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과 나도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문 씨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유일한 기술자 양성소였던 현 서울 과학기술대학교의 전신인 경성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근처 진남포에 있었던 회사에 취직을 했던 아버지와 당시 같이 근무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회고에 따르면 문 씨는 다른 사람과 대화도 잘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때 함께 근무하다 나중에 부산 피난 시절 초창기에 문 씨에게 감화되어 통일교에 입교해서 평생을 일성건설이라는 통일교 산하기업을 맡았던 유 모 씨는 아버지에게도 수 차례 통일교 입교를 권면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통일교의 '원리강론'을 탐독하고 그 황당한 논리에 놀랐었다. 그러나 한 가지 놀라운 점은 200년 동안 내려오던 서구 사상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동양적 시각에 의해서 기독교를 풀어 설명하려 했다는 것이다. 문선명은 나름대로 드라이버로 컴퓨터를 분해하듯 어설프게 기독교를 동양적으로 해석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라는 것은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져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면에서 통일교는 진지한 연구 대상이다.
문선명은 일제 치하의 구한말. 조선 땅의 젊은이들이면 대부분이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꿈꾸었을 시절 일본으로 유학 가서 전기과를 다녔다. 당시의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의 신도神道가 잠시 국교가 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전과 함께 일본 천황의 인간선언이 있었고, 일본인들의 민심은 신흥신도(천리교 등)에서 위로 받고 있었다. 아마도 젊은 문은 일본의 종교 신도문화에서 한 수 배웠을 것이다. 문선명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대속>은,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이루지 못 했다고 보고 자신이 다시 온 예수가 되어 못다 이룬 메시아의 사명(인류의 참부모가 되는 것)을 다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그러므로 통일교는 예수가 제자의 발을 씻겨 주는 ‘섬기는 자세’나 ‘사랑’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생활/역사 속에서의 탕감(죄 값을 받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문선명은 뜬구름을 현실적으로 주조해서 성공한 사람으로서 대표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네비게이션을 따라서 길을 찾아 찾아가다가 보면 이미 알고 있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엉뚱한 길을 헤매게 만들어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지도에 의지해서 다녔기 때문에 내려서 길을 묻거나 하는 일은 있었어도 잘못된 길을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왜냐하면 지도를 보면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고 네비게이션은 당장 앞에 있는 길만 보기 때문이다. 물론 네비게이션도 크게 확대해서 전체를 볼 수가 있지만 화면이 작기 때문에 대개의 겨우겨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의 윤곽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장 눈 앞에 닥친 일만 해결하려는 것에 급급하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삶의 큰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각종 수련 프로그램이나 신흥종교 등 신통방통한 길을 제시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그런 것을 따를 경우 전체의 윤곽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류에서 헤매게 되는 수가 많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윤리학 등의 학문들이 나이롱 뻥으로 된 것이 아닌 것이다. 보편적 지식을 외면하고 특수한 길을 주장하는 이들을 따르는 것은 지도를 버리고 네비게이션을 따르는 것과 비슷한 경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