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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井邑] - 자연친화적 생태 녹색도시
전라북도 정읍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시이다. 호남 서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동쪽은 임실군과 완주군, 서쪽은 부안군과 고창군, 남쪽은 순창군과 전남 장성군, 북쪽은 김제시에 접하고 있다
정읍 문화관광 http://culture.jeongeup.go.kr/
국립공원 기행 내장산 국립공원의 가을 (내장사, 백암산, 약사암, 쌍계루, 백양사)
http://tv.knps.or.kr/vod/vod_sub_t.aspx?muCode=15&vIdx=1267&Page=3
내장사[內藏寺]
내장산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360416
동학농민혁명기념관(제3경)
http://www.donghak.go.kr/main.asp
백정기 의사 기념관(정읍9경)
정읍9경
내장산
옥정호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정읍사공원
정읍천
김동수가옥
전봉준공원
백정기의사기념관
충렬사
구절초 태마 공원(구절초 축제)
내장사[內藏寺] http://www.naejangsa.org/
1958년에는 대웅전을 중건(重建)하여 면모를 일신하였고, 1974년 국립공원 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일주문, 명부전, 정혜루를 복원하고 사천왕문이 신축되었다.
조선조 성종때 석학 성임(1421-1484)은 정혜루기에서 영은사는 고려말엽 지엄선사의 개산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한 뒤, 정혜루는 당시 영은사의 문루로 1467년(세조12년)에 시작하여 다음해 준공된 3간으로 그 규모나 형태가 장엄무비하다고 전하고 있다.
최근 내장사는 향적원과 정혜원, 요사등을 신축하고 1994년 10월에는 사리탑을 건립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원래 내장산에는 명찰 영은사가 있었으니 영은사는 지금의 부도전 위치에 있었다. 내장사 입구 단풍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선정
내장산(정읍9경)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매화와 산벚꽃이 다투어 피고, 여름이면 숲이 깊고 골짜기의 물이 서늘하며, 가을 단풍은 전국에서 으뜸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겨울 설경 또한 뛰어나다.
<내장산단풍부부사랑축제>
내장산 조각공원(彫刻公園) 천혜의 자연환경과 단풍으로 유명한 국립공원 내장산 서래봉 자락아래 내장호수와 잘 어우러진 자리에 국내 4대 미술전(대한민국미술전, 동아 미술전, 중안미술전, 서울미술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16명의 중견작가의 조각작품을 담아내어 수준높은 작품을 볼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정읍9경) http://www.donghak.go.kr/main.asp
동학혁명 모의탑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입구 왼쪽 언덕에 사발통문 거사계획 참여자 후손들이 1969년에 건립하였다.
말목장터와 감나무 이평면 두지리
조선시대인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군(古阜郡)에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당시 배들평 농민 수천 명이 고부로 가기 전에 모였던 곳으로 이곳에는 큰 감나무가 한 그루 있다.
녹두장군(綠豆將軍) 전봉준(全琫準:1854∼1895)은 이 감나무 아래에서 말목장터에 모여든 농민들에게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농민들에게 무리한 수세(水稅) 징수와 만석보(萬石洑) 축조로 농민들을 강제 동원하는 등의 탐학과 농민 수탈의 실정을 알리고 농민봉기의 필요성을 설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곳의 감나무는 높이 21m, 둘레 1.8m이고, 수령(樹齡)은 180년 정도로 추정된다.
만석보 유지비 이평면 하승리
예동마을 뿐만 아니라 보를 쌓은 첫해에는 수세를 징수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수세를 강제로 징수하자 농민은 봉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만석보는 조병갑 학정(虐政)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명농민군 위령탑 신중리 주산마을 대뫼녹두회관 앞
고려시대 지방 유림의 공의로 최치원(崔致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생사당(生祠堂:생존해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을 창건하여 태산사(泰山祠)라 하였다. 고려 말에 쇠약해졌다가 1483년(성종 14) 정극인(丁克仁)이 세운 향학당(鄕學堂)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었다.
무성서원[武城書院]
백정기 의사 기념관(정읍9경) http://gupa.jeongeup.go.kr/
구파 백정기의사가 서거한지 62년 후인 1996부터 성역화사업이 시작되어 2004년 6월5일 70주년을 맞아 기념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기념관에는 백정기의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의열사, 백정기의사의 유출 밑 활동상을 전시ㆍ설명하는 구파기념관, 역사의 산교육장인 청의당 강당, 백정기의사의 민족의식과 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고귀한 뜻을 새기기 위한 의열문, 백정기의사의 애국정신과 독립정산을 기리기 위한 승의문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독립정산을 기리기 위한 숭의문과 백정기의사를 형상화 한 동상, 어록비, 순국비,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샘골다리
전봉준 고택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인물이자 지도자였던 전봉준 장군은 1855년 12월 3일 이곳 고창읍 죽림리 63번지(당촌마을)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전창혁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무렵까지 살았다 한다.
당시엔 서당, 안채, 사랑채 등이 있었으나 동학농민혁명 기간 중 모두 소실되었다.
그는 오척단신의 작은 체구 때문에 녹두라는 별명을 얻어 일명 녹두장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1892년 고부군수 조병갑이 만석보(저수지) 축조 이유로 농민들의 금전과 곡식을 강탈하자, 농민대표와 함께 바른 정치를 해주도록 호소하였으나 거부당하여 1894년 1월 농민과 동학교도들을 이끌고 부패한 관리를 잡아 가두었다.
전봉준 장군 생활 전시장 생가터 맞은편 건물은 개인이 관리하고 있는 전봉준과 동학에 관련된 각종자료를 모아놓은 전시장이 있었다.
전봉준공원(정읍9경)
부탑은 문경석으로 직경이 85㎝이고 높이가 1,100㎝인 원기둥이 네 개로 이는 4민 평등 수평사회를 상징한다.
산외 콩테마공원 산외면 정량리 민하마을
원촌문화마을 칠보면·태인면 무성리
칠보면은 일찍부터 유교문화가 흥성했던 곳으로서 칠보면(七寶面)이란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지역에 있는 칠보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이후, 지역의 7가지 보물을 의미하는 말로 그 의미가 변형되었다. 원촌마을은 무성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 마을 명칭의 유래는‘서원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부터 ‘원촌’이 되었다고 합니다.
정읍 태인면 부부 느티나무
정읍사(井邑詞) 공원(정읍9경)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다가 악학궤범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정읍사는 고려 및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나례(儺禮) 뒤에 무고(舞鼓)와 더불어 연주하였다. 1985년 정읍시에서 시기동 아양산 동쪽 기슭 33천㎡의 공원을 조성하였고, 1986년 12월 望夫像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망부상 앞면엔 검은 돌을 박아 그 위에 井邑詞 全文을 세로글씨로 새겼다. 망부상 全身은 2.5m다. 또한 백제여인의 정과 의를 기리며 백제문화를 선양하기 위하여 1990년에 제1회 정읍사문화제를 열었으며, 매년 한 번씩 부부사랑축제가 열리고 있다.<정읍사문화제>
충렬사(정읍9경)
이순신 장군의 유덕을 추모하여 각계의 성금을 모아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영정을 봉안하여 충렬사라 이름짓고 충무공원을 조성하여 주민들의 충효정신을 새기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태산선비문화사료관[泰山-文化史料館]
이 지역에는 최치원, 정극인, 신잠 등을 향사하는 무성서원(武城書院)을 비롯한 서원과 송산사, 시산사 등의 사당이 현존하며,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있을 때 들렀다는 피향정(披香亭)을 비롯한 수많은 누정이 산재되어 있다. 보물 제1181호로 지정된 ‘태인 고현동 향약’의 고장이자, 조선시대 최초의 가사 작품으로 불우헌 정극인이 지은 상춘곡(賞春曲)의 산실이기도 하다. 또 예로부터 고현팔경(古縣八景)이라 하여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피향정은 호남 제일의 정자이다. 원래 이 정자의 앞뒤로 상·하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승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하연지만 남아 있다. 신라 시대에 최치원 선생이 태산 군수로 재임중에 이곳 연지가를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정자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정자는 조선 시대 중기의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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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가옥(정읍9경) 흔히 아흔 아홉 칸 집이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상류층의 가옥으로 원형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 이 고가는 김동수의 6대조 김명관(1755~1822년)이 조선 정조 8년(1784)에 지은 집으로서 앞에는 동진강의 상류가 서남으로 흐르고 있고, 뒷편에는 해발 150여m의 창하산 (蒼霞山)이 둘러 있어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전에 세운 주택이다.
고부관아터 고부는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된 고부봉기의 중심지이었자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9개 면을 관장하는 군에서 일개 면 소재지로 몰락하였다. 고부관아는 동학농민혁명의 본 고장이면서도 가장 철저하게 파괴되어 버린 고부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류마을/오수마을
신평면 호암리 두류마을에는 ‘호랑이바위’가 있다. 웃는 모습의 호랑이바위는 마을 사람의 안내를 받아야 할 정도로 찾기 어렵다. 또한 태조 이성계가 기도 끝에 용이 몸을 씻어주는 꿈을 꾸고 ‘삼청동’이란 글을 남긴 상이암도 있고 주인이 불에 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몸을 적혀 불을 끄고 죽었다는 개의 전설이 있는 오수마을도 있다. 또한 최근 체험농장으로 인기를 끄는 ‘치즈마을’도 있고 정읍 산외마을에선 한우를 직거래로 맛볼 수 있다.
사발통문 작성지 신중리 주산마을 (임두영 家) 1892년 4월에 고부군수로 부임했던 조병갑이 온갖 수탈과 학정을 자행하자에 전봉준 등 20명은 1893년 11월 당시 송두호의 집에 모여 고부성을 부수고 조병갑을 죽이며,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하며, 군수에게 아부하여 백성에게 탐학한 벼슬아치를 징치하며, 전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올라갈 것 등을 결의하였다. 이 사발통문은 동학농민군이 처음으로 조직적 봉기를 계획하고 행동목표를 밝힌 문서라는 의미를 갖는다.
상춘곡[賞春曲] 조선시대에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전라북도 태인(泰仁)에 은거한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이 만년인 성종 연간에 그 곳의 봄경치를 읊은 가사이다.
옥정호[玉井湖 정읍9경]
보는 이를 압도하는 다른 인공 호수와는 달리 완만한 구릉을 따라 마을이 앉아 있고 포근한 느낌의 숲이 호수를 감싸고 있다. 아름다운 옥정호를 바라보는 포인트 중 유명한 곳은 두 군데로, 하나는 옥정호를 가로지르는 운암대교인데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교각이 마치 천상의 다리처럼 보이며, 또 다른 하나는 국사봉 전망대로 물안개 낀 호수 전체를 조망하는 곳이다. 옥정호를 따라 순환도로를 달리는 것도 멋진 코스인데, 이 길은 건설교통부에서 선정한 전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봉준(全琫準)
조선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로 1855(철종6)에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했다. 자는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 본관은 천안, 별명은 녹두장군(綠豆將軍)으로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의 별명이 생겼다.
아버지가 조병갑 학정에 저항하다가 죽음을 당하자, 사회개혁의 뜻을 품고 1890년(고종27) 무렵 동학에 입교, 고부접주(古阜接主)가 되었다.
1892년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탐학(貪虐)을 일삼자 이에 그는 동지 20명을 규합하여 사발통문(沙鉢通文)을 작성하고 이듬해인 1894년 정월 10일 1천명의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였다.(고부봉기) 정부에서는 조병갑을 처벌하고 이용태(李容泰)를 안핵사(按핵使)로 보내어 선처를 확약하였으나, 이용태가 이를 지키지 않자 전봉준은 1894년 3월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이어 전주(全州)를 점령하였다.
한편 청·일의 개입으로 운명이 위태로워지자 폐정개혁 12개안을 정부에 제의, 정부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전주화약으로 휴전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뒤이어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이 점차 한국에 대한 침략의도를 드러내자 11월 중순에 항일구국의 기치 아래 동학농민군은 전라북도 삼례에서 재봉기하여 (11월 재봉기) 손병희(孫秉熙) 휘하의 농민군과 함께 일본군 및 정부군과 공주 우금치(牛金峙) 전투에서 대패한 뒤 진압되었다.
이에 그는 순창(淳昌) 피노리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이듬해 3월 사형에 처해졌다. 이 때 그의 나이 41세였다.
정순왕후 태생지 칠보면 시산리 동편마을
이곳은 조선 제 6대 왕 단종 비(妃)인 정순왕후가 탄생한 곳으로 이를 기리기 위하여 1988년에 유지비를 세웠다. 정순왕후는 세종22년에 여량부원권 송현수의 딸로 탄생하여 단종 2년 1월에 왕비에 책봉되었는데, 정순왕후의 능은 사능(思陵)이라 하여 경기도 남양주군 진건면 사능리 65-1에 있으며, 사적 제209호 이다.
2002년 4월 준공된 죽림폭포공원(竹林 瀑布公園)은 전체 면적 4,864㎡에 샘골정과, 수직고 17m에 이르는 인공폭포, 망상문, 물레방아, 산책로, 청소년 공연마당, 각종 편의서설 및 조경시설에 355백만 원을 투입하여 조성되었으며, 계절별로 란나규러스, 팬지, 메리골드, 페츄니아, 꽃양배추 등을 식재함으로써 시의 또 다른 명소로써 인기를 모으고 있음
죽력고(竹瀝膏)
최남선도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의 감홍로, 전주의 이강고와 함께 죽력고를 조선의 3대 명주로 꼽고 있다. 전봉준이 전북 순창 쌍치에서 일본군에 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서울로 압송될 때 죽력고를 먹고 기운을 차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서 양조장을 경영하는 전통술 담그기 무형문화재인 송명섭씨가 죽력고 내리는 법을 어머니 은계정(1917∼88)씨에게서 배워 재현했다.
태인 고현동 향약[泰仁古縣洞鄕約](보물 제1181호)
정읍 고현향약회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필사본, 29책이다. 향약은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으로, 이 문헌은 조선 선조 때부터 1977년까지 약 400년 동안 전라도 태인현(泰仁縣) 고현동에서 결성하고 시행한 향약에 대한 자료이다.
황토현 전투 황토현은 해발 35m의 낮은 구릉으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승산과 사시봉이 솟아있다. 동학농민군이 백산에서 군대를 확대개편한 뒤, 전주성을 향하여 태인, 금구방향으로 진격하자 전라감영에서는 군사를 보냈다. 농민군과 전주 감영군은 4월 6일 밤 황토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감영군은 무수한 사상자를 내고 패주했다. 이것은 농민군이 관군과 접전을 벌여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
황토현동학축제 1894년 농민을 위해 봉기한 전봉준(全琫準)의 동학농민운동을 기리기 위한 기념제전으로, 전봉준의 넋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각종 행사를 벌인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최초의 농민군 전승지인 정읍 황토현전적지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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