 의미한다는데 속세에서의 해방을 뜻하는 춤은 완급의 미가 적절하게 뒤섞여 있다. 엄숙함을 중시하는 세마가 진행되는 동안은 소리를 내거나, 암전을 방해하는 빛을 만들어내서는 곤란하다. 이집트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화려한 수피댄스와도 분위기가 또 다르며, 군무에서 전해지는 감동 역시 이질적이다.
이슬람 종파의 신비로운 춤인 세마.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흰 꽃봉오리처럼 아름답다.
콘야에 가면 세마를 봐야하고, 많은 외지인들이 터키 중부의 외딴 도시를 찾는 이유에도 이 감동의 춤사위가 한 몫을 차지한다.
앙카라에서 240여km 남쪽에 위치한 콘야는 아나톨리아 지역을 대표하는 고도다. 기암괴석의 카파도키아에서 천연온천인 파묵칼레나 지중해로 향하는 길에 잠시 들리는 경유지이지만 그 역사와 사연은 빙글빙글 도는 춤사위만큼이나 아득하게 이동한다.
콘야는 이슬람의 한 종파인 메비레비 교단의 발상지이다. 11세기 이후 셀주크 왕조 시기에는 수도로도 번성해 예술, 학문이 꽃을 피웠으며 도심에서 만나는 유적들은 대부분 당시의 산물들이다.
셀주크 왕조시대의 섬세한 유적들
콘야에서 조우하는 유적들은 이스탄불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거대한 모스크가 언덕 곳곳에 웅크리고 있거나, 드높은 첨탑들이 거칠게 솟아있지도 않다. 아야소피아 등 이스탄불의 건축물들이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이 융합된 면이 강하다면 콘야의 것들은 오히려 담백한 이슬람 색이 완연하다. 터키의 대도시에서 봤던 민소매 청춘들의 빠른 활보보다는 히잡을 정갈하게 둘러쓴 여인네들의 느린 걸음이 어울린다. 그 여인들을 배경으로 투박한 돌무쉬 버스가 슬라이드처럼 천천히 거리를 가르는 정지된 느낌이다.
콘야에 발을 들이면 누구나 구도심을 가로지르는 메비라나 거리를 지나치게 된다. 콘야를 상징하는 대부분의 유적들은 이 거리 주변에 밀집돼 있다. 교단의 창시자인 제라르딘 레미를 의미하는 '메비라나'는 골목 이름으로, 또 박물관으로 도시 깊숙이 닿아 있다.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묵었던 숙소인 카리반 사라이 '술탄한'.
제라르딘 레미의 영묘가 안치된 메비라나 박물관은 이방인뿐 아니라 현지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명소다. 세마에서 봤던 원통형 모형이 올려진 관은 금실로 단장됐고, 교인들은 그 앞에서 머리를 한껏 조아린다. 무하마드의 수염이 간직돼 있다는 상자에 사람들이 연신 입맞춤을 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셀주크와 오스만 왕조시대의 공예품까지 보관돼 있어 박물관으로 불리지만 건물 옆에 솟은 세리미예 자미는 이곳이 본래 사원이었음을 강변한다.
메비라나 거리의 끝은 알라딘 언덕으로 연결된다. 아담한 규모의 구도심을 거슬러 오르면 휘퀴메트 광장과 바자르가 나타나고 현지인의 일상은 골목 곳곳에서 낱낱이 드러난다. 알라딘 언덕의 인제 미나레 박물관은 내부에 소장된 이슬람 조각 외에도 건물 외부의 섬세한 문양이 도드라진다. 인제 미나레의 장식은 셀주크 양식을 대표하는 예술작품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도심 외곽에서 만나는 낙타대상들의 숙소인 카리반 사라이 '술탄한'은 그 규모에서 콘야가 실크로드가 관통하는 주요 루트였음을 보여준다. 옛 사람들은 이 오랜 길을 오가며 지친 몸을 쉬게 하고, 머리 조아려 기도를 올렸다. 콘야의 세마 공연은 최근에는 연중 곳곳에서 펼쳐지지만 메비라나가 세상을 떠난 12월과 음악축제가 열리는 9월이 세마를 본격적으로 볼 수 있는 시기다. 축제가 열리더라도 다른 대도시와 달리 시내에서 술을 구하거나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가는 길=한국에서는 이스탄불을 경유하는게 일반적이다. 터키항공 등이 이스탄불~콘야 구간을 운항한다. 육로로 이동할 경우 카파도키아를 오가는 길에 들릴 수도 있다. 대부분의 레스토랑들은 휘퀴메트 광장 일대에 밀집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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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그 어떤 거대한 손이 있어 어느 한가로운 오후, 심심풀이로 진흙을 이겨 빚어놓았을까. 신이 펼쳐 놓은 캔버스 위에 인간의 손길로 마무리된 곳. 영화 스타워즈와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의 무대가 된 요정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
모든 말과 감탄사조차 사라지는 곳
지구에는 그런 곳이 있다. 그토록 무수한 소문을 듣고, 그토록 많은 사진을 보았다 해도 그 앞에 서면 생생한 충격으로 몸이 굳어버리는 곳. 자연이 만든 풍경 앞에서 인간의 언어 따위는 무기력하고 진부하기만 해 그 모든 말과 감탄사조차 사라지는 곳. 터키 중부의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그런 곳이다.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 앞에 서면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은 여럿이 함께 보다는 혼자 와야 하는 곳이고, 한낮의 태양보다는 늦은 오후의 사위어가는 햇살 속에 찾아야 하는 곳이다.
개구쟁이 스머프의 배경이 된 파샤바 계곡의 버섯바위.
카파도키아는 막막하리만치 너른 벌판에 솟아오른 기기묘묘한 기암괴석들이 혼을 사로잡는 곳이다.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길고 긴 시간 동안 자연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다. 수백만 년 전 에르시예스 산(Erciyes 3,916m)에서 격렬한 화산 폭발이 있은 후, 두꺼운 화산재가 쌓여 굳어갔다. 그 후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래와 용암이 쌓인 지층이 몇 차례의 지각변동을 거치며 비와 바람에 쓸려 풍화되어 갔다. 그렇게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응회암은 인간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굴을 팔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날카로운 돌만으로도 절벽을 뚫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훌륭한 요충지가 되어주었다. 이 바위촌의 첫 입주민들은 로마에서 박해를 피해 건너온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암벽과 바위 계곡 사이를 파고 깎고 다듬어 교회와 마구간이 딸린 집들과 납골소와 성채를 만들고, 지하도시까지 건설했다. 결국 카파도키아는 자연과 인간이 공들여 함께 만든 걸작품으로 남았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예부터 동양과 서양을 잇는 중요한 교역로였다. 하나의 제국이 일어설 때마다 카파도키아는 전쟁터로 변했다. 기원전 18세기에 히타이트인들이 정착한 이후,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차례로 이곳을 점령했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인들의 망명지가 되었던 이곳은 4세기부터 11세기까지 기독교가 번성했다.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의 암굴교회와 수도원들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위대한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을 동시에 누리는 일
카파도키아를 걷는 일은 장엄하고 위대한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을 동시에 누리는 일이다. 카파도키아의 걷기의 베이스캠프는 괴레메(Goreme). 카파도키아의 초현실적인 풍경의 중심지로 물결 치듯 늘어선 바위 계곡들과 암굴 교회들, 환상적인 전망대와 최고의 트레일을 갖춘 마을이다. 괴레메의 중심지에서 1km 남짓 떨어진 야외박물관(Open Air Museum)은 이름 그대로 노천의 모든 것들이 박물관이 되어버린 곳이다.
이미지 목록 우치사하르 주변의 풍경. 자연과 인간이 공들여 함께 만든 걸작품이다. | 로즈밸리로 트레킹 중인 여행자들. 가이드와 함께 하는 트레킹도 나쁘지 않다. |
바위를 깎아 만든 비잔틴 양식의 교회와 수도원 중 약 30여 개의 교회가 야외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이 교회들은 통풍과 채광을 위한 구멍, 입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장식이 없어 외부에서 볼 때는 인간의 거주 흔적을 찾기 어렵다. 내부로 들어서면 깎고 다듬은 공간 안에 프레스코 벽화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암굴 교회라는 특징 덕분에 프레스코화들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을 수 있었다. 이곳의 교회들은 저마다 독특한 애칭으로 불린다. '어두운 교회', '사과 교회', '뱀 교회', '샌들 교회', '버클 교회' 등 그 이름에 얽힌 유래를 찾아가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덤과 교회들을 둘러보며 걷다 보면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다시 마을의 중심지로 돌아와 북서쪽으로 난 아드난 멘데레스 거리를 따라가자. 한 시간 남짓 도로를 따라 걸으면 우치사르(Uchisar).
우치사하르의 성채에서 내려다보는 전경
멀리 우뚝 솟은 바위성이 이정표가 되어주기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바람에 실려 오는 살구꽃 향내를 맡으며 걸어가는 길, 노새를 끌고 밭을 가는 농부들이 보인다. 바위 성채로 유명한 우치사르는 성채의 꼭대기에서 360도 파노라마의 장관을 선사한다. 성채에 딸린 카페에서 차 한 잔을 시켜놓고 푸른 기운이 짙어가는 봄날의 들판을 바라보며 앉아있자.
카파도키아 트레킹의 백미는 로즈밸리다. 로즈밸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가이드와 함께 하는 트레킹도 나쁘지 않다. 숙소의 여행자들과 삼삼오오 짝을 이뤄 걷는 길, 배꽃과 살구꽃, 아몬드꽃이 다투듯 내뿜는 향기 속에 조붓한 흙길 너머로는 들꽃들이 노랗게 피어났다. 동굴 교회나 가옥을 둘러보기도 하고, 전망 좋은 바위의 작은 찻집에서 뜨거운 애플티 한 잔을 마시며 쉬기도 하며 느리게 걷는 길. 장미의 계곡(Rose Valley)을 붉게 피워내며 스러지는 저녁 노을은 카파도키아가 선물하는 최고의 비경이다.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인 풍경들
괴레메 주변은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가득하다. 흰 계곡, 장미의 계곡, 비둘기 계곡, 긴 계곡, 칼의 계곡, 붉은 계곡, 사랑의 계곡 등등. 그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인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 햇살 따스한 봄날 이곳에 들러 이 계곡에서 저 계곡으로 유랑을 즐기다보면 깨닫게 되리라. 아름다운 것들을 너무 일찍 보아버린 사람들에게는 길고 독한 그리움만이 남겨질 뿐이라는 것을.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로즈밸리.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카파도키아만의 풍경이다.
코스 소개
수도 앙카라에서 300km 남쪽에 위치한 카파도키아는 아나톨리아 고원의 중부에 자리 잡고 있다. 네브세히르와 카이세리 사이에 위치한 광활한 기암지대를 부르는 이름이다.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들 사이로 지하도시와 암굴 교회 등이 빼곡히 들어찬 세계유산 지역이다. 괴레메를 베이스 캠프로 삼으면 주변의 우치사르, 아바노스 등 주변을 둘러보기 편하다. 지역이 방대하기 때문에 일일투어와 자유여행을 혼합하는 것도 괜찮다. 그린 투어, 레드 투어, 짚 투어, 벌룬 투어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그린 투어’를 선택하면 카파도키아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전망대부터 시작해 데린쿠유 지하도시, 우흐랄라 계곡 트레킹, 셀리메 바위 수도원, 파샤바의 버섯 바위, 비둘기계곡 등을 거치게 된다.
찾아가는 법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까지는 버스로 1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보통 저녁에 출발해 아침에 도착하는 야간버스를 이용한다.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에는 이스탄불에서 카이세리나 네브세히르로 이동하면 된다. 카파도키아의 거점도시 네브세히르(Nevsehir)의 버스터미널에서 우치사르나 괴레메, 아바노스 등으로 이동할 수 있다.
여행하기 좋은 때
카파도키아는 일 년 내내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트레킹을 즐길 예정이라면 무더운 여름은 가급적 피하자. 계곡으로 향하는 길은 그늘이 없는 경우가 많아 지치기 쉽다.
여행 Tip
카파도키아를 둘러보는 방법은 도보, 자전거, 말, 스쿠터, 버스, 열기구 등 다양하다. 그중 열기구 투어는 카파도키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되며 착륙 후 샴페인 세례와 함께 수료증이 주어진다. 이용 요금은 비싸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다. 카파도키아에는 동굴집을 개조해 만든 동굴 호텔들이 많다. 저렴한 배낭족 숙소부터 4성급 이상의 고급호텔까지 다양한 동굴호텔이 있으니 머물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