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그들이 칠 일 동안 여리고 성벽 주위를 돌자, 성벽이 무너져 내렸으며"(히 11:30).
여호수아 1-6장을 읽으십시오.
여호수아와 여리고 성에 대한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이야기가 신화(神話)가 아닌 사실(事實)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출애굽한지 거의 40년이 되었을 때, 그들은 새로운 본향인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삶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여리고에서 결정적인 전투를 치러야 했습니다. 여리고는 성으로 둘러싸인 도시로서, 히브리인들에게는 결정적인 장애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리고 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길목에 버티고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은 기필코 정복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은 믿음으로 주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심으로써, 거룩한 땅을 정복하는 일을 계속하도록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 6장은 역사적으로 독특한 이 여리고 전쟁에 대한 드라마틱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1-6장을 읽으면, 여리고 성이 붕괴되는 극적인 장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요한 단계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오래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창 15:18) 땅을 어떻게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신성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의 땅에서 이 민족을 통하여 온 인류를 위한 구주께서 오시기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는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마땅히 배워야할 매우 귀중한 영적인 교훈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에는 역사적인 부분 뿐 아니라, 실제적이고 경건 생활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치렀던 전쟁에 대한 기록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을 위한 영적 원칙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아는 것은 우리가 "영혼의 대적"들과 영적인 싸움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엡 6:11-17). 사탄은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복들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는 "약속의 땅"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사랑과 희락과 평안과 안식과 자유와 소망과 안전과 그리고 친밀한 교제(그밖에 여러분이 갈망하는 모든 것)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여리고 성으로 가로막으며 방해하고 있습니다. 의심과 낙심과 절망의 벽들이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로막는 주요한 방해물입니다. 여리고성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어떤 특정한 죄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둘러친 벽들이 극복할 수 없는 듯 보이며, 두려움으로 움츠러들거나, "광야같이 황량한 삶"을 사는 것에 그저 만족해하며 살 때, 사탄은 몹시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도 여리고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성벽은 반드시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상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에 속한 상속을 주셨고, 땅에 속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수 1:3).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그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수 1:11).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더 이상 광야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0여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방랑생활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원망과 불평과 불순종과 불신앙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민 32:13, 고전 10:5-11, 히 3:15-19).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롭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전진하면서 좋은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3:8)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여리고 성 뿐만 아니라 온 땅에 대해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속적인 임재, 곧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수 1:5, 6:5).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수 1:9).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멋진 그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과 상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그림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젖과 꿀"을 즐기는데 실패하는 두 가지 이유를 볼 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불신앙은 "광야 생활"에 대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약속의 땅"을 나의 것으로 삼는데 실패하게 되면, 동일한 결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 비로소 하늘의 상속을 받아 누릴 때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요단강을 건너"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권리인 영적인 복을 나의 것으로 주장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1:3에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미하리로다. 그분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에베소서 1:4-14에 기록된 우리가 받은 영적인 복들의 목록을 살펴보십시오. 과연 이 모든 복들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씀하실 때, 의미한 바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의 땅"의 좋은 것들은 우리의 소유로 취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것으로 부르기 전에(수 1:3), 그것들을 우리의 소유로 주장해야 하며, 또한 실제로 소유해야 합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전을 실제로 주장하지 못합니다(히 13:5를 보시오). 자신의 장래에 대해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혼의 안식"(마 11:29)을 실제로 경험하지 못합니다. 항상 원망하며 불평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왕국의 화평과 희락(롬 14:17)을 맛보지 못합니다. 주님 안에 있는 형제와 자매들과 화평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체험하는 땅, 곧 사랑으로 강권함을 받는 땅을 밟지 못합니다(요 15:9을 읽어보시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얼마나 큰 사랑이 존재하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얼마나 큰 것입니까!).
그러나 이러한 여리고 성들은 어떤가요? 그것들은 그곳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좌절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무력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탄은 그리스도의 복을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고 전파하는 그리스도인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사력을 다해서 우리로 하여금 패배하고 겁먹고 완전히 자포자기한 상태에 빠지도록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롬 8:37).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듯이, 우리에게도 항상 인격적인 임재로 함께 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히 13:5).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딤후 1:7). 우리 하나님에게는 너무 높거나, 혹은 너무 두터운 여리고 성벽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연 당신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예비하신 "축복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여리고는 무엇입니까? 의심과 두려움, 혹은 유혹과 은밀한 죄의 성벽이나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다"는 태도 등은 이제 더 이상 넘지 못할 장애물이 아닙니다!
여리고 성에 대한 승리는 보장되었지만, 그 승리가 자동으로 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승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주신 지침들을 따라야 했습니다. 우리도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자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침들을 따라야 합니다. 여리고 성의 몰락을 가져오기 위해 취했던 조치들을 통해 우리는 확실한 승리를 위해 적용 가능한 영적 원칙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 번째이자 최우선적인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순종하며, 적용하는 일입니다(수 1:7-8). 여기서 말하고 있는 "율법"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 즉 모세오경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매주 읽는 적은 분량의 성경, 그 이상으로 더 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우리의 행함의 특징이 되며, 우리의 한 부분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수 1:8). 우리는 타협하는 일이 없이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수 1:7). 우리는 기록된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수 1:8). 그러할 때, 진실로 그러할 때에만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수 1:7-8).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하는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그것을 시도해보기 전에는 결코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의 초반부에서 발견하는 승리를 위한 또 다른 원칙은 "언약궤"를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배우기를 원하시는 원칙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여기에 멋진 그림을 그려놓으셨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이 원칙이 우리 귀에 아련히 들릴 뿐입니다. 여호수아 3장과 4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언약궤는 노아의 방주와 같이 거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약궤는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여행하는 동안 성직자(제사장)들이 들고 다닐 만큼 작은 여행용 가방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경배를 위한 장막(이스라엘 민족은 솔로몬 왕의 통치 기간 중에도 몇 년간은 성전이 없었습니다) 가운데 가장 거룩한 장소에 안치되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일년에 한 차례씩 희생제물의 피를 주 하나님 앞에 있는 언약궤에 드려야 했습니다. 요단강을 통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길을 연 것도 바로 언약궤였습니다(수 3:13-17).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돌며 행군할 때, 히브리 백성들 가운데서 진행했던 것도 이 언약궤였습니다(수 6:8-9).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묘사하신 그림을 통해서 볼 때, 언약궤는 바로 주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이십니다(요 14:6, 딤전 2:5을 보십시오). 주 예수님은 자기 피를 드려서 단번에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십니다(히 9:11-15을 보시오). 주 예수님은 "축복의 땅"에 들어가는 길을 밝히 여신 분이십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 삶 속에 있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진행하는 믿음의 행군 가운데 중심에 계셔야하는 분이십니다. 우리 믿음의 행보 가운데 성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를 그 중심에 모셔야만 합니다!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영적인 승리를 위한 원칙들이 그밖에도 많이 있습니다만, 여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원칙만으로도 당신으로 하여금 능히 "약속의 땅"에 들어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속을 누리는 삶을 시작하기에 충분합니다. 곧 우리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특징이 되기까지 스며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여리고 성이라고 하는 장애물이 있을 자리가 없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장애가 되는 성벽들은 곧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 있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일동안 믿음으로 그 성을 돌기 전까지는 그 성벽은 결코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원칙이 실제로 적용된다면(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그 성벽은 남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리고 성벽은 곧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