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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학회 시티투어 中'식영정'
무등산 북쪽 원효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은 창계천(창암천)으로 흐르다가 광주호에 머문다 광주호는 영산강 유역 개발 사업의 하나로 광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인공 호수인데, 신작로나 댐이 생기기 전에 창계천가에는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서 여름 내내 붉은 꽃구름을 이루었다
그래서 창계천의 엣 이름은 자미탄이었다. 자미는 배롱나무의 한자이다.
성산을 등지고 무등산을 바라보는 곳에 식영정이 있다. 이곳의 주인인 임억령과 김성원을 찾아 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임억령,김성원,고경명,정철을 식영정 四仙이라고 부른다.
식영정에서 내려와 왼편 안쪽으로 보이는 부용당은 1972년 지은것이고
명종 15년 (1560)지금 식영정이 있는 곳 아래쪽에 서하당을 세우고 지내던 김성원은 (1525-1597)은 새로 이 정자을 지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에게 드렸다. 임억령은 해남 출신으로 152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따. 을사사화가 나던 1545년에 동생 임백령이 소윤 일파에 가담하여 대윤의 선비들을 추방하자 그는 자책을 느끼고 금산 군수직에서 물러나 해남에 은거했다. 나중에 다시 등용된 후 1557년에는 담양부사가 되었다.
식영정이란'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아무 맥락을 모르고 그 이름만 듣더라도 가슴이 흥건해지는데.그가 쓴 <식영정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장자>에 나온,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사람 이야기를 말하고 나서) 그림자는 언제나 본형을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연법칙의 인과응보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그러는 처지에 기뻐할 것이 무엇이 있으며 슬퍼하고 성내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내가 이 외진 두메로 들어온 것은 꼭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만 한 것이 아니다. 시원하게 바람을 타고 조화옹과 함께 어울려 끝없는 거친 들에서 노니는 것이다... 그러니 식영이라고 이름짓는 것이 좋지 아니하냐."
알고 보면,식영정이라는 이름은 그저 서정적일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호방하고 무해한 경지를 가리키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송순,김윤제,김인후,기대승,양산보,백광훈,송익필,김덕령,,등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드나들었다.
<식영정아래 광주호 > 그들은 식영정에서 보이고 들리는 풍경들을 시제로 하여 수많은 시를 남겼다. 그러나 이곳을 가장 유명하게 한것은 송강의 <성산별곡>이다. 성산별곡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성산주변의 풍경과 그 속에서 노니는 서하당 식영정 주인 김성원의 풍류를 그리고 있다.
성산계류탁열도는 <송강집>부록에 실려있는 것으로, 선조 23년 (1590) 유월 복날에 여러 선비가 성산아래 정자에 모여 더위를 씻는 광경이 있다.
식영정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 1호이다.
<식영정 현판> 정자안에는 많은 문인들의 시구들이 걸려있다.
자료출처:광주민학회"누정과 원림을 찾아서" 사 진: 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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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같이 사진을 찍어도 이리 차이지니.....한밤중 전화하신 사연이 이거였군요! ^^
고맙습니다. 종종 뵐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