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적은 우리말 [ 한글날 특집 1부 ]
https://youtu.be/Kq7R1G-9hm0
우리가 가장 오래 쓴 글자는 한글이 아닙니다 — 한자로 적은 우리말 [SCRIPTA SC7E7] 한글날 특집 1부 · SCRIPTA ▶ 다음 이야기 — 한글날 특집 2부 「한글을 반대한 집현전」:
• 세종이 끝내 말하지 않은 다섯 글자 [ 한글날 특집 2부 ] ▶ 문자의 역사 정주행(재생목록):
• 문자의 역사 · SCRIPTA 1934년, 경주의 한 밭에서 손바닥만 한 돌이 나왔습니다. 표면에 새겨진 글자는 74개. 그런데 한문을 아는 사람이 읽으면 문장이 이상합니다. 한자가 우리말 어순으로 놓여 있거든요. 한자를 쓰면서 머릿속으로는 우리말로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한문에는 우리말 조사와 어미를 적을 자리가 없습니다. 「가노라」에서 「가」는 적을 수 있지만 「노라」는 적을 글자가 없습니다. 이 빈자리를 메우는 데 1000년이 걸렸습니다. 한글날 특집 네 편 중 첫 번째 — 한글이 없던 1000년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화에서 다루는 것 · 경주에서 나온 임신서기석 — 새긴 해는 552년일까 612년일까 · 한자를 빌리는 방법은 둘뿐 — 소리만 떼거나(음차), 뜻만 떼거나(훈차) · 지금 우리도 한다 — 천사를 1004로, 사랑을 하트로 · 정해진 규칙표가 없었다 — 「신라」라는 이름 하나가 문헌에 아홉 가지로 적혀 있다 · 설총은 정말 이두를 만든 사람일까 · 세 갈래 — 구결 · 이두 · 향찰은 무엇이 달랐나 · 향가 25편은 남았는데, 읽는 법은 오래전에 끊겼다 · 1929년 오구라 신페이 → 1942년 양주동 → 1980년 김완진, 향가를 읽어낸 사람들 · 서동요의 마지막 줄 — 「몰래 안고 간다」인가 「알을 안고 간다」인가 · 2000년 7월, 고려 불경 한 권에서 드러난 각필 · 1000년 동안 아무도 그 자국을 못 본 이유 · 훈민정음 이후에도 이두는 450년을 더 살아남았다 · 이 1000년을 다시 읽어낸 사람들은 한 나라에만 있지 않았다 🔗 이어 보기 · 이 편은 「왜·언제」입니다. 네 가지 방법이 어떻게 작동했는지(음독자·음가자·훈독자·훈가자, 말음첨기, 각필 점토의 25칸)는 「한자로 우리말 적는 네 가지 방법」 편에서 하나씩 읽어 봅니다. 🖼 영상에 쓴 실물 사진 (전부 공공누리 제1유형 · e뮤지엄 · 2026-08-30·09-14·09-15 이용)
- 壬申誓記石(임신서기석) —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282 · 보물 제1411호)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200100028200000
- 통감구결 권1~7(필사본) — 국립한글박물관 (한구 14480)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3400601448000000
- 노비 매매 입안 문서군 — 국립세계문자박물관 (696)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6400100069600000
- 삼국유사 권2(1512년 중간본 추정) — 국립세계문자박물관 (613) · 공공누리 제1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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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가 및 이두의 연구(오구라 신페이, 1929 · 1974 영인본) — 국립한글박물관 (한기 6296)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3400700629600000
- 고가연구(양주동, 1954 재판 · 초판 『조선고가연구』 1942) — 국립한글박물관 (한기 120)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3400700012000000
- 유가사지론 권66(초조본, 11세기) — 국립한글박물관 (한구 641)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3400600064100000
- 이문대사(吏文大師) — 국립중앙박물관 (구5554) · 공공누리 제1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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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보상절 권11 — 국립중앙박물관 (29)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2400002900000
- 월인석보 권20 — 국립중앙박물관 (10390)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1601039000000
- 경주 석장사지 임신서기석 탁본 — 국립한글박물관 (한구 10971)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3400601097100000 본 저작물은 위 기관들이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으로 개방한 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 탁본을 뺀 열 사진은 16:9 화면에 맞춰 잘라냈고 화면에 설명 자막을 얹었습니다. ※ 탁본은 도표 화면의 배경으로 썼습니다 — 여백을 잘라내고 밝기·선명도를 조정했습니다. 📌 이미지 안내 유물 사진은 위 🖼 목록의 실제 소장품 사진입니다. 그 밖의 인물·장면 이미지는 AI로 생성한 연출 자료이고, 도표는 데이터 시각화 자료입니다. 연출 자료는 학술적으로 검증된 원본 자료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검증된 자료는 아래 스크립타 아카이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참고 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임신서기석」 — 1934년경 경주 금장리 출토, 자연석 길이 약 30cm, 글자 74개, 국립경주박물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라」 — 국호 표기: 사로(斯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나벌(徐那伐)·서야(徐耶)·서야벌(徐耶伐)·서라(徐羅)·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두」·「향가」·「각필구결」·「유가사지론각필구결」
-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향가 및 이두의 연구』(1929) — 향가 25수 전편 최초 해독
- 양주동, 『조선고가연구』(1942) — 오구라 해독의 절반 이상을 개정
- 김완진, 『향가해독법연구』(1980)
-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 2000년 7월,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초조대장경 『유가사지론』에서 각필구결 확인
- 이두 학습서 『이문대사』(17세기 추정) · 『유서필지』
- 이두 「-며」 표기 = 旀 (용례: 審是旀 = 살피며) · 구결 토 = 厓(애)·伊(이)·尼(니)
※ 임신서기석에 적힌 임신년은 552년 또는 612년으로, 어느 쪽인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 서동요 마지막 행의 해독은 학계에서 아직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 영상은 어느 쪽이 옳다고 판정하지 않습니다. ※ 각필구결이 일본 훈점에 영향을 주었다는 견해가 있으나 확정된 사실이 아니어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 SCRIPTA — 인류의 글자 아카이브 한자: https://scripta.archilabs.kr/ko/scrip... 한글: https://scripta.archilabs.kr/ko/scrip... 문자 목록: https://scripta.archilabs.kr/ko/catalog 메인: https://scripta.archilabs.kr 인류 문명의 시스템 — 문자 · 언어 · 화폐 · 단위 · 도구 문명의 기록, 아키랩스 @Archilabs_kr #한글날 #이두 #향찰 #구결 #각필 #임신서기석 #향가 #서동요 #훈민정음 #한국사 #문자의역사 #SCRIPTA #아키랩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