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그토록 자신의 신체를 아끼지만 신체가 생명을 위협하면 폐도 필요 없고 눈도 필요 없습니다. 목숨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이 그토록 원하는 ‘목숨’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육체 바깥에 진짜 생명이 있고, 그 진짜 생명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도(道)입니다. (40쪽)
복덕의 자량(資糧)을 쌓지도 않고 충분한 지혜도 없이, 되고 싶다고 해서 단번에 성불할 수 있다면 하늘 아래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두 팔은 복덕과 지혜를 나타냅니다....
더보기 사람은 그토록 자신의 신체를 아끼지만 신체가 생명을 위협하면 폐도 필요 없고 눈도 필요 없습니다. 목숨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이 그토록 원하는 ‘목숨’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육체 바깥에 진짜 생명이 있고, 그 진짜 생명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도(道)입니다. (40쪽)
복덕의 자량(資糧)을 쌓지도 않고 충분한 지혜도 없이, 되고 싶다고 해서 단번에 성불할 수 있다면 하늘 아래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두 팔은 복덕과 지혜를 나타냅니다. 성취한 후에도 그것을 버리고 부처님을 공양해야 비로소 불도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41쪽)
그저 외울 줄만 알고 머리로 생각하지 않으며 부처님의 이름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불법은 결코 여러분이 사고(思考)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여러분에게 올바로 사유하고 수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미신입니다. 불법은 절대 미신이 아닙니다. 어째서 미신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어떠한 법문의 수지라 할지라도 ‘문(聞), 사(思), 수(修)’를 통해 깨달음을 얻기 때문입니다. (94쪽)
무릇 진정으로 명심견성(明心見性)하고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증득하기 이전의 모든 수행, 모든 이치, 모든 행위는 엄격히 말하면 가행(加行)일 뿐이고 여전히 외도의 경계 가운데 있습니다. 진정으로 깨달음을 증득하고 명심견성한 이후라야 비로소 모든 마경(魔境)에서 벗어나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약사불의 이 대원을 통해 우리는 수지(修持)의 길을 철저하고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18쪽)
이 세계의 중생은 무엇이 진정한 보시인지 알지 못합니다. 또 보시의 과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돈을 내면 공덕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보답을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버리는 것이 있어야 얻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런 심리 상태는 보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장사가 아닙니까! (146쪽)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심리 상태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권면하는 문장이라도 되는 양 여기지 마십시오. 불경은 모든 중생의 심리 상황이 바로 이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약사경』의 비밀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몸의 병은 심리로부터 서서히 형성된 것이라고요. (163쪽)
여러분은 항상 입에 “외도, 외도”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데, 외도(外道)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다른 종교 혹은 사마왜도(邪魔歪道)가 결코 아닙니다. 바깥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무릇 마음 밖에서 법을 구하는 것이 모두 외도입니다. 학문이 있고 사상이 있고 말을 잘 해서 하는 말마다 이치에 맞더라도 그 사람에게 심신으로 증명하라고 하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상과 생각이 고요해지지 못하고 하나가 되지 못해 정(定)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91쪽)
저는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많이 말하려 하지 말고 듣는 데 주의하세요.” 그렇게 말해도 여전히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별 상관도 없는 말은 잘도 들으면서 말이지요. 두 번 세 번 말하고 난 다음에는 저도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업력이 너무 무겁기 때문입니다. 몇 바퀴를 굴러서 업력이 다 소멸되면 그때 가서 다시 말해야겠지요. (...) 가서 고통을 받지 않으면, 좌절을 겪지 않으면 업장의 소멸이 더딥니다. (196쪽)
한 사람이 입세(入世)가 됐든 출세(出世)가 됐든 자신의 일생에서 성취를 거두고 못 거두고는, 그 사람이 “오래도록 평생의 다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을 실행할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실행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환경이 바뀌면 자기 자신도 곧 변하기 때문입니다. (214쪽)
수행은 이런 행위들에 공을 들여서 심리적 행위가 외면적 행위로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하고 공이 있어야 덕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공덕을 성취하지도 못하고서 수도하고 정좌 수련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십니까? (215쪽)
공덕은 행에서 오는 것이지 정좌 수련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좌 수련이라는 것이 원래 향수(享受)가 아닙니까!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고 만사를 상관하지 않으니 천지간에 어떤 것이 이보다 더한 향수이겠습니까? 그것은 절대적인 이기(利己)입니다. 그렇다면 정좌 수련은 필요가 없습니까? 필요합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생각의 움직임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비워 버리거나 생각을 억제하거나 혹은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는 훈련을 합니다. (216쪽)
닫기
첫댓글 감사합니다_()_
드디어 출판되었군요.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