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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9월 20일 금요일
[(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9월22일 주일로 경축 이동을 하지 않을 곳에서는 대축일 미사를 드린다.>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몇몇 실학자들의 학문적 연구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하였다. 선교사의 선교로 시작된 외국 교회에 견주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의 조선은 충효를 중시하던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와 크게 충돌하였다. 그 결과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 등으로 박해가 시작되었다. 신해 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시어 이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하여 103명을 시성하셨다. 이에 따라 그동안 9월 26일에 지냈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을 기리며, 순교자들의 피로 우리를 복음의 빛 안으로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신앙 선조들의 순교 신앙을 본받아,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로 다짐합시다.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는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냐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지혜서에서는 의인들의 영혼이 불멸하며 하느님의 손안에서 평화를 누리리라고 말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늦게 작성된 지혜서는 내세에 대한 희망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혜서보다는 좀 더 이른 시기, 이스라엘에서 유다교가 외세의 박해를 받던 시대에 다니엘서와 마카베오기 같은 책들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나타납니다.
여러 해 전 어느 날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내세와 부활에 대한 믿음이 뚜렷해지면서 순교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하자 누군가 “순교자들은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었더라도 순교를 하였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다니엘서 3장 17-18절에서 다니엘의 친구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불가마에서 구하여 내시지 않더라도 다른 신들을 섬기지는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것은 장차 받을 영광과 상급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고, 그 사랑마저도 시작은 하느님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로마 8,32)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 주셨기에,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었기에]”(8,37) 박해와 칼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먼저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 주신 분, 그 사랑에 우리도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나서게 됩니다.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오늘, 순교자들이 지녔던 큰 사랑과 용기를 본받으려 한다면 먼저 순교자들이 만났던 하느님을 우리도 만나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랑에 응답하는 우리의 사랑이 없다면, 다만 상급을 바랄 뿐이라면, 십자가를 지는 것도 무의미할 것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이제 우리 교회는 백색 순교자를 필요로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젊은 시절, 유학 생활이 끝나갈 무렵이 기억납니다. 우여곡절 끝에 과정을 마무리 짓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였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깊은 감사의 정이 솟구쳤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내게 수도회에서 좋은 배움의 기회를 주셨으니, 어서 빨리 돌아가서 이 좋으신 주님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이 특별하고 대단한 성인 돈보스코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열정으로 마구 솟구쳤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 마카오에서의 길고 긴 유학 생활을 끝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러나 저와는 달리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던 고국 땅 조선의 상황은 암담하고 살벌했습니다. 박해가 한창이었기에, 입국 과정은 철저하게도 은밀했습니다. 입국 과정은 소설 몇 권을 써도 남을 정도로 처절하고 위험했습니다.
육로가 꽉 막혀있으니 바닷길을 선택하고, 조각배에 몸을 싣고 건너오다 폭풍우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조선 땅을 밟았지만, 언제나 사람 눈을 피해 산길로, 밤길을 쉼 없이 걸어야 했습니다.
숙박을 청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노숙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끼니를 자주 건너뛰니 건강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그 어떤 건강한 장정도 견뎌내지 못할 여행길에 온몸은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피 흘리는 순교 이전에 이미 땀과 일의 순교자, 백색 순교자로서의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활활 한 세미나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적색 순교자들로 흘러 넘치고 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백색 순교자를 필요로 합니다.” 자신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증언하는 백색 순교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박해 시대가 지나가면서 순교에 대한 재해석 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순교의 의미, 순교의 개념이 점점 확장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피흘림 없는 순교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피흘림 없는 순교를 영적 순교, 백색 순교라고 불렀습니다.
박해가 사라진 시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자 하는 의지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자 하는 의지만큼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고 깊은 사막 속으로 들어간 수도자들, 고행자들,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증거•증언하는 사람들까지 백색 순교자의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종교 자유 이후 많은 신자들이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거나. 순교자들의 무덤을 순례하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백색 순교로 여겼습니다.
오리게네스 교부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것,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것, 역시 순교입니다.”
백색 순교에 대해서 한 마디로 요약해보면 각자 삶의 처지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증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비록 피를 흘리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기꺼이 희생하고, 적극적으로 헌신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증언하는 사람이 되며, 백색 순교자로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다는 말은 사랑 앞에서는 언제나 핑계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인간이 하느님을 도울 수 있을까요? 하느님은 분명 인간이 당신을 도울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키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지게 하신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능력이 없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성경에서 다윗은 작은 목동에 불과했으며,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골리앗 같은 거인을 상대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은 다윗은 자신의 작은 물매와 돌로 거대한 골리앗을 물리칩니다. 이 이야기는 외형적인 강함이나 능력보다 하느님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켜 주며, 작고 연약해 보이는 존재가 큰일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례는 역사에서 수도 없이 많습니다.
잔 다르크는 농촌 출신의 평범한 소녀로, 군사적 훈련이나 정치적 권력이 전혀 없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프랑스를 구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지만, 결국에는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고, 이후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들도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사랑은 마중물과 같습니다. 마중물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나머지는 우리 안에서 알아서 다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3-14)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는 샘이 있습니다. 그 샘에서 물이 솟아 나오게 하려면 그에 맞는 사랑만 조금 집어넣으면 됩니다. 인간은 무한한 하느님을 닮아서 사랑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나머지는 우리 안에서 알아서 다 해 줍니다.
사랑의 의지가 우리를 작동하는 방식은 우리 안에 ‘망상활동계’(RAS, Reticular Activating System) 가 있기 때문입니다. 망상활동계는 뇌간에 있는 신경 네트워크로, 뇌와 신체 사이의 경계를 조절하고 의식, 주의력,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과학적으로, RAS는 뇌와 외부 자극 간의 필터 역할을 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정보를 선별하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비행장에서 쇼핑에 정신이 팔려 시계를 보니 이미 비행기 이륙시간이 지났습니다. 좌석을 배정받고 짐을 부쳤기 때문에 자기 없이는 어느 정도까지는 떠나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때부터 모든 주위는 자기 이름이 호명되는지에 집중됩니다. 자기 이름이 불리고 있고 이미 20분 전부터 방송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왜 그전에는 듣지 못했을까요? 망상활동계에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오스카 쉰들러가 어떻게 1,100명이나 되는 유태인을 구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지입니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발동하자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중엔 자동차와 나치 금배지를 팔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그것을 팔 정도까지의 의지는 부족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면 보이게 됩니다. 줄 것이 없었다면 의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당신 안에 무엇이 있는가 보다는 ‘오늘은 이웃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지?’라는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정해지기만 하면 능력은 주님께서 주십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의지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신부님들과 하와이엘 잠시 다녀왔습니다. 하루 전에 확인 했을 때는 터미널이 A였습니다. 저는 별 생각 없이 터미널 A에서 신부님을 기다렸습니다. 신부님이 전화했습니다. 저는 게이트 34에 있다고 했습니다. 신부님도 34에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없었습니다. 밤사이에 터미널이 A에서 D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터미널 D로 가야 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 공항은 게이트는 물론 터미널까지 종종 바뀐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행입니다. 어떤 신부님은 게이트 바뀐 걸 몰라서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날 출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고난의 잔을 받아 들였습니다. 신앙의 본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내가 바뀌는 것이지, 나의 뜻에 따라 하느님께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혼란에 빠지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는 것도 비슷합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여론을 무시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에 빠져서 국정을 운영하면 혼란이 발생합니다. 원칙과 공정에 따라서 법이 집행되어야 하는데,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국정에 개입하면 국가의 질서가 엉망이 됩니다. 국방부 장관도 잘 했다고 했고, 절차대로 마무리했으면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사건이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특검’의 논란이 되는 것은 외압이 있었다는 정황 때문입니다. 경찰청장도 잘 했다고 했고, 절차대로 마무리했으면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사건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문’의 대상이 되는 것도 외압이 있었다는 정황 때문입니다. 권력과 권한은 권력과 권한을 준 국민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 권력과 권한을 사적인 욕망과 욕심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살로메의 청을 받아들여 의로운 사람 세례자 요한을 죽였던 헤로데는 자신의 권력과 권한을 잘못 사용했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관리가 지녀야 할 덕목을 이야기했습니다. 관리는 청렴해야 하고,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특별한 체험을 했던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다른 사도들처럼 예수님과 같이 생활한 적도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박해하였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가 신약성서의 집필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바오로 사도는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였습니다. 교회를 박해하였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도 인정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공생활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에게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를 위해서 죽었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 그런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지금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헌신과 죽음도 헛되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시중을 들고, 자신들의 재산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그 여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세상을 따르는 것 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험을 들은 사람들은 보험회사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희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역시 우리들의 신앙, 우리들의 교회가 더욱 발전하고 성장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 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103위 순교성인9월20일
명단(신분 / 순교일 / 순교지)
박해로 인한 순교자의 수는 10,000명에 이르나 그 중 교회법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영광의 성인 위에 오른 이가 이들 103위인 것이다.
가장 혹심했던 박해는 1801년의 신유박해, 1839년의 기해박해, 1846년의 병오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 등을 들 수있다.
103위의 성인 중 기해 및 병오박해 때 순교한 79위는 1925년 7월 5일에, 병인박해 때 순교한 24위는 1968년 10월 6일에 각각 복자품에 올랐는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모두 시성의 영광을 입게 되었다.
1.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 1846. 9. 16. / 새남터)
2.정하상 바오로
(회장 / 1839. 9. 2. / 서소문 밖)
3.이호영 베드로
(회장 / 1838. 11. 5. / 형조전옥)
4.정국보 프로타시오
(공인 / 1839. 5. / 포청옥)
5.김아기 아가타
(과부 / 1839. 5. 4. / 서소문 밖)
6.박아기 안나
(부인 / 1839. 5. 4. / 서소문 밖)
7.이소사 아가타
(과부 / 1839. 5. 4. / 서소문 밖)
8.김업이 막달레나
(과부 / 1839. 5. 4. / 서소문 밖)
9.이광헌 아우구스티노
(회장 / 1839. 5. 4. / 서소문 밖)
10.한아기 바르바라
(과부 / 1839. 5. 4. / 서소문 밖)
11.박희순 루치아
(동정궁녀 / 1839. 5. 4. / 서소문 밖)
12.남명혁 다미아노
(회장 / 1839. 5. 4. / 서소문 밖)
13.권득인 베드로
(상인 / 1839. 5. 4. / 서소문 밖)
14.장성집 요셉
(환부 / 1839. 5. 6. / 포청옥)
15.김 바르바라
(과부 / 1839. 5. 7. / 옥사)
16.이 바르바라
(동정녀 / 1839. 5. 7. / 옥사)
17.김 로사
(과부 / 1839. 7. / 서소문 밖)
18.김성임 마르타
(과부 / 1839. 7. / 서소문 밖)
19.이매임 데레사
(부인 / 1839. 7. / 서소문 밖)
20.김장금 안나
(과부 / 1839. 7. / 서소문 밖)
21.이광렬 요한
(공인 / 1839. 7. / 서소문 밖)
22.이영희 막달레나
(동정 / 1839. 7. / 서소문 밖)
23.김 루치아
(동정녀 / 1839. 7. / 서소문 밖)
24.원귀임 마리아
(동정녀 / 1839. 7. / 서소문 밖)
25.박큰아기 마리아
(부인 / 1839. 9. 3. 서소문 밖)
26.권희 바르바라
(부인 / 1839. 9. 3. / 서소문 밖)
27.박후재 요한
(상인 / 1839. 9. 3. / 서소문 밖)
28.이정희 바르바라
(과부 / 1839. 9. 3. / 서소문 밖)
29.이연희 마리아
(부인 / 1839. 9. 3. / 서소문 밖)
30.김효주 아녜스
(동정녀 / 1839. 9. 3. / 서소문 밖)
31.최경환 프란치스코
(회장 / 1839. 9. 2. / 옥사)
32.앵베르 라우렌시오
(제2대 조선교구장 주교 /
1839. 9. 1. / 새남터)
33.모방 베드로
(신부 / 1839. 9. 1. / 새남터)
34.샤스탕 야고보
(신부 / 1839. 9. 1. / 새남터)
35.유진길 아우구스티노
(회장, 역관 / 1839. 9. 2. / 서소문 밖)
36.허계임 막달레나
(부인 / 1839. 9. 6. / 서소문 밖)
37.남이관 세바스티아노
(회장 / 1839. 9. 6. / 서소문 밖)
38.김 율리에타
(궁녀 / 1839. 9. 6. / 서소문 밖)
39.전경협 아가타
(궁녀 / 1839. 9. 6. / 서소문 밖)
40.조신철 가롤로
(역관 / 1839. 9. 6. / 서소문 밖)
41.김제준 이냐시오
(회장 / 1839. 9. 6. / 서소문 밖)
42.박봉손 막달레나
(과부 / 1839. 9. 6. / 서소문 밖)
43.홍금주 페르페투아
(과부 / 1839. 9. 6. / 서소문 밖)
44.김효임 골롬바
(동정녀 / 1839. 9. 6. / 서소문 밖)
45.김 루치아
(과부 / 1839. 9. / 옥사)
46.이 가타리나
(과부 / 1839. 9. / 옥사)
47.조 막달레나
(동정녀 / 1839. 9. / 옥사)
48.유대철 베드로
(소년 / 1839. 10. 1. / 옥사)
49.유소사 체칠리아
(과부 / 1839. 11. 3. / 옥사)
50.최창흡 베드로
(회장 / 1839. 12. 9. / 서소문 밖)
51.조증이 바르바라
(부인 / 1839. 12. 9. / 서소문 밖)
52.한영이 막달레나
(과부 / 1839. 12. 9. / 서소문 밖)
53.현경련 베네딕타
(여회장 / 1839. 12. 9. / 서소문 밖)
54.정정혜 엘리사벳
(동정녀 / 1839. 12. 9. / 서소문 밖)
55.고순이 바르바라
(부인 / 1839. 12. 9. / 서소문 밖)
56.이영덕 막달레나
(동정녀 / 1839. 12. 9. / 서소문 밖)
57.김 데레사
(과부 / 1840. 1. 9. / 옥사)
58.이 아가타
(동정녀 / 1840. 1. 9. / 옥사)
59.민극가 스테파노
(회장 / 1840. 1. / 옥사)
60.정화경 안드레아
(회장 / 1840. 1. 3. / 옥사)
61.허협 바오로
(군인 / 1840. 1. / 옥사)
62.박종원 아우구스티노
(회장 / 1840. 1. 1. / 당고개)
63.홍병주 베드로
(회장 / 1840. 1. 1. / 당고개)
64.손소벽 막달레나
(부인 / 1840. 1. 1. / 당고개)
65.이경이 아가타
(동정녀 / 1840. 1. 1. / 당고개)
66.이인덕 마리아
(동정녀 / 1840. 1. 1. / 당고개)
67.권진이 아가타
(부인 / 1840. 1. 1. / 당고개)
68.홍영주 바오로
(회장 / 1840. 2. 1. / 당고개)
69.이문우 요한
(복사 / 1840. 2. 1. / 당고개)
70.최영이 바르바라
(부인 / 1840. 2. 1. / 당고개)
71.김성우 안토니오
(회장 / 1841. 4. 9. / 옥사)
72.현석문 가롤로
(회장 / 1846. 9. 9. / 새남터)
73.남경문 베드로
(회장 / 1846. 9. / 포청옥)
74.한이형 라우렌시오
(회장 / 1846. 9. / 포청옥)
75.우술임 수산나
(과부 / 1846. 9. / 포청옥)
76.임치백 요셉
(사공 / 1846. 9. / 옥사)
77.김임이 데레사
(동정녀 / 1846. 9. / 포청옥)
78.이간난 아가타
(과부 / 1846. 9. / 옥사)
79.정철염 가타리나
(부인 / 1846. 9. / 옥사)
80.유정률 베드로
(회장 / 1866. 2. 7. / 평양)
81.베르뇌 시몬
(제4대 조선교구장 주교 / 1866. 3. 7. / 새남터)
82.랑페르 유스토
(신부 / 1866. 3. 7. / 새남터)
83.도리 헨리코
(신부 / 1866. 3. 7. / 새남터)
84.볼리외 루도비코
(신부 / 1866. 3. 7. / 새남터)
85.남종삼 요한
(승지 / 1866. 3. 7. / 새남터)
86.전장운 요한
(상인 / 1866. 3. 9. / 서소문 밖)
87.최형 베드로
(회장 / 1866. 3. 9. / 서소문 밖)
88.정의배 마르코
(회장 / 1866. 3. 1. / 새남터)
89.우세영 알렉시오
(역관 / 1866. 3. 1. / 새남터)
90.다블뤼 안토니오
(제5대 조선교구장 주교 /
1866. 3. / 갈매못)
91.위앵 루가
(신부 / 1866. 3. / 갈매못)
92.오메트르 베드로
(신부 / 1866. 3. / 갈매못)
93.장주기 요셉
(회장 / 1866. 3. / 갈매못)
94.황석두 루카
(회장 / 1866. 3. / 갈매못)
95.손자선 토마스
(농부 / 1866. 3. / 공주)
96.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원님 / 1866. 12. 3. / 숲정이)
97.조화서 베드로
(농부 / 1866. 12. 3. / 숲정이)
98.손선지 베드로
(회장 / 1866. 12. 3. / 숲정이)
99.이명서 베드로
(농부 / 1866. 12. 3. / 숲정이)
100.한재권 요셉
(회장 / 1866. 12. 3. / 숲정이)
101.정원지 베드로
(농부 / 1866. 12. 3. / 숲정이)
102.조윤호 요셉
(농부 / 1866. 12. 3. / 숲정이)
103.이윤일 요한
(회장 / 1867. 1. 1. / 관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