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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성경의 영감과 무오에 관한 연구
<한글초록>
18세기 이후 서구 신학계에서는 성경 영감과 무오를 완전 부정하거나 왜곡하기 시작했다. 계시보다 이성을 우위에 두는 합리주의 신학이 성행하면서 성경의 초자연적 사건에 의심을 품으면서 배제 되기 시작했다. 성경의 무오성은 비이성적인 소산으로 간주되었으 며,“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 이다”란 선언은 무시됐다. 성경의 부조화, 비과학성, 비역사성이 강조됐고, 근동 아시아의 역사와 비교하여 이스라엘의 신앙은 고대 종교의 하나로 규정지어졌다.
성경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이 완전하다는 신앙이 사라지면서 성 경을 기반으로 세워졌던 교회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구라파의 수많은 교회당이 회당이나 혹은 모스크나, 레스토랑이나, 카페나 백화점으로 바뀌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혼란의 기저에는 단연코 자유주의적 성경관에 있다고 본다. 그 사람이 어떤 성경관 에 기초하느냐에 따라 복음주의자와 자유주의자로 나누어지게 되 는 것이다. 개혁주의 성경관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과는 등식관 계가 성립함을 믿는다. 즉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성경이 말하는 바는 곧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What the Bible says, God says)으로 본다.
따라서 본 논문은 성경의 권위가 교회 안팎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도전받고 의문시 되고 있는 이때에 성경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변 증하며, 인간 중심의 신학에서 하나님 중심신학으로 돌아갈 수 있 는 지침이 되고자 하는데 있다.
I. 서론
18세기 이후 서구 신학계에서는 성경 영감과 무오를 완전 부정하거 나 왜곡하기 시작했다. 계시보다 이성을 우위에 두는 합리주의 신학 이 성행하면서 성경의 초자연적 사건에 의심을 품으면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성경의 완전 무오성은 비이성적인 소산으로 간주되었으 며, 웨스트민스트 대요리문답 3문의“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으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다”란 선언은 무시됐다. 성경의 부조화, 비과학성, 비역사성이 강조됐고, 근동 아시아의 역사와 비 교하여 이스라엘의 신앙은 고대 종교의 하나로 규정지어졌다. 벨하 우젠은 문서설을 주장하며 모세 오경이 전승 혹은 여러 자료들의 혼 합물이라고 주장했고, 슈바이처는 그의 저서『역사적 예수 탐구』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에서 신약 성경의 모든 이적을 부정했고, 윤리적 책으로 간주했다.1
제1차 세계 대전이후 새로운 운동이 발생했는데 합리주의 신학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신학계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이 운동은 칼 바르트가 이끄는 신정통주의 신학이었다. 바르트는 그 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지향했고, 성경의 무오성2을 자기의 방식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의 신학은 여전히 합리주의와 실존주의 그늘 아 래 놓여 있었기에 성경의 역사성을 의미사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 으로 왜곡했다.3 곧 이 말은 성경의 역사가 실제와 다를지라도 그것 을 신앙으로 받아 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성경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이 완전하다는 신앙이 사라지면서 성경을 기반으로 세워졌던 교회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서구의 수많은 교회가 레스토랑이나, 카페나 백화점으로 혹은 모스크로 바 뀌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한 프란시스 쉐 퍼(Francis A. Schaeffer)는 그의 저서『위기에 처한 복음주의(The Great Evangelical Disaster)』에서 그의 조국 미국의 타락상과 퇴폐상 을 눈물로 애도하면서 미국의 복음주의가 이름만 거창할 뿐 사실상 불 꺼진 등이요 맛 잃은 소금임을 탄식하고 통렬히 비난을 했는데 그 분수령이 된 것은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대한 불신 때문4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최근에 한국교회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개최 문제를 두고 보수와 진보 등의 대립 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역시 이러한 혼란 의 근본적 원인은 성경관에 대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논자는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성경의 영감과 무오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여기고 본 논고를 통해 성경의 영감 의 어원과 그 의미들을 살펴보고, 또한 성경의 영감의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와의 관계와 성경의 원본과 사본과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방어하기 위해 미국에서 복음주 의 신학회(The Evangelical Society)가 1949년에 형성되고 1978년에 는 국제성경무오협회(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가 성경 무오의 진리를 밝히고 입증하고 적용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는 데 이 협회의 진술들을 검토하면서 연구하고자 한다.
1 김근수,“한국교회와 성경 영감과 무오”,『칼빈 논단』(서울: 칼빈대학교출판부, 2005), 26.
2 칼 바르트는 1918년 그의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성경 연구에 있어 서의역사비평법은그나름의타당성을가지고있다. 그것은결코피상적이아니며이해를위한준 비 작업을 해준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것과 종전의 영감교리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후자를 결정적으로 붙잡을 것이다. 그것은 더 위대하고, 더 깊고, 더 중요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왜 냐하면 그것은 그것 없이는 모든 준비가 무가치한 이해 작업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내가 양자택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것을 통해서 성경의 영, 즉 영원한 영 속을 들여 다보는 데 나의 모든 관심의 방향이 있다.”K. Barth, The Epistle to Romans, E. C. Hoskyns trans.(London, 1993); Gerhard F. Hasel, New Testament Theology : Basic Issues in the Current Ddebate, 권성수 역,『신약신학 : 현대 논쟁의 기본 이슈들』(서울: 엠마오, 1994), 57 재인용.
3 김근수,“한국교회와 성경 영감과 무오”, 27.
4 F. A. Schaeffer, The Great Evangelical Disaster, 윤두혁 역,『위기에 처한 복음주의』(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7), 43.
II. 성경의 영감에 대한 성경적 기초
1.성경의 영감의 어원적 고찰 및 정의
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가? 성경이 인간의 저작이 아니라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근원에 신적인 증거가 있어 야 할 것이다. 바로 그 신적 근거가 영감(inspiration)이다. 성경의 영 감은 성경의 무오를 보증한다. 그러면 성경의 영감이란 무엇인가? 이 용어는 사도바울의“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딤후3:16)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라틴어‘Inspiro’에서 유래된 것으로“속으로 숨쉰다”라는 의미를 지녀, 마치 하나님께서 인간의 글 속에 숨을 불어 넣어 역동성을 일으켰다는 내용이 되어 사도바울의 목적한 바와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5 바울이 사용한‘qeo,pne ustoj’는 하나님을 뜻하는 qeo,j와‘숨쉬다’,‘내뿜다’를 의미하는 동사의 파생어‘pneustoj’가 결합된 파생어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사용한 이 말의 원뜻은 영감을 주다, 속으로 숨쉰다는 의미가 아니 라, 하나님께서 숨을 내쉰다는 뜻이다.6 즉 하나님께서 성경 안에 숨 을 불어 넣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 자체가 바로 성경이란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셨다’와‘하나님께서 숨을 내쉰다’를 혼동하여 같은 의미로 취급한다면 영감의 의미는 상당히 포괄적이 면서 불분명해질 수 있다. 그래서 워필드(Warfield)가 영감에 대하 여 정의하기를“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에게 숨을 불어 넣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숨을 내쉰, 즉 하나님의 영에 의해 충 만 케 되 는 생 기 ”7 라 고 말 한 것 이 다 . 물 론 이 말 은 성 경 은 인 간 의 작 품인데 여기에 하나님께서 기운, 혹은 하나님의 생각을 불어 넣으셨 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이요 여 기에 하나님의 사상을 불어 넣으셨다는 것이다.
한편 영어에서는 헬라어‘qeo,pneustoj’란 단어를 NASB에서는 “inspired by God”라고 번역했고, NIV에서는 ”God-Breathed”로 번 역했다. 둘 다 수동형으로 번역했음에 대하여 거의 이견이 있을 수 가 없다. 곧 이 말은 성경이 곧“하나님의 내쉬심”(God-Breathed)을 말하는 것으로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적인 영감이라는 성경의 신적본질과기원을말하는것으로이해해야한다.8
즉 이 말씀은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실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은 사람들 을 도구로 하여 기록하셨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하지(C. Hodge)도 말하기를“영감은 택하신 사람들에게 역사하시 는 성령의 역사, 즉 하나님의 마음과 의지를 불오(infallible)하게 전 달하기 위해 그들을 도구(the organs of God)로 삼으시는 성령의 역 사”9라고 정의한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 즉 영감의 신적 기원과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이 유기적으로 사용되 었음을 뒷밭침하고 있는 것이다.
토머스(T.A .Thomas) 역시‘qeo,pneustoj’를 사용한 의도가 모든 성경은 인간의 마음에서 기원한 사상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지성에 그 기원을 갖는다고 말했다.10 이에 대하여 워필드(B.B. Warfield)는 영감에 대하여 정의하기를 영감이란 성경 저자 자신들 이 먼저 성경 쓰는 일에 착수한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먼저 시작 하시고 그들을 감동시켜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방편을 택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의 불가항력인 능력으로 그 들을 주장하심을 뜻한다”11라고 하였다. 고센(L. Gaussen)의 다음 정의는 1830년대 이후부터 정통적 보수적인 정의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는“영감이란 하나님의 영이 옛날 성경저자들에게 주신 그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이니, 그들이 쓴 단어 사용에도 지도하여 모든 오류에서 그들을 보호하셨다”12고 하였다. 즉 성령께서 글을 쓰는데 사용될 재료들과 단어들을 감독하시고 저자들을 모든 오류에서 보 존하심으로 축자적으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린젤 (Harold Lindsell)도 영감에 대하여 정의하기를“영감이란 하나님이 선택한 인간의 마음에서 일하시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되, 하나님 께서 원하시는 것을 쓰게 하시는 성령의 내적 역사이다”13 라고 했 다. 모든 성경은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쓰인 것이며 모든 오류로부터 자유로운 하나님이 서명한 것이다.
이상의 모든 정의에서 성경의 모든 부분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 의 기록된 말씀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역사와 신앙과 교리에 있어 서 완전히 믿을 만하다. 성경의 저자들은 성령이 인도함을 받아 사 실적, 역사적, 과학적 혹은 기타 모든 오류에서 보존되었다.“무오” 라는 말은 결코 속인다거나 그릇 인도하지 않는 성질을 말한다. 그 래서“전적으로 신뢰할 만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성 경은 그 교훈 전체가 거짓말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한번 말 씀하신 것은 영원히 살아있고 그러므로 그것을 무조건 믿어도 된다 는 확신을 표현하기 위해 무오하다는 말을 사용한다. 하나님의 말씀 이 무오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 무오하기 때문인 것이다.
5 Robert L, Saucy, Bible : Breathed from God, 이창우 역,『성서의 영감』(서울: 보이스사, 1980), 78.
6 Robert L, Saucy,『성서의 영감』, 78.
7 B. Warfield, The Inspiration and Authority of the Bible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48), 278.
8 Sinclair B. Ferguson,“성경의 자증”, 간하배 편, 정광옥 역,『성경무오와 해석학』(서울: 엠 마오, 1988), 77, 79.
9 C. Hodge. Systematic Theology, vol. 1. (Grand Rapids : Eerdmans, 1981), 154.
10 T. A. Thomas, The Doctrine of the Word of God (Philipsburg: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2), 6.
11 Louis Berkhof, 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 김진홍, 김의환 역,『성경해석학』(서 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65), 36.
12 Louis Gaussen, The Inspiration of the Holy Scriptura (Chicago: Moody Press, 1949), 319.
13 Harold Lindsell, The Battle for the Bible (Grand Rapids: Zondervan, 1976), 30.
2. 영감에 대한 성경의 자증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에는“믿어야 할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이시고) 그 책의 저자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는 수납되어야 하는데 이는 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때문이다.”14고 했다. 즉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가 이것을 증거하고 있다. 칼빈(John Calvin)도 그의 저서『기독교 강요』에서 성경의 자증성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우리가 하
나님이 바로 성경의 저자라는 사실을 의심 없이 확신할 때까지는 성경의 교리에 대한 신앙을 정립할 수 없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에 의하여 내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성경을 진심으로 의지한다. 그리고 성경은 스스로에 의해 보증을 받고 있다.15
이 말에 대하여 칼빈주의자들은 다음 세 가지로 성경관을 정리한다.
1)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자신의 특성을 증거한다.
2)성 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3)성경은 인간이 기록하였기 때문에 인간 저자들의 흔적을 담고 있지만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소위 손상되지 않는 가신성(可信性)이라는 신적 기원의 표적을 갖는다.16
그러나이러한견해에반대하는이들도있는데 그중에한사 람이 바(James Barr)인데 그는 성경의 자증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견해를 피력한다.
보수주의의 주장에 의하면 성경 전체가 신적으로 영감 되었다고‘주 장’한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난센스다. 신적으로 영감 되었음 을‘주장’하는‘성경’이란 없다. 오직 다른 기록들에 대하여 다소 모 호한 진술을 하는 디모데후서나 베드로후서와 같은 이런저런 자료 가 있을 뿐이다. 여타 질문에 완전한 권위로 답변하는‘성경의 자증'같은 것은 없다. 보수주의의 전통적 변증의 이 모든 측면은, 목청을 돋우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의 자증으로 답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17
'성경의 자증'을 합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그 의 주장 은 과 연 옳 은 것인가? 성경은 과연“성경의 자증”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는 가? 실상은 그가 성경이 제시하는 증거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 으로 보인다.
'성경의 자증'의 적법성은
첫째, 구약 내에는 성경 자 의식의 증거, 곧 기록된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통치하고 지도 하기 위해 주신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18 그러한 자의식은, 율법의 문서화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를 수반하며, 그들의 삶을 통치하고 지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둘째, 신약 내에는 오늘날 우리가 구약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님 이 주신 정경으로 인식하였음이 명백히 나타난다.19 신약에서 성경 (Scriptura)이라는 단어나,“율법과 선지자”,“기록되었으되”,“성경 에 이르기를”,“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히1:1)등의 표현은 그러한 사실을 예 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모두 성경을 정경으로 믿 고 사용을 하였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을 정경으로 인용한 것은 구약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정경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인 것 이다.
셋째, 신약의 전체 저자들에게는 그들의 저작물의 권위가 구약과 대등하며, 그들은 받은 계시의 내용은 어떤 면에서, 기록된 계시의 명료성과 점진성에서 구약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있었다.20 이러 한 사도 저작의 의식은 그리스도의 오심의 빛에서 정경을 완성하기 위하여 의도로 보아진다. 정경에 대한 첨가 의식은 신약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난다. 일례로 구약을 인용할 때“기록된 바”라는 문구를 사용한다(요 6:31; 8:17; 12:14 등). 유사한 표현인“이것을 기록함” (요20:31)은 요한의 의도가 드러나는데 요한이 이 단어를 채용한 것 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다른 곳에서처럼 여기서도 헬라어“grapho” (기록하다)라는 동사는 유사-권위적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사도들 로 통하여 기록되어진 말들은 정경적 권위를 갖는다. 성령께서 사도 들에게 그가 가르치시는 말을 하도록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넷째, 신약이 일부 자료들은 자신의 정경성뿐 아니라, 정경적 지 위를 공유하는 문헌층의 존재를 시사한다.21 딤전5:18절의“성경에 일렀으되”라는 공동 항목은 신25:4과 눅10:7의 동시에 인용한 구절 의 설명이 가능한데 이것은 누가복음이 1세기에 이미 성경으로 인 용되었음을 나타내고 누가가 신실한 동료였던 바울에 의해 성경으 로 인용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22 따라서 신약의 문헌들은 구약의 정경성을 확증할 뿐만 아니라 신약 자신도 정경의 동일한 범 주 안에 있음을 강조했고 사도들에 의해 교회에 수여되는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경성을 인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이 많은 창세기 처음 열한 장의 내용에 대하여는 아처 (Gleason Archer)가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믿음 의 유산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대부분 구전의 형태도 전승되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마지막으로 모세에 의해 기록될 때는, 신적 신빙성을 보장하기 위해, 성령께서 특별히 감 독하셨음에 틀림없다”23고 하였다.
그리고 성경 속에는 많은 문학적인 표현들이 있다. 문학적인 기교 도 진리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즉 문학에 있어서는 픽션 (fiction:허구)의 내용이 있고 이 픽션의 기교는 우리가“‘사실이 아 니다”라고 알고 있는 것들을 문학적 기교를 통해서 소개하기도 한 다. 그러나 문학적인 표현이 있다고 하여서 창세기의 내용이 허구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문학성이 있기에 문학적 접근법이 필요하며 정당화된다. 프라이어(Northrup Frye)는“성경은 문학을 논하기 이전에 충분히 문학적이다”라고 했다.24 복음주의자라 할지 라도 창세기가 냉정하게 사실만을 정확히 기술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과, 오히려 우리는 어느 정도 정리된 역사의 내용을 접하게 됨을 인정한다. 즉 성경 저자는‘사실’을 말하려고도 하지만 역사적 사실 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관심을 유도하고 사건에 대한 반 응을염두에두고서기술하고있는것이다.25 성경의기록은선택적 으로, 구조적으로, 강조적으로 해석이 가미된 이야기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성경해석에 있어 문학적 접근법은 성경 해석에 있어 더 욱더 필요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문학적 기교들이 사용된 성 경이 하나님의 진리가 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롱맨 3세(Tremper Longman III)는 대답하기를“예스“(yes)라고 대답을 한다. 성경이 문학이냐 역사냐 라고 묻는 것은 잘못된 이분법에서 출발하는 것이 다. 성경은 양자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며, 오히려 그 이상이다. 문학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보다 더욱 깊고 넓게 지성, 의지, 감정 등의 전인격을 포괄한다.
14 송종섭 역,『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울: 소망사, 1989), 9.
15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ed. John T. McNell, J, Vols.I. (Philadelphia: Westminster, 1960), 성문출판사 편집부 역,『영한 기독교 강요』(서울: 성문출판사 1990), 147-51.
16 Ferguson,“성경의 자증”, 66.
17 James Barr, Fundamentalism (London : SCM, 1977), 78.18 Berkhof,『성경해석학』, 69.
19 Berkhof,『성경해석학』, 69.
17 James Barr, Fundamentalism (London : SCM, 1977), 78.
18 Berkhof,『성경해석학』, 69.
19 Berkhof,『성경해석학』, 69.
20 Berkhof,『성경해석학』, 69.21 Berkhof,『성경해석학』, 73.22 Berkhof,『성경해석학』, 73.
23 Gleason L. Archer, Jr, A Survey of the Old Testament Introduction (Chicago: Moody, 1964), 21. n. 4.
24 Northrup Frye, The Great Code : The Bible and Literature (London: Ark, 1983), 62.
25 Tremper Longman III, “성경의 작가들과 시인들, 문학적 기교도 진리일 수 있는가?”간 하배 편, 정광옥 역,『성경무오와 해석학』(서울: 엠마오, 1988), 217.
3. 성경의 저자 문제에 있어서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의 관계
이에 대하여 최근에 웨스트민스트 구약학 교수인 피터 엔즈(Peter Enns)는 그의 책 Inspiration and Incarnation에서 성경의 영감에 접 근하는 방식을 제시했는데 그것은“성육신 유비”의 방법이다. 즉 그 는“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신 것처럼 성경도 그렇 다...예수님이 틀림없이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신 것처럼, 성경도 하나님의 책인 동시에 인간의 책이다”.26고 했다.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심을 칼케톤 공의회(the Council of Chalceton, 451)에서 공인되었듯이 성경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엔즈 는 이 책에서 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성경은 고대 근동의 문화와 연결점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성경 저자들의 저술에 는 그들의 세계관이 반영이 되어 있음을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성 육신 유비”의 방법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필요하고, 이 방법으로 접 근을 하면 성경은 역사적 산물이고 성경의 인간적 특징은 성경 전체 에 걸쳐 나타난다27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웨스트민스터 내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28
엔즈의“성육신 유비”는 다른 글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신선한 주 장이라 여겨지며 성경의 인적요소에 대한 적확한 설명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엔즈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인적 요소에 대하여서는 적확한 비유이고 설명이나 신적 요소에 대한 주장이 상대적으로 약 화된 측면이 책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보게 된다. 그러나 엔즈는 이 러한 인적 측면이 성경의 영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성경 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29
바르트나 브룬너 혹은 부분 영감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제한성을 말하면서 인간이 신의 언어를 담기에는 제한이 된 다고 주장한다. 퍼거슨은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베드로후서 1장 20 절 21절30을 해석하면서 성경의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의 관계를 잘 설명했다.
“첫째는 성경 저자들의 삶, 경험, 환경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 섭리적 감동이다. 둘째, 성경은 신적 능력이 성령을 통하여 활 동한 결과이다. 성령은 저자들의 삶 가운데서도 특히 성경의 제작에 역사하셔서 저자들을 감동시켜서 그 저작물이 하나님 자신의 말로 서 보존되도록 하셨다.”31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언어의 주인이시기도 하다. 하나님은 충분히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기도 하시고 그의 뜻과 사상을 인간의 언어에 담으실 수 있다.“인간의 언어는 정 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옮길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 언어에 있어서도 주인이시기 때문이다.”32 이런 의미 에서 볼 때 워필드는 영감이란 단순한 영향력이 아니라,“‘영감의 본질은 감독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었고,‘성경의 발생은 인간들의
작인과 하나님의 작인이 여러 가지로 상호 협력한 결과’”33라고 주 장할 수 있었다.
성경의 영감이란 정경(canon)의 문서들이 처음 그 다양한 인간 저 자들에 의해서 기록될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에 의해서 그 과정 이 지켜졌음34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들에게 기계적으로 쓰였다거나 단순하게 구술되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감(�感)’ 이라는 용어는 아주 특별한 용어이고, 또한 그 영감의 산물로 나온 성경의 원본들도 다른 문서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서들이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성경의 사본들이나 역본들도 우리에게는 계시인 것이다.35
워필드(B. B. Warfield)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든다.
만약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의 색채가 성당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 에 지금과 똑같은 그러한 분위기와 품격을 부여하기 위한 확실한 목 적에서 건축가가 도안하였다면 어쩔 것인가? 만약 그의 백성에게 전 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전함의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의해 조성 된 인간의 자질을 바로 그 수단으로 삼아 지금과 똑같은 그러한 하나 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에 의해 형성되었다면 어쩔 것인가?36
즉 하나님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질들을 통하여 성경을 기록하 실 것을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것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권 위 있는 성서 집성물을 생각할 때에, 그는 계시와 영감의 하나님일뿐 아니라 섭리와 은혜의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하며, 그는 우리가 그 좁은 의미에 있어서 전문 용어로‘영감’이라고 부르는 특수 작업 을 하실 때에도 그 모든 준비 품목까지도 전권적으로 주관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37 성경의 신적인 성격이 인간의 생각, 감정, 결 정의 실체가 자기 백성과 교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결코 대립되 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기록하게 할 때 에 어떤 식으로 영감을 하였는가? 그들 자신들의 개성은 억압을 당 했는가? 아니면 이해력, 판단력, 모든 것이 제지를 당하였는가? 그것 은 결코 아니다. 성경의 인간 저자들은 단지 기계였거나 필기자는 아니었다. 즉 그들의 개성이나 환경이나 특성, 자유를 무시하지 아 니하였다. 많은 경우에 있어 저자들은 그들이 쓰고자 하는 문제를 미리 조사하였다. 누가가 그 사실을 누가복음 서두에“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라는 구절은 이 사실을 뒷받침 하고 있다. 열왕기와 역대기의 저자들도 그들의 참고 문헌을 거듭 언급한다. 저자들은 가끔 그들 자신들의 체험을 발표하였는데 모세 는 신명기의 첫 장과 마지막장에서 누가는 사도행전의 후반에서 시 편 기자는 그들의 개인적 죄와 그에 대한 받은바 사죄의 은혜를 노 래했고 또 그를 둘러 싼 위험과 거기에서 기적적으로 구원하여 주심 을 노래했다.38 즉 저자들의 감정과 경험, 환경을 무시하지 않으신 것이다. 즉 저자들의 교육 정도, 성품 등이 다양하게 반영이 되고 나 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제약이 있는데 그것 은 성령께서 그들의 죄성이 나타나지 않도록 막으시고 제한을 하신 것이다.
26 Peter Enns, Inspiration and Incarnation, 김구원 역,『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23.
27 Peter Enns,『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25.
28 이러한 논란을 보기를 원하면 장세훈의“신화 논쟁의 맥락에서 본 피터 엔즈의 신학에 대 한 해석학적 고찰”,『한국개혁신학』제28권을 참조하라.
29 Enns,『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25.
30“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 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31 Ferguson,“성경의 자증”, 80.
32 Harvie M. Conn,“개론적 역사 성경무오, 해석학, 그리고 웨스트민스트”, 간하배 편, 정광 옥 역,『성경무오와 해석학』(서울: 엠마오, 1988), 22.
33 정규철,『성경 무오의 역사적 증명』(서울: 그리심, 2002), 272.34 이승구,『개혁신학 탐구』(서울: 하나, 1999), 44.
35 이승구,『개혁신학 탐구』, 44.
36 B. B. Warfield, The Inspiration and Authority of the Bible, 156.
37 Warfield, The Inspiration and Authority of the Bible, 156.38 Berkhof,『성경해석학』, 42-43
4.성경의 원본과 사본과의 관계
이를테면 원본이 없는 가운데서 과연 성경의 무오를 주장할 수 있 는가? 하는 문제이다. 성경의 영감과 무오에 대한 주장은 원본에 대 한 것이다. 즉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사본이나 번역본에 대하 여서 이와 같은 동일한 권위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사본들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과연 오류는 없는가? 현재 사본들을 비 교해보면 상이점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지 않는가? 하는 부 분이다. 오늘날 성경의 원본이 없다는 것이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 성경사본을 특별히 연구한 학자 모세 스투아투(Moses Stuart)와 가베트(Garbett)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자.
수집된 약 80만 가량의 여러 가지 성경 역본들 가운데 79만 5천의 역 본이 영어 철자에 있어서 단어 honour를‘u 자를 넣어서 혹은 없이 써야 하는냐 하는 문제만큼 헬라어와 히브리어 성경들의 뜻이 충실 하였다. 역본들에 있어서 어떤 것은 특수한 구절의 뜻과 표현을 고 치기도 하였고 특수한 낱말들과 구들을 생략하기도 하였지만 여러 역본들을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기독교의 교리는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어느 교훈 하나도 제거되어지지 않았으며 중요한 사실은 하 나도 변경되어지지 않았다.39
그리고 오늘날 성서 분야의 눈부신 학문의 발전으로 원전 비판을 통해 얼마든지 원본에 가까운 사본을 재구성할 수 있다.“오늘날 비 록 우리가 성경의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원전 비판을 통하여 원본에 가까운 사본을 우리는 재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원본의 부재는 성경의 유오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40 워 필드는 이에 대하여“신약의 내용이 거의 전부 사본상 차이점까지 도 거의 없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혹시 가장 잘못 베낀 사본이 있을지라도 바로 베낀 다른 많은 사본들이 있음으로 거룩한 기자들 의 진정한 본문이 정확하게 드러나며, 교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뜻 이 달라지는 결론이 이르지는 않는다”41고 하였다. 또한 교부들이 각각 다른 사본들을 갖고 있었어도 공회의를 모일 때 그들의 성경 이해와 인용이 완전히 일치하였다.42 따라서 첫 원본들에 아무런 오 류가 없다. 번역본도 영감성을 지니므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되었 으면 원리적인 무오성을 갖는다.
성경의 원본이 없는 가운데서도 성경의 영감의 권위에 대하여 박 윤선은 아보트(Esra Abbott)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약 본문의 사본상 차이 중에 19/20가 실상은 서로 대립하는 차이 점이 아니며 그 나머지 1/20에 대한 19/20은 실상 차이점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것을 받든지 받지 않든지 그 본문의 뜻에는 아무런 변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43
이 부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복음주의의 최근의 견해는“국제 성경 무오 협회”에서 발표한“시카고 성경무오 성명” 이다. 이 성명은 밝히기를“우리는 성경의 사본들과 번역들이 원본에 충실하게 기술되었다는 범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더욱 확 신한다”44고 하였다. 본문 비평의 학자들은 손으로 성경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실수들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필사자의 실 수가 성경의 오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45 즉 잘못된 철자나 틀린 위치가 본문의 사실과 반대되는 거짓진술이나 다른 그 어떤 것을 의 도한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가장 뛰어난 신약학자중 한사람인 브루스 (F. F. Bruce)도 원본이 없는 상황에서 사본에 대한 유오성을 주장하 는 자들에게 일침을 가했다.“의심을 남길 만한 다른 글들이...역사 적인 사실의 자료적 문제나 혹은 기독교 신앙과 행위에 어떠한 영향 도 끼치지 않는다.”46 즉 사본상의 차이점이 성경의 권위나 기독교 신앙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에‘무오’라는 용어 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무오’라는 용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서 성경의 신적 권위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에 대하여서 화란 의 개혁신학자 리더보스(Herman Ridderbos)는 주장하기를“내가 아는 바대로 성경의 속성으로서‘무오성’에 상응하는 말이 성경의 용어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경의 신적 기원과 내용에 일 치해서 계속 그 진정성(trustworthiness)이 크게 강조된다”고 하였 다.47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없음으로 인해 우리가 가지고 있 는 사본에 대하여 오류를 주장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즉 사본상의 나타나는 미미한 상이점들로 인해‘성경이 오류가 있다’라는 결론을 내기에는 미흡한 것이다. 성경의 원본과 마찬가지로 사본에 있어서도 그 권위가 인정됨이 합당하다.
39 Berkhof,『성경해석학』, 45.
40 김영한,『21세기와 개혁신학』(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330.
41 B. B. Warfield, An Introduction to the Textual Criticism of the New Testament, 14, 박윤 선,『공관복음 주석』(서울: 영음사, 1953), 29에서 재인용.
42 서철원,『신학서론』(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0), 191.
43 Warfield, An Introduction to the Textual Criticism of the New Testament, 12.
44 Norman L. Geisler (ed), Inerrancy (Grand Rapids: Zondervan, 1980), 496.
45 Lindsell, The Battle for the Bible, 36.
46 Lindsell, The Battle for the Bible, 37.
47 Herman Ridderbos, Studies in Scripture and It’s Authority, 김정훈 역,『성경의 권위』(서울: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2), 37.
III. 시카고 성경무오 성명(The Chicago Statement on Inerrancy)
성경관이 다각도로 도전받고 있는 이때에 이러한 도전에 응전하면 서 개혁주의 성경관을 재정립하기 위해 국제 성경무오 협회 (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 약칭 ICBI)가 조직되었 다. 이 ICBI는 성경관에 대하여 성경의 영감과 무오사상을 재주장하 고 변호하는 것이 기독교의 생명과 활력에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 기 독교 학자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이 협의회에서 분수령적인 성명서 들을 발표했는데, 그것은“시카고 성경무오 성명”(The Chicago Statement on Inerrancy, 1978)과“시카고 성경해석학 성명“(The Chicago Statement on Hermeneutics, 1982)인데, 이 두 문서는 성경 무오와 성경해석학에 관한 복음주의 학계의 일치된 주장을 대변하 는 문서이다. 25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이 선언문에는 성경의 영감적 인 권위와 무오가 천명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시카고 성경무오 성명“ 부분을 다루면서 지금까 지 논증한 부분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확증코자 한다. ICBI 에서는 1978년 10월에 약 300명의 학자, 목사, 그리고 평신도들이 시카고에 소집하였다. 그리고 그 회의에서 14개의 대표적인 논문이 발표되었 고, 성경의 무오에 관한 역사적 위치와 성경적 규정인 19개조의“시 카고 성명”이 공적으로 채택되었다. 이 성명서는 세 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요약된 진술, 확신과 부정의 19조항, 설명서가 그것이 다. 여기에 서명한 학자들은 성경무오에 관한 본인들의 확신을 다지는 동시에 그들만이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 교리를 다 분명히 이해하고 음미하도록 격려하고 도전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 다. 그리고 투쟁의 정신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의 정신으로 성명을 발표하였다.
1. 시카고 무오 성명은 성경의 신적 기원을 긍정한다.
이 성명서는 성경의 신적 기원에 대하여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 는 것을 보게 된다. 요약된 진술과 확신과 주장의 부분의 여러 부분 에서 강조를 하고 있다. 먼저 요약된 진술 첫 번째에서“자신이 진리 이시며 진리만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을 상실된 인류에게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자, 주, 구속자, 심판자로 계시하시기 위해 성경을 영감하셨다. 거룩한 성경은 그 스스로 하나님의 증거이다”48라고 했고 두 번째 요약 진술에서는“성경은 하나님의 자신의 말씀 으로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준비되고 감독된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며 그것이 다루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불오한 신적 권위를 가지 고 있다”49라고 주장했다. 동일하게 확신과 부정 제1조에서“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성경의 권위가 교회나 전통이나 혹은 기타 인간적 출처로부 터 나온다는 것을 부인한다”50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것은 교회의 권위와 전통의 권위를 중요시하는 카톨릭의 성경관이 잘못된 것임 을 지적한 것이다. 제3조에서“우리는 기록된 말씀 전체가 하나님이 주신 계시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성경이 단지 계시에 대한 하나의 증언이거나, 부딪힐(encounter) 때만 계시가 된다거나, 그 효력에 대 하여 인간의 반응에 의존함을 부인한다”51. 이것은 성경이 부분적으 로 영감된 것이 아니라 전체에 있어서 영감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성경의 계시의 객관성을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성경의 계시 의 객관성을 부정한 신정통주의나 바르트의 성경관은 여지없이 무 너진다. 아울러 제4조에서는 성서의 저자들이 피조물이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의 계시가 그들에게 임하여도 그들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들의 기록은 많은 착오를 포함한 인간의 작품이라고 한 바 르트의 성경관의 오류를 바로 잡아 주고 있다.“우리는 자신의 형상 대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의 한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하셨 음을 확신한다. 우리는 인간의 언어가 우리의 피조성에 의하여 제한 되어 신적 계시의 도구로서 부적합하게 표현되었음을 부인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죄로 인한 인간 문화와 언어의 부패가 하나님의 영감 사역을 방해했음을 부인한다”52. 인간의 피조성 자체를 오류로 보고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 세계 안에 접촉하는 순간 하나님의 계시가 이 미 계시가 될 수 없다는 바르트의 사상이 잘못되었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48 Geisler, ed., Inerrancy, 494.
49 Geisler, ed., Inerrancy, 494.
50 Geisler, ed., Inerrancy, 494.
51 Geisler, ed., Inerrancy, 494-95.
52 Geisler, ed., Inerrancy, 495.
2. 시카고 무오 성명은 성경의 내증을 긍정한다.
이 성명은 성경의 영감과 무오에 대하여 성경 자체가 증거하고 있 음을 주장하고 있다. 요약된 진술 3번에서“성경의 신적 저자이신 성령은 자신의 내적 증거(witness)로써 성경을 우리에게 확증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열어 성경의 의미를 깨닫게 하신다”53고 주장한다.
또한 제17조에서“우리는 성령이 성경을 증거하여 신자들에게 하나 님의 기록된 말씀의 진리성을 확신시키심을 확신한다. 우리는 성령 의 이러한 증거가 성경에서 분리되거나 반대하도록 작용됨을 부인 한다”54라고 밝혔다. 성경이 이처럼 성경 자체의 권위를 가지고 있 기에 그리스도께서도 성경을 인용하시기도 하시고, 친히 성경의 권 위에 복종하심으로 성경의 권위를 증언하셨다. 이러한 확신은 성경 해석의 원리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 도록 하는 개혁주의 해석의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53 Geisler, ed., Inerrancy, 494.
54 Geisler, ed., Inerrancy, 497
3. 시카고 무오 성명은 성경의 전체적 영감과 축자적 영감, 유기 적 영감을 긍정한다.
이 성명은 이 부분에 많은 것을 할애했다. 요약된 진술 4번에서 성 경의 전체적 영감과 아울러 축자적 영감을 주장했다.“하나님이 주 신 전체적이고(wholly), 또 축자적인(verbally) 성경은 개인생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적 은혜 면에 있어서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있어서, 세계 역사의 사건들에 관하여, 하나님 하에서의 그 자체의 문헌적 기원에 대하여 진술함에 있어서나 그 모든 가르침 에 있어서 오류나 잘못이 없다”55. 제6조도 이 부분에 대하여 분명하 게 주장했다.“우리는 성경 전체와 그 모든 부분들이 원본의 글자 (words)에 이르기까지 신적 영감으로 된 것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성경이 부분이 없는 전체로, 혹은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영감 될 수 있음을 부인한다”56. 즉 성경이 구원에 관한 신앙과 교훈에만 영감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이르기까지 영감 되었고 무오함을 주 장했다. 이뿐 아니라 성경의 영감이 원어의 글자 한자 한자에 이르 기까지 영감 되었음을 확언했다. 또한 이 성명서는 유기적 영감설을 주장한다. 제7조에서“우리는 영감이란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간 저 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주신 사역임을 확신한다...우리는 영 감이 인간의 통찰로 혹은 어떤 종류의 인간의 의식이 고양된 상태로 봄으로써 영감을 축소시킴을 부인한다”57. 제8조도 여기에 대하여 동일하게 강조했다.“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영감 사역에 있어서 그 가 선택하시고 준비하신 저자들의 독특한 개성과 문학 스타일을 이 용하셨음을 확신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 저자들로 자기가 선택 하신 바로 그 글자를 쓰게 하실 때에 그들의 개성을 무시하셨음을 부인한다”58.
이와 같이 시카고 무오 성명은 인간 저자들의 개성이 그들의 기록 에 표현되었지만 그 말씀들은 신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천명하였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며, 성경의 권 위는 하나님의 권위인 것이다.
55 Geisler, ed., Inerrancy, 494
56 Geisler, ed., Inerrancy, 495.
57 Geisler, ed., Inerrancy, 495.
58 Geisler, ed., Inerrancy, 495.
4. 시카고 무오 성명은 원본과 사본의 권위를 긍정한다.
성경의 원본은 없다. 또한 하나님이 성경의 무오한 전승을 약속한 것이 없기에 성경의 전승과정에서 첨가, 반복 혹은 누락으로 인해 사본의 오류를 자연스럽게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하여 시카고 무 오 성명 제10조는 원본과 사본의 권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우리는 엄격하게 말해서 영감은 성경의 원본에만 적용되며 이 원본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아주 정확한 이용 가능한 사실들로부 터 확인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성경의 사본들과 역본들이 원본을 충실하게 나타내는 만큼으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한다”59. 즉 발전된 사본 비평을 통하여 사본과 역본들이 원본 의 의미를 잘 드러내주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결코 손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리스(R. Laird Harris)는 그의 책 Inspiration and Canonicity Of the Bible에서“본문 비평과 영감”에 관한 부분을 기술하면서 성경 의 원본과 사본과의 관계를 깊이 연구하고 난 이후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그러므로 본문 비평은 축자 영감교리에 방해가 되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준다. 본문 비평은 여러 난점들을 세 밀히 설명한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본문의 신빙성도 보여준다”60. 그는 이 책에서 본문 비평을 통해 나타나는 차이점은 미세하고 이것 은 사본의 유오성을 주장할만한 결정적 요인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 고 있다.
계속해서 이 성명은 이 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우 리는 원본의 부재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요소들이 영향 받음을 부 인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원본의 부재가 성경무오의 주장을 무효로 만들거나 부적절한 것으로 주장하는 것을 부인한다”61. 즉 원본의 부재가 성경유오의 주장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을 충실하게 번 역된 사본이나 역본들이 결코“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딤후3:15) 하는 것을 뒤집어 놓을 만큼 그 의미를 파괴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59 Geisler, ed., Inerrancy, 496.
60 R. Laird Harris, Inspiration and Canonicity of the Bible, 박종칠 역,『성경의 영감과 정경』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78), 95.
61 Geisler, ed., Inerrancy, 496.
5. 시카고 무오 성경은 불오와 무오가 동일한 용어임을 긍정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권위 있게 증언하는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의 성경은 불오하며 무오하다고 믿는 것이 정당하다. 12조에서도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다.“우리는 성경 전체가 무오함을, 즉 모든 사 기, 기만이나 속임이 없음을 확신한다. 우리는 성경의 불오와 무오 가 역사와 과학 분야에 관한 주장들을 제외하고 영적, 종교적 구원 문제에만 제한됨을 부인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지구 역사에 대한 과학적 가설들이 창조와 홍수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전복시키는 데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부인한다”62. 이 진술은 지구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이론들을 하나의 가설로 보았고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 을 주장했다. 이러한 진술은 진화론과 아울러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창조에 대한 지적 설계론에 대하여 확실한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은 현대적인 표준에 의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따라서 현대의 합리주의나 이성주의의 관점에서 성경 을 판단하려 하는 자유주의 영향 하에 있는 신학에 대하여 철퇴를 가한 것이다. 또한 성경 속에 불규칙한 문법이나 철자법, 자연을 보 이는 대로 기술한 것, 거짓된 진술의 보도, 구절들 간의 불일치 같은 현상 때문에 성경의 진리성이 부정될 수는 없다. 확신과 부정의 마 지막 조항인 제19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우리는 성경의 완전한 권위와 불오와 무오의 고백이 기독교 신앙 전체의 건전한 이해에 사활적(vital)임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고백이 그리스도의 형상에 점점 더 일치시킬 것을 확신한다”63.
62 Geisler, ed., Inerrancy, 496
63 Geisler, ed., Inerrancy, 497
6. 시카고 무오성명은 성경 계시의 점진성을 긍정한다.
신약에서 구약을 인용할 때에 구약의 본문에 일치하지 않은 경우 를 보게 된다. 이러한 경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에 대하여 시카고 성명 제5조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우리는 성경의 하나님의 계시가 점진적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초기 계시를 완성할 후기 계시가 초기 계시를 교정하거나 모순됨을 부인한다. 나아가 우 리는 신약 성경 완성 이후로 어떤 규범적 계시가 주어졌음을 부인한 다”64. 신약의 전체 저자들에게는 그들의 저작물의 권위가 구약과 대 등하며, 그들이 받은 계시의 내용은 기록된 계시의 명료성과 점진성 에서 구약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있었다. 이것은 구약이 예언이라 면 신약은 성취라는 측면에서도 분명히 이해된다. 이러한 사도 저작 의 의식은 그리스도의 오심의 빛에서 정경을 완성하기 위하여 정경 에 첨가시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첨가가 신약에서 구약의 인용에 대하여 불일치를 가져오지만 이것이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니 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점진적 계시라는 미명 하게 신약 정경의 완성 이후에 첨가가 시도되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64 Geisler, ed., Inerrancy, 495.
7. 시카고 무오 성명은 ‘성경무오’라는 신학적 용어 사용을 긍정한다.
성경에 성경무오라는 단어는 없다. 하지만 성경의 진리성을 위하 여 이 단어가 정당하게 사용되어 질 수 있음을 주장했다. 제13조에 서 이렇게 밝혔다.“우리는 성경무오를 성경의 전적 진리성에 관한 신학적 용어로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65. 즉 문법이 나 철자법의 불규칙들, 자연의 관찰적인 묘사들, 허위를 드러내는 보도들, 과장법과 어림수의 사용, 재료의 주제별 정렬, 병행구절에 서 나타나는 재료의 다양한 선별 혹은 자유로운 인용의 사용 등에 있어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문적인 정밀성이 결핍되었다고 오 류라고 말할 수 는 없는 것이다. 파인베르그(P. D. Feinberg)는 성경 무오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1) 성경무오는 문법규칙의 엄격한 고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2) 성경 무오는 비유법이나 주어진 문학 장르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3) 성경무오는 역사적인 혹은 의미론적인 정밀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4) 성경무오는 현대 과학의 전문술어를 요구하지 않는다.
5) 성경무 오는 신약의 구약에 대한 인용에 있어서 여자적인 정확성을 요구하 지 않는다.
6) 성경무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가 사용하신‘정확 한 단어‘’정확한 음성’과 정밀하게 일치해야 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7) 성경무오는 어떤 하나의 기록이나 관련되고 결합된 기록들의 철 저한 포괄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8) 성경무오는 저자들이 사용한 자 료들의 불오(Infallibility)나 무오(Inerrancy)를 요구하지 않는다.66
그동안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반대하는 입장은 성경의 영감과 무 오를 주장하는 쪽을 향하여 근본주의자, 혹은 기계적 영감설을 믿는 것으로 많은 공격을 하였다. 그러나 파인베르그의 견해는 이러한 부 분에 대하여 충분한 답변이 되었다고 본다. 이 성명은 성경의 진리 성을 나타내고 방어하고 변증하기 위해 이 용어의 사용이 적절함을 말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성경무오라는 단어를 기피할 것이 아니 라 자주 적극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어야 함을 말 해 주고 있다.
이상으로 우리는현대의성경의영감과무오에대하여가장권위있 고 발 전 적 모 습 을 보 여 준 “ 시 카 고 무 오 성 명 ”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
65 Geisler, ed., Inerrancy, 496.
66 Paul D. Feinberg,“The Meaning of Inerrancy”, in Inerrancy, 299-302.
IV. 결론
지금까지 본 논문을 통해 개혁주의 입장에서 성경의 영감과 무오에 관하여 논의했다. 성경의 영감과 무오의 권위는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고, 성경 자체가 자증을 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예수님과 사도 들과 교부들, 교회의 역사적 신앙고백이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고, 또한 현대의 권위 있는 복음주의자들과 시카고 무오 성명이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재확인해주었다.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는 안팎으로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가 설 수 있는 기반은 바른 성경관에 있다. 바른 성경관이 확립 되지 못할 때 교회는 언제나 위기 속에 처하였음을 교회사가 증명을 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이 인간이 기록하였기에 유오한 책 으로 보고, 실존주의자들은 인간 중심적 신학을 하며, 신정통주의자 는 하나님의 말씀이‘사건’화 될 때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 며 성경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성경의 무오를 주장하는 자를 향하여‘근본주의자’혹은“기계적 영감설”을 주장 하는 자라 공격하고 있다.
시카고 성경무오협회는 그 시대를 향하여 성경의 권위에 대한 정 당성을 말하고 자유주의적 사상에 대하여 분명히 그 기준을 제시했 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 속에서 시카고 성경무오협회의 성명과 같이 성경관에 대한 바른 기준의 제시가 필요하다 여겨진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작업67이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 저자의 경험과 소양과 지식을 활용함으로써 완성된 계시이다. 하나 님께서 인간 저자로 하여금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셨으며, 인간 언어의 창조주로서 전달하고 하는 바를 완벽히 담 으셨고 이 과정에서 죄가 개입되지 않도록 영감하셨다.
세속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점점 복음이 희석되어지고 은폐되어 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발견한“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 슬로건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며, 그들이 가졌던 성경관을 계승하고 학문적으로 계속 발전시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67 워필드는 이에 대하여‘concursive’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기를 원하 면 B. B. Warfield, The Inspiration and Authority of the Bible, 25 와 John R. W. Stott. Understanding the bible (London: Scripture Union 1972), 183. 와 J. I. Packer, 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 (London: IVF, 1958), 79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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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도(숭실대 Ph.D. Cand.,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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