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서평 – 질문이 나를 구원한다.』
이진호
"이거 뭐야?"조카의 키가 커지면서 궁금한게 많아지나보다. 할머니 집에 놀러올 때마다. 조카는 이것 저것 손에 들고 할머니와 삼촌에게 질문한다. 조카의 질문을 보면 여태 그 누구도 묻지 않았던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묻는다. 삼촌인 나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살짝 당황하지만 그래도 짧은 지식으로 차근차근 말해준다. 알아듣긴 하는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응응!" 대답한다. 잠이들기 전 조카의 질문이 다시 내 머리 속을 헤집는다. "나는 정말 알고 있을까? 내가 말한 것이 맞을까?, 조카가 알아듣게 말은 했을까?'로 시작해 여러가지 질문들이 연이어 머리 속을 헤집는다.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날이 밝는다. 속으로 외친다. "아 망했네"
이 책은 신앙생활 하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하지만 한국 교회 내에서 자칫 '믿음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쉬운 불온한 10가지 질문들을 서스럼 없이 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성경을 기준으로 교회사적 전통과 학자를 인용하며 질문자가 합리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답변한다. 이 책이 갖고 있는 특징은 책 저변에 흐르는 질문자와 답변자의 태도다. 질문자와 답변자로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담 이면에는 깊은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질문자에 대한 존중, 진지한 경청, 입장에 대한 이해와 명쾌하지만 동시에 겸손한 답변, 질문자에 대한 포용과 넉넉함이 책 저변에 흐르고 있다. 그렇기에 기독교 변증을 다루지만 딱딱하지 않고 따뜻함이 느껴진다.
책에 대한 아쉬운 점으로 질문자와 답변자 모두 전제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 서있다는 점이었다. 전제가 동일하다보니 기독교를 변증하는 요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전제가 다른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화였다면 좀 더 변증적이지 않을까? 깊은 심연을 갖고 있는 신앙에 대한 전제가 동일하다보니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 또한 신앙의 특수성이 담보되다 보니, 변증적인 요소가 약해지는 것 같다.
평상시 변증학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찾아 본 경험이 있다. 그 동안 경험했던 기독교 변증의 모습은 대부분 배타적이거나 꼰대적인 모습이었다. 이를 보며 상당한 실망감을 가졌던 필자는 이 책을 통해 기독교 변증에 있어 제일 중요한 건 관계적 요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대방이 갖고 있는 생각과 질문에 대한 진지한 경청, 배타적이거나 꼰대적인 모습이 아닌 사랑과 관용으로 포용의 모습을 보여주는 넉넉함이 기독교에 대한 효과적 변증의 자세임을 보게 되었다. 곤란할 수 있는 질문이고, 언성이 높아질 수 있는 질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사랑이 있는 질문과 답변이기 때문에 변증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책을 읽고나니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베뢰아 사람들이 떠올랐다. 진리를 향한 삶의 진지한 태도를 가진 그들의 비평적이며 구도자적인 모습이 왜 문득 떠올랐을까? 신앙을 가지면서 믿음이란 말로 가려진 무지함을 날로 확인한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가 쓰는 언어에 익숙하지만 정작 그 뜻을 모르고 있었고, 나만의 언어로 혹은 다른 언어로 바꿔 말하지 못하는 무지함이 나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질문들로 괴로워하고 있었던 내가, 하지만 누구에게 질문하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 비유를 진주를 찾는 상인으로 비유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찾는 자야 말로 하나님 나라를 침노하는 자들이며, 예수의 제자 된 자라 말한다. 알 수 없음 가운데 알아가는 그 역설의 자리 가운데 함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는 은혜 안에 구도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공동체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아빠, 이거 뭐야?“
첫댓글 책에 대한 아쉬운 점으로 질문자와 답변자 모두 전제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 서있다는 점이었다
같은 생각을 하셨네요 서평내용 잘 읽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가지 질문과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