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지 않아도 흔들릴 때가 있다
7월4일
벌써 열흘이 지났다.
목포 한국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서해부탈장 수술을 마치고 어떻게 아물어가는지 확인하는 날이다. 날이 조금 더웁다. 아내는 어제 충분히 자지 못했다. 내 타령을 했다. 거실에서 밤 늦게까지 티브이 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아버지 김기현 장인어른을 떠올리며. 흘러간 옛노래를 즐겨하셨다는 장인어른은 해방 전까지 황해도 바닷가 중소도시에서 살았다. 해방 뒤에도 삼팔선을 오가며 곡물장사를 했다는 것이다. 비내리는 고모령. 황성옛터. 한영애의 독특한 음색이 떠오른다. 이별의 부산정거장까지. 아내는 아바와 함께 부산에서 아주 어린시절을 살았다. 빌린 돈을 받으러 친구를 찾아 부산에 갔다가 아예 눌러 붙었을 때다. 가요무대를 다 시청하고 늦게 잔 아내. 아들은 시험기간이다.
새벽 6시다. 나도 피곤하다. 아내는 어느 모처 조사원과 세월호와 관련 면담이 잡혀있어 긴장을 다 감추지 못한다. 내 나름으로 정리해 프린트해 주었다. 편하게 응답하면 돼.
무정 정만조 용등시화, 압해도에서 화원간 도로건설 계획 기사를 스크랩하여 예향신문으로 간다. 은하세탁소는 작업실 불이 꺼졌다. 먼저 목포 병원으로 간 모양이다. 어깨 수술을 한다고 했다. 술을 마시고 팔을 짚은 모양이다. 남 일이 아니다. 과자를 하나 사다. 1,200원. 강완길씨가 미리 와 있다. 박주언. 어제 문화원 편집위 참석. 박주언 부원장도 참석. 박병훈 전 원장. 조오환 부원장. 박영관 전 교장 등.
아내에게 전화. 공용터미널로 전화. 목포행 버스 12시 35분. 두시 행. 오후로 출발 늦춤. 점심은 보건소. 나는 찐빵 2개로 버틴다. 읍ㅁ사무소에서 일간지 2부.
사무실에서 참외 몇 조각 들고 천원버스 운행 도입 칼럼을 쓰다. 아내 호출. 목포로 간다. 어
께와 사타구니 오른쪽이 쑤신다. 다음주 월요일은 장인 제삿날이다. 어제 명숙이 처제와 메시지 나눔. 큰아들인 명진이는 제사를 잘 모신다. 남미에서 돌아와 몸을 추스르고 있는 처형도 처남도 다 병원수술을 한 적이 있다. 가족력을 의심하는 아내. 그것도 혹과 암. 둘째 처남은 2년 전에 젊은 날에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병원(부천)에서 운명했다. 이제 막내 처제가 이달 쯤에 수술에 들어갈 예정이다.
12년간의 유배생활을 진도에서 보낸 무정. 변려문의 마지막 대가. 조선말 5대 시인 중의 하나. 매천 황현을 비교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정시고. 은파유필. 과양출신이지만 구례에서 자진한 매천. 광양은 매실축제로 유명하다. 진도는 구기자와 관련 현대시가 눈에 드이지 않는다. 나도 책임이 있다. 홍주타령이나 했으니.
병원 앞에 주차를 했다. 2층에 올라 접수. 길게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담당외과의사 진찰. 도 바지를 내리고 웃옷을 올린다. 침대에 누운 상태서. 마취도 없다.
아내는 초음파 신청을 하러 갔다.
아니. 또 복수가 찼다. 예상이 맞았다. 사람은 누구나 예감을 한다. 단지 그것을 애써 무시하거나 회피할 뿐이다. 의사나 신부, 점쟁이보다 내 자신이 잘 아는 법. 술 한 잔에 그저 ‘이 도한 지나 가리라’식으로 적극성을 보이지 않다가 응급차량에 실려간다. 자연치유법 등을 너무 기대한다. 병원에 가지 않아야 할 72가지 이유. 운동이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쑤신다.
복대를 차지 않았다고 핀잔아닌 지적. 연륙교 압해 화언구간은 예타. 진도뉴스 1면은 팽목 석탄재 사건이다. 진도농협 인사문제는 특종이다. 이사회 수당도. 대의원회의 수당도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진도문화원은 반대로 이사회비를 낸다. 연 10만원. 밥은 제공한다. 지난 이사회 불참. 편집위 식사도 불참. 삼계탕이었다. 나는 1만 7백원 진료비. 아내는 20여만원. 각자 따로 지불했다. 진도하나로마트 농협지점. 이코노미 표지에 윤영일의원 얼굴 장식. 도 장바구니 휘어진다. 이건 내탓이다. 옥수수물 2병. 매실 1병. 건빵. 상추. 돼지고기. 풋고추.
의사는 우유와 물을 많이 음용하지 마라. 복대 착용하라. 귓소리로 간이식 생각해보라.
주사로 복수를 뱄다. 세 번. 따끔. 가라. 달도. 몸을 움직일때마다 쑤신다. 집으로 바로 간다. 옥상에 널려논 쌀에 쌀바구니가 우글거린다.
꽃이 필 때마다 바람이 불고 별들이 눈맞춤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새들이 우는 이유도 각기 다르다. 병치찜. 저녁밥이 맛있다. 다음장날에도 병치를 사자.
오늘 지출. 1200원. 2천원. 1만 7백원. 땡. 소득 잡지 3권. 신문 2부. 칼럼. 김춘화에 대한 단상,. 군의원이 되는 방법. 장영우 메스컴 타다.
비파를 마저 따야 한다. 사천리 무등집. 산림조합 공모 제출하기. 이건 내 부업이다. 생업보다 중요한. 빨래를 하는 날. 금요일이 온다. 어디선가 누군가 시를 쓰고 있다. 외로움에 치를 떤다. 뜨겁지 않다. 이야기는 많지만 이야기는 저수지 앞에서 멈춘다.
*조갑련 대표에게 버섯 말린 봉지 선물. 약을 먹다. 간장약. 학이에게 연락두절. 그는 출퇴근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행이 약이다. 외도가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 큰다. 그럴수록 외로워지는 삶. 쿠바 장수국가. 프랑스와 비슷. 심뇌혈관 극복. 무료 가족주치의 제도. 동맥경화 폴리코사넬 무료 지급. (티브이 자료)
신문기사를 정리하자. 진도군수 인터뷰. 광고 문안 확인.두시간 이상 자기.
책상을 흐트려트리라. 창의력이 넘치도록. 정리하라. 아인슈타인이 되지 마라. 그 아내처럼, 로댕의 연인처럼 되지 마라. 모딜리아니의 잔느는 더더욱 되지 말라. 팜느파탈이 되라. 저 꽃을 누가 꺾어다 주리 동물과도 꽃과도 몸을 섞는 수로부인의 노골적인 이탈의 삶을 즐겨라.
애숙이 동생은 가게를 열 것인가. 용헤원스님 책 2권 주다. 보리가루 먹자. 나의 매일매일 동선은 부질없다. 엿장수 가위질처럼 장단이 제 멋대로다. 계단은 두렵지 않지만 고통스럽ㅁ다. 그래도 나는 오른다. 아들은 달린다. 학원도 달린다. 학업성적은 두렵지 않지만 가위질이 제멋대로 인 엿장수가 되지 마라. 우아하게 오락을 즐겨라.
잠을 지배하는 아들. 부럽다.
나는 도서관의 도움을 받는다. 도서관이 나에게 왔다. 올 초부터 더 가까워졌다. 성내리시대.
철마도서관은 곤혹스럽다. 소전미술관은 고서점으로 전락했다.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달빛이 닿지 않는다. 해도 얼굴을 돌린다. 바람은 잔디밭에서 잠시 머물다 북상리 청룡사 계단으로 달려간다. 모든 것은 달린다. 달리지 않으면 피리소리가 금새 덮칠 것이다. 이곳이 진도.
김현도 그 바람에 떠밀려 해창 뻘밭까지 걸었다고 고백했다. 구세약방 시절이다.
황지우는 진흙이 다 말랏을 대 해남을 건너 올 것인가. 지리산 골짜기로 떤나간 고정희에게 전서구 하나 날리고서. 진도에 사는 여인들은 모두가 한 구절, 시가 아니면 노래가 되어 산다. 새타령을 부르는 여인은 정작 새가 되고 싶지 않다. 서방같은 것 즘이야. 시엄씨 구박도 콧방귀로 날려버린다. 사연에 사연을 곱해도 아리랑타령 한 자루면 날이 샌다.
단 한 번의 절정으로 사는 못난 여편네가 아니다. 꺾어지고 치닫는다. 놀다가세 노다나 가세 하면서 아예 제 얼굴이 달이 되어 밤을 지샌다.
아내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부질없는 성냄만 있을 뿐이다. 강이 없으면 개옹도 강이 되어 뛰어너머야 성이 차는 진도것들. 그 가시나들. 장가 시단이. 꽃단이 니단이. 칠전단이.
남자들은 놀고 먹고 장구치며 살아도 나라에 몸을 바치고 다시래기 노래와 보릿대춤 속에서 되살아간다. 죽어서야 제 자리를 잡는 진도것들.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케이팝의 생을 살았다. 한류 진류 스타. 박병천이 그랬다. 허소치가 그랬다. 정의현이 그랬다. 양홍도가 그랬다. 조공레가 그랬다. 박종기 젓대소리가 그랬다.
2.간첩놀이가 끝나가는 장의균이 심심하다.
3.그 많은 죽음들을 보면서 진도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진도에는 정거장이 없었다.
힘들어(진도말로 뻗치다고 한다)지면 철푸덕 앉은 그곳이 쉰자리였다. 죽을 자리가 되기도 했다. 어찌 노래가 없겠는가. 진도는 그래서 소리의 섬이더라. 조병화가 신경림이 김훈이 곽재구가 이를 보았다. 아예 빙의가 되어버린 이도 있었다.
4. 이 시대의 또 다른 유배자들, 진도를 연구하는 학자들
진도는 천년이 가깝게 유배지로 이용되어 왔다. 진도사랆들의 바램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고려와 조선 중앙 정계의 갈등과 권력싸움, 이념투쟁의 결과로 그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진도로 귀양을 오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벼슬 관직의 경험을 가진 지배계층 소속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연구자들이나 유배자들이나 어떤 면에서 비숫한 감정이입이 가능하다.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제대로 끌어주지 않으면 평생을 주변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눈 앞에서 바다는 하루에도 열 두 번 하얗게 뒤집어진다. 불알 아래 요도 사타구니가 쓰리다. 쑤신다. 발을 뻗는다. 아내는 이제 안전모드로 들어섰다. 잠과 티브이 시사다큐를 오간다.
아내는 풍자가 없다. 죽염 알갱이를 하나 삼킨다. 장영제류 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