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 조용헌 지음
팔자를 바꾸는 비방은 있는 것인가? 있기는 있다.
첫째 방법은 적선積善을 많이 하는 일이다.
둘째는 눈 밝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셋째는 명상이다.
넷째는 명당에 음택陰宅(묘터)이나 양택陽宅(집터)을 잡는 일이다.
다섯째는 독서다. (15)
요가에서는 인간 내면의 원초적 생명 에너지를 쿤달리니 kundalini라고 부르는데, 이 쿤달리니가 인체의 아랫배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뱀의 형상으로 표현한다. (22)
인체 내부에는 7단계의 에너지 터미널이 있는데, 이 에너지 터미널을 ‘차크라’라고 부른다. (22)
이렇게 놓고 보면 성性과 성聖은 동전의 양면이다.
섹스에너지를 잘만 쓰면 성자가 된다.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뱀에서 끝날 수도 있고
용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 (23)
155마일 철책선은 단순한 철조망이 아니다. 깊게 보면,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의 다국적 원혼들이 천도薦度 받지 못하고 떠도는 비극의 라인이자, 4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최강의 태극라인이다. (27)
해발 700미터의 금산錦山 정상에 자리 잡은 보리암에는 ‘간성각看星閣’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다. 간성각은 노인성을 의식하고 세운 건물이다. 경남 하동과 남해 일대의 사람들은 노인성을 보러 다니기 위한 별도의 계를 조직할 정도로 노인성을 신봉했다. (43)
우리나라 최대의 황태 생산지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다. 용대리는 전국 황태의 70퍼센트를 생산한다. (44)
월전은 어떻게 해서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는가? 자신의 90평생을 돌아본 회고록 『화단 풍상 70년』에서 할머니의 묏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밝혀놓은 대목이 필자의 눈에 띄었다. (54)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를 보면, 달은 이데아를 상징한다. 붕朋이란 달이 나란히 서 있는 친구를 뜻한다. 추구하는 이상이 같다는 말이다. (59)
현재 서울시와 도쿄시는 같다. 시차가 없다는 말이다. 원래 도쿄와 서울은 30분 차이가 나야 맞는다. 도쿄가 9시가 되었을 때, 서울은 아침 8시 30분이 된다. 그러나 광복 이후 격변기를 거치면서 서울시를 도쿄시에 맞추어 버렸다. 도쿄가 9시면 서울도 덩달아 9시가 되어 버렸다. 이후에도 이 30분의 시차는 수정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60)
비록 같은 길일지라도 어제의 길과 오늘의 길이 서로 다르고, 맑은 날과 흐린 날의 길이 다르고, 같이 걷는 사람에 따라 길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요는 걸으면서 쉬라는 말이다. (65)
인간은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 보아야 자유를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풍류風流의 본질이다.
신라 화랑도의 정신을 풍류도風流道라고 부른 이유도 명산대천을 유람하면서 바람이 지니는 자유의 정신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67)
어떤 사람이 고수인가. 컴퓨터와 불도저를 겸비한 사람이 고수인 것 같다. 컴퓨터와 같은 머리를 가진 사람들은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이 없고,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이 있는 사람은 컴퓨터와 같은 정교함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한 ‘컴불양용’ 스타일의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빈손으로 가지는 않는다. 대부분 뭔가를 성취해 놓고 간다. (72)
CEO들의 건강법 중 하나가 ‘오후불식午後不食’이다. ‘저녁에 음식을 먹지 않는 방법’을 말한다. 저녁을 과식하는 일처럼 건강에 해로운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위장을 비워 놓으면 잠도 숙면이 되고, 정신도 상쾌해진다고 한다. (72)
“사찰의 고승들은 별로 운동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는가 하고 살펴보니까 그 비결이 바로 오후불식에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대답이다. (73)
과거에는 배고픔의 설움이었지만 이제는 과식에서 오는 배부름으로 고통 받는 세월이 되었다. (73)
조선왕조 옥새의 시작은 정도전의 주장에 의해서였다. 이때부터 옥새를 제조하는 비방을 적어 놓은 “영새榮璽부”라고 하는 장부가 전해져 왔는데 중간에 오면서 옥새를 위조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나라에서 특별히 지정하는 옥새전각장 1인에게만 그 내용을 비전으로 전하게 했다. 그 영새부를 이어받은 마지막 옥새전각장이 『옥새』라는 책을 펴낸 민홍규다. (74)
비빔밥에는 음양오행 사상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79)
차를 유난히 좋아했던 다산 적양용 선생은 “술을 좋아하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좋아하는 민족은 흥한다”고 말씀하셨다. 술보다는 차를 권하셨다. (81)
상대방의 심리상태를 정확히 읽어내는 특기가 있는 것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때에도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고른다. 자기중심이 아니면서 사고가 유연하다. 사고가 유연하다보니 인간관계가 좋고 기발한 아이디어도 많다. 인덕과 아이디어의 결함은 결국 돈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83)
살롱이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 살면서 문학을 이야기하고, 역사를 더듬어 보고, 철학을 토론할 수 있는 곳. 사람 사는 재미중의 하나가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 아니던가. 룸살롱이 아닌 진짜 살롱이 어디 없는가. 그동안 필자가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곳은 3군데. (84)
강원도에 있는 소설가인 이외수의 집이다. (84)
충청도에는 제천시 백운면 박달재 고개 너머에 판화가인 이철수의 집이 있다. (84)
전라도에는 나주시 금천면에 있는 화가 박태후의 집. (85)
대산大山 신용호(1917-2003). 그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지만 교보생명, 교보문고를 창업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86)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바위에는 이 광물질은 통해서 흘러온 자력 기운이 넘쳐흐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바위에서 장시간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이 자력이 인체 내로 전달된다. (88)
동서양은 막론하고 세계의 모든 영지靈地는 바위산들이다. (89)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영월 신씨의 외손 가운데 한 사람이 2003년에 그 불씨를 화로에다 되살려서 보관 중이다. 그 화로가 요즘 종로 일대에서 유묘여한 ‘신씨화로’라고 하는 음식점이다. (91)
얼마 전에 종로구 필운동에서 재개업한 한정식 집 ‘장원將園’은 역대 거물급 인사들이 즐겨 찾았던 살롱급의 음식점이었다. 1958년 처음 개업한 이래 숱한 명사들의 음식수발을 들었던 창업주 주정순(84)씨는 유명 인사들의 식사습관을 기억하고 있었다. (92)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곡조를 머금고 있고, 매화는 일생 동안 추운 데서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93)
장수촌 가운데 하나인 구례에는 매우 유명한 샘물이 있다. 마산면 사도리沙圖里 상사上沙 마을에 있는 ‘당몰샘’이 그것이다. 옛날부터 물이 좋기로 소문난 샘물이다. (98)
『우주변화의 원리』. 1966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해방 이후 한글로 저술된 책 가운데 한문 원전原典과 대등한 권위를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대학의 한의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거의 필독서로 꼽히는 책이기고 하다. (102)
저자인 한동석(1911-1968)은 함경도 출신 한의사였는데, 인사동 골목을 미친 사람처럼 매일 왔다 갔다 하면서 『황네재경』「운기편運氣篇」을 무려 1만 번이나 반복해서 외웠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한 경지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102)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상징한다. 물이 보여야 부자 터로 여긴다. (104)
풍수에서는 집터 앞을 흘러가는 물의 형태도 관찰한다. 활처럼 감싸 안으면서 흘러가거나, 또는 S자로 휘어서 나가거나, 밖에서 집터를 향해 흘러 들어와 감아 나가는 모습을 좋게 본다. 반면에 집터 앞에서 일직선으로 나가는 모습이거나, 반궁수反弓水의 형태, 또는 물살이 급하게 흘러가는 경우를 좋지 않게 본다. S자로 흘러가면 안의 물과 밖의 물이 서로 섞이면서 산소 함유량이 풍부해진다. 일직선으로 가면 섞이지 않는다. (105)
그렇다면 주화입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필자가 효과를 본 비방을 소개하면 이렇다. 첫째는 등산이다. 1주일에 한번 이상, 한 번에 최소한 3시간 이상은 걸어야지 상기가 내려간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둘째는 산책이다. 매일 하는 것이 좋다.
셋째는 차를 마시는 방법이다. 질이 좋은 작설차나 발효차를 매일 30분 이상 마시면 효과 있다.
넷째는 목욕탕에 가서 머리에 찬물을 맞는 방법이다.
다섯째 요가의 아사나 가운데 쟁기자세 Halasana를 하루에 10분씩 한다. 누운 상태에서 두 다리를 일직선으로 들어 올려 머리 뒤로 넘기는 자세이다. 두 다리가 방바닥에 닿도록 넘겨야 한다. (108-109)
전주 교동에 가면 한옥마을이 있다. (110)
한옥마을에서 유명한 살롱이 교동다원校洞茶院이라고 하는 찻집이다. (110)
명리학에서는 형제를 가리키는 전문용어가 따로 있다. (112))
‘비견比肩’과 ‘겁재劫財’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비견은 ‘어깨를 나란히 하다’이고, 겁재는 ‘재물을 겁탈한다’로 풀이한다. (112)
하 교수가 펴낸 『우리 삽살개』에는 삽살개의 멸종 위기에서부터 보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밝혀져 있다. (116)
이 책에 보면 ‘삽살개’는 원래 ‘액운을 쫓는 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삽은 ‘퍼낸다’ , ‘없앤다’ 라는 의미이고, 살煞은 ‘삿된 기운’을 뜻한다. 따라서 ‘삽살’이란 삿된 기운, 즉 액운을 물리치는 개라는 뜻이 된다. (116)
‘애’는 홍어의 내장을 가리킨다. 된장을 풀어 애를 넣고 끓이는 ‘홍어애탕’은 맛이 독특하다. 술꾼들이 이 홍어애탕을 한번 맛보면 그 맛을 결코 잊지 못한다고 한다. 재료는 된장, 미나리, 고춧가루, 파를 사용한다. 순천에서 홍어애탕으로 유명한 식당이 ‘대원식당’이다. (118)
북한산을 거의 빨치산 수준으로 올라 다니는 전문 산꾼들 사이에서는 ‘불수사도북’이라는 자기들R리의 전문용어가 통용된다. 하루 동안에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완주하는 코스를 말한다. ‘불수사도북’은 지도상 거리로는 45킬로미터지만, 실제 도보로 가면 60킬로미터 거리에 해당한다. 이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하는 것이다. (121)
근래 한국의 3대 예언자를 꼽는다면 두암斗唵 한동석(1911-1968), 탄허(1913-1983)스님, 제산霽山 박제현(1935-2000)이다. 세 사람은 각각 흥미로운 예언을 남겼다. 탄허는 ‘앞으로 일본 열도는 물속으로 가라앉는다’는 예언을 남긴 바 있다. (123)
일식집에서 회를 먹고 난 후에는 약간 발효된 우롱차나 철관음鐵觀音과 같은 차가 궁합이 맞다. (125)
청국장이나 김치찌개와 같이 강력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에는 재스민과 같은 화차花茶가 어울린다. 김치 냄새도 중화시켜 준다. (125)
고래는 그 부위마다 먹는 방법도 각기 다르다. 꼬리는 초장에 찍어먹으며, 살코기는 고추장에 찍어 먹고, 목살은 겨자에 찍어 먹는다. 껍질 부분과 갈비살, 내장을 익혀 만든 수육은 된장이나 소금, 젓갈에 찍어 먹는다. (127)
뱀과 돼지는 천적관계다. 남녀 간의 겉궁합을 볼 때도 뱀띠와 돼지띠는 상충相沖이라 하여 좋게 보지 않는다. (128)
중년이 되면 신경 쓸 일이 많고, 신경을 쓰다 보면 뒷목이 땅기면서 뻑적지근해지기 마련이다. 인생의 연륜과 후두부의 경직은 비례한다. 이 부위를 어떻게 풀 것인가.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목침을 베고 누워 있는 것이다. 누울 때 푹신한 베개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딱딱한 목침으로 뒷목의 경직된 부분을 압박하면 지압효과가 발생한다. 누워 있는 상태에서 곧바로 지압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을 목침을 애용했다. (130)
현재 서울 안국동의 ‘아름지기’ 한옥에서 전통 목공예품을 전시 중인데, 여기에도 역시 잘생긴 목침이 전시되어 있다.(131)
한국의 대표적인 육산이 지리산이라고 한다면, 골산을 설악산을 꼽는다. 사는 것이 외롭다고 느낄 때는 지리산의 품에 안기고, 기운이 빠져 몸이 처질 때는 설악산의 바위 맛을 보아야 한다. (134)
산꾼들에 의하면 우리나라 산장 가운데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 소청산장에서 바라보는 전망이라고 한다. (135)
삼성경제연구소의 부자특성연구회 대표 문승렬 박사는 지난 10년 동안 600명의 부자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한국부자 세븐파워의 비밀』이라는 책으로 엮어 내었다. (138)
부자 팔자는 재물이 흠집 없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기 마련이므로 배우자도 튼튼한 여자, 즉 복혜福慧를 모두 갖춘 여자를 만날 확률이 높다. 복혜를 갖춘 아내의 말을 잘 들어서 부자 된 사례를 여러 번 목격했다. (139)
삼복 무더위의 짜증을 보상해 주는 꽃이 바로 연꽃이 아닌가 싶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가장 화려하게 연꽃을 감상할 수 있는 정자가 강릉 선교장의 정원에 있는 정자인 활래정이다. (140)
이판 理判과 사판 事判은 불교에서 유래했다. 이판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 대한 판단이라면, 사판은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에 대한 판단이 된다. (142)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에 집중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놓치게 되고, 고준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다 보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못 끄는 경우가 발생한다. (144)
『당시』를 읽다보면, ‘인생의 고통과 남루함에 직면해서도 이를 시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문화적 기백’을 배우고, 『사기』에서는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의 흥망성쇠는 누구나 겪었던 일이니까, 불행을 당하더라도 너무 아등바등하지 않고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력’을 얻는다. 『주역』을 통해서는 ‘잘 나간다고 너무 즐거워할 일도 아니고, 못 나간다고 해서 너무 절망할 일도 아니라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146)
한국은 국토의 7할이 산이다. 네팔이나 티베트처럼 4,000~5,000미터의 높은 산이 아니다. 4,000미터가 넘어가면 동식물이 살 수 없는 죽은 산이다. 1,000미터 내외의 산이라서 동식물이 살 수 있고, 사람이 계곡물을 마실 수 있는 복 받은 산들이다. 등산하기에 좋은 산들이고, 산자락에서 텃밭 가꾸며 살면 굶어죽지는 않는 산들이다. 세계에서 이처럼 양질의 산이 많은 나라는 오직 한국뿐이다. (149)
2004년 가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인 마이클 야마시타의 사진전이 열렸다. 700년 전 마르코폴로가 지나갔던 코스를 그대로 답사하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155)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한 폴 케네디 교수는 『강대국의 흥망』이란 저서로 유명하다.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전공한 그는 제국의 심리,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제국들이 두는 바둑을 연구한 사람이다. (159)
한국불교에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분화시켜 일곱 가지 보시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신시身施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몸을 움직여라, 자기 몸을 반듯하게 간수하는 것도 신시에 포함된다.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심시心施. 마음을 편하게 먹어라. 자기 마음이 편하면 자동적으로 다른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셋째는 안시眼施. 눈빛을 좋게 비추어라. 상대방을 사납게 노려보지 마라. 다섯째는 방시房施. 손님을 위해서 방을 잘 청소해라. 여섯째 좌시坐施. 어른이 오면 앉는 자리를 잘 정돈해라. 그래야 어른이 편안하게 앉는다. 일곱째 언시言施. 말을 품위 있고 부드럽게 하라. 품위 있고 부드러운 말도 상대방에 대한 보시이다. (160)
도연명은 국화의 그 담담한 미소를 보고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이라고 읊었다. ‘동쪽 울타리 밑에 핀 국화를 꺾어 들고, 고개를 들어보니 유연하게 남산이 눈에 들어온다’ 는 뜻이다. (162)
결국 행복으로 남는 것은 대자연과의 일체감인데, 도연명은 늦가을 서리가 올 무렵 피는 노란색 국화와, 의연하게 서 있는 남산을 보면서 느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행복감을 시로 남긴 것이다. (162)
강호동양학의 3개 과목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164)
무엇이 한국의 고유한 문화 콘텐츠인가? 내가 보기에는 강호동양학의 3대 과목이 한국의 문화 콘텐츠이다. 한국 사람들의 독특한 정서가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165)
정신없이 바쁘게 살기 마련인 중년의 한 시기에 철저하게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묵상하도록 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3년 시묘이다. (167)
영국의 독설가 버나스 쇼의 자찬 묘비명에는 이렇게 써 있다고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167)
한국의 선승 禪僧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이 있다. 10년 공부, 10년 참선, 그리고 10년 만행 萬行이다. 마지막 코스가 여행인 것이다. (168)
프랑스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한국에 왔다. 그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서안西安에 이르는 실크로드 1만 2,000킬로미터를 4년 동안 걸어서 여행한 사람이다. 기차나 자동차를 일절 이용하지 않고 오직 두 다리만을 사용한 여행이었다. 그 체험을 『나는 걷는다』라는 책으로 펴냈다. (168)
효봉은 왜정 때 판사를 하다가 스님이 되었다. 사형수 판결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판사직을 그만두고 3년간 엿장수를 하면서 전국을 방랑하다가 찾아간 곳이 바로 신계사였다. (170)
효봉은 제자 복이 많았다. 구산(1909-1983), 법정, 고은, 박완일 등이 유명한 제자이다. 구산은 1960년대 후반부터 송광사에 주석하면서 외국인 제자들들 많이 가르쳤는데, 그 제자 중의 하나가 현재 UCLA의 로버트 버스웰 교수다. 버스웰은 구산 밑에서 승려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 Sudden and Gradual’ 사상을 영역해 미국과 유렵에 소개한 당사자다. (171)
현재 세계 불교의 3대 조류는 구라파의 지식층들이 좋아하는 학자불교, 종교적 신통력에 기반을 둔 티베트의 파워불교, 동아시아의 선불교이다. (173)
2004년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인해서 수마트라섬의 위치가 36미터나 남서쪽으로 이동되었다고 한다. 남북으로 1,700킬로미터, 동서로 450킬로미터인 수마트라섬은 한반도의 2배나 되는 거대한 땅덩어리인데, 이런 덩어리가 움직일 정도였다고 하니 그 지변地變이 놀랍기만 하다. (174)
예지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본능적 직감력과 함께 이성적 관찰력을 동시에 배양해야 한다. (177)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의 육향산六香山에는 영험한 비석이 하나 서 있다. 남인의 영수였던 허복(1595-1682)이 삼척부사 재임 시절인 1661년에 세운 ‘척주동해비’가 그것이다. 높이 170센티미터, 너비 76센티미터에 검은색 오석烏石으로 되어 있다. (178)
오늘날에도 척주비 탁본 글씨로 만든 병풍은 인기가 높다. (179)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호남선 열차를 타고 장성역에 내린다. 장성역에서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너브실’이라고 불리는 시골 동네가 있고, 그 동네에는 ‘백수’ 한 명이 살고 있다. 올 해 46세인 강기욱씨. (182)
돌담길을 돌아나가면 30~40분 코스의 뒷산 오솔길이 나온다. 여름 길에는 칡꽃 향기가, 겨울에는 소나무 냄새가 코를 스치는 호젓한 오솔길이다. 집 앞으로 10분만 걸어 나가면 오염되지 않은 황룡강이 흐른다. 석양 무렵에 들꽃이 피어 있는 둑길을 산책하다보면 가슴 속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채워진다. 마음이 답답할 때는 집 앞의 둑길을 산책하고, 마음이 허전할 때는 집 뒤의 숲 속 길을 산책하는 일이 강 처사 가족의 중요 일과이다. (182)
매화를 유독 사랑했던 인물을 꼽는다면 송나라의 임포林逋와 조선의 퇴계退溪이다. 임포는 세상에 나가지 않고 오직 매화와 학을 기르면서 은둔생활을 했다.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아 길렀다. 매처학자梅妻鶴子가 그것이다. 나는 항저우에 갈 때마다 반드시 배를 타고 들어가 서호西湖 가운데에 있는 섬인 고산孤山에 들르곤 했다. 여기에서 임포가 은둔 생활을 했던 것이다. (184)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개암사開巖寺 뒷산에 웅장하게 솟은 바위가 울금바위다. (186)
첫째는 선암사의 고매古梅다. 원통전 뒤쪽에는 수령이 600년 된 매화가 한 그루 살아 있다. (190)
전 세계 가톨릭의 정신적 지도자인 교황 요한 바오르 2세(1920-2005)가 지난해에 선종했다. 선종이란 ‘선생복종善生福終’ 이란 표현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는 의미다. (192)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의 관음도량은 모두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동해안의 낙산사 홍련암을 비롯하여, 서해안의 강화도에 자리 잡은 보문사, 남해 금산의 보리암이 모두 바닷가에 있다. (196)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파도소리는 사람 뇌 속의 알파 파를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바닷가에 서 있으면 긴장이 풀리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이다. (195)
한자문화권의 식자층들은 산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너무 좋아했다. 산이 내가 되고, 내가 산이 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다. (198)
산지기의 철학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하니까. “굶어 죽을 팔자라면 굶어 죽자!”는 활구活句가 돌아온다. (201)
지팡이 중에서 각종 고사故事에 많이 등장하는 지팡이가 ‘청려장’이다. 1년생 풀일 명아주의 줄기를 말려서 만든 지팡이다. 재질이 가볍고 단단하여 노인이 짚기에는 안성맞춤이다. (202)
현재 전국에서 청려장 주 생산지는 경북 문경이다. 1년에 1,200개~1,500개를 만들어 낸다. 청려장 전문가인 문경의 조수복 씨에 의하면 청려장은 효자들이 많이 만들었던 ‘효자 지팡이’라고 한다. (203)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터가 경북 안동시 저전리 유족에서 동양대박물관 팀에 의해 최근 발굴되었다. 330년경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보다 최소한 1,000년은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부터 대략 2,8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208)
두 불상 모두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오른손 손바닥으로 감싸 안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을 지권인智拳印이라 한다. (214)
그 날 잔치를 마치고 송순이 언덕 위의 면앙정에서 내려올 때 제자 4명이 손가마를 만들어 스승을 메고 언덕길을 내려왔다고 한다. 정철, 임제, 고경명, 이후백이 바로 그 4명이다. (226)
삼보컴퓨터를 창업한 이용태 회장은 도산서원 원장을 2회나 중임한 영남 유림의 원롱니 동시에, 영남에서 선비 집안으로 자부심이 높은 재령載寧 이씨李氏 영해파寧海派의 19대 종손이다. (230)
“컴퓨터 사업과 선비정신이라는 이질적인 변수가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느냐?” 고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는 “밑지고 져라!”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온 세상이 모두 “경쟁에서 이겨라, 남을 이겨야 한다!”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는 시대에 역행하는 듯이 보이고 ‘밑지고 져라’는 좌우명을 중시한다. 상대방과의 인간관계에서 우선 당장 밑지고 지는 일을 하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게 결굴 “남의 가슴에 저금을 해 놓은 것이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것이 바로 유교의 이념과 비즈니스의 접합점이라는 것이다. (231)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최열. 그의 삼불철학은 일상생활에서 ‘죽겠다’, ‘바쁘다’,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232)
필자도 삼불이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주식증권을 하지 않는다, 운전을 하지 않는다이다. (233)
이 뒤주의 하단부에는 특이한 장치가 있다. 가로 5센티미터, 세로 10센티미터 정도의 조그만 직사각형 구멍을 만들어 놓고, 그 구멍을 여닫는 마개에다가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를 새겨 놓은 것이다. ‘다른 사람도 마음대로 이 마개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라도 와서 쌀을 퍼갈 수 있는 뒤주인 것이다. (236)
그러다 보니 벼슬을 내는, 즉 인사를 추천하는 자리인 ‘전랑銓郞’을 어떤 쪽에서 맡을 것인가를 두고 경합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240)
운세가 좋지 않을 때는 독서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홀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독립불구獨立不懼(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음)’ 하고 ‘둔세무민 遁世無悶(세상과 떨어져도 근심이 없음)’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독서의 습관에서 나온다. (246)
중국 당나라의 관료들은 관청에서 퇴근하면 부인 자식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에 곧바로 서재로 들어가곤 했다. 가장이 한번 서재로 들어가면 누구도 그 독서를 방해 할 수 없었다. (247)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바둑 고수들 중에 옛 백제 지역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이창호는 전주 태생이다. 한국 바둑의 개척자인 조남철 9단은 전북 부안이고, 이창호의 사부였던 조훈현은 전남 목포 출신이다. 요즘 욱일승천하는 이세돌의 고향도 전남 비금도다. (249)
방바닥에 누워서 하는 생각보다는 의자에 앉아서 하는 생각이 실수가 적고, 앉아서 하는 생각보다는 두 다리로 길을 걸으면서 하는 생각이 보다 창의적이고 균형 잡힌 경우가 많다. 걸을 때는 주변 사물을 관찰하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258)
봄밤에 남산 길을 걷다보면 ‘춘소일각치천금春宵一刻値千金’이란 옛 사람의 시구가 생각난다. ‘봄밤의 한 시간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구나!’(259)
근래 20~30년 동안 대만에서 국사 대접을 받고 있는 인물이 남회근(1918-현재)이다. (262)
그러면서 사마천은 자신의 심경을 피력한 「태사공자서 太史公自序」에서 자살하지 않고 저술에 몰두했던 선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266)
“옛날 주문왕도 은나라의 감옥에 갗혀 있는 동안 『주역』을 만들었다. 공자는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춘추春秋』를 썼다. 굴원은 초나라에서 추방되자 『이소경離騷經』을 지었다. 죄구명은 한쪽 눈이 실명되고 나서부터 『국어國語』를 쓰기 시작했다. 손자는 다리가 끊기는 형벌을 받고 나서 『손자병법』을 완성했으며, 여불위는 촉나라고 귀양 갔기 때문에 『여람呂覽』을 남길 수 있었다. 한비는 진나라에 붙들렸기 때문에 『세난說難』, 『고분孤憤』을 쓸 수 있었다.”(267)
그래서 김용의 대표작인 『사조영웅전』의 주요 무대도 화산華山이다. 오악五嶽중에서 가장 험하다고 알려진 화산이 도교의 성지라는 점도 이 부분가 관련되어 있다. (269)
이 글씨를 돌에 새겨 놓은 것이 비碑이다. 따라서 비석이라고 하는 것은 한자문화권의 역사적 자료이자 서기묵향書氣墨香을 전해주는 독특한 문홪거 전통이기도 하다. 그 비석들을 모아 놓은 곳이 비림碑林이다.
충북 보은군 수한면의 ‘비림박물관’이사장 허유이 3주년을 맞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272)
충재는 기묘사화己卯士禍와 을사사화乙巳士禍를 모두 겪는 험난한 인생을 살면서도 선비로서의 강직함과 격조를 간직했던 인물이다. 그는 평소『근사록近思錄』을 애독했던 것으로 유묭하다. ‘근사록’을 영역하면 ‘Reflection on things at hand’ 가 된다. ‘손에 닿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라는 의미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심오한 것으로 이르는 사유의 방식이다. (278)
‘장타’보다는 숨이 짧은 ‘단타’ 문장을 좋아하다 보니 나와 비슷한 스타일로 글을 쓰는 문필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영국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다. 와일드의 글은 관계대명사나 접속사가 별로 없이 짧아서 좋았다. 1980년대 초반 대학 다닐 때 그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같은 작품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지도를 많이 받은 셈이다. 좋아하면 닮게 된다. (283)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카페로 스크랩해 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