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Reviewed by 박재환 2007-9-19]
195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흥미로운 영화이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지역 콰이강에 일본군에 잡힌 영국군 포로들이 강제노역으로 다리를 만들고, 미군이 포함된 영국특공대가 일본 군수물자를 실은 기차가 지나갈 찰라 그 다리를 폭파시킨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레(Pierre Boulle)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영어 각본을 쓰지 않은 피에르 불레는 195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유는 따로 있지만...)
미국의 명제작자 샘 스피겔은 피에르 불레의 소설 판권을 사들이고는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흥행 ‘초’기대작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캐스팅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따랐다. 많은 감독과 많은 스타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영국군 장교 역에는 영국배우 알렉 기네스가, 미군 장교 역에는 윌리엄 홀덴이 캐스팅되었다. 감독은 데이비드 린 감독에게 돌아갔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태국과 미얀마(버마)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군 장교(早川雪洲, 하야카와 세슈)는 미군과 영국군 포로들을 동원하여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다리를 건설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작업을 위해 니콜슨 대령(알렉 기네스)을 필두로 수백 명의 영국군 포로가 새로 투입된다. 사이토 대령은 두 달 내에 교량을 완공해야하는 중압감에 포로들을 채근한다. 한 명의 열외 없이 모든 포로가 교량 건설에 투입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니콜슨 대령이 꼿꼿하게 반기를 든다. “우리 영국군인은 열심히 할 것이다. 하지만 장교는 노역에 투입될 수 없다. 제네바 협정에 의하면 장교는 노역에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2차 대전당시 일본군들의 만행을 익히 알면 이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 사이토는 니콜슨과 장교들을 독방(땡볕의 골방)에 감금시키고 일반 사병만으로 다리 건설을 강행한다. 하지만 장교 없는 사병들은 일종의 사보타지로 게으름을 피우고, 유속이 강한 강바닥에 세운 교각은 쉽게 무너진다. 공사진척이 없자 사이토는 고집쟁이 니콜슨과 타협한다. 니콜슨의 부대는 인도에서 이미 여러 차례 교량을 건설한 적이 있는 베테랑 공병부대. 그들은 영국군의 위엄과 명예를 갖고 보란 듯이 다리 건설에 임한다. 이런 니콜슨 부대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군인이 있었으니 바로 미군 쉐어스 중령(윌리엄 홀덴)이다. 조금 뺀질이 기질이 있는 이 미군은 꾀병 환자로 열외인 상태. 왜 아군을 위험에 빠트릴 군사용 교량건설에 영국 군인이 저렇게 열성적으로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니콜슨의 의지는 명확하다. 제네바협정에 따르면 일반사병의 노역은 금지되어 있지 않다. 일본군이 합리적으로 포로들을 대우해 주는 이상 건설에 동원될 수밖에 없고, 이왕 하는 거 영국 군인으로서 명예가 달린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이곳 주민들은 영국 군인들이 건설한 튼튼한 교량에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군은 자랑스럽게 다리를 놓을 것이다. 그 와중에 뺀질이이자 시니컬한 성격의 쉐어스 중령은 탈출에 성공한다. 다리는 완공된다. 그리고 곧 일본군과 군수품을 가득 실은 첫 기차가 통과할 것이다. 한편 쉐어스 중령은 영국군 특공대의 부름을 받는다. 영국군의 임무는 다리를 폭파시키는 것. 수용소와 교량공사 정보를 가장 많이 아는 쉐어스가 동참하게 된 것이다. 영국군이 다리를 놓고, 영국군이 그 다리를 폭파시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영국군의 고지식한 면은 영화 [타이타닉]에서 익히 알 것이다. 거대한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와중에 선장과 선원들이 보여주는 황당할 정도의 ‘원리원칙’ 혹은 고리타분함. 이 영화에서 알렉 기네스가 연기하는 영국군 장교는 그 어떤 상황-죽고 죽이는 전쟁터일지라도-원칙을 고수하려는 어리석음이 있다. 같은 영어권이면서도 실용주의에 철철 넘치는 미군(윌리엄 홀덴)에게는 이런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리가 무너져 내릴 때 한 장교가 거듭 중얼거린다. “미쳤어...”‘ 미친 짓거리임에 분명한 것이다. 영화는 전쟁의 허망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우화인 셈이다.
이 영화는 (그리고, 피에르 볼리의 소설은) 2차 대전 당시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942년에서 1943년에 걸쳐 이 지역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교량건설에 투입되었던 필립 투시(Lieutenant Colonel Philip Toosey)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다. 투시 대령은 8개월에 걸쳐 태국에서 미얀마로 군수품을 옮기는데 사용될 교량 두 개(철교와 나무교량)를 건설하는데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영화촬영은 미얀마도 태국도 아닌 스리랑카 실론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영화제작진은 스리랑카의 실론에 실제 다리를 건설했다. 500명의 인부와 35마리의 코끼리가 작업에 동원되어 8개월에 걸쳐 다리를 놓았다. 교량 건설비용만 85,000파운드였다고 한다. 2002년도 환산금액으로는 120만 달러란다. 물론 이 다리는 폭파시켰고 말이다. 샘 스피겔은 촬영 후 필름 분실을 우려하여 5대의 비행기에 분산하여 공수시켰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거액을 들여 오랜 시간을 투입한 다리 폭파 장면이 담긴 필름이 운반도중 분실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콰이강의 다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 7개 부문 상을 수상했다. 각본상은 피에르 불레에게 돌아갔다. 그리고는 세월이 흘러 1984년, 실제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칼 포먼과 마이클 윌슨에게 아카데미 명예상이 주어졌다. 1958년 당시 두 사람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은 당시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 광풍 때문이다. 두 작가는 모두 블랙리스트에 오른 영화인이었다. 그래서 크레디트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984년 명예상이 주어졌을 때 윌슨은 이미 죽은 뒤였다. 포먼도 수상 발표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imdb사이트의 정보를 보니 흥미로운 게 하나 더 있다. 윌리엄 홀덴은 출연료로 옵션계약을 걸었던 모양이다. 러닝 개런티를 받기로 했는데 1966년 ABC-TV에서 이 영화를 방영하게 되자 수익 저하를 우려하여 방송금지 소송을 낸 모양이다. 물론 윌리엄 홀덴은 패소했다. 극장 수입 말고 부가수입의 수익배분을 둘러싼 논쟁이 이 때 즈음하여 현실화된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 굉장히 불편한 구석이 있는 영화이다. 영국군 워덴 소령(잭 호킨스)과 미군 쉐어스(윌리엄 홀덴) 등 특공대가 낙하산을 타고 콰이강 다리 근처로 교량 폭파 임무를 맡고 투입된다. 이들을 밀림에서 교량까지 산 넘고 물 건너 인도하는 현지인들이 있다. 샴 아가씨(Siamese girl)와 아저씨 한 명이다. 이들은 마치 히말라야 산을 등반할 때 중요한 임무를 하는 세르파 같은 역할이다. 폭파임무에 사용될 무기를 이고지고, 다리를 다친 워덴 소령을 들것에 실어 산을 탄다. 그리고는 군인이 휴식을 취할 때는 안마까지 해준다. 야간 침투를 위한 분장까지 해주고. 세상에나.. 세상에나... 그리고, 윌리엄 홀덴이 폭파스위치를 향해 뛰어갈 때 반나절을 함께 걸어온 샴 아가씨 중에 한 명이 그런다. “사랑해요.”라고... 무슨 전쟁의 로맨스도 아니고, 식민지국가의 성적 노리개도 아니고.. 정말 황당할 뿐이다. 영화제작 당시 서구인들이 갖고 있는 아시아 저개발국가에 대한 뚜렷한 시각을 노정시킨 씁쓸한 장면이다. 폭파임무에 따라 나선 샴 아가씨는 네댓 명이다. 배우들의 이름은 네 명이 크레디트에 올랐다. Vilaiwan Seeboonreaung, Ngamta Suphaphongs, Javanart Punynchoti, Kannikar Dowklee. 다들 이름이 특이하다.
알렉 기네스가 연기하는 니콜슨 대령의 연기는 지독하게도 ‘연극적’이다. 그런데 이 사람 못지않게 ‘연극적’인 연기를 한 배우는 사이토 역의 하야카와 세슈에이다. 하야카와는 할리우드 무성영화시절부터 미국영화에 출연한 일본배우이다. 영화에서 사이토는 이중 인격적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사무라이적 군인정신을 보여줌과 동시에 서구적 합리성을 보여준다. 니콜슨 대령과 만찬을 하면서 타협을 보는 장면은 동서 문화교류의 축소판인 셈이다. 교량을 완성시키기 위해 마치 하라키리를 준비하듯 유서를 써놓고 머리카락 한 줌을 자르는 장면은 대단하다. 하야카와는 뛰어난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다. 그런데 이해 조연상은 일본을 배경으로 한 멜로 드라마 [사요나라]에 출연한 레드 버턴스에게 돌아갔다. 이미 이 시절 할리우드에는 일류(日流)가 불고 있었던 것이다. [사요나라]에 출연한 일본배우 미요시 우메키 (ナンシ?梅木)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미요시 우메키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첫 번째 아시아 여배우이다. 맙소사. 자료를 찾아보니.. 미요시 우메키는 지난 달 (2007-8-28)미국에서 암으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휘파람 군가 ‘Colonel Bogey March"는 꽤 유명하다. (박재환 2007/9/19)
글 출처 : 박재환 영화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