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레바퀴는 개인의 길흉(吉凶)과는 상관없이 굴러간다.
특히 혁명기나 쿠데타, 정변기에는 굴러가는 속도가 빠르다. 김대중이 정치적으로 좌절하면서 체포와 석방이 되풀이되고 있을 때, 박정희는 1962년 3월 24일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하여 국권을 한 손에 거머쥐었다. 윤보선 대통령이 정치활동정화법 제정에 반대하면서 사임한 것을 박정희가 이것마져 차지한 것이다.
1939년 만주행을 통해 군인으로 변신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 박정희 인터넷기념관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정언은 만고의 진리다.
민주당 정부의 부패를 명분으로 쿠데타를 감행한 군사정권은 오래지 않아 부패하기 시작했다. 감시와 견제세력이 없는 절대권력은 곧 ‘체제내적’인 부패의 늪에 빠져들었다. 본격적인 정치참여를 앞두고 정치자금을 마련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군사정권이 당초 혁명공약에서 내세웠던 ‘부정부패 일소’는 날이 갈수록 퇴색해지고 자신들이 더욱 부패하여 세간에서는 ‘구악 뺨치는 신악’이 더 문제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군사정권은 민주공화당의 사전조직에 필요한 정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세칭 ‘4대 의혹사건’을 일으켰다. 구체적으로 증권파동, 워커힐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 빠찡고사건을 가리키는 4대의혹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주동이 된 비리 횡령사건이다.
정치활동의 금지를 규정한 정치정화법의 발동 속에서 군사정권은 민정이양에 대비, 김종필이 책임을 맡고 있던 중앙정보부의 비밀공작 아래 공화당의 사전 창당작업을 추진했다. 이런 과정에서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하게 되자 4대 의혹사건을 저질러 자금을 충당하고자 했던 것이다.
민정이양 후 국회의 국정감사를 통해 그 내막이 일부 폭로되었으나, 끝내 의혹사건으로 남겨진 이 사건들은 그 수법이 극히 치졸 대담할 뿐 아니라, 그 직접적인 피해가 일반국민에게 돌아갔다는 점에서 군사정부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들이었다.
증권파동이란 1962~63년 중앙정보부가 대한증권거래소를 직접 장악, 주가조작을 통해 엄청난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을 말한다. 전 중앙정보부 행정처장 이영근, 관리실장 정지원 등은 농협중앙회장 오덕준, 부회장 권병호에게 압력을 넣어 당시 농협이 보유하고 있던 인기주인 한국전력주 12만 8천 주를 시가보다 5% 싼 가격으로 방출시켰다.
이렇게 해서 얻은 8억 6,224만 6,400환을 증권업 유경험자인 윤응상에게 자본금으로 대주어 통일ㆍ동명ㆍ일홍의 세 증권회사를 설립하게 하는 한편, 대한증권거래소 총주의 약 7할을 점유케 하고 윤유상의 심복인 서재식을 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 내세웠다.
이렇게 하여 윤응상의 독무대가 된 대한증권거래소는 증권거래법 및 거래소의 사업규정 등을 무시해가면서 윤응상계의 증권회사를 불법 지원, 이들 회사의 주가를 폭등시켰다.
그러나 이들 회사는 약속한 결재를 이행하지 않는 방법으로 주가를 폭락시켜 5,340명에 달하는 선의의 군소 투자가들이 138억 6천만 환이라는 엄청난 손해를 입고 자살소동을 빚는 등 큰 물의를 일으켰다.
워커힐사건은 5ㆍ16이 난 그해 가을 김종필의 중앙정보부가 외화를 획득한다는 명분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성동구 광장동 광나루 일대 18만 평에 동양 최대의 관광단지인 워커힐을 건설하면서 그중 상당액수를 중앙정보부가 횡령한 사건이다.
중앙정보부는 총규모 60억 환을 들여 이른바 사단법인 워커힐 관광사업 시설을 착공한 후, 교통부로 하여금 관광공사법을 만들게 하여 관광공사를 설립, 교통부 장관이 주관하게 했다. 그러나 공사도중 산업은행의 융자거부로 시설공사가 부진을 면치 못하자 교통부 장관 박춘식, 관광공사 사장 신두영은 1962년 8월부터 63년 2월 사이에 법적ㆍ업무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정부주식 출자금 5억 3,590만 9천여 환을 워커힐 이사장 임병주(당시 중정 제2국 제1과장)에게 전용 가불케 하여 워커힐을 건립케 했으며, 임병주는 그중 막대한 공사자금을 횡령했다. 뿐만 아니라 교통부 장관과 각군 공병감에게 압력을 넣어 각종 군장비와 군인들을 동원, 무상 노역케 하는 등의 부정을 저지른 사건이다.
새나라자동차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일본제 승용차를 불법 반입한 뒤, 이를 시가의 2배 이상으로 국내시장에 판매하여 거액의 폭리를 취한 사건이다. 1961년 12월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 한일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갔을 때 일본 야스다 상사의 사장인 재일교포 박노정을 만나 자동차 공업에 대해 의견교환을 한 결과, 박노정은 안석규 전무를 한국에 파견키로 했다.
안석규는 중앙정보부 차장보 석정선과 접촉, 그의 도움으로 새나라동업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정부에서는 관광용 자동차 4백대를 수입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새나라회사가 대행 수입판매케 했다. 이 과정에서 석정선은 회사의 부지 선정 및 구입을 알선해주도록 인천시장에게 압력을 넣는 한편, 자동차 원자재 수입에 필요한 자동차보호법 초안을 제출하도록 상공부에 압력을 가했다.
김대중은 칩거하면서 군사정권의 동향을 예리하게 지켜보았다. 권력을 탈취한 지 1년이 안 되어 그들은 부패하고 있었다. 장면 정권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의 부패가 권력핵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4대 의혹사건은 당시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고 비난받았던 것으로서, 워커힐건설과 일본으로부터 자동차와 핀보울 기계를 도입하면서 얽혀진 부정, 그리고 권력에 의한 주식증권의 조작으로 빚어진 이른바 증권파동이었다. 이런 일을 자행함으로써 그들은 거액의 정치자금을 만들었다가 세상의 의혹을 사게 되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심했던 것은 증권파동이었다. 그들은 증권거래소에 개입하여 의식적으로 주가를 조작한 후, 폭리를 취한 것인데, 이 때문에 주가가 하루에 2배로 폭등하는 등의 놀라운 현상을 가져오게 했다. 이는 그 뒤, 민정(民政)으로 돌아서면서 크게 문제되었다. 그들은 이같은 조작으로 수 십억 원의 정치자금을 벌어들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정 말기에는 시멘트, 밀가루, 설탕 등 세 가지 가루(粉)를 둘러싼 부정사건 즉, 3분 폭리사건을 일으켰는데, 이 역시 가격을 조작해서 업자에게 막대한 이익을 준 다음 업자로부터 정치자금을 얻어내는 방법이었다. 그 이익은 백억 원이 넘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들은 설탕이나 밀가루 값이 갑자기 2, 3배로 폭등하는 상태를 만들어 놓아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던 것이다. (주석 13)
주석
13) 김대중, <행동하는 양심으로>, 86쪽.
첫댓글 박정희는 이렇게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박정희가 깨끗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으니 정말 문제입니다. 박정희의 본질을 제대로 보게 되는 날 이 나라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것입니다.
박정희를 미화하는 중앙지나 역사의식이 부족한 언론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국민들이 세뇌당한 결과라 생각됩니다. 박정희 바로보기가 우리 시대에 마무리되길 바랍니다